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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잘록한 허리·오똑한 코… 우리 모두의 '페티시즘'

[19禁 칼럼]

입력 2015-10-16 07:00

엘비스와 프리실라
아내 프리실라의 주장에 따르면 엘비스 프레슬리는 여성의 ‘흰팬티 페티시즘’를 갖고 있었다고 한다. 엘비스&프리실라 프레슬리의 결혼식 당시 사진.

  

엘비스 프레슬리의 아내였던 프리실라 따르면 엘비스는 여성의 흰 팬티에 집착했다고 한다.



프리실라는 ‘내셔널 이그재미너’와의 인터뷰에서 “엘비스는 작고 하얀 팬티를 입은 여성을 좋아했다. 그런 여성과 섹스를 하고 싶다는 구체적 욕망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저 보면서 즐긴다”고 말했다. 프리실라는 엘비스의 그 같은 취향을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침실에서 갖가지 특히 흰 란제리를 입고 사진을 찍어 그를 기쁘게 해주었다고 한다.

프리실라의 말대로라면 엘비스는 전형적인 ‘흰 팬티 페티시즘’을 갖고 있었던 모양이다.

‘페티시즘(fetishism).’ 사전에는 이 단어를 ‘이성의 몸의 일부, 옷가지, 소지품 따위에서 성적 만족을 얻는 이상 성욕의 하나’ 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사전이 설명하는 대로 단순히 ‘이상 성욕’이라고 정의하고 말기에는 이 단어에는 너무나 많은 함의가 담겨있다.

페티시(fetishism)의 어원은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것’을 뜻하는 라틴어 ‘팍티키우스(facticius)’지만, 중세 포르투갈인들이 카톨릭 성자의 유물을 ‘페이티소(feitio·주물, 호부)’라고 부르면서 이 단어의 유래가 시작됐다. 이후 18세기 프랑스의 역사학자이자 언어학자인 찰스 브로세가 원시사회에서의 종교의 초기형태로, 자연물, 자연현상을 숭배하는 것을 두고 페티시즘이라고 명명하면서 페티시즘은 ‘물건을 숭배하는 행위’를 일컫는 개념이 됐다.

페티시라는 단어를 유명하게 만든 사람은 어울리지 않지만 칼 마르크스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경제체제하에서는 노동의 생산물인 상품을 인간이 숭배하는 주객이 전도된 상황을 빚대어 페티시즘(물신·物神)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이러한 최초의 의미는 이후 ‘물건에 대한 집착’이라는 의미로 의미가 변형되면서 ‘물건에서 성적 흥분을 느끼는 현상’을 지칭하는 데 사용되기 시작한다.

정신의학에서는 페티시를 성도착증의 일종으로 본다. 흔히 장난스럽게 ‘변태’라고 불리는 성 도착 증세엔 여러 종류가 있는데, 동성애와 피핑(관음증), 노출증(타인에게 자신의 성기를 강제로 보여주고자 싶은 욕구), 시간(시체에 대한 이상적 성도착증세), 사디즘(타인 학대), 마조히즘(학대에 대한 즐김), 접촉 도착증(만진다는 것에 의미를 두는 도착증세) 같은 것이 꼽힌다. 페티시즘도 이러한 도착증세의 일종이란 것이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페티시즘을 성도착증의 일종으로 취급하는 것은 무리라는 지적도 많다. 페티시즘은 증세 자체가 사회적 물의를 가장 적게 빚고, 개인적 취향 정도에서 끝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또 성적 집착의 대상이 다른 도착증과는 달리 ‘무생물’을 그 대상으로 한다는 점도 그러한 주장을 뒷받침한다.  

 

팬티 자판기
일본에서는 여고생에 대한 페티시즘이 상업적으로 왜곡돼 자신의 입던 팬티를 남성에게 파는 여고생들이 일반화돼있다고 한다. 사진은 여고생이 입던 팬티를 파는 자판기다.

 

개인적으로 나도 페티시즘이 ‘변태’, ‘성도착증’의 일종이라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느 정도 페티시 성향을 갖고 있다. 

 

누구나 처음 이성을 볼 때 상대방의 다리나 머리카락, 또는 손 등 제일 먼저 눈길이 가는 곳이 있게 마련이다. ‘나는 다리가 예쁜 여자만 보면 미쳐’ 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나는 긴 생머리의 여자만 보면 미쳐’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심지어 어떤 특정 부위에 대한 페티시즘이 유행이 되는 경우도 있다. 일종의 집단 페티시즘인 셈이다.

중국의 송나라 때에는 전족이라는 전 여성에게 유행하는 풍습이 있었는데 이 풍습은 4∼5세 때 여성의 발을 단단한 천으로 동여매어서 성장기가 끝날 때까지 계속 행하는 것이다.

 

그래서 여성의 발가락은 5개가 붙은, 말하자면 기형적인 모양이 되었지만 그 크기에는 아주 작은 아기 발이 만들어지게 된다. 송

 

나라에서는 이 발의 크기가 작으면 작을수록 ‘정숙한’ 여성으로 보았는데, ‘정숙한’이란 문헌상의 기록일 뿐 이를 요즘말로 풀어보면 ‘매력적’, ‘섹시함’을 의미한다. 이 경우 송나라에서는 작은 발에 대한 집단 페티시즘이 있었다고 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코르셋
18세기 여성들 사이에서 유행했던 코르셋은 여성의 가는 허리에 대한 남성들의 집단 페티시즘 때문이다. 사진은 영국 빅토리아 알버트 박물관에 소장된 18세기 실크 코르셋.

 

17∼18세기에 코르셋을 사용한 서유럽의 가는 허리유행 역시 일종의 페티시즘이다. 즉 당시에는 가는 허리가 대단한 유행이었는데 이 유행은 단순한 유행이라기보다 ‘좀 더 여성적으로’ 보이기 위한 그 시대의 대세였다. 그 당시의 여성들은 가는 허리를 만들기 위해서 너나 할 것 없이 코르셋으로 허리를 조여 맸다.

요즘 한국사회도 마찬가지다. 이성의 S라인에 대한 지나친 집착, 오똑한 코에 대한 집착 이런 것도 일종의 집단 페티시즘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이러한 집단 페티시즘의 결과, 의학이 발달한 현대 사회에 비슷비슷한 외모의 ‘강남 미인’을 양산하고 있는 것이다.

남성이 갖는 페티시즘의 일반적 대상은 여자의 피부색, 머리색, 손 및 손톱, 발, 머리카락, 젖가슴, 눈, 입술, 팔목 등을 비롯하여 손수건, 속옷, 장갑, 털 코트, 그물 스타킹, 꽉 끼는 가죽 바지, 가죽 치마, 긴 가죽 부츠, 하이힐, 귀걸이, 목걸이, 팔찌, 발찌류의 장신구 등이다.

여성도 남성에게서 페티시즘을 느끼기는 한다.그럴 경우 그 대상이 되는 것은 머리카락, 피부색, 콧수염, 손, 가슴털, 금테 안경, 향수 냄새 등 여성의 페티쉬와 대동소이하다.

페티시즘은 일반적으로 여성보다 남성들에게 더 많이 나타나는데, 이는 여성에 비해 남성들은 성교할 때 지나친 에너지를 소모하므로 삽입 성교보다 관음증(觀淫症)과 관련된 페티시즘을 더 즐기기 때문이라고 한다. 페티시즘이 정력이 약한 남자나 중·노년기의 남자에게 많이 나타나는 이유도 이 같은 이유 때문이라고 한다.

더불어 페티시즘은 심리적으로 개인의 내적 욕구의 표현이다. 

 

생물학적으로 성욕은 번식 본능인지만, 심리적으로 성욕은 마음속 욕망의 분출이다. 그리고 그 마음속 욕망이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키지 않고도 자유롭게 분출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상상력이다. 자기가 평소에 하고싶었는데 하지 못했던 것이나 갖고 싶었는데 갖고 싶었던 것으로 상상을 통해 이루고 페티시즘은 그러한 상상력을 자극하는 도구가 된다.

사실 우리는 사회가 규정지은 틀에 맞춰 살고 있지만 누구나 자기만의 욕망을 갖고 있다. 그리고 누구나 자기만의 욕망을 외부로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다면 요즘처럼 미의 기준이 획일화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상업적으로 왜곡되거나 심리적으로 뒤틀리지 않은 건강한 페티시즘은 화장술이나 성형수술을 통해 자신의 못난 점을 감추고 보완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만의 매력과 장점을 극대화할 수 있는 흐름을 만드는 데 보탬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형구 기자 scaler@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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