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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작별인사’로 돌아온 김영하가 AI로 전하는 인간다움…“결국 연대와 공감 그리고 나”

[BOOK]

입력 2020-02-25 17:00
신문게재 2020-02-26 15면

김영하
7년만에 소설 ‘작별인사’로 돌아온 김영하(사진제공=밀리의서재)

 

“인간다움이란 결국 자기와 다른 존재를 얼마나 잘 받아들이고 연대하고 포용하고 공감할 수 있느냐에서 드러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야수와 구별이 안간다는 생각에 요즘 더 고민 중이죠.”



‘아랑은 왜’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검은 꽃’ ‘퀴즈쇼’ ‘빛의 제국’ ‘살인자의 기억법’ ‘오빠가 돌아왔다’ 등 소설과 ‘알쓸신잡’(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 시리즈, ‘tvN Shift’ 등 시사 혹은 예능 교양 프로그램으로 익숙한 김영하가 소설가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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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 7년만의 소설 ‘작별인사’(사진제공=밀리의서재)
전자책 기반의 독서플랫폼 ‘밀리의서재’에서 7년만의 신작 ‘작별인사’를 첫 공개한 김영하는 ‘인간다움’의 척도를 “타자와 연대하고 나와는 다른 존재를 받아들일 수 있느냐”라고 꼽았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죽어 있던 잿빛 직박구리가 자꾸 눈에 밟혀 기어코 다시 밖으로 나가 묻어준 열일곱 소년 철이. 그 직박구리를 떠올리고 또 떠올리며 슬픔, 화, 두려움 등 복잡한 기분을 곱씹던 철이는 휴먼매터스랩에서 인공지능(AI) 휴머노이드를 연구하는 아빠 최진수 박사가 펫숍에 간 사이 현악4중주 연주에 빠져 있다 두 남자에게 ‘납치’됐다. 


“등록” “99퍼센트 비슷해도 아닌 건 아닌 거야” “비슷한 것은 가짜다”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는 남자들에 의해 철이는 집단수용소에 던져진다.

누군가는 약육강식을 실천하려 하고 또 누군가는 그 피해를 고스란히 감내하는가 하면 선이처럼 중재하고 거래를 돕는 이들도 있다. 마치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를 연상시키는 곳에서 만난 선은 어려서 읽고 또 읽었던 동화 책 속 마녀들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는가 하면 “그건 네가 알아서 할 일”이라고 말해주는 소녀다.

인도에서 제작돼 서울에서 활성화된 소년 민은 꿈에도 인간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지만 ‘사용감’이 없는 휴머노이드를 원하는 인간들에 의해 반복적으로 파양당했고 버려졌다. 유약하고 여리지만 “로봇인 척 하세요”라고 철이에 공감을 표했고 스스로의 정체성을 그리고 생존 방법을 찾고 있었다.

김영하의 새 소설 ‘작별인사’는 근미래의 평양을 배경으로 한 SF물이다. “어려서 개성이 보이는 파주에 살면서 선전선동을 들어선지 북한에 관심이 많은” 김영하는 북한 스파이가 주인공인 소설(빛의 제국)을 쓰기도 했다. 배경인 평양에 대해 김영하는 “독자들이 잘 아는 곳 보다는 잘 모르는 평양을 상상했다”고 전했다. 이미 흡수통일된 한반도의 평양은 김영하의 설명처럼 “바람직한 방식은 아니지만 사회적 실험을 하기에 좋은 곳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의 반영이었다. 

 

“아프리카는 유선전화보다 무선전화가 먼저 보급됐어요. 유선전화망이 없어서 휴대폰 확산에 좋은 환경이었죠. 핀테크도 아프리카에서 빠르게 발전했는데 주변에 은행이 없어서였어요. 중국이 알리페이 등에 빠르게 적응한 것도 그래서죠. 오히려 인프라가 없는 곳이 최첨단 서비스 안착에 는좋은 게 아닌가라는 상상을 했죠. 서독이 동독에게 했듯 북한은 남한에서 하지 못했던 걸 해보는 곳이 되지 않을까 상상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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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만에 소설 ‘작별인사’로 돌아온 김영하(사진제공=밀리의서재)

 

김영하 작가의 설명처럼 ‘작별인사’의 평양은 휴머노이드 연구를 위한 최첨단 도시고 철이는 그곳의 휴머노이드 박사의 ‘인간’ 아들로 자랐다. 스스로가 인간임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던 철이는 수많은 휴머노이드들을 만나면서 자신을 알아가고 받아들이며 ‘제 임무’를 인식해 간다. 

 

“고등학교 때 특별활동을 하면서 아이작 아시모프(Isaac Asimov)의 ‘로봇’ 시리즈, 아서 클라크(Arthur C. Clarke)의 ‘스페이스 오디세이’ 등에서 본 공포스러운 임무지향적인 로봇이 영향을 미쳤어요.”

그 영향은 단편집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 중 스스로가 로봇이라고 생각하는 남자와의 연애기 ‘로봇’으로 발현되기도 했다. 그렇게 “자신이 로봇이라고 믿는 인간에 대한 흥미로움”에 집중했던 것처럼 김영하 작가는 “어느 정도 애정을 가진 사람에게만 할 수 있는” ‘작별인사’ 그리고 “자신이 인간이라고 믿는 인간이 아닌 존재”를 통해 ‘인간다움’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소설은 상징과 비유로 말하는 양식이죠. 인공지능, 휴머노이드 등이 등장하지만 독자들이 ‘작별인사’를 읽고 어떤 감정을 느꼈다면 미래를 엿보아서가 아니라 막연하게나마 지금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어떤 현상에 대한 비유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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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인사’ 김영하 조윤진作(사진제공=밀리의서재)

그의 전언처럼 ‘어디까지 인간으로 받아들일 것인가’는 전세계적으로 행해지는 숙고이자 탐구과제다. 

 

인간의 장기를 공급하기 위해 개발되고 만들어진 인공지능 휴머노이드, 소설 속에서 그 ‘임무’와 ‘용도’가 명확한 인간형 로봇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지극히 인간적이고 감성적이며 생각이 많다. 

 

자신의 정체성, 생존해야하는 이유, 서로를 끌어안는 포용력, 연대의 절실함 등이 구구절절 묻어나는 작품 속 휴머노이드들은 진짜 인간이 아닐까. 이는 바이러스 창궐로 인한 전염병 시국마다 ‘번호’로 매겨지는 인간과 대조를 이루며 같은 맥락의 질문을 던지게 된다. 

 

“전염병에 감염돼 격리·추방된 이들을 인간으로 받아들이는 건 중요한 이슈예요. 인간의 삶이란 나의 동료로 받아들이고 내 능력을 동원해 치료해주려 노력하는 과정이죠. 감염자나 외국인 등이 인간으로 받아들이는지, 인공지능 보다는 그런 문제를 더 관심있게 봅니다.”

그리곤 2012년의 메르스 사태 때 사망한 환자의 아내에 대한 사연을 예로 들었다. “메르스로 격리되면서 한번도 만나지 못하고 화장됐다”며 “이는 인간이 아닌 전염원, 감염원으로 보고 국가가 처리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위험 질병에 걸렸다는 이유로 국민으로 대하지 않는 것, 공중보건을 위해 처리된 사례에서 생각할 것 역시 ‘어디까지가 인간인가’다.

“최근 사람들의 공포는 ‘내가 감염자가 되는’ 상황일 거예요. ‘감염자’로 이름 매겨져 격리되고 사회에서 고립되는 상황, 이름 대신 숫자로 불리면서 사회에서 버림받을지도 모른다는 공포죠. 한국에서는 한국인으로서 인간 대접을 받지만 다른 나라 혹은 특정 배를 탔다는 이유로 아무 국민도 아니게 되는 등 그런 것들의 비유로 받아들이지 않을까 생각해요.”

‘인간’이라는 것이 고귀함의 척도도 윤리적 수준의 보증도 아니라며 냉소를 보내는 소녀 선은 “그걸 왜 국가가 정해요? 내가 인간인데, 내가 그걸 아는데?”라고 반문하다. 스스로를 ‘인간’이라며 “내가 인간인 걸 매 순간 느껴”라고 반박하는 소년의 반문처럼 ‘작별인사’는 되뇌게 한다. “나는 스스로를 ‘인간’이라고 칭할 만한가?”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 결국 스스로에 달렸다.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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