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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어둠 속에서 빛나는 것들’ 신순규 애널리스트 “견고한 삶의 선택, 연약한 삶의 거부”

[허미선 기자의 컬처스케이프] 최초의 월가 시각장애인 애널리스트, '어둠 속에서 빛나는 것들' 펴낸 신순규 작가

입력 2021-07-16 18:00
신문게재 2021-07-16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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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순규 애널리스트(사진제공=민음사)

 

“실직했을 때 ‘아, 월가는 아무래도 시각장애인에게는 버거운 일인가 보다’하면서도 포기하지 않은 것. 4년 동안 난임으로 고생했을 때 유산과 자궁 외 임신 수술 등을 감수하는 아내에게 더 초점을 두고 격려하고 아껴주며 살았던 것. 아기보다 그녀를, 또 우리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면서 관계의 견고함을 계속 확인했던 경험….” 


어쩌면 무너져 내릴 법한 절망도 스스로의 선택에 따라, 관점에 따라 삶을 견고하게 하곤 한다. ‘견고한 삶을 위한 선택’과 ‘연악한 삶의 거부’를 강조하는 신순규는 미국 뉴욕 월가의 증권 애널리스트이자 ‘어둠 속에서 빛나는 것들’의 저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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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순규 애널리스트(사진제공=민음사)

“관점이 중요해요. 이게 다가 아니에요. 오늘, 지금 이런 상황이 오래 가지는 않을 거예요.”

 

그가 꽤 단호하게 말하는 ‘관점’과 ‘견고한 삶을 위한 선택’은 그의 삶에 고스란히 반영돼 있다. 

9세에 완전히 시력을 잃은 1급 시각장애인, 피아노 연주 투어, 15세 혼자 떠난 미국 유학, 하버드·프린스턴·MIT·펜실베이니아 등 동시 합격, JP모건에서 시작해 현재 몸담은 브라운 브라더스 해리먼까지 27년간 월가에서 활약 중인 중권 애널리스트, 시각장애인으로는 세계 최초로 획득한 ‘금융 분야 최종 자격증’ CFA(공인재무분석사)….

“혼란을 정돈하는 법을 클래시컬 피아노 음악에서 배운 것 같습니다. 클래식 음악은 무질서에서 질서를 자아내는 면이 있으니까요. 그리고 심리학에서도 배운 건 많죠. 저의 성격을 제대로 알아서 부족함을 만회하는 데 초점을 둘 수 있고 저와 매우 다른 주위 분들을 이해할 때 도움이 되는 것 같거든요. 그리고 심리학 중에도 심리생물학에서 배운 것들이 제약회사 분석에 도움이 됐습니다.”

어려서부터 연주해온 피아노, 하버드대학에서 공부한 심리학, MIT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경영학·조직학, 한 사람도 없는 ‘시각장애인 월가 애널리스트’가 되기로 한 결심 등 그의 다양한 도전과 행보는 그의 애널리스트 활동과 견고한 삶을 위한 선택에 밑거름이 돼주곤 한다. 

“저는 주식이 아닌 회사채를 분석해 매입과 매각을 결정하는 일을 해요. 회사채 분석에서는 얼마나 탄탄하고 견고한지, 금리 상승 등 여러 경제적 상황에서 얼마나 견뎌낼 수 있는지 등 기업의 모든 것을 보죠. 제일 먼저 추구하는 것이 이 기업이 얼마나 견고한지예요. 지난해 시작된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그 견고함은 더구나 중요해졌어요. 견고한 기업이란 외부적 쇼크가 왔을 때 견뎌낼 수 있는 기업을 말하죠. 사는 것도 그래요. 여러 가지 상상하지 못했던 일들이 일어나잖아요. 그럴 때 어떻게 받아들이고 견뎌내는지가 중요하죠.”

 


◇견고한 삶…관점과 선택의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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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순규 애널리스트(사진제공=민음사)

 

“저는 시각장애인이지만 깜깜하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9살에 시력을 잃고 빛과 색을 볼 수는 없지만 상상해서 머릿속에 그림이 그려지기는 하거든요. 색이라는 건 감정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아요. 사람들의 목소리에도 빛깔들이 있다고 저는 느끼거든요.”

 

첫 책 ‘눈 감으면 보이는 것들’ 이후 6년만에 펴낸 에세이 ‘어둠 속에서도 빛나는 것들’에서의 ‘어둠’ 역시 그렇다. 신순규 작가는 “에세이 제목 ‘어둠 속에서 빛나는 것들’의 ‘어둠’은 시각장애인이어서 보이지 않는 것을 뜻하는 게 아니다”라고 밝혔다.

“제가 느끼는 어둠은 모든 사람들이 경험하는 혼란스러움, 어떻게 해쳐나가야할지 모를 것 같은 현재의 세상, 인생의 도전 등을 말해요. ‘빛나는 것들’은 견고한 삶의 가치들이죠. 견고하게 살아가기 위해 도움이 되는 것들, 조심해야할 것들을 33개의 키워드로 써내려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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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순규 애널리스트 에세이집 ‘어둠 속에서 빛나는 것들’(사진제공=민음사)

이어 “대한민국은 제 모국이고 어쩔 수 없어서 두고 떠나온 첫사랑 같다”고 표현한 신순규 작가는 그런 대한민국에서 들려오는 “갑질 사건, 아이들을 해치는 사건, 극단적 선택을 하는 사람들 등이 안타깝다”고 털어놓았다.


“현재를 사는 우리가 많이 연약해져간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런 것들에 대처하는 방법이 견고하게 살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견고함은 정신력으로 강행하고 견뎌내야만 하는 것만이 아니에요. 꾸준해야하고 상황이 언제나 변할 수 있으니 유연성있게 살아야 하는 등 종합적인 것들이죠. 견고함을 선택한다는 건 말이 훨씬 쉽고 실천이 어려운 것들이에요. 견고함, 연약함 등에 관계된 단어들은 추상적이거든요. 결국 선택을 해야 하고 그 주체는 스스로죠.”

그리곤 “하루에 한번 꼭 운동을 하겠다는 선택이 아니다”라며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기까지는 ‘시랑’이라는 감정이 큰 몫을 차지한다. 하지만 결혼생활에서는 ‘내가 생각했던 사람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언젠간 들게 된다. 이럴 때 사랑을 계속 유지하는 건 감정 보다는 선택”이라고 예를 들었다.

“견고한 삶의 가치들을 선택하고 추구하다 보면 힘든 상황들이 분명 와요. 그렇게 나를 연약하게 만드는 것을 거부하는 삶 역시 말처럼 쉽지는 않아요. 보통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고 하죠. 대게는 맞아요. 하지만 꼭 맞는 것도 아니에요. 사람은 변하지 않는 게 대부분이지만 분명, 획기적이진 않더라도 변하긴 해요. 어디에 무게를 두느냐의 차이죠.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에 무게를 두기 보다는 ‘사람은 변한다’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변할 수 있다’ 생각하시면서 견고한 삶을 선택하고 연약한 삶을 거부하면 희망이 있을 거예요.”

그가 뮤지컬 ‘지붕위의 바이올린’을 좋아하는 이유도 그래서다. 신 작가는 “음악도, 메시지도 좋은 뮤지컬이지만 제 소신과 맞닿은 작품”이라고 털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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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순규 애널리스트(사진제공=민음사)

 

“세상은 불공편한 곳이에요. 그런 세상을 살아가야할 때 공평을 주장하는 건 좋지만 공평하지 않으니 살만한 세상이 아니라는 생각은 너무 극단적인 것 같아요. 분명 불공평한 세상에서 우리가 할 일은 공평을 주장하는 동시에 내가 할 수 있는 한에서 불공평을 조금이라도 줄이는 것이 아닐까 싶어요.”

그리곤 그가 이사장으로 몸 담은 야나(YANA)를 예로 들었다. 야나는 미국 유학 프로그램 등을 통해 한국 보육원에서 자란 아이들을 돕는 프로그램이다. 이는 그의 소신인 “불공평한 세상을 조금이라도 줄이면서 살자”의 실천이기도 하다. 

“저는 한국에도 부모님과 형제가 있고 미국에도 가족이 있어요. 한국에서 보육원에 사는 아이는 2만 7000명, 매년 4000명이 맡겨진다고 들었어요. 너무 불공평하죠. 저는 가족이 한국과 미국, 두 나라에 있는데 보육원 아이들은 없어요.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지인들과 힘을 모아 그 불공평을 조금이라도 줄여보는 거예요. 아이들에게 ‘결코 혼자가 아냐’라는 메시지를 현실적인 방법으로 전하는 일이죠. 부도덕한 일이거나 범죄만 아니라면 이 아이들을 위해 모든 일을 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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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순규 애널리스트(사진제공=민음사)

◇동·서학 개미들에 대한 염려 그리고 청년들에게

 

“저는 투자와 투기, 도박을 구분해서 생각해요. 도박은 돈을 써서 내 것으로 만들려는 자산이 얼마인지 근거가 없어요. 적당한 액수가 없는 비트코인은 그래서 도박이죠. 투기는 무언가에 일정 기간 돈을 묶어두고 오른 후에 팔아요. 오르지 않으면 낭패죠. 주식과 부동산이 그래요. 투자는 장기적으로 저축하는 방식이에요.” 

 

신순규 작가는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불어 닥친 주식, 가상화폐 투자 열풍을 “매우 염려스럽게 보고 있다”며 “개인적으로 정의내린 ‘투자’란 장기적으로 돈을 묶어두고 다달이 혹은 1년에 한번 등 비슷한 방법으로 저축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염려되는 이유는 너무 힘들어서 그런 것들에 희망은 거는 것 같아서예요. 단기적인 이윤에 스스로의 희망을 거는 건 매우 위험하거든요. 주식시장은 등락을 반복해요. 그것에 자신의 모든 걸 걸거나 희망 혹은 삶의 의미를 찾으려는 건 정말 위험해 보여요. 한국 뿐 아니라 미국도 마찬가지예요.”

 

그는 “염려스럽고” “위험해 보이는” 동·서학 개미 열풍에 대한 우려와 더불어 “학교를 다니든, 직장을 다니든, 아파트를 사는 일이든 너무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한국 청년들에게 메시지를 전하기도 했다.

 

“너무 통계나 다른 사람들이 하는 것을 따라가지 말고 자신이 원하는 것, 할 수 있는 것을 생각하고 그에 대한 답을 창의력 있게 찾으면서 살아가면 좋을 것 같아요. 보육원 출신이거나 출신 학교가 좋지않거나 가족이 부유하지 못하거나 백이 없는 등 사회가 원하는 배경이 없는 상황을 어떻게 창의력 있게 헤쳐 나갈 수 있을까에 집중하면 어떨까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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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순규 애널리스트(사진제공=민음사)

 

그리곤 시한부를 선고받고 절망 속에서 지내다 그의 첫 번째 책 ‘눈 감으면 보이는 것들’을 읽고 “힘을 얻어 다시 살기로 결정했다”고 연락해온 독자의 예를 들었다. 신순규 작가는 “그 분이 병원을 나와 어떻게 살까 고민하다가 청년들에게 롤모델이 될 만한 사람을 만나 도움을 받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어떤 분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SNS로 연락을 했지만 답을 받지 못했다”고 말문을 열었다. 

 

“결국 부산부터 서울까지 걸어가는 ‘격한 선택’을 했어요. 걸으면서 만나고 싶은 분의 페이스북 담벼락에 매일매일 메시지를 올렸대요. ‘OO까지 왔습니다. 서울 가면 꼭 뵐게요’라고. 그런 사람을 어떻게 안만나줘요. 그렇게 만나 인연을 맺어 도움을 받고 자신이 갈 길을 스스로 열어가셨죠. 꼭 이렇게 하라는 게 아니지만 그 분의 예를 생각하면 할 수 있는 일이 많은 것 같아요. 세상은 불공평하고 (불공평은) 있어서는 안될 일인 것도 맞아요. 하지만 ‘불공평한 세상’에 초점을 두기 보다는 희망을 가지고 밝은 앞날을 꿈꿀 수 있는 하루하루를 살아가시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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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순규 애널리스트(사진제공=민음사)

◇코로나19, 그 긴 터널 끝 빛

 

“코로나19 이후 제 삶은 아주 단순해졌어요. 일어나서 컴퓨터를 켜고 회사 시스템에 연결해 일을 하죠. 3시간 출퇴근 시간이 없어졌고 가족들과 함께 생활하니 좋은 면도 많아요. 하지만 저도 몰랐던 답답함을 느끼고 있는 것도 같아요.”

코로나19 팬데믹 장기화에 대해 이렇게 전한 신순규 작가는 얼마 전 꿨던 꿈에 대해 전했다. 그는 “기차를 타고 출근하는 꿈이었는데 깨서 했던 저의 말이 스스로도 인상적이었다”고 털어놓았다.

“꿈에서 깨 한 말이 ‘아! 꿈이었어’였어요. 너무 실망한 거예요. 답답했던 것 같아요. 시각장애인인 제가 케인(시각장애인용 지팡이)이나 동행없이 자유롭게 혼자 다닐 수 있는 건 출퇴근길뿐이었거든요. 그걸 오래 못하니 심리적 압박이 있었던 것 같아요.”

자유로운 외출의 어려움, 감염시 지병으로 인한 위험 부담 등 코로나19로 스스로도 인지하지 못했던 심리적 압박을 깨달았다는 신순규 작가는 한국 국민들에 대한 놀라움과 위안의 말을 전하기도 했다.

“한국에서, 한국인들에게서 항상 놀라운 것들을 보곤 하는데 방역도 그 중 하나예요. 그래도 답답하실 거고 이 상황이 언제 끝나나 싶으실 거예요. 이 역시 관점이 중요해요. 이 상황이 오래 가진 않을 거예요. 결국 코로나 상황은 독감주사를 맞듯 매년 업데이트되는 백신접종을 반복하며 견뎌야할 거예요. 늦어도 2023년까지는 코로나19를 독감처럼 생각하게 될 거라고 확신합니다. 지금은 터널 끝에 빛이 보일까 말까하는 상황같아요. (코로나19 팬데믹에서) 나라를 지켜주는 분들이 국민들인 것 같아서 너무 자랑스럽습니다.”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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