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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항생제의 습격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

입력 2015-07-13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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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 모습 (출처 : 유튜브)

 

브릿지경제 문은주 기자 = 지난 5월 갑자기 찾아온 불청객이 온 나라를 공포로 몰아 넣었다.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이 그 주인공이다. 이름도 낯선 이 바이러스와의 불편한 만남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치료약’과 ‘백신’을 먼저 떠올렸다. 

 

어쩌면 메르스의 전파력 자체보다 마땅한 예방약이 없다는 점이 더 공포였는지도 모른다. 매우 당연해 보이는 이러한 의식의 흐름에는 문제가 없는 걸까. 7번째 강연에서는 우리가 그동안 너무 당연하게 의지해왔던 ‘약’의 이중적인 면을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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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촉진용으로 항생제를 접해야 하는 현대의 가축들 (출처 : 유튜브)

 


◇ 항생제의 달콤한 유혹...내성이라는 변수



1941년 영국 옥스퍼드 소재 래드클리프 병원에서 근무하던 하워드 플러리 박사는 몇 몇 의사들과 함께 팀을 구성해 아주 적은 양의 페니실린을 합성했다. 최초의 항생제였다. 이 약의 수혜자는 장미 가시에 긁힌 뒤 온갖 감염 증상으로 괴로워하던 한 남자였다.

제대로 된 임상 시험도 거치지 않은 약이었지만 이내 환자는 회복하기 시작했다. 페니실린이 바닥나면서 결국 남자는 죽고 말았지만 이후 페니실린의 효능은 거듭 발전하고 대량 생산되면서 다른 수백만 명의 사람들은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바로 그 지점이 비극의 시작이라는 것이 락스미나라얀의 주장이다. 치료에 효과가 나타나면서 항생제 남용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감기나 독감 같은 가벼운 질병 치료에도 무차별적으로 항생제를 처방하거나 닭·돼지 같은 가축의 사료에 성장촉진용 약제를 투여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항생제로 인해 내성이 생긴 박테리아들이 더 빠른 속도로 내성을 키우고 있다는 점이다.

강연 중간에 락스미나라얀이 보여주는 연도별 박테리아의 내성 비율은 놀라울 정도다. 지난 1999년부터 2012년까지 약 13년간 아시네토박터(병원균)에 대한 카르바페넴(항생제)의 내성 비율을 비교한 그림을 보면 시간이 갈수록 병원균의 내성은 더욱 강해진다. 그 병원균을 잡기 위해 더 강력한 치료약이 개발되고 또 다시 내성이 생기는 과정이 되풀이되면서 악화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비록 강연에서 나온 사례는 미국 사례에 불과하지만 우리나라 상황도 예외는 아니다. 의사들이 항생제 처방을 줄이고 환자들도 자발적으로 항생제를 거부하면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될 것 같지만 이미 ‘항생제 생태계’는 돌이킬 수 없는 상황으로까지 다다른 것처럼 보인다.

가격 면에서도 저렴한 항생제가 있지만 새로운 약이 개발될수록 더 몸값은 비싸진다. 지금처럼 항생제에 의존하게 된다면 또 다른 돌연변이 바이러스가 창궐할 때마다 비싼 가격을 치르면서도 집착해야 할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 환자의 죽음을 짧게는 몇 달, 길게는 1년여 정도 미뤄주는 항암제와 달리 항생제는 환자의 생명을 완전히 구할 수 있다는 종교적 믿음이 조성돼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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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기준 1999년의 내성균 분포 (출처 : 유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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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기준 2003년의 내성균 분포 (출처 : 유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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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기준 2012년의 내성균 분포 (출처 : 유튜브)

 


◇ “백신을 맞지 않는 것부터가 시작”

항생제 남용 문제를 해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자연 상태에서 여러 가지 시행착오로 내성을 기르는 박테리아와의 전쟁에서 이기려면 박테리아보다 더 빠른 속도로 서둘러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새로운 약을 발견해야 하고 분자 검사를 해야 하며, 임상 시험을 거쳐서 새로운 후보 약을 만든 뒤 FDA 규정에 따라 승인 과정을 받아야 한다. 속도전에서는 박테리아를 절대로 이길 수 없다는 얘기다. 보조금을 지급해서라도 항생제 개발에 열을 올릴 것이 아니라 항생제의 올바른 사용 방법을 장려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는 것이 락스미나라얀의 주장이다.

실행 방법은 의외로 가까이에 있다. 백신을 멀리 하는 것. 계절성 독감 백신은 항생제를 남용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이다. 계절성 독감 백신은 국내외를 막론하고 항생제 사용을 부추기는 큰 요인인 만큼 병원 감염 관리나 백신 접종 등을 줄이고 백신을 맞지 않고 면역력을 기르는 것만으로도 항생제 활용을 줄일 수 있다는 주장이다.

 

모두에게 항생제를 줄 수 없을 경우, 우선적으로 필요한 사람에게 먼저 항생제를 처방하는 이른바 ‘항생제 허가 제도’도 염두에 둘 수 있다. 하지만 국가별로 사회적·문화적 차이가 있는 만큼 실행까지 고려한다면 사실상 먼 미래의 일로 보인다.

항생제 남용 문제는 비단 박테리아에 국한된 것은 아니다. 인도와 남아프리카에서 심각한 문제로 꼽히는 다체내성 결핵이 한 사례다. 치료약이 너무 비싸서 수 천명이 사망하고 있는 가운데, 바이러스에도 내성이 생기면서 기존에 나와 있는 치료약조차 말을 듣지 않는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고 있다. 게다가 흔하게 접할 수 있는 농 해충이나 말라리아 같은 기생충이 내성을 가진다고 상상해본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상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생명을 연장하기 위해 개발된 약이 되레 우리의 발목을 잡는다는 건 서글픈 일이다. 하지만 문제라는 걸 알면서도 실행에 옮기지 않는다는 건 더 비극이다. 당장의 불안감을 없애고 고통을 치유하는 것도 좋지만 좀 더 지혜로운 판단이 필요할 때다.

문은주 기자 joo0714@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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