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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왕따, 내 아이가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라면…‘내 딸이 왕따 가해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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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24-04-08 18:00
신문게재 2024-04-09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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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부모들은 내 자식이 학폭 가해자가 될까 전전긍긍하지는 않는다.(사진제공=빈페이지)

 

잊을 만하면 연예계 ‘학폭’(학교폭력) 논란이 불거지곤 한다. 최근 ‘내 남편과 결혼해줘’의 송하윤을 비롯해 ‘웨딩 임파서블’ 전종서가 잇따라 학폭 의혹의 중심에 섰다. 학폭 피해자의 영웅담 ‘경이로운 소문2: 카운터 펀치’와 송혜교의 사적 복수극 ‘더 글로리’에서 인상적인 악역으로 눈길을 끈 김히어라 역시 학폭 이슈로 연예계에서 자취를 감췄다. 

 

앞서 ‘경이로운 소문’ 중 학폭 피해자에서 영웅으로 성장하는 소문 역으로 급부상했던 조병규 역시 학폭 논란에 2년여의 공백기를 가져야 했다. 지난해 의혹이 말끔하게 해소되지 않은 채 시즌 2로 복귀했지만 전작에 비해 아쉬운 결과로 막을 내렸다. 이미 촬영을 마친 ‘찌질의 역사’는 남자주인공 조병규에 이어 여자주인공 송하윤까지 학폭 의혹이 불거지면서 방영 시기를 가늠하기 어려워져 버렸다. 

그렇게 학폭, 왕따 등은 이 시대의 가장 예민하고도 그 대처가 어려운 사회문제다. 자녀가 학교에 입학하는 순간 부모들은 왕따를 당하지는 않을까, 학폭에 무방비로 노출되는 건 아닐까 전전긍긍해야하만 하는 시대다,  

SNS와 블로그 등 팔로워들의 사연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꾸리는 시로야기 슈고의 ‘내 딸이 왕따 가해자입니다’는 그 예민한 사회문제를 다루고 있다. 전 세계 어린이들이 가장 공감할 수 있다는 2.5 등신의 아이는 천진난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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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딸이 왕따 가해자입니다|시로야기 슈고 글·그림(사진제공=빈페이지)

그림체나 전체적인 분위기도 선하고 귀엽지만 이야기는 지극히 현실적이다. 그 시작부터 그렇다.

 

TV를 통해 흘러나오는 초등학생의 극단적 선택 뉴스, 그 이유는 집단 따돌림이었다. 이 뉴스를 지켜보던 가나코와 남편 아카기 유스케의 대화는 이 시대 부모들 그대로다.


“너 학교에서 누굴 괴롭혔어?” “너 학폭 가해자나 왕따 주동자야?”

책의 해설을 쓴 ‘아사히신문’ 기자 가나자와 히카리의 지적처럼 대부분의 부모는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의 표정이 어두울 때 절대로 이렇게 묻지 않는다. “무슨 일 있었어?”라거나 “누가 괴롭혀?”라는 걱정이 먼저다. 추호도 내 아이가 가해자일 거라는 가정은 없다. 

‘내 딸이 왕따 가해자입니다’는 중학시절 왕따 피해자였던 아카기 가나코가 초등학교 5학년인 딸 아카기 마나가 친구를 왕따시킨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왕따 피해자로서 따돌림의 상처가 얼마나 아프고 또 오래 가는지를 뼈저리게 체득한 가나코는 자신의 딸임에도 마나가 미워지고 분노를 유발하는 데 죄책감과 혼란을 느낀다.

피해자인 마바 고하루는 몇 달째 학교도 가지 못하고 두문불출 중이다. 엄마 마바 지하루는 매일 아침 고하루와 학교 등교를 두고 실랑이를 벌이다 대안 학교까지 고려 중이다. 용기 내 학교에 가겠다고 했다가도 아침이면 이불을 뒤집어 쓴 채 버티는 딸에 지칠 대로 지쳐버린 엄마 지하루는 결국 화를 내버리고 만다. 

SNS에 익명의 폭로게시물이 올라오면서 마나의 사진과 신상정보까지 고스란히 노출되고 같은 반 아이들의 부모까지 학교에 항의 중이다. 일 처리가 미비하기만 한 학교와 담임교사에게 부모들의 원망과 힐난이 빗발친다.

“엄마 나 왕따 당해.” 마나의 말에도 가나코는 엄마가 아닌 왕따 피해자의 마음이 먼저 불쑥거려 괴롭기만 하다. 왕따 비극의 반복을 막기 위한 학부모회의에서 또 다른 왕따가 된 마나 사태를 언급해 내몰리던 가나코를 두둔하고 나선 이는 피해자의 엄마 지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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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딸이 왕따 가해자입니다|시로야기 슈고 글·그림(사진=허미선 기자)

“여러분들의 아이는 친구를 괴롭히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시죠?” 그렇게 점화된 따돌림 피해자, 가해자, 방관하며 동조자가 된 반 아이들의 잘잘못을 따지는 난투극이 벌어진다. 다른 아이들에게 책임을 떠넘기려 안간힘을 쓰는 그 난투극의 핵심은 결국 ‘내 아이는 결코 가해자가 아니다’다. 

책은 왕따 행위나 상황을 구체적으로 표현하지 않는다. 이 상황으로 야기된 아이의 상처, 또 다른 왕따, 내로남불의 도덕적 잣대, 아빠는 한발 물러선 현실적인 가정 내 갈등, SNS의 어두운 단면 등을 가해자와 피해자, 그들의 가족 시점으로 그려낸다. 

작가의 의도처럼 “부모가 알 수 있는 범위 안에서만” 그려진 5학년 1반 교실에서의 일은 가해자를 용서할 수 없는 마음, 내 아이의 왕따 가해를 믿고 싶지 않은 마음, 내 아이를 지키고 싶은 간절함 등 다양한 감정들과 그에 따른 대처들로 이어진다.    

왕따나 학폭이라는 개념조차 없이 가해 행위를 하는 이들, 이를 지켜만 보며 ‘나만 아니면 된다’는 생각의 방관자들, 내 아이가 왕따나 학폭 가해자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추호도 하지 않는 부모들, 오랜 시간이 흘러 잊고 지내다 학폭 사실이 알려져 발목이 잡힌 이들, 미흡한 대처로 비극을 양산하는가 하면 한 사람의 교사나 학생에게만 책임을 지우는 학교, 자녀의 일이라면 시도 때도 없이 학교로 들이닥치거나 전화를 걸어 협박을 일삼는 악성 민원 부모들…. 어느 하나 이 사태에 대해 심사숙고하지 않아도 좋은 사람은 없다.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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