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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사이드] 연극 ‘추남, 미녀’ 이대웅 연출·오세혁 작가 “있는 그대로의 나로 서기, 의연하게!”

‘살인자의 건강법’ ‘배고픔의 자서전’ ‘오후 네시’ 등의 프랑스 소설가 아멜리 노통브가 샤를 페로의 동화 ‘도가머리 리케’를 바탕으로 변주한 소설 ‘추남, 미녀’ 무대화한 이대웅 연출·오세혁 작가
데오다 백석광, 트레미에르 정인지의 있는 그대로의 '나'로 서기 위한 고군분투

입력 2019-05-03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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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추남, 미녀’의 오세혁 작가(왼쪽)와 이대웅 연출(사진=강시열 작가)

 

“원작소설은 노통브가 엄청난 문장력을 뽐내면서 표현해요. 읽다 보면 스케일에 압도돼 포착이 안되는 것들이 많죠. 연극적으로 압축하고 정제하기까지 엄청난 글자들과의 전쟁이었어요.”



연극 ‘추남, 미녀’(19일까지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의 이대웅 연출은 프랑스 작가 아멜리 노통브(Amelie Nothomb) 소설의 무대화 과정을 이렇게 전했다. “쓸데없이 화려한데 눈에는 안 띈다”는 수염수리에 대한 묘사나 굽은 등, 추한 외모로 놀림거리였던 데오다(백석광)가 ‘데오그란트’로 놀림을 당하다 ‘데오’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과정이 담긴 한 문장 등이 그 예다.

“소설은 각자 감각하는 게 달라서 연극으로 정제하는 과정이 너무 재밌어요. 첫 작업을 보고 지금 무대를 보면 신기해요. 머리를 맞대고 사고를 하고 대화를 하면서 이 지점까지 올 수 있다는 사실이 경이롭기까지 하죠. 그래서 연극이 섹시하고 매력적인 것 같아요.”

‘추남, 미녀’는 샤를 페로의 동화 ‘도가머리 리케’(Riquet a la Houppe)를 변주한 노통브의 동명 소설(한국 번역명 추남, 미녀)을 전세계 최초로 무대에 올린 작품이다. 천재 조류학자 추남 데오다와 너무 예쁜 탓에 편견에 시달렸던 보석상 모델 트레미에르(정인지)가 만나는 과정을 따르는 남녀 2인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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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추남, 미녀’이대웅 연출(사진=강시열 작가)
‘어린왕자’ ‘아랑가’ ‘보물섬’ 등의 이대웅 연출과 ‘보도지침’ ‘라흐마니노프’ ‘대학살의 신’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등의 오세혁 작·연출이 ‘우리들의 여자’ 이후 두 번째로 호흡을 맞춘 작품으로 데오다는 탄생부터 현재로, 트레미에르는 역순으로 거스르는 엑스(X)자 형식으로 진행된다.

서로의 행보에서 다양한 역할들로 영향을 미치는 데오다와 트레미에르는 서로를 만남으로서 비로소 ‘있는 그대로의 나’로 서게 된다.


◇‘대화’를 만드는 프랑스식!

“프랑스 사람들은 신경질적이고 작은 데 집착하는가 하면 말을 장황하게 하는 경향이 있어요.”

각색 과정에 대한 오세혁 작가의 말에 이대웅 연출은 “대화를 하게 만드는 프랑스식”이라고 표현했다.

‘레옹’의 장 르노(Jean Reno)가 출연했던 프랑스의 히트 연극이자 두 사람이 함께 한국화 작업을 했던 ‘우리의 여자들’이 그랬고 오세혁 작가가 각색한 연극 ‘톡톡’ ‘대학살의 신’ 그리고 야스미나 레자(Yasmina Reza)의 ‘아트’가 그렇다.

“문장 번역을 할 때도 러시아어, 독일어, 영어, 일어 등과 달리 프랑스어는 이해하는 데 오래 걸려요. 끊임없이 대화를 하게 되죠. 오죽하면 유럽에서는 ‘프랑스 사람과는 말싸움을 하지 말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니까요. 저는 ‘프랑스식’이라고 표현하는데 묘해요. 웃는데도 섬뜩하고 신랄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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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추남, 미녀’의 오세혁 작가(사진=강시열 작가)

◇ ‘세포분열’하는 요즘 연극, 요즘 무대 


“연출, 배우, 작가 등 분업화가 아닌 서로의 영역에 끼어들어가는 작업이었어요. 주객전도가 될 때도 있어서 배우가 연출하고 있고 제가 연기를 하고 있기도 했죠. 연습마다 재밌는 일들이 일어났어요.”

이대웅 연출은 ‘추남, 미녀’ 작업 과정을 이렇게 설명하며 ‘요즘 무대’라고 정의했다. 이대웅 연출이 전한 작업과정에 대해 오세혁 작가는 ‘세포분열’이라고 표현했다.

“서로 미루지 않으니까 작업이 잘됐어요. 배우들도 본인들이 하고 싶은 대사에 대해 적극적으로 얘기하고 저와 연출님은 이를 어떻게 담을까 고민하고…연출님, 배우 뿐 아니라 드라마터그, 조연출 등 모든 스태프들과 출연진들이 다 같이 얘기하며 세포분열하듯 완성됐죠. 정말 신기했어요.”

오세혁 작가의 설명에 이대웅 연출은 “연출이라고 연출만, 작가라고 작가만, 배우라고 시키는대로만 하는 게 아니라 서로 능동적으로 만나지는 지점들이 재밌었다”고 말을 보탰다.

“배우가 10명 이상 출연하는 작품에서는 하고 싶어도 못하는 작업이죠. 그렇게 만나지는 지점에서 기존의 작업 방식을, 연출이라는 제 역할을 다시 한번 되돌아보게 됐어요. ‘추남, 미녀’의 작업방식을 잘 발전시키고 싶은 욕망이 생겼죠.”


◇극과 극, 백석광과 정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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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추남, 미녀’ 트레미에르 정인지(사진제공=예술의전당)

 

“두 배우의 스타일이 극과 극이에요. 극 중 데오다·트레미에르랑 똑같죠. 정인지 배우는 안에 도사리고 있는 핵과 집중력이 대단해요. 하나의 심미안을 밖으로 끊임없이 끄집어 내죠. 반면 백석광 배우는 팔색조처럼 다각도로 접근해서 정곡을 찔러요.”

백석광, 정인지와는 첫 작업이었다는 이대웅 연출은 “두 배우의 작업 속도마저 극명하게 달라서 재밌었다”고 덧붙였다. 연출작인 뮤지컬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작·연출 연극 ‘보도지침’에서 함께 했던 정인지에 대해 오세혁 작가는 “하나의 믿음을 가지기까지 오래 걸리지만 신뢰가 구축되면 다른 데 안보고 가는 스타일”이라고 말을 보탰다.  

 

“정인지 배우를 보고 있으면 프리다 칼로 생각이 나요. 아주 오래 전부터 그 화가의 이야기를 뮤지컬로 만들고 싶었는데 인지 배우를 보면 자꾸 생각나죠.”


◇‘도모하는 사이’ 이대웅·오세혁…올여름엔 야외극 ‘파랑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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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추남, 미녀’ 데오다 역의 백석광(사진제공=예술의전당)

“공식적으로는 ‘추남, 미녀’가 두 번째로 같이 하는 작품이지만 오래 전부터 많은 일을 도모했어요. 민새롬 연출까지 셋이서 산울림고전극장도 (나란히) 같이 시작했고 ‘화학작용’이라는 연극 페스티벌, 마로니에 여름축제 팝업씨어터, 양손프로젝트 등 많은 것을 함께 했죠.”


세 사람의 관계를 “함께 도모하던 사이”라고 표현하는 오세혁 작가의 말에 이대웅 연출은 “동시대를 가지고 이 작업, 저 작업을 함께 하며 교류하던 사이”라고 덧붙였다.

“좋은 케미스트리가 있어요. (오)세혁씨는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어요. 어떤 사람들은 안되는 이유를 먼저 말해요. 굉장히 논리적이지만 방법론을 가진 사람은 별로 없죠. 하지만 세혁씨는 ‘안될 게 뭐 있어’라는 마인드로 접근해요.”

그리곤 “재밌는 조합이 될 것”이라고 덧붙이는 이대웅 연출에 대해 오세혁 작가는 “10년 가깝게 만나면서 이대웅이라는 사람에 대해 인정하는 부분이 있다. 늘 보탬이 되고 싶다”고 말을 보탰다.

“형은 흔히 읽을 기회는 없지만 좋은 소설을 많이 알고 있어요. 거의 10년치는 되는 것 같아요. 그 작품들은 보편성을 가진, 온가족이 볼 수 있는 콘텐츠들이죠. ‘추남, 미녀’도 그랬어요. 요즘 저의 고민도 가족, 보편성이에요. 온가족이 함께 공연을 볼 때의 표정이 너무 좋거든요.”

오세혁 작가의 말에 이대웅 연출은 “세혁씨랑 올 여름에 또 하나의 프로젝트를 하게 될 것”이라며 “안양문화재단 10주년을 맞아 메테 르링크의 ‘파랑새’를 야외극으로 꾸린다. 시민참여 방식으로 전통 작업관성에서 벗어나는 경험을 하려고 준비 중”이라고 귀띔했다.


◇이 시대에 필요한 것은 의연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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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추남, 미녀’의 오세혁 작가(왼쪽)와 이대웅 연출(사진=강시열 작가)

 

“어떤 상황이든 지금을 살고 있는 우리한테 필요한 건 의연함 같아요. 이 작품을 통해 제가 배웠고 배우기를 바라는 건 ‘있는 그대로의 나’를 믿고 사랑하기죠. 의연하게.”

연극 ‘추남, 미녀’의 미덕에 대해 이렇게 전한 이대웅 연출은 “요즘이 힘든 세상이라 빛나는 이야기”라고 덧붙였다.

“우리가 굉장히 재밌는 시대에 살고 있다고들 해요. 아날로그와 디지털, 컴맹과 컴퓨터 기술자들 등이 공존하는 지금은 인류 역사상 가장 흥미로운, 인지능력 차이가 극과 극이던 네안데르탈인과 크로마뇽인이 같이 살던 시기를 닮았다고 하죠. 그런 시대이니 자기 고유성을 찾고 스스로를 사랑할 줄 알게 되면 데오다와 트레미에르처럼 ‘있는 그대로의 나’로 설 날을 맞이하게 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이대웅 연출의 말에 오세혁 작가는 “이 작업을 하면서 영화 ‘지. 아이. 제인’에서 접했던 ‘자신을 동정하는 야생동물을 보지 못했다. 얼어죽어 나뭇가지에서 떨어지는 작은 새조차도 자신을 조금도 동정하지 않는다’라는 D.H. 로렌스(D.H.Lawrence)의 시 ‘자기연민’(Self Pity)이 떠올랐다”고 털어놓았다.

“본인의 장점, 즐거움 등 긍정적인 면 뿐 아니라 고독, 씁쓸함, 외로움 등도 인정하고 감당해야 할 것 같아요. ‘나는 왜 이럴까’라는 생각도 그만 했으면 좋겠어요. 이 작품을 통해 저 역시 그런 생각을 하고 있죠. 의연하게.”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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