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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경제칼럼] 자유에 대한 ‘정치적 옳음’을 깨뜨리자

입력 2024-07-22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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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혁우 배재대학교 교수
대부분이 그렇다면 그런 거다. O, X 퀴즈 줄서기. 맞는 답을 고르고도 혼자뿐이면 불안하다. “정말일까요? 한 번 더 생각해 보세요” 라는 사회자의 말에 맘이 바뀌고 줄을 바꾼다. 사람이란 역시 다수에 속해 있어야 편하다. 적어도 ‘정치적’으론 안전하다. 우리 안의 신화, 천동설이 그랬고, 광우병 사태가 그랬다. 우리 편끼리는 틀린 것, 잘못한 것도 그냥 넘어갈 수 있다. 그냥 같이 보듬고 아쉬워만 하면 된다. ‘고생 했어’ 동지끼리 하는 치유의 말만큼 무책임한 말은 없다.



‘정치적’ 옳음은 배타성과 같은 말이다. 침묵을 강요하고 폭력을 부른다. 멀쩡한 사람을 삐딱이, 왼손잡이로 만들어 왕따 시킨다. 이렇게 우리사회, 금기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 한번 보자. 언제부턴가 중대재해처벌법을 비판하는 것도, 차별금지법을 비판하는 것도, 균형발전을 비판하는 것도 점점 부담스러워진 듯하다. ‘가슴 아프다’는 한 마디 말로 사고의 잘잘못이나 발생확률을 제대로 따져보자는 목소리도 묻혀 버린다. ‘정치적’ 옳음의 메아리는 이렇게 크다. 하지 않기로 되어 있는 말은 하면 안 된다.

경제사회 운영의 핵심원리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자유’가 그렇고 ‘시장’이 그렇다. 자유로워야 개성과 창의성이 발현한다. 시장이 있어야 부족한 걸 바꿔가며 살아갈 수 있다. 국가가 자유를, 시장을 보장해야 하는 이유는 이렇게 간단하다. 그런데 요즘, 우리를 번성케 해 준 이 당연한 생각이 고루해지더니 극우란 이름으로 치워지고 있는 것도 같다. 완벽한 자유인을 꿈꾸는 사람들조차 자유주의에는 멈칫하는 게 세태이다.

하지만 자유주의 혐오가 ‘정치적 옳음’이 되는 건 정말 위험하다. 자유를 말하지 못하고, 시장을 말하지 못하는 사회란 우리를 지금의 우리로 만들어 준 마법의 책을 스스로 내팽겨 치는 일이다. 인민재판, 자아비판 시간, 자기의 자유를 부정하고, 하지도 않은 잘못을 입증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시장이 중요하다고 말하지 못하고, 자유주의자임을 말하지 못하는 사회, 그것이 삐딱이가 되는 사회는 그래서 폭력적이다.

사실 자유주의에 대한 ‘정치적 옳음’에는 뻔뻔한 이기주의와 위선이 자리 잡고 있다. “나는 자유로워야 하지만, 너는 자유로우면 안 된다”는 게 그 논리이다. 사회적 경제기업이 자유로운 건 당연하지만, 조금이라도 큰 기업은 그러면 안 된다. 재래시장은 자유로워야 하지만, 대형마트도 그러면 안 된다. 지방은 자유로워야 하지만 수도권은 자유로우면 안 된다.

종업원이 수만 명이어서 아무리 조심해도 사고는 늘 있을 수밖에 없는 직장에서도 대표라면 언제나 책임을 져야 한다. 책임자의 자유는 이렇게 제약되고, 근로자의 자유는 이렇게 보장된다. 이 모든 것, 사이비 자유주의, 비대칭형 자유주의지만 사회에 스며드는 건 금방이다. ‘얼마나 가슴이 아픈지’ ‘너는 감정도 없어’ 라는 한 마디 말에 자유 삐딱이는 바로 ‘정치적 옳음’이 되어 버린다.

이런 풍토에서 한줌 자유주의자에게는 금방 보이는 우리사회 모순, 사회적 경제기업, 대형 마트 영업규제, 수도권 규제, 중대재해처벌법의 무논리 비판은 사그라든다. 좋은규제시민포럼 발표에 의하면, 개원 6주째인 7월, 국회는 이 짧은 기간 동안 1,609건의 법률안을 발의했다. 이 중 444건이 규제이다. 헌법에도 있는 자유민주주의 사회에 우리 스스로를 옳아 매는 규제를 이렇게 짧은 시간에 이렇게나 만들자고 한다. 이 모두가 과연 사회를 더 낫게 해 주는 법들일까?

이 법률안 속에는 대학 등록금을 더 강하게 규제하자는 것, 어린이보호구역 지정을 강행규정으로 하자는 것, 모든 어린이 공원에 CCTV를 설치하자는 것, 농수산물에 표준가격을 정하고 그 이하로 내려가면 국가가 보전해 주자는 것, 사회적 경제기업 적합업종을 만들자는 것, 천일염 보호는 우선구매로도 신통찮으니 아예 최저가격제를 도입하자는 것도 포함되어 있다.

방송법, 검사탄핵, 정쟁 때문일까, 국회는 어째 이렇게 많은 경천동지 할 자유파괴법을 내 놓고도 토론도 제대로 안하는 것 같다. 언론과 사회 분위기는 더 하다. 이중 몇이라도 의결된다면 우리 모두의 자유를 크게 위축시킬 것이 뻔한 데도, 한 달 사이 반대 논리를 어디서도 잘 들어보지 못했다. 우리사회는 언젠가부터, 자신이 자유주의자임을 밝히며 세상 입씨름 하는 게 어려워졌다. 원래 삐딱한 애, 왼손잡이가 되고 싶은 사람은 없는 법이다. 언제부턴가 우리 안에 스며든 ‘정치적 옳음’의 위력이다.

자유란 원래 그냥 된 게 아니다. 부지기수의 사람들이 자유를 위해 몸을 던졌다. 원래 얻기는 어려워도 잃는 것은 금방이다. 지금처럼 ‘정치적 옳음’이란 유령이 자유를 온통 포위하고 있는 한 자유망각도 가속화 될 거다. 이제 한줌 자유주의자라도 두 배의 목소리를 내고, 네 배의 부지런함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우리 안에 물든 ‘정치적 옳음’을 깨치려면 오늘부터 이렇게 말해보자. “(너처럼) 그들도 자유가 있다고, 누구도 부당하게 그들의 자유를 쉽게 재단할 수 없는 거라고, 자유를 말할 자유를 용감하게 시도해 보자고”

  

이혁우 배재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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