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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 속 장애인③] "탄소중립 정책이 장애인 차별"…‘에코-에이블리즘’의 습격

[특별기획] 기후위기 대응 장애인 배제 현상 ‘에코-에이블리즘’
“대중교통 감축은 이동권·플라스틱 규제는 생존권 제약해”
환경권과 장애권 대립하는 지점… 장애인 목소리 참여해야

입력 2023-09-24 14:41
신문게재 2023-09-25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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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 속 장애인 기획기사 일러스트(사진=브릿지경제DB)

 

전 세계가 기후위기에 맞서 온실가스 감축 등 탄소중립 정책을 시행하고 있는 가운데 장애계의 반발이 거세다. 지금의 탄소중립 정책은 환경논의에서 장애인을 배제한 비장애인들의 목소리로 설계됐다는 이유에서다.



24일 장애계에 따르면 탄소중립 정책 등 환경정책 논의 과정에서 장애인을 제외하는 현상을 ‘에코-에이블리즘(Eco-ableism)’, 즉 친환경-장애 차별주의라고 부른다. 이는 환경권과 장애권이 대립하는 지점이라고 볼 수 있다.

장애계는 일상생활에서 시행 중인 탄소중립 정책이 이미 장애인에게 차별을 불러왔다고 주장한다. 기후위기의 가장 큰 피해자가 장애인 등 취약계층인데, 기후위기 대응 정책조차 장애인에 피해를 주고 있다는 것이다.

앞서 정부는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을 제정하고 오는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목표로 환경과 경제의 조화로운 발전을 도모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탄소중립 사회로 이행하겠다는 뜻이다.

그러면서 교통, 환경, 해양 등 전산업에서 탄소중립을 위한 세부 대응책도 수립했다. 향후 국가 비전을 탄소중립 사회로 정한 만큼 전산업에서 온실가스를 획기적으로 감축해 탄소중립에 도달하겠다는 목표다.

먼저 교통 분야에서는 효율적 에너지 사용을 촉진하고 온실가스 배출을 최소화 하는 ‘녹색교통 활성화 정책’을 시행 중이다. 디젤 등 내연기관차의 판매와 운행을 축소하고 버스, 지하철 등 대중교통수단을 확대한다.

동시에 친환경차의 가격과 충전, 수요 혁신을 통해 수소·전기차 생산·보급 확대도 추진한다. 정부는 ‘2050 탄소중립 추진 전략’에서 도시·거점별 수소 충전소를 구축하되 전기차 충전소의 경우 전국 2000만 세대까지 보급키로 했다.

반면 디젤 등 경유차의 경유 배출가스 규제를 통해 자연스러운 퇴출로 유도한다. 앞으로 디젤차를 보유하면 6개월마다 ‘환경부담금’을 내야 한다. 또 2025년부터는 서울시 내 공공부문에서 디젤차 도입이 전면 금지된다.

환경 분야에서는 순환경제를 주요 의제로 무분별한 폐기물 발생을 중단하는 조치를 취했다. 오는 11월23일부터는 일회용품 사용규제 계도기간이 끝남에 따라 커피전문점 등에서 일회용 컵, 플라스틱 빨대, 비닐 봉투 등의 사용이 전면 금지된다.

더 나아가 서울시는 2025년부터 일회용 컵을 사용하면 보증금 300원을 부과하는 컵 보증금 제도를 도입하고 한강공원을 일회용 배달용기 반입 금지구역으로 지정하겠다고 밝혔다. 일회용품 사용을 규제하면서 탄소중립을 실천하기 위해서다.

문제는 이런 정책이 장애인에게는 또 다른 차별로 다가온다는 점이다. 일례로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경유차 판매 축소와 대중교통 이용 유도·확대는 휠체어를 사용하거나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의 이동권을 제약할 소지가 있다.

복지부가 발표한 ‘2021년 장애인차별금지법 이행 실태조사’에 따르면 장애인 10명 중 6명은 대중교통 수단을 이용할 때 차별을 가장 많이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휠체어를 사용하는 장애인은 저상버스로만 이동이 가능한데, 저상버스가 몇 대 없을뿐더러 과정에서 차별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국토교통부의 조사 결과 2021년 기준 전국 시내버스 3만5355대 중 저상버스는 1만929대로 전국 저상버스 보급률은 30.6%에 불과하다. 광역급행형 등 좌석버스는 국내에 운행할 수 있는 차량 모델이 없어 지역 간 이동이 불가하다. 환경을 위해 대중교통을 이용하라는 구호가 장애인에게는 이동권을 제약하는 선언이나 다름없다.

일회용 플라스틱 규제도 마찬가지다. 입구가 구부러지는 플라스틱 빨대는 질병과 장애가 있는 사람들이 물을 쉽게 섭취할 수 있도록 개발됐다. 그전까지는 물을 먹다가 폐에서 액체가 고여 폐렴에 걸린 채 사망하는 일이 자주 발생했다.

그러나 플라스틱이 환경파괴의 상징으로 자리 잡으면서 플라스틱 빨대가 종이, 유리, 실리콘 등 다양한 소재로 대체되고 있다. 종이는 질식의 위험이, 유리는 치아의 손상이, 실리콘은 알레르기를 유발하거나 유연성이 없어 쉬운 섭취가 불가능하다는 점을 인지하지 못한 것이다.

서재경 성공회대 사회복지연구소 연구교수는 “기후위기에 따른 대처방안으로 탄소중립 정책을 표방하고 실현하는 것은 매우바람직하나 건강취약계층에 대한 예외조항을 명시하는 조치가 뒤따라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특히 플라스틱 빨대는 장애인에게 생명을 유지하는 중요한 수단이자 도구”라며 “일회용품 규제에 대한 예외조항을 추가해 건강취약계층의 존엄성을 훼손하지 않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정아 기자 hellofeliz@viva100.com


※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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