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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연주자들의 연주자’ 라두 루푸, 천상의 피아니스트가 되다

[별별 Tallk] 세계적 연주자 라두 루푸 별세

입력 2022-04-21 18:00
신문게재 2022-04-22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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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현지시간) 별세한 ‘연자주들의 연주자’ 라두 루푸(사진=라두 루푸 공식 페이스북)

 

“우리 시대 위대한 음악가의 죽음에 가슴이 무너졌다.”

이렇게 안타까움을 토로한 피아니스트 조성진 뿐 아니다. 첼리스트 스티븐 이설리스(Steven Isserlis), 피아니스트 안토니오 오야르사발(Antonio Oyarzabal), 이고르 레빗(Igor Levit), 키릴 거슈타인(Kirill Gerstein), 비킹구르 올라프손(Vikingur Olafsson), 라스 포그트(Lars Vogt), 가브리엘라 몬테로(Gabriela Montero), 스튜어트 굿이어(Stewart Goodyear), 알렉산드라 다리에쿠스(Alexandra Dariescu), 작곡가 겸 지휘자 에사-페카 살로넨(Esa-Pekka Salonen) 등 내로라 하는 글로벌 연주가들이 한목소리로 애도의 뜻을 표했다. 

1977년 바이올린 여제 정경화와 드뷔시와 프랑크의 바이올린 소나타를 녹음했고 지휘자 정명훈과도 협연했으며 피아니스트 김선욱과 조성진이 음악적 스승으로 존경을 표하며 조언을 청하는 등 한국과도 인연이 깊은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라두 루푸(Radu Lupu)가 별세했다. 향년 77세.

17일(현지시간) 라두 루푸의 매니저 제니 보겔(Jenny Vogel)은 루마니아의 부쿠레슈티(Bucharest)에서 열리는 조지 에네스쿠 국제 콩쿠르(George Enescu International Competition)에서 그가 “스위스 로잔 자택에서 장기간 시달려온 다양한 질병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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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두 루푸는 루마니아 출신으로 6살에 피아노를 치기 시작해 12살에 첫 번째 자작곡으로 콘서트를 열었다. 디누 리파티(Dinu Lipatti)의 스승이었던 플로리카 무지체스쿠(Florica Musicescu), 103세까지 리사이틀을 열어 무대에 올랐던 첼라 델라브란체아(Cella Delavrancea) 등을 사사했다. 


1961년에는 모스크바 음악원으로 유학가 7년 동안 알렉산더 골드바이저(Alexander Goldenweiser)가 가르친 갈리나 이기아자로바(Galina Eguiazarova), 에밀 길렐스(Emil Gilels)와 리히터(Sviatoslav Richter)를 키워낸 에인리히 네이가우스(Heinrich Neuhaus)의 가르침을 받았다.  

각종 콩쿠르에서 두각을 나타내던 라두 루푸는 1966년 미국 반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르(이하 반 클라이번 콩쿠르) 우승으로 1967년 4월 카네기홀 데뷔 기반을 마련했고 1967년 루마니아 조지 에네스쿠 국제 콩쿠르, 1969년 리즈 국제 콩쿠르를 휩쓸며 스타덤에 올랐다. 

1970년대에는 데카와 브람스, 슈베르트, 베토벤 등을 녹음해 앨범으로 발매했는데 그 중 ‘슈베르트의 피아노 소나타’(Schubert‘s Piano Sonatas in B flat major D. 960 and A major D. 664) 음반은 1996년 그래미어워드에서 최우수 기악 솔로 퍼포먼스(위드아웃 오케스트라. Best Instrumental Soloist Performance without orchestra) 상을 거머쥐었다.

1990년대 중반 이후 녹음을 중단한 라두 루푸는 계획된 공연들을 취소하기를 반복하다 2019년 건강상의 이유로 은퇴했다. 50여년간 피아노에 몰두했던 그는 ‘은둔자’로 세상사에 회자되기를 꺼려했음에도 동료, 후배 연주자들에게 극찬과 존경을 한몸에 받는 피아니스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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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현지시간) 별세한 ‘연자주들의 연주자’ 라두 루푸(사진=라두 루푸 공식 페이스북)

 

라두 루푸의 ‘슈베르트 즉흥곡’(Schubert Impromptus)을 가장 좋아하는 녹음으로 꼽은 조성진이 “정말 어려운 경지인 ‘단순하면서 특별함’에 도달해 있다”고, 김선욱이 “피아니스트들이 원하는 모든 것을 갖췄다”고, 미츠코 우치다가 그의 컨트롤 능력을 “지구상에 없다”고,  니콜라이 루간스키가 “음악이 스스로 말하게 하는 희귀한 힘을 가졌다”고 극찬한 ‘연주자들의 연자주’다. 

피아니스트 안토니오 오야르사발은 자신의 SNS에 “얼마 전 라두 루푸가 런던에서 그의 마지막 ‘베토벤 4번’을 연주하는 것을 봤다. 너무도 특별해서 잠을 잘 수 없을 정도였고 인생을 바꾸는 연주였다”며 그의 죽음을 슬퍼했다. 

피아니스트들 뿐 아니라 첼리스트 스티븐 이설리스도 SNS를 통해 “내가 들어본 중 가장 위대하고 따뜻하며 심오한 연주를 하는 음악가 중 한명”이자 “매우 친절하고 동정심 많고 겸손하며 유머러스한 사람이자 흘륭한 친구”라 묘사하며 그리움을 표했다.

또한 조성진과도 협연했던 지휘자 야닉 네제 세겡(Yannick Nezet-Seguin)은 “피아노를 배우던 당시 라두 루푸에게서 영감을 받았다”며 “아주 어려서부터 그의 리사이틀과 녹음을 들으면서 소리에 대한 개념을 형성했다”고 회상했다. 라두 루푸가 1966년 우승한 미국 반 클라이번 콩쿠르는 공식 SNS에 제2회 콩쿠르에서 우승한 직후 연주한 그의 ‘쇼팽 발라드 1번’ 영상을 공유하며 “세상은 우리 시대의 가장 위대한 피아니스트 중 한명을 잃었다”고 애도했다.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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