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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뷰] 나비를 꿈꿨던 여자 그리고 예술가…지금까지와는 다른 ‘마타하리’

입력 2018-10-31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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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 ‘마타하리’(사진제공=국립발레단)

 

팜므 파탈, 이중첩자, 스트리퍼…. 그간 무대 위 마타하리의 이미지는 그랬다. 수많은 남자들을 쥐락펴락했고 프랑스와 독일을 오가는 스파이였으며 당시에는 파격적이고 화려한 춤으로 많은 이들을 매혹시켰다. 남자들에겐 옷깃이라도 스치고 싶은 존재였고 여자들에겐 시기와 질투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1993년 강수진 현재 국립발레단장이 주인공으로 무대에 섰던 독일 슈투트가르트발레단의 ‘마타하리’ 안무가 레나토 자넬라(Renato Zanella)가 25년만에 재탄생시킨 국립발레단의 ‘마타하리’(10월 31~11월 4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는 달랐다. 남자들이 주도권을 잡은 세상에서 마타하리는 자유를 꿈꾸는 여자였고 누구보다 창조적인 무용수였으며 예술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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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 ‘마타하리’. 자신의 꿈을 찾아 떠나려는 마타하리에 폭압을 행사하는 매클라우드(사진제공=국립발레단)
지난해 마타하리 처형 100주년을 맞아 공개된 진술서를 비롯한 다양한 자료들을 바탕으로 고증은 강화됐고 실제 전쟁영상, 그녀의 사진, 시대를 품은 거리 풍경 등이 무대에 투사되며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를 뒷받침한다.

현재도 그렇지만 그 시대를 여자로 살아가는 일이 쉬울 리 만무다. 마타하리(김지영·박슬기·신승원, 이하 공연일 순) 역시 그랬다.

무언가 새로운 일을 하려할 때마다 남자들은 그녀를 억압했고 이용하려 했으며 배신했다. 전쟁의 폐허 속에서 보다 자극적이고 새로운 것을 갈구하던 사회 분위기에서 마타하리는 일약 스타가 됐고 똑같은 이유로 파멸에 이른다.

인도네시아 무희들의 춤에 매료돼 꿈을 꾸게 된 마타하리에게 첫 남편 매클라우드(이영철·송정빈·김희현)는 폭압을 행사했고 연인이자 은행가 루소(정영재·박종석·이영철)는 발레에 도전하려는 그녀를 막아 세우다 이별을 선언한다.

극장장이자 에이전트 아스트뤽(이수희·송정빈), 프랑스 정보국의 라두 대위(박종석·하지석·김기완), 독일 정보국의 칼레(변성완·김희현·정영재) 등은 그녀와 그녀의 재능을 이용했고 희생시켰다.

유일한 사랑이자 위안이었던 러시아 장교 마슬로프(이재우·김기완·박종석)마저 마타하리가 가장 외로울 때 외면한다. 발레리나를 꿈꾸며 오디션 기회를 얻으려는 마타하리에게는 발레 뤼스 디아길레프(송정빈·이영철·이수희)의 ‘스트리퍼’라는 비아냥만이 돌아올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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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 ‘마타하리’(사진제공=국립발레단)

 

파리의 생 라자르 감옥 12호에서 시작해 마무리되는 극은 잘게 쪼갠 장면들로 콤팩트하게 구성된다. 온통 까만 벽에 조명과 열대 지방 식물의 이파리, 샹들리에, 얽히고설킨 나무뿌리, 기차역 등을 연상시키는 영상으로 시간과 공간을 표현하고 다섯 개의 문이 열리고 닫히며 사람들을 쏟아내고 순식간에 장면전환을 이룬다.

마타하리의 화려한 데뷔무대, 그녀와 매클라우드·루소·마슬로프 등의 파드되(2인무), 마타하리를 궁지로 몰려는 라두와 칼레의 파드되, 그녀가 꿈꾸듯 바라보는 발레 뤼스에서의 나진스키(허서명·김명규A·변성완)와 카르사비나(박슬기·박예은·정은영)의 화려한 춤사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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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 ‘마타하리’(사진제공=국립발레단)
더불어 16커플의 군무, 전쟁의 소용돌이에 휩쓸리거나 대중들에 추앙받고 버림받는 등 변화무쌍한 장면들이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Dmitry Shostakovich)의 교향곡 10번(1막 Symphony No. 10 in E Minor, Op. 93)과 5번(2막 Symphony No. 5 in D Minor, Op. 47)의 변곡점마다 촘촘하게 배치된다.

두 교향곡은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스탈린 체제에서 고통받던 민중들을 대변했다는 이유로 러시아 당국으로부터 비판과 억압을, 군중들로부터 환호를 동시에 받았던 작품이다.

억압의 시대를 살며 상처받은 작곡가의 롤러코스터 같은 삶이 고스란히 반영된 음악은 ‘마타하리’의 변화무쌍한 스토리텔링에 더할 나위없이 녹아들었다.

마치 연극처럼 함축과 상징으로 꿰인 이야기는 그간 접했던 ‘마타하리’와는 전혀 다른 극을 탄생시켰다. 한껏 에너지를 실어 과감하게 움직이기 보다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를 세심하게 긴장시키고 이완하며 절제의 힘을 발휘한다. 마치 산채로 핀에 꽂힌 혹은 날개를 잡힌 나비가 파드득거리듯 감정을 표현하는 안무와 무용수들은 그 시절 자유를 꿈꾸며 설레면서도 괴로워했을 마타하리를 연상시킨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전혀 다른 극을 탄생시킨 변별력은 보는 이의 이해도를 떨어뜨리는 요소이기도 하다. 수많은 등장인물들이 쉴 새 없이 드나드는가 하면 지나친 축약과 상징들이 언뜻 이야기의 흐름을 따르는 데 어려움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제3자의 시선을 따르는, 비극적이기만한 결과가 아닌 자유와 사랑을 선택한 사람, 끊임없이 도전하고 스스로의 꿈을 찾아 좇는 예술가 ‘마타하리’를 만날 수 있는 것만으로도 흥미롭다.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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