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사람이 보여주는 호흡은 ‘부암동 복수자들’에 몰입하게 만든 일등공신이다. 대체배우가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명연기를 보여준 이요원, 라미란, 명세빈.(사진제공=tvN) |
총 12부작으로 완성된 ‘부암동 복수자들’의 공식 포스터. (사진제공=tvN) |
영화의 한 장면처럼 킬러를 고용하고 돈으로 무마하는 복수가 아니다. 한번쯤 ‘해볼만하고, 해봤으면’하는 소소한 응징이다.
남편이 밖에서 낳아 데려온 수겸이 처음부터 예뻤던 것은 아니다. 정혜는 오랜 시간 임신을 시도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손아래 동서가 내리 딸을 셋이나 낳았지만 시아버지는 언제나 대를 이을 아들만을 원했다. 후계자 구도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려는 남편의 뻔뻔함에 복수를 결심한 그는 되려 수겸을 통해 자신이 재벌혼외자로 겪었던 설움을 떠올린다.
“태어난 게 죄는 아니다”는 정혜가 오랫동안 식구들에게 하고 싶었던 말이었고 출생의 비밀을 알기 전까지 자유롭게 살아온 수겸이를 지키고자 마음 먹는다. 그런 정혜를 큰 언니처럼 챙기는 건 도희의 몫이다. 라미란이 보여주는 생활형 연기는 단연코 최고지만 ‘부암동 복수자들’에서의 변주는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도희는 “비린내 난다”고 친구들에게 왕따를 당하는 아들의 아픔을 껴안고 기꺼이 무릎을 꿇는 인물이다.
그에게 자존심이란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한 도구일 뿐 비굴함은 1도 없다. 학교 선생이 된 딸이 첫 부임한 학교에서 교장에게 성추행을 당했을 때의 복수는 변비약을 타고 의자에 접착제를 붙이는 정도였지만 그 분노를 표정으로 누르는 연기는 거의 아카데미 여우주연상감이다.
촬영중 비하인드 컷. 케이블임에도 방영 당시 6%가 넘는 시청률을 보이며 인기를 끌었다. (사진제공=tvN) |
좀 더 큰 복수를 원하는 두 사람과 달리 미숙은 중재자에 가깝다. 조용히 “그들과 똑같은 악행을 벌이는건 반대”라며 꼿꼿함을 유지한다. 어리숙한 세 사람이 만화책으로 복수의 기본 플롯을 공부하는, 시청자들에게 웃음을 안긴 이 신에서도 유일하게 눕지(?) 않고 속독을 이어나가는 인물이기도 하다.
근면하고 소박했던 평교사 남편이 교육감 후보로 나서며 폭주하는 걸 알면서도 티 내지 않고 조용히 내조를 이어온 건 낮은 자존감이 한몫 했다. 아이들에게는 흔한 소소한 실수에도 바로 응징을 당했던 고아원에서의 버릇이 평생을 간 것.
유학간 아들이 비운의 사고를 당해 세상을 뜬 것도 자신의 탓으로 돌리며 무조건 남편에게 순종하지만 마지막에는 가장 크게 웃는 인물이기도 하다. 술만 마시면 손찌검을 해대는 남편에게 보약으로 속여 기력이 떨어지는 한약을 먹이기도 하고 결국에는 ‘빅엿’을 안기며 폭력의 고리를 끊고 딸을 지켜낸다.
아이돌로 활동하다 사실상 첫 연기 데뷔를 한 ‘부암동 복수자들’의 이준영. 이후 넷플릭스의 ‘모럴렌스’로 이어지는 천연덕스러운 연기력을 이때부터 발산한다. (사진제공=tvN) |
갑자기 나타난 친부모가 자신을 이용만 하려는 작태에 화가 나 복수를 결심한 수겸도 결국엔 진짜 어른으로 성장한다. 그것은 조건 없이 풍족한 조부모의 사랑을 받고 자랐기 때문이었다. 당당하고 구김살 없는 그의 행동은 복수클럽의 다른 멤버인 정혜, 미숙, 도희를 은연 중에 변화시킨다.
사회적 계층을 넘어 가성비 좋은 복수를 펼치는 현실 응징극의 한 축은 조연이라고 하기엔 주연급 활약을 펼친 배우들이 맡았다. 수겸의 생모이자 철부지 내연녀 역할의 수지(신동미)와 발음을 조심해야 하는 주길연(정영주)의 갑질은 곳곳에서 웃픈 현실을 반영한다. 자식을 앞세워 이들이 보여주는 민폐의 면면은 사실 뉴스면에서 자주 만났던 ‘꼴값’에 가깝다.
여기에 정혜의 이복언니 정윤(정애연)이 보여주는 냉철한 승계싸움은 학교, 가정폭력, 성추행 등 사회에서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문제에 대한 깊은 공감과 더불어 차가운 현실을 각인시킨다. 일각에서는 말한다. 최고의 복수는 그들보다 잘 사는 것이라고. ‘부암동 복수자들’은 그런 의미에서 최고의 복수를 성공했다. 그나 저나 시즌2는 언제쯤? 채널 Seezn, 네이버 시리즈온, 티빙
이희승 기자 press512@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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