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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 ‘텍사스 고모’ 그리고 지금의 키르기스스탄 여인 “세대, 성별, 시공간 넘어선 모두의 이야기”

‘광주리를 이고 가시네요, 또’로 호흡 맞췄던 윤미현 작가와 최용훈 연출의 새로운 의기투합작 ‘텍사스 고모’
국립극단과 안산문화재단 공동제작, 박혜진, 독일 출신의 윤안나 등 출연

입력 2018-10-21 11:00

텍사스 고모
연극 ‘텍사스 고모’의 텍사스 고모 역의 박혜진(왼쪽)과 키르기스스탄 여인 윤안나(사진제공=국립극단)

 

주한미군 리차드를 따라 나섰다 36년만에 돌아온 텍사스 고모(박혜진), 예순을 훌쩍 넘긴 텍사스 고모의 오빠와 결혼해 한구에 온 19세 키르기스스탄 여인(윤안나). 두 사람 사이에는 아메리칸 드림과 코리안드림, 막연한 희망과 동경, 생각과는 전혀 달랐던 현실이 교집합으로 자리 잡고 있다.



연극 ‘텍사스 고모’(10월 26~27일 안산문화예술의전당 별무리극장, 11월 2~25일 백성희장민호극장)는 표면적으로 결혼이주자에 대한 이야기다. 하지만 ‘텍사스 고모’는 막연한 이상과 현실의 괴리, 그로 인해 겪게 되는 고통과 소외에 대한 이야기다.

‘텍사스 고모’는 실제로 결혼해 아르헨티나로 떠났다 돌아온 윤미현 작가의 친구 고모 이야기에서 영감을 얻어 집필한 작품이다. 19일 서계동 국립극단 백성희장민호극장에서 열린 ‘텍사스 고모’ 제작발표회에서 윤미현 작가는 이같은 작품 집필 계기를 전하며 “30년 이민생활을 접고 돌아오는 사람 짐이 너무 단출했다. 저에게 ‘작가인 네가 내 얘기를 들어보면 어떤가’라고 하면서도 전남편의 이름만 읊조릴 뿐 정작 본인 이야기를 꺼내지 못하셨다”고 전했다. 

 

텍사스 고모
연극 ‘텍사스 고모’의 윤미현 작가(사진제공=국립극단)
“굳이 표현하지 않아도 마음으로 건너오는 것들이 있었습니다. 아르헨티나 고모와 현재 이 땅 이주여성들에서 사회의 모습이 보였죠. 텍사스 고모로 대변되지만 남녀 구별없이 인간에게 부여될 수 있는 이미지이자 적용되는 이야기예요. 남성이 결혼이민을 가는 설정으로 ‘텍사스 고모부’는 어떨까 생각은 해봤는데 타인, 소외의 느낌은 여성이 더 강했어요. 정서적 전달을 위해 이주자, 여성에 초점을 맞추고는 있지만 여성만을 대변하는 작품은 아닙니다.”

이어 윤 작가는 “취재를 통해 접한 그들(이주여성, 다문화가족 등)의 삶은 굉장히 리얼리즘”이었다며 “이 작품의 이야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픽션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털어놓았다.

“한국 땅에 들어와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도 있는데 이 작품이 이분법적 사고를 드러내는 게 아닐까 싶어 내적갈등을 겪었어요. 행복한 사람을 들여다보는 것도 의미 있지만 소외된 타자의 마음으로 들여다보는 건 어떨까 생각했죠. 그러기 위해 한쪽 편에 서야한다면 타자의 입장에서 들어온 사람들에 대해 글을 쓰기로 마음먹었어요.”

최용훈 연출은 극 중 “너네는 이런 거 없지?”라는 대사의 의미심장함에 대해 언급했다. 그는 “가장 와닿는 대사”였다며 “그들과 그들의 상황을 비하하는 갑을 관계, 갑질을 당하고도 갑질을 하는 모습을 드러내는 대사 같았다”고 설명했다.

“우리보다 조금 경제사정이 안좋은 나라 여성에게 우리가 당한 걸 똑같이 하고 있으면서도 그에 대해 인지하지 못하고 있죠. 교훈을 얻지 못하고 답습하는 스스로를 돌아봐야하지 않을까라는 관점에서 이 작품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텍사스 고모
연극 ‘텍사스 고모’의 최용훈 연출(사진제공=국립극단)

 

이어 최용훈 연출은 “이주노동자, 사회 문제 등 보다는 우리가 반성할 점들, 사람으로서의 자세 등을 생각하면서 만들고 있다”고 덧붙였다. 텍사스 고모 역의 박혜진은 “농촌에서 가난하게 살던, 순진하고 배고픈 여성”이라며 “입 하나 덜기 위해 남의 집에 보내는 일이 흔했던 1970년대에는 특별하지 않은, 흔한 여자”라고 역할에 대해 소개했다.

“현시대 뿐 아니라 과거와 현재를 관통하는 사람, 인권의 문제를 이야기합니다. ‘인간이 인간한테 그러면 안되는 거잖아’ 같은 정곡을 찌르는 대사 등 말맛을 살린 작품이죠.”

키르기스스탄 여인 역에 대해 윤안나는 “공장에 다니다가 훌륭한 사람이 되려는 꿈을 안고 한국에 온 여성”이라고 소개하며 “저 역시 다른 환경(독일)에서 오다 보니 다른 나라 여성으로서 한국에서 산다는 게 어떤지 공감이 많이 됐다”고 소개했다. “이 시대에 아주 중요한 작품”이라는 윤안나의 말에 박혜진은 “역지사지의 자세로 한번쯤은 생각해 볼 문제”라고 말을 보탰다. 

 

텍사스 고모
연극 ‘텍사스 고모’ 관계자들. 왼쪽부터 오현실 국립극단 사무국장, 윤미현 작가, 텍사스 고모 역의 박혜진, 키르기스스탄 여인 윤안나, 안산문화재단 백정희 대표이사, 최용훈 연출(사진제공=국립극단)

 

“이주결혼, 농촌의 결혼문제 등을 받아들여야하는 거라면 어떻게 인권을 존중하면서 건강한 사회구조로 이끌어갈 수 있을까를 생각해 봐야한다고 생각합니다.”

‘텍사스 고모’는 국립극단이 타 기관과 공동제작하는 첫 작품이다. 백정희 안산문화재단 대표이사는 “안산에서 만들었으면 우리만의 이야기로 끝났을 것”이라며 “‘텍사스 고모’는 안산 지역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세대갈등, 시공간을 넘어 같이 나눠야하는 이야기”라고 밝혔다.

오현실 국립극단 사무국장은 “서울·지역 간 심한 문화격차를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을 지속적으로 고민하다가 적극적인 협업으로 의견을 모았다”며 “안산문화재단에서 2년에 한번씩 실시하는 우수 대본 공모 대상작인 ‘텍사스 고모’를 시작으로 서너 군데 지역과의 협업을 계획 중”이라고 전했다. 이어 “이번 ‘텍사스 고모’ 협업을 발판 삼아 지역과의 문화 교류, 작업방법 등 상생을 모색하겠다”고 의지를 다지기도 했다.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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