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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더컬처] 차범석 탄생 100주년 연극 ‘활화산’ 윤한솔 연출 “원작 그대로도 지금과 공명할 수 있기를!”

입력 2024-05-31 18:30

활화산 윤한솔 연출
50년만에 다시 무대에 오르는 ‘활화산’ 윤한솔 연출(사진제공=국립극단)

 

“첫 인상은 이랬어요. 여성을 어떤 변화의 주체로 내세워 새마을운동을 선전하기 위한 목적극이었음을 알게 되면서 흥미로웠어요. 또 하나는 1974년에 정권의 특정 사업을 선전하기 위해 만든 공연의 선전성, 프로파간다가 2024년에도 가능한지, 가능하다면 어떤 지점에서 가능한지 궁금했어요. 지금의 관객들에게 프로파간다가 되기 위해서는 어떤 것들을 갖춰야 하는지 질문을 시작했죠.”



윤한솔 연출은 1974년 초연 후 50년만에 무대에 오른 차범석 희곡의 연극 ‘활화산’(6월 17일까지 명동예술극장) 극화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한국적 사실주의의 거장 차범석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활화산’은 그가 오십줄에 들어서던 1973년 집필해 이듬해 이해랑 연출과 백성희, 장민호, 손숙, 신구 등의 출연으로 국립극단 제67회 정기공연으로 초연됐다.  

 

활화산
연극 ‘활화산’ 공연장면(사진제공=국립극단)

 

급진적인 경제개발 계획이 추진되던 때의 농촌 마을, 한때는 떵떵거리던 양반가문이었지만 쇠잔해 가는 이씨 문중 이야기다. 빚까지 내야하는 분수에 넘치는 일이 돼 버린 허례허식, 시대착오적인 가부장제와 구습 등에 맞서 팔을 걷어 부친 며느리 정숙(강민지), 천지분간 못하고 큰소리만 치는 남편 상식(구도균), 그런 그를 못믿으면서도 지원하는 집안의 수장 이노인(정진각)과 그의 아내 심씨(백수련) 등의 이야기다.

“원작상 4, 5막이 되면 과거 모습에 젖어 몰락해 가던 집안이 정숙에 의해 변화하기 시작해요. 직접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지만 새마을운동의 어떤 기조들을 정숙이 계속 얘기해요. 자료조사를 하다 보니 당시 대통령 혹은 정부 문건에 나오는 단어들과 문장들이 정숙의 입에서 나와요.”

그렇게 전반부 사실주의적으로 펼쳐지던 극은 2막부터 전혀 다른 양상을 띤다. 세상의 변화, 집안의 변화를 극 형식 변화를 통해 보여줌으로서 다른 방향을 제시하고자 한다.  

 

연극 활화산
연극 ‘활화산’ 공연장면(사진제공=국립극단)

 

“마지막 장면은 집단 광기 같은 걸 좀 표현해보고 싶었어요. 정숙의 이야기는 옳아요. 아무리 옳아도 결국 누군가는 소외되죠. 변화를 위해 또 누군가는 배제돼야 하는 과정들이 현대사회에서는 어떻게 읽힐지 궁금했던 것 같아요. 현대 희곡이 재밌는 건 당시 시대상들을 담은 상황이나 장면들을 2020년대에 맞게 수정하지 않아도 공명하게 할 수 있는 방법들이 있다는 겁니다. 시대착오적인 인식들이 발생하는 지점들을 그대로 두는 기법으로 접근한 것 같아요.”

이번 ‘활화산’에서 눈에 띄는 인물들은 한국전쟁으로 전사한 장남의 남겨진 4남매 중 어린 원례(장호인), 식(박은경), 길례(서예은)다. 윤 연출은 “처음 읽었을 때 제 시선을 끌었던 것 중 하나가 그 아역 세명이었다”며 “거기서 벌어지는 일들을 목격하게 되는 인물들인데 계산해보면 지금의 386세대 또래”라고 설명했다.

 

[국립극단] 활화산(2024) 공연사진12
연극 ‘활화산’ 공연장면(사진제공=국립극단)

 

“그 아이들의 세대를 봤을 때 여러 가지 생각들이들어서 눈여겨 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 아이들이 무대 위에서 어른들의 행동들이나 상황들을 관찰하고 적극적으로 반응하게 해보자 했죠.”

윤한솔 연출에 따르면 초연 당시 ‘활화산’에 대한 혹평은 굉장했다. 그 혹평의 대부분은 예술의 도구화에 대한 것이었다. 이는 윤 연출이 하고 싶었던 “개인들만 남은 지금 사회에서 집단적으로 움직이게 하는 프로파간다가 가능할까라는 질문”과 맞닿아 있었다.  

 

윤연극 '활화산' 윤한솔 연출
50년만에 다시 무대에 오르는 ‘활화산’ 윤한솔 연출(사진제공=국립극단)
“변화의 중심인 여성이 지금도 달라지지 않은 당대 정치, 구습 등에 대한 비판들을 하죠. 일종의 도화선이 되는 사건, 목적으로서 목적을 달성하게 하려는 연출이었어요. 새마을운동을 언급하진 않지만 ‘우리도 저렇게 바뀌어야 된다’고 생각하게 하죠 하지만 정작 제가 하고 싶었던 건 ‘바뀌어야 한다’ 뒤에 ‘그런데’가 붙는 거였어요.”

정숙이 변화를 주장하는 장면에 차분한 목소리로 녹음한 정숙의 내레이션을 시차를 두고 동시에 진행시킨 것도 그래서다. 프로파간다를 위한 연설과 그 연설에 감동하는 대중들을 표현한 이 장면은 변화에 대한 질문들이 이어지길 바라는 연출 의도이기도 하다.

“광기 어린 장면에서 흐르고 있는 대사들을 좀 천천히 다시 들어보게 하는 거죠. 무슨 말을 어떻게 하는지, 그 말들이 장면에서 어떻게 광기로 변모되고 있는지, 집단적인 움직임에 내가 동의하고 동참하는 과정들을 들여다보게 함으로서 개혁과 세상이 변화하는 양상을 우리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생각할 수 있었으면 했어요. 그렇게 공연이 끝나고 극장문을 나서면서 마지막 광기를 어떻게 읽어야 하고 그 광기에 포함되지 않는 사람들은 어떻게 배제되는지 등 질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기를 바랐습니다.”

‘더 발전할 수 있다’거나 ‘우리가 해야 한다’ 등의 논리와 그 논리에 깔린 저의, 그렇게 설득된 대중들이 어떤 식으로든 움직인 결과가 ‘지금’이다. 변화 과정에서 이어지는 질문과 그 지점들을 눈여겨 봐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신문 기사의 한 문장을 곁들인 데 대해 윤 연출은 “그게 희망인지는 잘 모르겠다”고 털어놓았다.

“스스로 살고 있는 이 시대에 대한 알 수 없는 지점에 대한 질문이 너무 궁금했던 것 같아요. 사회 문제를 얘기하는 동시에 내가 그 사회의 일부인지를 의심하게 되는 그 지점이요. ‘이 사회가 이렇다’고 얘기할 때 나도 그 일부인지를 서로 의심하게 되고 혹시나 아닐지도 모른다는 공포 같은 게 생기는 감각이었던 것 같습니다. 마지막 키스 역시 관계라는 측면에서 처음 회복되는 장면인데 어색해요. 혼란스럽게 하는 거죠. 그렇게 원작 그대로 2024년에 물음표를 던지는 겁니다.”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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