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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릿지 칼럼] 둘레길 새소리의 교훈

입력 2018-03-21 15:49
신문게재 2018-03-22 23면

김종대 전 동국제강 상무
김종대 전 동국제강 상무

비 오는 3월 중순 아내와 함께 동네 앞산을 올랐다. 앞산 둘레길은 2000여 아파트 세대가 사는 곳 뒤편 숲이 울창한 산속 같은 곳에 있었다. 가랑비가 얌전히 떨어지는 작은 못(池)을 지나자 골짜기가 나타났다. 도랑물이 졸졸 흐르면서 얼음으로 뒤덮였던 싸늘한 기운을 몰아냈다. 사람들의 왕래가 별로 없어서인지 도랑물은 맑았다. 가까이 들여다보니 작은 돌들이 납작 엎드려 봄이 오는 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 같았다. “이렇게 좋은데 매일 올 걸 그랬다”고 아내는 혼잣말을 던졌다.


지나간 겨울은 너무 춥고 길었다. 아내 말대로 앞산을 자주 찾아오고 싶어졌다. 이름 모를 새들의 경쾌한 울음이 연달아 들려왔다. 그 소리는 나를 어린 시절로 데려갔다. 인천 출생인 내가 새소리에 귀를 기울인 것은 경기도 안산 동막골이란 산골에서였다.



둘레길을 되돌아오면서 새소리가 다시 들렸다. 잊고 살았던 청량한 새소리에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사이, 보이지 않았던 연리지 나무가 길목에서 우리 내외를 맞았다. 서로 다른 나무가 가지를 이어 한 몸으로 잇고 있는 형상이 기이했다. 아내도 나도 슬며시 얼굴을 마주 쳐다보고는 빙그레 웃었다. 우리도 그렇게 살자는 눈치였다. 아직 봄의 기운은 차오르지 않았는데 둘레길의 나뭇잎들과 흙은 이미 봄이었다.

아파트 입구에는 언제부터인지 상인들이 좌판을 벌여 놓고 냉이, 달래, 세발나물 등의 봄나물을 팔고 있었다. 한 겨울을 버티느라 찬바람을 맞지 않은 냉이가 있을까. 겨울 찬바람을 맞아야 봄이 오듯 냉이도, 둘레길의 나뭇잎들도 찬바람을 맞고 겨울을 버텼을 것이다.

물기 가득한 냉이를 손질하던 아내가 봄이 오는 환상을 단번에 깨버렸다. “장사꾼들은 정말 이해 못하겠네, 냉이는 손톱만큼이야. 나머진 그냥 풀이라니까.” 속아도 속은 줄이나 알면 다행이라는 푸념으로 지난 주말 오후는 봄을 먹어보려다 냄새만 맡고 말았다.

이제 두꺼운 외투를 안 입어도 된다. 더 시간이 지나면 아주 가벼운 옷 한 장으로도 지낼 수 있는데, 내가 다녔던 직장의 후배들은 잔뜩 움츠리고 있다. 대미 철강 수출 관세를 25% 이상 뒤집어썼으니 그럴 만하다.

관세 폭탄이 마치 처음 일어난 일인 양 낙담을 하는 후배들의 모습은 안타깝다. 대미 철강 관세의 폭탄은 오래전부터 있었다. 언제 더한 폭탄이 날아들지도 모를 일이다. 그럼에도 매년 예전과 똑같이 생각하고, 똑같은 일을 반복했던 이들은 퇴보와 도산이란 쓰라림을 받아왔다.

멀리 내다보고 새로운 ‘철강코리아’의 종자를 글로벌 곳곳에 심어놓는 일이 방책일 것인데, 한국의 이름으로 미국의 문을 수 년 동안 두드렸으니 예고된 폭탄이었다.

트럼프의 232조에 벌벌 떨 일이 아니다. 겨울에 입었던 두터운 외투를 벗어던지는 순리처럼 불요불급한 것부터 벗어 버리고, 현지 생산과 주변 생산을 생각해 볼 일이다. 먼 십수 년 이후를 대비함이다.

3월이 가기 전에 후배를 불러 봄을 알렸던 앞산 둘레길의 새소리를 들려줘야겠다. 봄의 기운으로 새롭게 도전하는 후배들에게 격려를 보낸다. 힘내라 ‘철강코리아’. 

 

김종대 전 동국제강 상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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