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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ir Paly 인터뷰] 어린이창극 ‘미녀와 야수’, “그 어려운 걸” 해낸 ‘뜨끔 따끔’ 이지수 음악감독과 야수 김준수

입력 2017-01-12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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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창극 ‘미녀와 야수’의 야수 김준수(왼쪽)와 이지수 음악감독.(사진제공=국립극장ⓒ전강인)

 

“그 어려운 걸 저희가 하고 있습니다.”



영화 ‘올드보이’, ‘친절한 금자씨’, ‘건축학개론’, 애니메이션 ‘마당을 나온 암탉’, 드라마 ‘겨울연가’ 등의 이지수 음악감독과 ‘오르페오전’, ‘트로이의 여인들’ 등의 국립창극단 스타 단원 김준수가 어린이창극 ‘미녀와 야수’로 뭉쳤다.

창극이 처음인 작곡가 이지수 감독과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공연은 처음인 한국 전통 소리꾼 김준수, 게다가 이야기는 해외 애니메이션 ‘미녀와 야수’다. 이 상황에 대해 이지수 감독은 “그 어려운 것”이라고 표현했다.

“저나 (김)준수씨 뿐 아니라 모인 스태프들 모두에게 엄청난 도전이었어요. 답이 없는 게임을 시작한 기분이었죠. 하지만 다들 전문가다 보니 문제도 잘 찾고 그 해결도 잘 하더라고요.”


◇별의 별 걱정, “이제는 고맙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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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창극 ‘미녀와 야수’의 야수 김준수(.(사진제공=국립극장ⓒ전강인)

 

“서양음악과 창을 엮어서 만드는데 어린이극이니 쉬워야하고 쉽게 이해시켜야하는 게 힘들었죠. 녹여낼 장점들이 많은데 어린이 극이어서 못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공연시간, 사운드 크기 등을 어떻게 해야하는지 애매한 것 투성이였죠. 심지어는 야수나 이야기꾼이 강하게 나올 때 애들이 울까봐 걱정도 했으니까…별의 별 걱정을 다 했죠.”

불과 본공연 일주일을 남겨놓고 공연시간을 줄이느라 애를 먹기도 했다. 어린이창극이 처음인 김준수도 “캐릭터 표현이나 연기는 늘 어렵다. 작품을 할 때마다 어려움을 느낀다”고 토로했다.

“어린이 눈높이에 맞춰 동심을 자극해야하는 게 가장 중요하고 어려웠어요. 아이들이 어쩌면 더 냉정할 수도 있어요. 솔직하니까요. 혹시나 관객석에서 자기 하고 싶은 말들을 다 뱉을까봐 걱정했는데 중간에 등장하는 캐릭터에도 호기심을 보이고 재밌게 관람하는 걸 보면서 고맙기도 하고 힘이 났어요.”


◇두살배기 아들과의 음악감상(?)으로 “될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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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창극 ‘미녀와 야수’ 이지수 음악감독.(사진제공=국립극장ⓒ전강인)
“선율이 되게 아름다워요.”

김준수가 “감미롭다”고 표현한 어린이창극 ‘미녀와 야수’의 음악은 이지수 감독이 두살배기 아들과 음악감상(?)을 하면서 터득한 패턴들을 반영한 결과물이다.

“아들 때문에 뽀로로, 코코몽…이런 노래들을 듣기 싫어도 엄청 듣다보니 패턴이 보이더라고요. 리듬을 엄청 좋아하고 음악 자체가 축축 쳐지면 관심이 없어져 버려요. 지루하지 않게끔 변화가 많아야 하고 차근차근 흘러서 쌓이는 음악보다는 순간순간 자극과 재미를 주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아이들이 좋아하는 패턴이 분명해서 신기해하면서 응용했죠.”

어린이창극 작업에서 가장 어렵고 중요한 것은 적정선 맞추기다. 알게 모르게 자리 잡은 아이들에 대한 선입견과 어려울지도 모를 예술성 사이에서 적정선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서양음악의 작곡과 한국 판소리의 작창이 어우러지는 지점도 찾아야 했다.

“될 때까지, 자연스러워질 때까지 하는 거죠. 슬프다, 화가 난다 등 분위기를 음악으로 쉽게 잡아줄 수는 있어요. 하지만 우리 소리 자체가 주는 힘이 너무 커서 반주를 아무리 크게 해도 끌고 가는 힘이 있더라고요. 그게 너무 좋았어요. 구성지고 세게 튀는 소리들도 있어서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한데 음악요소가 너무 많이 들어가면 오히려 잘 안들리거든요.”

빼면 뺄수록 좋아지는 판소리의 묘미를 살리기 위해 이지수 감독의 표현대로 “쌓이고 쌓여서 뚱뚱해져 많이 넣었다가 많이 뺏다”. 그렇게 어울림을 만들어내는 작업은 서양음악적 요소를 넣었다가 덜어내는 과정의 반복이었다. 이는 뮤지컬 ‘아랑가’를 작업했던 박인혜 작창과의 소통으로 가능해졌다.

“반짝 반짝 등 의성어나 의태어를 많이 쓰셨더라고요. 작창 선생님이 보이스톡으로 소리를 보내주시면 컴퓨터 위에 올려놓고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고 했죠. 일반적인 음악은 2, 4마디 등 짝수로 끊겨야 좀 쉽게 흘러갈 수 있으니 박자, 음정 등을 정리해서 화성을 붙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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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창극 ‘미녀와 야수’의 야수 김준수(.(사진제공=국립극장ⓒ전강인)
첫 작업이라고 믿기지 않을만큼 잘 들어맞은 이지수 감독과 박인혜 작창의 합은 노래를 하는 김준수에게도 느껴질 정도였다.

“작창 선생님도 어린이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음들을 많이 생각하신 거 같아요. 소리가 아기자기하죠. 판소리의 소리길, 시김새(음을 꾸며내는 모양새)를 많이 덜어냈어요. 전문적인 판소리는 어른들도 이해하기 쉽지 않으니 어린이 입장에서 잘 들릴 수 있게끔 신경을 쓰셨죠. 젊은 두 분이 만나서 가능해진 하모니인 것 같아요.”

작업은 어려웠지만 그 결과물은 꽤 성공적이다. 3개의 신디사이저, 드럼, 고수, 대금, 아쟁 등 7개의 악기로 150명이 동원된 오케스트라 효과를 내는 음악을 완성했다.

“(박인혜) 작창 선생님 소리랑도 너무 잘 어울려요. 작창에 대해 잘 이해하시고 작곡을 하신 것처럼 전혀 이질감이 안느껴졌죠.”

서양음악의 선율에 신디사이저에서 나오는 합창소리까지 더해져 우리 전통의 장단과 어우러진 ‘미녀와 야수’의 음악에 대해 김준수는 “국악기와 적절하게 섞여서 노래하는 데 전혀 무리가 없다”고 전한다.

“음악적 힘이 장난이 아니에요. 합창이 뒤에서 받쳐주니까 더 갈 수 있게 밀어주는 느낌이죠.”


◇‘프롤로그’부터 ‘뜨끔 따끔’ 그리고 ‘상처입은 야수’의 분노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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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창극 ‘미녀와 야수’ 이지수 음악감독.(사진제공=국립극장ⓒ전강인)

 

“처음 만든 ‘프롤로그’가 제일 어려웠어요. 각 캐릭터별로 죽 훑는 곡이라 꽤 길어요. 그 곡이 나오는 데만도 한달이 걸렸죠. 그 곡이 나오니까 그 뒤로는 술술 흘러가더라고요. 그래선지 다들 ‘프롤로그’를 제일 좋아해요.”

이 곡에 대해 김준수는 “놀이동산에 온 듯한 느낌”이라고 전했다. 이는 이지수 감독이 음악을 고민하면서 가장 많이 떠올린 판타지와도 맞닿아 있다.

“아이들 극을 오랜만에 보면서 옛날 생각이 났어요. 극을 보는 순간 판타지와 그 세계에 들어가게 하는 데 음악이 하는 역할이 큰 것 같아요. 음악만으로도 환상의 세계에 빠져들게 만들 수 있겠다 싶었죠. 그런 음악들을 위주로 판소리와 중첩되는 부분을 찾아서 프롤로그를 만들었어요.”

판타지의 세계로 끌어들이는 힘을 중시하는 이지수 감독이 추천하는 곡은 아리가 아빠를 찾으러 나갔을 때 부르는 ‘아빠를 찾아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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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창극 ‘미녀와 야수’의 야수 김준수(.(사진제공=국립극장ⓒ전강인)

 

“동심을 자극하는 동화같은 테마예요. 상상력을 자극하는 애니메이션 느낌의 곡이죠. 애니메이션의 음악들은 붕 떠서 계속 가면서 되게 업되게 만들어요. 창극에서 그럴 수는 없지만 한국적 애니메이션 감성 혹은 한국동화의 색을 내기 위해 노력했죠.”

창극이다 보니 작창이 주를 이루지만 작곡과 작창이 섞인 곡에서는 김준수도, 이지수 감독도 굳이 국악적인 시김새를 고집하지는 않았다.

“늘 작곡된 곡을 부를 때는 소리꾼들이 시김새를 담아서 혹은 소리적인 느낌, 정서를 담아서 부르는데 이 곡은 그러지 않아도 되겠다고 생각했다”는 김준수의 말에 이지수 감독이 “멜로디 자체가 애니메이션 음악 혹은 뮤지컬 넘버같은 곡이어서 굳이 판소리의 요소를 넣지 않아도 되겠다는 얘기”라고 동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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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창극 ‘미녀와 야수’에서 분노를 표출하는 야수 김준수.(사지제공=국립극장)

 

도와줄 때와 뒤로 물러서야할 때를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는 이지수 감독과 김준수의 호흡이 빛나는 곡들도 있다. 후반부 금지된 방에 들어온 아리와 아리 친구에 야수가 화나서 부르는 ‘상처입은 야수’가 대표적이다.

“호찌더라고요. 웅장하게 사운드가 같이 오다가 혼자 하려니까 갑자기 푹 꺼지는 느낌이랄까?”

반주 없이 홀로 분노를 표현하는 장면에 “호찌다”(호되다의 경기 방언)는 김준수를 위해 이지수 감독은 “준수씨 목소리가 딱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는 순간까지만” 도와주는 음악을 만들었다.

“그런 게 음악이 주는 힘 같아요. 감정이 휘몰아치게 얹어주는 힘이 엄청났거든요. 아무리 그래도 애들이 뜨끔 따끔할 곡은 ‘뜨끔 따끔’이지 않을까 싶어요.”


◇이지수와 김준수의 ‘뜨끔 따끔’ 도전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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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창극 ‘미녀와 야수’ 이지수 음악감독.(사진제공=국립극장ⓒ전강인)

“처음에는 판소리하는 분 중에 이런 분이 계셨구나 했죠. 소리는 물론 음악에 대한 이해도와 순발력이 좋아요.”

이지수 감독의 작업 소감에 김준수가 “근데 저는 되게 많이 혼난다”고 쑥스럽게 웃는다.

 

이번에 함께 작업한 이지수 감독을 비롯해 ‘오르페오전’의 황호준 감독, ‘트로이의 여인들’에서 정재일 감독 등과 끊임없이 새로운 도전에 나서는 김준수는 “그저 영광”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국립창극단 안에서 대단한 음악감독님, 연출님을 만날 수 있으니 영광이죠. 감독님들마다 스타일이 전혀 다르세요. 다른 스타일을 접해볼 수 있는 게 너무 좋아요. 새로운 것에 대한 두려움은 있지만 부딪혀보고 싶은 마음은 늘 있거든요. 잘해야지 보다 도전하고픈 마음을 가지고 시작하는 것 같아요. 찾는 게 늘 어렵고 그 과정은 힘든데 성취감은 훨씬 크거든요.”

이지수 감독 역시 영화, 드라마, 게임음악 등에 이어 창극까지 음악 스펙트럼을 넓혔다.

“감상공간이나 환경에 따른 특성은 분명 있어요. 영화는 제한된 공간에 있는 이들을 집중시켜야하니 쉽고 차분하면서도 눈길을 끌어야 하고 다른 행동과 더불어 이리저리 채널을 돌리면서 보는 TV드라마는 음악도 내용도 자극적인가 하면 공연은 라이브니까 현장의 흥이 중요해요. 장르별로 장단점도 있지만 끝나도 끝난 게 아니라는 공통점이 있죠.”

이지수 감독의 말에 김준수가 새삼 “음악적 경계가 없으시네요. 또 영광”이란다.

“작업할 때의 장점들을 가지고 창극을 작업할 힘을 얻듯이 창극의 장점을 또 시나리오나 드라마, 애니메이션, 뮤지컬적으로 대입할 수 있게 되겠죠.”

그나마 쉬던 1, 2월까지 공연으로 꽉 들어찰 정도로 바쁜 한해를 보낼 김준수의 고민은 여전히 어떤 음악에든 우리 소리의 장점을 살려 부르는 것이다.

“그걸 찾는 게 우리 소리꾼들이 해야할 일인 것 같아요. 그래서 열린 마음으로 어려워도 해보자 싶어요. 정말 좋은 작업이고 귀한 시간이죠. 정답은 없으니 다양한 시도로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이 시대 창극이 어떻게 대중과 소통하고 공감하며 흘러가야할 것인지를 고민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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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창극 ‘미녀와 야수’의 야수 김준수(왼쪽)와 이지수 음악감독.(사진제공=국립극장ⓒ전강인)

 

창극 요소가 있는 뮤지컬, 몸으로 표현하면서 소리를 섞는 공연을 하고 싶다는 김준수는 최근 이를 위한 무용교습을 시작했다. “했던 공연 중 다시 한번 해보고 싶던 ‘코카서스의 백묵원’을 기다리고 있다”는 김준수는 “‘트로이의 여인들’도 끝나고 나서야 헤레네가 더 매력적으로 다가와서 다음엔 더 잘해야지 싶고…” 할일도, 하고 싶은 것도 넘쳐나는 젊은 소리꾼이다.

명필름의 영화 ‘7호실’, ‘마당을 나온 암탉’ 오성윤 감독의 유기견 이야기 ‘언더독’ 등을 비롯해 평창 패럴림픽에도 참여하는 이지수 감독은 “‘미녀와 야수’의 음악을 통해 실체가 없는 한국적 애니메이션을 만들어주고 싶었다. 아이들이 한국에도 이런 세계가 존재하는구나 하고 돌아갔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전한다.

“준수씨의 한계를 알아볼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뭐든지 도전하는 사람이니까.”

그렇게 이지수 감독과 김준수의 ‘뜨끔 따끔’ 도전은 계속된다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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