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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영화 '거래완료', 계속 극장에 '걸려 있으면'안되겠니?

[#OTT] 웨이브, 영화 '거래완료'
평범한 물건에 감춰진 비범한 인관군상 그려내
100억대 작품 부럽지 않은 '감동과 재미'탑재

입력 2023-01-18 18:00
신문게재 2023-01-19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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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팬들이 기절할 법한 독특한 설정도 영화의 웃음을 책임진다. 서울을 연고로 둔 두 팀 사이에서 하필이면 상대방팀과 사랑에 빠진 아이러니라니. (사진제공=㈜스튜디오 디에이치엘)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한국판 러브 액츄얼리’가 아닐까 싶다. ‘로맨틱의 명가’로 불리는 워킹타이틀이 만고의 진리인 사랑을 옴니버스식으로 만들었다면 영화 ‘거래완료’는 한층 다채롭다. 소유라는 인간의 깊숙한 욕망에 추억까지 곁들여 한번 보면 빠져나올 수 없달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작년 10월 개봉한 ‘거래완료’는 채 1만명을 채우지 못하고 IPTV로 이동(?)했다. 

국내 OTT에서는 웨이브에서만 볼 수 있는 이 영화는 중고 거래 앱에 올라온 다섯 개의 물건과  다섯 명의 판매자 그리고 이들의 거래를 기록하는 한 명의 작가가 주인공이다. 이들의 거래를 지켜보는 주변인조차 범상치 않다. 조폭, 교도관, 로커 그리고 어린 딸을 둔 컬렉터까지 정형화된 캐릭터가 단 한명도 없다. 전국민이 한번쯤 이용했다는 중고거래의 특성이 다양한 물건, 설정, 성별과 시대를 넘어 교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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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베이스볼 자켓‘을 비롯해 ’스위치‘, ’붉은 방패와 세 개의 별‘, ’사형장으로의 초대‘, ’크리스마스의 선물‘까지 총 5편의 옴니버스가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영화 ’거래완료‘의 공식 포스터. (사진제공=㈜스튜디오 디에이치엘)

 

이야기는 두산베어스 골수 팬인 가족들과 살고 있는 어린 소년이 포문을 연다. 거실과 방에 잠실 곰돌이 굿즈와 남색 유니폼을 입은 사진이 가득한 것으로 누가 봐도 응원팀이 두산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소년이 중고앱에서 애타게 찾는 건 아이러니하게도 LG트윈스다.

두산 베어스인 삼촌과 이모를 속이고 꼬마가 찾는 건 2002년도 LG트윈스 ‘세상에 50개밖에 없는 한정판 유광점퍼’다. 돈이 급한 광성(전석호)은 한 때 신입 드래프트 1차 지명을 받을 정도로 뛰어난 포수였지만 지금은 사채업자를 피해 다닐 정도로 궁핍한 인물이다. 돈이 급해 자신의 마지막 자존심인 선수시절 유니폼을 팔 정도로 궁하지만 구매자가 미성년자임을 알고 마음을 바꾼다. 

거래는 성사되지 않았지만 기왕 야구장에 왔으니 마음껏 자신이 응원하는 팀의 경기를 보고 싶은 꼬마는 광성에게 함께 야구를 볼 것을 요청한다. 전직 프로야구 선수의 화양연화가 플래시백될 거라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광성은 인생에 야구가 전부인 꼬마를 보며 자신만의 추억에 젖지만 인생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그렇게 광성이 뒷산에 자신의 무덤을 미리 파 둔 조폭들의 손에 끌려가며 에피소드가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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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중 조성하가 보여주는 사형수 캐릭터는 ‘거래완료’의 긴장감과 귀여움을 동시에 책임진다. (사진제공=㈜스튜디오 디에이치엘)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LG의 포수로 등장한 전석호가 사실은 두산의 열혈 팬이라는 점이다. 극 중 대사인 “잠실의 주인은 미련곰탱이가 아니고 승리의 쌍둥이 군단”이란 표현을 몹시 힘들어했다는 후문. 

또 다른 에피소드인 대학생과 죄수의 이야기는 ‘거래완료’의 화룡정점이다. 사형집행을 앞두고 어린시절 즐겨했던 팩게임 마성전설의 최종 보스를 물리치는 것이 소원인 우철(조성하)은 신문방송학과 학생 나나(최희진)의 면회신청을 받는다. 모두가 잔혹한 살인죄로 복역 중인 그를 두려워하지만 이 사건에 숨겨진 뭔가가 있음을 직감한 나나는  본능적으로 예비언론인으로서의 기지를 발휘한다. ‘엔딩 볼 기회를 드리면 제 취재에 응하시겠느냐?’는 도발적인 제안에 결국 우철은 흔들린다. 

지금은 단종된 게임군용팩이 있어야 가능하지만 다행히 파랑새는 가까이 있었다. 게임덕후인 군바리 오빠가 무려 20년 넘게 애지중지 해온 추억의 게임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면회시간은 단 15분. 그 안에 모든 게임을 이겨야만 사건의 진실도, 한 인간이 죽음을 앞두고 그토록 염원하던 소원도 풀린다.

하지만  앞서 꼬마와 투수가 그랬듯이 ‘거래완료’는 그렇게 호락호락한 영화가 아니다. 마지막 에피소드가 바로 그 꼬마의 삼촌이자 20년째 작가지망생으로 살아온 삼촌이 ‘절필’을 선언하고 팔려고 내 놓은 세계문화전집이란 점만 살짝 공개하겠다. 30년도 더 된 낡은 표지에 글자도  작은 이 책을 사려는 인물도 의외지만 책 중간중간에 써내려간 당시의 추억들이 ‘거래완료’의 엔딩을 감동으로 적실 거란 점만 밝혀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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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실야구장과 술집, 카페등 서울의 아름다운 곳을 모두 모아둔 로케이션도 이 영화의 장점이다. (사진제공=㈜스튜디오 디에이치엘)

 

무엇보다 출연 배우들의 연기가 일품이다. 이원종, 조성하란 굵직한 나무 기둥을 받치고 있는 태인호, 전석호 사이에서 최예빈, 최희진, 채서은, 이규현, 이교형, 권일, 임승민, 엄서현이 푸릇한 매력을 발산한다. 지난해 열린 제 25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감독상, 관객상, 코리안 판타스틱상을 거머쥔 이유가 볼수록 차고 넘친다. 

사실 되돌아보면 대한민국의 중고시장은 세계적인 불황이 시작되기 전부터 남달랐다. 동네 골목길 한켠에 종이신문으로 배치되던 가로수, 네이버의 작은 카페에서 시작한 중고나라는 이미 공동구매와 신제품 출시의 테스터 베드를 넘어선 거대한 기업이 됐다. 토끼도 아닌데 전국민의 휴대폰에서 카카오톡 알림 이상으로 빈번하게 울리는 ‘당근’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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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기계가 있다면 정말 사고 싶을 정도로 수면과 기상을 정해주는 ‘스위치’의 한 장면. (사진제공=㈜스튜디오 디에이치엘)

 

‘거래완료’는 바로 그 물건에 숨겨진 다양한 인간군상을 다룬다. 화려했던 선수 생활을 뒤로 하고 초등생에게 야구점퍼를 파는 전직 야구 선수, 불면증을 해결하고자 수면 장치를 구입하며 판매자인 수험생에게 잠시나마 호감을 느끼는 재수생, 20여년간 신춘문예에 낙방하자 문학 전집을 판매하려는 작가 지망생, 죽음을 앞두고 꼭 완료해야 할 게임이 있다며 게임기를 사는 사형수 등 옷, 기타, 게임기, 책 등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평범한 물건에 투영된 비범한 주인공들의 사연이 시선을 잡아 끈다. 

평범한 회사원으로 8년을 지내다 결국 영화의 길에 들어선 조경호 감독의 노력도 눈물겹다. 첫 연출작에 출연한 배우들의 캐스팅을 위해 직접 소속사로 손편지를 써서 보내고 전세금을 빼 영화를 만들 정도로 이를 악물었다. 

그는 “저예산의 한계라고 해서 너무 개인적이고 우울한 서사보다는 사람들이 재밌게 볼 수 있는 아름다운 이야기를 보여드리고 싶었다”면서 “작지만 큰 영화로 만들겠다는 포부가 있었다. 때문에 캐스팅을 잘하겠다는 욕심이 있었고 전석호, 태인호 배우가 오케이 하고 나서는 소문이 나서 수월하게  작업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희승 기자 press512@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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