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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세상 예민하고 까칠하더라도 이런 '꼰대'는 대환영! 영화 '오토라는 남자'

[#OTT] 왓챠·웨이브·넷플릭스, 영화 '오토라는 남자'
톰 행크스의 연기내공 빛나

입력 2024-05-08 18:00
신문게재 2024-05-09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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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으려고 할 때마다 사연도 모르고 나타나는 옆집 여자 마리솔. (사진제공=소니픽처스)

 

매니저를 불러 달랬더니 어려도 너무 어린 여자가 나온다. 대뜸 “학교는 나왔냐?”고 묻는 꼰대. 필요한 밧줄 5야드를 샀는데 인치로 계산해야 한다며 33센트 더 받는 마트의 처사도 어이없다. 전화를 해지하려고 하자 말일이 아니라고 6일치를 더 내라는 전화국도 이해가 안된다. 음악만 나오고 전화돌리기 신공을 펼치지만 죽으려고 마음먹은 오토(톰 행크스)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그렇다. 영화 ‘오토라는 남자’ 속 오토는 6개월 전 아내를 잃고 직장에서도 강제 은퇴 당한 뒤 결국 자살을 계획 중이다.


현장근무를 줄이더니 한참이나 어린 직원을 상사로 앉히며 굴욕(?)을 줬다. 사실 자신이 처음부터 가르친 후배라도 상사로 모실 수는 있었다. 오토는 매사에 칼 같고 원칙주의자인 자신을 피곤해하는 회사의 분위기를 알고 있다.



사실 그는 이웃하고도 사이가 좋지 않다. 한때 절친이었던 루벤은 뇌졸중으로 대화가 되지 않고 그의 아내 아니타 역시 예전같은 친밀함은 없다. 모든 게 아내 소냐(레이첼 켈리)의 부재때문인 것 같다. 하지만 사실은 지나치게 FM적인 오토의 성격이 모두와 멀어지게 했다. 살아생전 소냐는 “늘 상대방을 이해해야 한다”고 말해왔던 천사다. 규칙을 지키지 않고 배려를 모르는 사람들을 머저리라 부르며 분노하는 아내 덕분에 오토는 사회에 섞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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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사별한 오토는 자살을 꿈꾸지만 이웃들이 그를 가만히 두지 않는다. 영화의 공식 포스터. (사진제공=소니픽처스)

 

아침부터 그가 하는 일은 분리수거장에 아무렇게나 버린 쓰레기를 제대로 분리하고 길가에 아무렇게나 주차한 차들을 구분해 내는 것이다. 인도에 아무렇게나 주차하고 유독 자신의 집 앞에 똥오줌을 싸는 반려동물을 키우는 이웃들에게 매일 이야기를 해도 “유별난 노인네”라는 말만 돌아온다. 평생을 산 타운 하우스가 처음부터 이렇게 무개념인 인간들로 채워졌던 건 아니었다. 집 근처의 숲을 베어 무리하게 집을 짓더니 어느새 사람들도 집을 팔고 떠나갔다. ‘다이 앤 메리카’라는 부동산 업체는 자신이 생각하는 ‘죽어버린 미국’을 뜻하는 것만 같다.

세상사람들은 어느새 규칙은 지키지 않고 편리함만을 추구한다. 한술 더 떠 저렴한 집세를 찾아 이사오는 사람들은 라틴계 천지다. 이웃에 매일 허락없이 광고지를 던져대는 알바생은 알고 보니 트랜스젠더다. ‘오토라는 남자’의 원작은 스웨덴 소설 ‘오베라는 남자’에서 출발했다. 톰 행크스의 부인이자 제작자로서 할리우드를 사로잡은 리타 윌슨이 적극적으로 리메이크를 추진한 것으로 알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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깐깐한 백인 할아버지를 쥐락펴락하는 이민자의 아이들. 한민족이 아닌 한국을 대입해도 낯설지 않다. (사진제공=소니픽처스)

 

소설 속 주인공은 자신이 정한 원칙을 지키며 충실한 삶을 사는 남자로 43년간 한 직장에 다니고 늘 아내와 커피를 나눠 마셨다. 우연히 기차역에서 마주친 소냐에게 “근처 군부대에서 복무 중”이라고 거짓말을 한 게 유일한 일탈이었다. 영화는 젊은 시절의 오토와 노년의 오토를 죽음을 결심할 때마다 교차시킨다.

밧줄을 목에 건 순간 앞집에 이사온 마리솔 (마리아나 트레비노) 부부는 자신이 가장 경멸하는 인도주차를 하고 천연덕스럽게 공구를 빌린다. 죽기로 나설 때마다 불필요하다 생각했던 이웃들과 지나가는 행인들이 도움을 청한다. 원칙주의자에다 까다로운 오토는 화를 내며 그들의 요구를 들어준다. 아내를 만난 기차길에서는 갑자기 심장마비로 선로에 떨어진 남자를 구하고 권총 자살을 하려는 순간 집안에서 쫓겨난 트랜스젠더가 “하룻밤만 재워달라”며 문을 두드리는 식이다.

곧 셋째 출산을 앞둔 마리솔의 오지랖은 상상 이상이다. 이름도 생소한 멕시코 음식을 빌미로 운전연수를 부탁하고 어린 딸들을 맡긴다. 평생 아이가 없었던 오토는 경악하지만 도토리만한 아이들이 뭔 죄인가. 매사에 불의를 참지 못하고 몸싸움을 하는 자신을 “프로레슬러 할아버지”라고 부르는 사람 볼 줄 아는 귀요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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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근한 아버지의 젊은 시절 이미지를 판박이로 닮은 실제 아들 트루먼 행크스(사진제공=소니픽처스)

 

‘오토라는 남자’는 지극히 미국적인 영화다. 예전보다 달라진 위상으로 사회적 목소리를 내지만 여전히 알게 모르게 소외되는 부류들을 전면에 내세운다. 극 중 루벤과 오토가 갈라선 이유는 미국인이라면 파안대소할 에피소드다. 쉐보레 브랜드 충성도 120%인 오토와 포드를 거쳐 도요타로 갈아탄 루벤이 갈등의 이유다. 그렇게 이민자로 구성된 미국의 본질을 잃지않으면서도 “아메리카 퍼스트”를 외치는 주류가 여전히 존재함을 간과하지 않는다. 알고 보니 자신을 트랜스젠더라고 밝힌 남자는 소냐의 제자였다. 최대한 빨리 세상을 등지고 싶었던 오토는 기꺼이 이들의 등대가 돼주기로 마음먹는다.

아무도 모르게 죽고 싶었던 그의 삶은 변한다. 부동산 회사가 계략적으로 노인들의 개인정보를 유출해 집을 빼앗었다는 걸 알고 대세인 SNS미디어를 통해 한방 먹인다. 이민자인 마리솔이 편한 오토매틱 운전을 고집할 때 “사랑만 보고 타지에 와서 애를 낳고 학위까지 딴 당신은 강한 사람이지 나약하지 않다”고 호통을 치며 단련시킨다.

영화의 엔딩은 훈훈함 그 자체다. 톰 행크스는 영화 스태프로 경력을 쌓던 아들 트루먼 행크스를 카메라 앞에 세우며 싱크로율을 높였다. 젊은 시절 오토를 연기하는 그의 모습은 꼭 닮았으면서도 경력 40년 이상의 아버지와는 다른 신선함으로 시선을 끈다. ‘오토라는 남자’는 소설 원작 ‘오베라는 남자’와는 전혀 다른 매력의 영화다. 극장에서는 소리소문없이 묻혔지만 안방에서 ‘볼 맛’은 충분하다. 현재 왓챠, 웨이브,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다.

이희승 기자 press512@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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