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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경제 칼럼] 이 또한 지나가리라(Hoc quoque transibit)

입력 2019-03-11 08:00

신중섭
신중섭 (강원대학교 윤리교육과 교수)

김정호는 ‘시장경제는 한국인의 몸에 안 맞는 옷인가’(자유경제에세이 284)에서 우리 현실에 대한 다소 비관적인 진단을 내놓았다. 개인주의가 강한 나라들은 대체로 경제자유지수가 높고 집단주의가 강한 나라는 대체로 낮다. 국민이 개인주의 성향이 높으면 시장경제를 잘 할 확률이 높고, 집단주의 성향이 강한 국민은 사회주의적 국가로 빠지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아시아의 네 마리 용이라 불리는 홍콩, 싱가포르, 대만, 한국은 이런 추세에 잘 들어맞지 않는다. 홍콩과 싱가포르는 경제자유지수가 세계 1, 2위고, 대만은 17위, 한국은 27위다. 이들의 경제자유지수는 상위권에 속하는데 개인주의 지수는 낮아 집단주의적이다. 이들은 집단주의라는 몸에, 맞지 않는 시장경제라는 옷을 입고 있다.



이런 부조화를 김정호는 두 가지로 설명한다. 첫째로 이들 나라는 식민지로부터 독립한 직후 얼떨결에 국민의 일반 의사와 관계없이 시장경제를 택했다. 경제적 자유가 독재에 의해서 강요된 것이다. 둘째로 이들 나라는 미국 또는 영국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홍콩은 영국의 영토였고 싱가포르 역시 영국 문화의 영향이 강하게 남아 있었다. 한국과 대만은 미국의 혈맹이었기 때문에 제도에 미국적인 색채가 강하게 반영되었다.

이런 분석에 따르면 우리나라가 국민의 강한 집단주의적 성향에도 불구하고 자유경제체제를 누려올 수 있었던 것은 경제체제의 선택에서 국민성이 별 영향을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세계사에 유례없는 경제성장을 이루었다. 그런데 국민들의 몸에 맞지 않은 옷을 강요했던 권위주의 시대가 끝나면서 지금 우리 국민은 집단주의적인 국민성에 어울리는 제도로 나아가고 있다. 김정호는 정규직 전환 선언,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 경제민주화, 지방분권, 토지공개념 개헌 등을 국민성에 맞는 제도로 보고 있다. 그러면서 그는 우리나라가 베네수엘라처럼 변해 가고 있다는 불안한 마음을 감추지 않았다. 공감이 가는 분석이다.

이와 달리 자유시장경제가 궁극적으로 지속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낙관적인 전망도 있다. 이안 모리스는 <가치관의 탄생>에서 ‘야수 같은 물질의 힘’이 어떻게 ‘문화와 가치관, 신념’을 한정하고 결정짓는가를 야심차게 설명했다. 모리스의 설명에 따르면 지난 2만 년 간 인간에게 어떤 도덕률을 채택하게 한 것은 ‘물질의 힘’이었다. 그는 “인간은 복잡한 가치, 규범, 기대수준, 문화체계를 개발하고, 이것들은 이러저러한 협력 체계를 유지하는 역할을 하고, 다시 이 협력 체계는 환경 변화에 맞서 우리의 생존 가능성을 높인다. 문화적 혁신도 생물학적 진화처럼 ‘수없이 자잘한 실험들로 진행되는 경쟁 프로세스’의 일부다. 이런 실험들이 성패를 거듭하면서 특정 환경에 유리한 형질들이 그렇지 못한 형질들을 대체한다”고 했다.

모리스는 거시적인 인류사적 관점에서 인간 가치관의 변화를 분석했다. 그는 인간 발전 과정을 수렵채집, 농업, 화석연료 시대로 구분한다. 지구 곳곳에서 시간 차이를 두고 각각의 단계가 진행되었지만, 각각의 단계는 광범위한 유사성을 갖는다. 각 단계의 문화 유형을 결정하는 요인은 에너지 획득 방식이다. 에너지 획득 방식은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방향으로 진화했다. 모리스의 핵심은 에너지 획득 방식이 해당 시대에 유효한 사회 체제와 해당 시대에 득세할 사회적 가치들을 ‘결정’하거나 최소한 ‘한정’한다는 것이다. 각 시대는 그 시대가 필요로 하는 가치관을 정한다. 이 과정에서 인간의 창의성을 더 잘 보장하는 사회 체제가 경쟁 체제들을 압도하고 널리 전파된다. 그의 이러한 설명 방식은 ‘기능주의적 설명’이다. 기능주의적 설명 방식에 따르면 인간의 가치관은 일종의 적응형질이다. 사람들은 자신을 둘러싼 사회 시스템이 변하면 자체 효율을 극대화하기 위해 가치관을 조정한다.

모리스에 따르면 수렵채집 시대에는 주로 평등주의적 사회 구조와 가치관을 채택했다. 수렵채집의 평등주의 사회는 자산 공유를 사회 규범으로 삼았고, 불평등을 좀처럼 인정하지 않았으며, 상당히 폭력적이었다. 이와 달리 농경 사회에서는 농경 사회에 맞게 사회를 계층화하고 폭력을 억제하는 경향을 띠었다. 그리고 18세기에 출현해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화석연료 사회는 정치적 위계와 성별 위계에 대해서는 강하게 반대하지만 부의 불평등에 대해서는 상당히 관대하고, 폭력성은 이전의 사회와 비교하여 낮다. 모리스의 이론은 많은 반박의 여지를 안고 있다. 대표적인 반박은 모리스가 ‘결정론적 정량화에 사로잡혀’ 가치관과 문화 유형의 다양성을 축소했다는 비판이다. 

그런데 화석연료의 시대가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자유시장경제는 화석연료 시대와 친화적이다. 따라서 화석연료 시대로 진입한 나라는 장기적으로 시장친화적 가치관을 갖게 된다. 그렇지 않으면 그 사회는 적응력이 떨어져 소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생산양식이 변하면 사회·경제·정치 체제와 함께 가치체계가 변한다.

우리 사회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뒷받침하는 가치관이나 문화는 형성하지 못했다. 시간이 충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산업의 압축 근대화에는 성공했지만, 가치나 문화의 근대화는 압축적으로 이룩하지 못했다. 문화와 제도가 함께 성장하면 좋겠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못할 수도 있다. 서구에서 가치의 근대화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문화가 다원화될수록 다양한 가치가 공존하지만, 장기적으로는 한 방향을 향한다. 물론 시장경제라는 제도에 적응하지 못하는 가치나 문화가 붕괴되듯이, 문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제도가 와해될 수도 있다.

니얼 퍼거슨은 문화와 제도 관계에서 제도가 문화를 변형시킨 역사적 사례를 찾았다. 그는 20세기에 전개된 서독과 동독, 남한과 북한의 상황을 예로 들면서 비슷한 문화에서 다른 제도로 출발한 나라들이 어떻게 변했는가를 흥미롭게 분석했다. 거의 비슷한 문화를 가진 사람들 가운데 한쪽 사람들에게는 공산주의 제도를, 다른 쪽 사람들에게는 자본주의 제도를 적용함으로써 그들의 행동 방식이 즉각적으로 분리되는 놀라운 결과가 나왔다. 새로운 제도가 새로운 문화를 만들었다. 서양의 제도를 새롭게 도입한 나라에서는 문화와 제도의 역전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역전 현상이 언제나 순조롭게 진행되는 것은 아니다. 문화는 언제나 자신에게 잘 맞지 않는 제도를 거부하고 뒤엎으려는 속성을 지니고 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서구의 시장경제와 자유민주주의를 국정이념으로 도입하였지만, 문화의 저항으로 그것을 정착시키지 못한 나라도 많다. 제도가 문화를 극복하지 못하고 침몰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다행스럽게 시행착오를 거듭하면서 문화가 제도에 적응하면서 변하는 방향으로 접어들었다고 볼 수 있다. 문화적 토대 없이 제도가 외부에서 도입되어 어렵게 뿌리를 내려가고 있는 것이다. 특히 젊은 세대에 그런 징후들이 많다. 따라서 장기적으로 볼 때 시장경제가 쇠퇴하지는 않을 것이다.

비관주의는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 힘을 주지 못한다. 무엇인가를 해볼 의욕을 잃지 않으려면, 우리는 전략적으로라도 낙관주의자가 되어야 한다.

Hoc quoque transibit! (훅 쿠오퀘 트란시비트!)

 

신중섭 (강원대학교 윤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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