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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코로나19로 우울해도 도전은 계속된다...한국 영화인의 '매운맛'

[2021 연말 결산] ②영화

입력 2021-12-23 18:30
신문게재 2021-12-24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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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일상을 잠식당한 지 2년이 지났다. 직격탄을 맞은 지난해와 달리 올해는 ‘희망고문’이 영화계와 극장가를 힘들게 했다. 백신 접종률이 오르고 팬데믹이 끝날 거란 기대와 달리 오미크론 변이가 확산되면서 연일 먹구름이 드리워진 것. 뚜껑을 연 2021년 흥행영화순위는 참담한 지경이다.

 
대부분의 영화가 예전의 중박 기준인 관객 300만명을 넘지 못했고 이 중 한국 영화는 단 2편에 머물렀다. 유명 배우와 감독이 참여한 한국 영화는 개봉 시기를 연기하며 또다시 한발 후퇴하는 모양새다. ‘위드 코로나’(단계적 일상회복)로 숨통이 트이나 했던 영화계는 정부의 방역 강화 조치가 발표되자 크게 반발하고 나섰다. 
 
그럼에도 영화인들의 도전은 계속됐다. 70대 배우들이 할리우드 진출과 유수의 해외 영화제에서 잇단 수상소식을 알려왔고 한국영화 감독들이 OTT를 통해 세계관객과 만나 K콘텐츠 특유의 중독성을 전파했다.





◇한국영화 자존심 지킨 텐트폴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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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TOP10 영화에 이름을 올린 한국영화 두 편. (사진제공=각배급사)

 

올해는 지난해 개봉하지 못했던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들이 잇따라 개봉한 만큼 한국영화들의 약세가 두드러졌다. 현재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의 연도별 박스오피스 10위 안에 드는 국내 작품은 단 두 편이다. ‘모가디슈’가 360만 관객을 돌파해 당당하게 1위에 이름을 올렸고 ‘싱크홀’은 210만명 넘게 극장으로 불러 모아 5위를 차지했다. 

 

한국 텐트폴 영화인 두 작품에 대한 한국상영관협회의 파격적인 지원책이 디딤돌이 됐다. 두 영화의 총제작비 50% 회수를 보장하기 위해 극장이 총제작비 50% 매출이 발생할 때까지 매출 전액을 배급사에 지급하기로 한 것. 막대한 제작비와 스타 출연진, 화려한 액션으로 중무장한 외화들이 나머지 순위를 채웠다.

2위는 ‘이터널스’, 3위는 ‘블랙 위도우’다. ‘분노의 질주: 더 얼티메이트’는 4위, ‘베놈 2: 렛 데어 비 카니지’ 7위에 올랐고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은 양조위의 첫 할리우드 데뷔작답게 10위에 안착했다.

애니메이션을 향한 한국 관객들의 사랑도 식지 않았다. 디즈니-픽사 애니메이션 ‘소울’과 ‘귀멸의 칼날: 무한열차 편’이 각각 204만, 212만 관객을 동원하며 상반기 깜짝 흥행작으로 떠올랐다. 올해 마지막 마블 개봉작인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의 추격도 만만치 않다. 개봉 첫날부터 63만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올해 개봉 영화 중 최고 오프닝 스코어를 기록했다. 또한 개봉 이틀 만에 100만 고지를 넘어섰다. 이 기세라면 연내 올해 최고 흥행작인 ‘모가디슈’의 기록을 넘을 것이 확실시된다.


◇ 영화관 폐관과 휴관 잇따라 

 

방역 강화, 다소 한산한 영화관
방역 강화, 다소 한산한 영화관.(연합)

 

2년 가까이 영화관은 코로나 팬데믹 여파로 살얼음판이었다. 1980년대~1990년대 한국 영화의 부흥기를 이끌었던 ‘종로3가 극장가의 상징’이 지난 8월 31일부로 폐관했다. 서울 종로구 관수동에 위치한 서울극장은 1979년 개관한 후 한 때는 3개 지점까지 넓히며 번성했다.

 

같은 종로3가에 위치했던 단성사, 피카디리 극장과 함께 국내 극장가를 대표하는 공간으로 자리잡았지만 디지털화된 초대형 배급사 중심의 멀티플렉스 등에 밀리며 순차적으로 문을 닫았고 42년간 자리를 지키며 충무로 시대를 이끌던 서울극장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국내 최대 규모의 멀티플렉스 영화관인 CGV까지 한시적 영업중지, 희망퇴직을 시행할 정도로 휘청거렸다. 롯데시네마의 영업손실은 지난해 1600억원, 올해 3분기 1070억원에 달한다. 이에 롯데시네마는 직영관 영업을 중단하고 VOD사업 종료 등 운영 효율화와 임직원 임금 반납, 자율 무급 휴가 등을 통한 몸집 줄이기를 진행해오고 있다. 

 

극장 영업시간 제한 해제 및 손실 보상 촉구하는 영화인들
극장 영업시간 제한 해제 및 손실 보상 촉구하는 영화인들.(연합)

지난 18일부터 위드 코로나(단계적 일상 회복)를 중단하고 다시 고강도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행되자 극장산업 관련인사들은 결국 국회 앞으로 모였다. 전국적으로 오후 10시까지만 영업이 허용되면서 사실상 마지막 회차는 저녁 7시를 넘을 수 없다. 이에 한국상영관협회에 소속된 영화계 단체들은 21일 국회에서 정부의 영업시간 제한 즉시 해제 등을 요구하는 결의대회를 열었다.

 

이날 한국상영관협회 이창무 회장은 “극장은 더 높은 방역수칙으로 대비했다. 그러나 우리에게 돌아온 건 영업시간 제한 뿐이었다”며 “강도 높은 사회적 거리두기 시행 이후 줄줄이 예매 환불조치가 이어졌고 우리는 버틸대로 버텼다. 이제는 정부가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 멀리플렉스 관계자는 “2020년 말 기준 총 72개의 영화관(휴관 55곳·폐관 17곳)이 문을 닫은 것으로 파악됐고 올해도 그 수는 거의 줄지 않았다. 영화산업의 주축인 극장 관객 수가 감소하면서 상영 흥행 후 투자 제작으로 이어지는 선순환시스템(Recycle System)이 붕괴되고 있다”고 말했다.


◇국민엄마의 인생은 지금부터 시작

 

윤여정
영화 ‘미나리’의 윤여정.(사진제공=판씨네마)

 

자식을 위해 희생하고 자신의 목소리를 낮췄던 전형적인 ‘엄마’의 모습을 지운 시니어 어벤저스의 활약은 올해도 계속됐다. 그 중 나문희가 보여준 활약은 동료와 후배들에게 좋은 귀감이 됐다. 영화 ‘수상한 그녀’로 866만 관객을 동원하더니 중국·일본·태국·베트남 등 9개국에서 리메이크되는 기염을 토했던 그는 2017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아이 캔 스피크’로 청룡상·대종상·백상을 접수했다.

 

나문희가 “나이 77세에도 여우주연상을 탄 제가 있으니 후배들에게 좋은 희망이 될 것 같다. 여러분은 80세에도 대상을 타시라”는 수상 소감을 듣는 배우들의 기립박수가 쏟아진건 그저 존경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고두심
(사진제공=명필름)

바통은 윤여정이 이어받았다. 영화 ‘미나리’에서의 열연으로 아시아 최초 미국과 영국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석권하며 새 역사를 썼다.

 

‘미나리’ 씨앗을 가지고 미국 땅을 밟는 할머니 순자 역할이 들어왔을 때는 타국에서의 촬영과 당시 건강상의 이유로 소속사조차 말렸다고. 

 

하지만 그는 “전형적인 할머니 역할이 아닌데다가 매너리즘에 빠지는 게 싫다”며 비행기에 올랐다. 이후 오스카 레이스에서 보여준 위트있는 화술과 세련된 패션센스가 연일 신드롬을 일으켰다.

 

고두심은 올해 영화 ‘빛나는 순간’으로 생애 첫 해외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품에 안았다. 영화제작사 명필름에 따르면 고두심은 이탈리아 로마에서 열린 제18회 아시안 필름 페스티벌에서 당당히 이름을 불리운 것. 

 

‘빛나는 순간’은 제주 해녀 진옥(고두심)과 그를 주인공으로 다큐멘터리를 찍는 PD 경훈(지현우)의 특별한 사랑을 담은 영화다.

해외 심사위원들은 “더 이상 젊지 않은 나이에 오래된 상처를 넘어서는 사랑과 삶을 재발견한 한 여성의 사려 깊고 세심한 해석”이라고 그의 연기를 평했다. 고두심은 일면식도 없던 젊은 감독이 직접 쓴 손편지 중 “선생님이 곧 제주의 풍광”이라는 말에 마음이 움직였다는 후문이다.


◇영화 감독의 영역 확장은 무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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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운 감독(애플TV)

 

올해 수많은 영화가 극장과 OTT에서의 동시 개봉을 결정했다. 영화 ‘서복’과 ‘미드나이트’는 티빙에서, ‘승리호’는 넷플릭스를 통해 대중을 만났다. 올해 영화계에서 눈에 띄는 변화를 꼽는다면 ‘안방으로 간 감독’들이다. ‘차이나타운’ 한준희 감독은 넷플릭스 시리즈 ‘D.P.’의 연출을 맡았고 ‘끝까지 간다’ ‘터널’ 등의 화제작을 탄생시킨 김성훈 감독도 넷플릭스를 통해 ‘킹덤: 아신전’을 선보였다.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과 ‘밀정’으로 특유의 스타일리시한 영상미를 발산했던 김지운 감독은 애플티비플러스 ‘닥터 브레인’의 연출을 맡아 시청자들을 만났다. ‘도가니’ ‘수상한 그녀’ ‘남한산성’ 등의 황동혁 감독은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으로 세계인들을 열광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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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상호 감독(넷플릭스)

 

‘부산행’과 ‘반도’로 화제를 모았던 연상호 감독은 ‘지옥’으로 그 뒤를 이었다. 연 감독은 지난 7월 영화 ‘방법: 재차의’ 개봉 당시 “이제는 하나의 이야기를 한 매체에서 마무리하는 게 미덕이었던 시대가 지난 것 같다. 여러 매체를 오가며 즐기는 방식이 늘고 있는 만큼 상황이 허락하는 대로 다양한 시도를 하고 싶다”는 계획을 밝혔다.

이렇게 영화감독들의 활약이 OTT 드라마와 영화 사이에 암묵적으로 구분된 ‘1인치의 장벽’을 무너뜨리고 있는 셈이다. 부산국제영화제는 올해 처음 OTT 시리즈물을 상영하는 ‘온 스크린’ 섹션을 신설했다. 영화와 드라마의 경계가 사라지고 플랫폼이 확장하는 산업의 현주소에 발 맞춘 변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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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동혁 감독.(사진제공=넷플릭스)

올해 ‘영화 만들기와 드라마 만들기’를 주제로 열린 오픈 토크에 참석한 김성훈 감독은 “(제안받았을 당시에는) 넷플릭스가 뭔지 몰랐다. 뭔지 모르니 저항감조차 없었고 새로워서 해보고 싶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이어 “영화는 2시간이라는 물리적 한계 때문에 돈도 많이 들이고 열심히 찍은 장면을 줄여야 할 때 가장 고통스럽다. 드라마에서는 어지간히 못 찍지 않고서는 찍은 걸 도려내지 않고 보여줄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장점같다”며 현장의 목소리를 전했다.


지난달 열린 제11회 아름다운예술인상의 영화예술인상은 ‘오징어 게임’을 선보였던 황 감독에게 돌아갔다.

 

무대에 오른 그는 “난 드라마를 만들었는데 이 상을 주신다고 해서 ‘왜 그럴까’ 생각했다”면서 “코로나19 때문에 좋은 한국 영화들이 개봉을 못했다. 아예 촬영에 들어가지 못한 영화도 많았다. 좋은 영화를 소개할 기회가 적어서 내게 상이 온 게 아닐까”라고 겸손한 소감을 남겼다.

이희승 기자 press512@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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