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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에 허 찔린 김정은, 무력반발 가능성 … 정부 ‘갈증 조정역’ 이제부터가 더 중요

입력 2018-05-25 0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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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대통령의 전격적인 미북 정상회담 취소 발표로 한반도에는 다시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연합뉴스.




두 스트롱맨 간의 힘 겨루기에서 일단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허를 찔렸다.

풍계리 핵 실험장 폐쇄라는 ‘성의’를 표시했음에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의 진의를 믿지 못하겠다”며 다음달 12일 열릴 예정이던 북미정상회담을 전격 취소했다. 자존심을 크게 상한 김정은 위원장이 어느 정도 수위의 어떤 대응책을 내놓을 지 전세계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 트럼프 취소 결정의 표면적 이유는 ‘북한의 잇단 반(反) 비핵화 성명’

트럼프 대통령은 24일(현지시간) 김정은 위원장에게 보내는 서한에서 “최근 당신들의 발언들에 나타난 극도의 분노와 공개적 적대감으로 인해 애석하게도 지금 정상회담을 갖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생각된다”며 6월 22일 싱가포르 회담 취소를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한 극도의 분노와 적대감은 이번 정상회담을 함께 준비하고 있는 북한의 대미 외교라인에서 나온 강도 높은 담화 내용을 가리키는 것이다.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과 최선희 외무성 부상의 최근 담화가 결정적인 사유라는 것이다.

최선희 부상은 24일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을 정조준해 미국을 맹비난했다. 그는 “미국이 우리를 회담장에서 만나겠는지 아니면 ‘핵 대 핵’의 대결장에서 만나겠는지는 전적으로 미국의 결심과 처신 여하에 달려있다”고 미국을 겁박했다. 로이터통신은 백악관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이 담화가 트럼프의 ‘인내의 한계’ 였다”고 전했다.

이에 앞서 김계관 제1부상은 지난 16일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리비아식 핵포기’ 발언을 강력히 비난했다. 미국이 계속 일방적인 핵포기만을 강요한다면 북한은 6월 조미(북미) 수뇌회담을 재고려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처음 피력했다.

북한의 이런 일련의 태도가 트럼프 대통령 특유의 승부사적 기질을 발휘하게 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정은 위원장이 보름 앞으로 다가온 북미장상회담을 앞두고 자신에게 싸움을 걸어온 것인데, 호락호락하게 받아주었다간 회담 성공도 확신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또 자칫 북한에 끌려간다는 비판만 받을 수 있는 만큼, 미국의 힘(핵 능력)을 과시하며 선수를 친 것이라는 분석이다.

◇ 자존심에 상처 입은 김정은, 무력 카드 꺼내 들까

북한은 전통적으로 외교가 강하다. 김일성-김정일 정권이 가장 자부심을 가졌던 부분이 외교력이었다. ‘벼랑 끝 전술’이라는 극한의 전략으로 체제를 유지하며 존재감을 보여왔다.

이번에 김계관이나 최선희의 담화도 북측이 주도하는 정상회담의 노림수가 있었던 것으로 읽힌다. 그런데 생각도 못했던 회담 취소 결정으로 트럼프가 선수를 친 것이다. 북한 주민에 ‘비핵화의 미래’를 대대적으로 선전해온 김정은의 리더십을 크게 훼손하게 만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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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대통령이 24일 백악관에서 전격적인 미북정상회담 취소 발표의 배경 등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더욱이 비핵화의 첫 단추인 풍계리 핵실험장에 외국 기자들까지 불러 폐쇄 행사를 가진 날, ‘취소 통보’를 받은 김정은으로 하여금 분노하게 만들기에 충분한 ‘도발’로 인식될 수 있다.

일단 김 위원장은 곧 강력한 대미 성토 문구가 담긴 공개문을 낼 가능성이 점쳐진다. 김정은 위원장을 대신해 조선중앙통신이나 노동신문 등을 통해 공식 입장을 천명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북한은 성실히 비핵화에 임했는데도 미국이 분에 넘치는 무리한 요구를 하다가 결국 북한을 배신했다는 내용이 주가 될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북한의 무력 반발 가능성이다. 풍계리 핵 실험장을 폐쇄했다고는 하지만 북한에는 아직도 강력한 무기체계가 축적되어 있다. 다량의 이동식 미사일 발사대는 건재하고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그리고 잠수함 장착 미사일 등이 구비되어 있다.

여차 하면 동해안으로 무력 미사일 시위를 재개할 가능성을 완전히 배재할 수 없는 상황이다. 김정은 위원장이 자칫 과격한 결정을 내릴 경우 적어도 북한 내부에서는 그를 말릴 만한 세력이 없다는 것이 우려되는 부분이다.

◇ 뒤통수 세계 맞은 한국, 정작 지금부터 조종자 역할 중요

청와대는 트럼프 대통령의 회담 취소 결정 직전까지도 사실 파악을 못하고 있었다. 심야에 청와대에서 긴급 NSC 상임위원회가 열리는 등 분주한 모습이었다.

바로 이틀 전에 트럼프 대통령과 한미정상회담을 하고 온 문재인 대통령으로선 안팎에서 비판에 시달릴 수 밖에 없는 처지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런 낌새나 트럼프 대통령 특유의 전략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미북정상회담 성사 가능성은 99.9%”라며 공개적으로 언급한 부분 등은 우리의 외교 수준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란 비판도 적지 않다.

현재 가장 우려되는 시나리오는 미북정상회담 취소에 반발해 북한이 자칫 오판을 하는 경우다. 이런 상황이 오면, 우리 정부가 진행해 온 핵폐기 30년의 노력은 물거품이 된다. 그리고 한반도는 다시 예전의 군사적 초긴장 상태로 되돌아가게 된다.

지난 1990년 중반의 1차 북핵 위기도 지금처럼 북한 핵개발에 대한 국제사회의 의혹을 북한이 제대로 해소하지 못했던 탓이었다. 당시 한국과 미국이 이를 문제 삼아 팀 스프리트 군사훈련을 제기했고, 북한이 이제 불만을 제기하며 1993년 NPT(핵확산금지조약) 탈퇴를 선언했던 것이 지금 상황과 얼추 맞아 떨어진다는 분석도 나온다.

북한으로선 미국의 ‘리비아식’ 혹은 ‘CVID’(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폐기) 압박이 버거울 수 있다. 그렇다고 무력시위를 하기엔 “우리 핵 능력이 훨씬 더 낫다”고 한 트럼프 대통령의 경고가 예사롭지 않다. 따라서 북한은 당장 강경한 대응 보다는 말과 선전에 의한 비난전을 펼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미국으로부터 더 많은 경제적 도움을 약속받고 재협상에 돌입할 것이란 관측이 제기된다. 미국이나 북한 모두 최악의 상황을 상정하기는 부담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그렇기 때문에 지금부터가 우리의 중재 및 조율 역할이 긴요하다고 강조한다. 북한 전문가인 조용현 동국대 교수는 “무력 충돌은 모두에게 도움이 되지 않으며 사태를 더욱 악화시킬 수 있는 만큼, 우리 정부의 차분한 중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미북 정상간의 만남은 미뤄지더라도 양 측의 갈등과 간극을 메워주는 역할이 분명히 우리에게 있다는 얘기다.

한장희 기자 mr.han777@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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