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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먼저 간 그들은 '여왕'을 반길 것인가?

[#OTT] 영국 왕실 이야기 다룬 영화·드라마
전세계의 존경 받은 엘리자베스2세 여왕 서거
평탄하지 않은 가정사 영화와 드라마로 만들어져

입력 2022-09-21 18:30
신문게재 2022-09-22 11면

BRITAIN-ROYALS/QUEEN
1926년 조지 6세의 장녀로 태어난 여왕은 1952년 국왕에 즉위해 영국 최장이자 세계에서 두 번째로 긴 70년 재위 기록을 세우고 지난 8일 서거했다.(연합)

 

70년 간 ‘해가 지지 않는 나라’의 여왕으로 살았다. 하지만 그 전에 한 남자의 아내로 3명의 아들과 딸 하나를 두고 평생을 함께 했다. 말년에는 8명의 손주와 인형같은 증손주 12명의 재롱까지 보고 눈을 감았다. 고(故)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의 장례식이 19일(현지시간) 영국 런던 웨스터민스터 사원에서 엄수됐다. 

장례식은  국장(國葬)으로 진행됐고 수십만명의 시민들이 역사적 순간에 참여하기 위해 런던 중심부로 몰려들었다. 장례식 마지막 의식으로 여왕의 통치를 상징했던 왕관과 왕홀 등이 관에서 내려지고 지팡이를 부러뜨려 관에 올림으로써 왕국에 대한 여왕의 복무가 끝났음을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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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렌 미렌은 이 영화로 제 79회 아카데미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엘리자베스 여왕을 다룬 가장 유명한 TV 시리즈는 ‘넷플릭스’의 ‘더 크라운’이다.(사진제공=SeeZn)

이로써 11일간의 모든 장례 절차를 끝낸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먼저 간 남편 필립공 곁에 안치되며 역사의 인물로 남게 됐다.

 

영국의 정신적 지주이자 상징이었던 고인은 지난 70년간 영국을 통치해온 고인은 비운의 사고로 먼저 세상을 등진 며느리가 아니었다면 영화 ‘더 퀸’의 대사처럼 “조용히, 위엄있게” 살았을 인물이다.

전세게 언론은 수줍고 어린 신부였던 다이애나 왕세자비와 여왕의 고부갈등을 언제나 대서특필했다. 

스포트라이트는 언제나 며느리의 몫이었다. 아들인 찰스의 바람기와 예민함을 묵인하고 왕실의 법도를 따라 순종적인 여성상을 강요한 걸로 비춰진다. 

다이애나의 이야기는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 다큐멘터리로 꾸준히 만들어지지만 그에 비해 엘리자베스 2세의 이야기는 다큐멘터리가 대부분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2007년 영화 ‘더 퀸’은 숨겨진 여왕의 내면을 그린 첫 상업영화에 가깝다. ‘영국의 김혜자’로 불리는 헬렌 미렌이 주연을 맡은 이 작품은 여성이기 전에 여왕으로 살아야 했던 한 인간의 삶을 담담하게 아우른다. 이후 넷플릭스가 ‘더 퀸’을 통해 엘리자베스 2세의 전기 드라마를 실감나게 그리고 있지만 역사가 스포일러랄까. 

공주였지만 왕실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20대 초반 군복무를 하고 긴 시간 남편과 편지로 연애를 한 러브스토리, 블레어 총리와의 심리전 등 재미는 상당하다. 하지만 시즌 6까지 예정돼 있다고 하니 섣부른 정주행은 말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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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더 퀸’.(사진제공=SeeZn)

 

한편으로는 적어도 엔터테인먼트 산업에서 역대 최장기 재위를 한 엘리자베스 2세의 눈치를 상당히 본 것 같다. 영국 왕실의 가계도는 온갖 스캔들과 치정, 비극 등으로 점철됐는데 정작 여왕 본인 보다는 주변 인물에 집중하는 모양새다.

 

지난 2011년 개봉한 ‘킹스 스피치’는 당초 왕위 승계자가 아닌 평범한 왕족이었던 여왕의 친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다. 큰아버지인 에드워드 8세가 미국 여성과의 결혼을 위해 왕위를 포기하면서 아버지인 조지 6세가 즉위하는 이변이 발생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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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3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남우주연상을 휩쓴 영화 ‘킹스스피치’(사진제공=티빙)

‘사랑받는 아폴로’로 불리며 대중적 인기가 높았던 큰아버지는 2번의 이혼 경력으로 왕실로부터 인정받지 못한 미국 평민 출신 월리스 심프슨과의 사랑을 택하며 10개월 22일 만에 왕위를 동생에게 물려주었다. 

영화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아버지인 조지 6세의 심한 말더듬 증세를 극복한 과정을 다룬다. 극 중 콜린 퍼스는 자신의 말 더듬는 버릇 때문에 괴로워하지만 국민들 앞에 서기 위해서 자신의 콤플렉스를 당당하게 이겨낸 실존 인물을 탁월하게 연기한다. 

2차 세계대전때 영국을 이끌었던 조지 6세는 타고난 소심함으로 대중 앞에 서는 걸 괴로워했지만 괴짜 언어치료사 라이오넬 로그(제프리 러쉬)에게 도움을 받아 완전히 달라진 모습으로 국민 앞에 선다. 이후 감동적인 연설로 영국인들의 마음을 단합하는 데 성공한다.

스펜서
영화 ‘스펜서’.(사진제공=왓챠)

 

이후 왕위 계승 서열 1위로 올라선 여왕은 25살이던 1952년 2월 6일 아버지가 서거하며 국왕 자리에 올랐다. 여왕은 각본가 데이빗 세이들러에게 “당시 기억들이 여전히 가슴 아프다. 내가 살아 있는 동안은 영화화하지 말았으면 한다”고 의견을 전했지만 ‘킹스 스피치’를 보고는 흡족해 했다는 후문이다.

 

호주와 뉴질랜드를 비롯해 영연방 국가는 총 53개국으로 여왕은 가장 많은 나라에서 그를 ‘왕’으로 모셨지만 자녀들의 삶은 평탄하지 않았다. 장남은 불륜으로 결혼 생활이 파탄이 났고 나머지 자식들도 이혼으로 결혼생활에 종지부를 찍었다. 첫째 며느리인 다이애나는 여왕이 처음부터 점찍었던 조신한 신부감이었던 걸로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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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나고 자란 크리스린 스튜어트는 다이애나 왕세자비와 놀라운 싱크로율을 보여준다. (사진제공=왓챠)

아들보다 연상에 드셌던 카밀라와 달리 순진하고 왕족의 피가 흘렀던 다이애나가 자신과 같을 거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다이애나에게는 엘리자베스 2세처럼 든든한 남편 보다는 ‘남의 편’만 있었다는 걸 간과했다. 

 

엄마가 된 며느리는 자신의 불행을 물려주기 싫었기에 왕자들에게 평범한 삶을 더 경험하길 원했고 결국 왕실의 미운털이 박힌채 비극적인 죽음을 맞는다.

 

올해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영화 ‘스펜서’는 그 불행의 정점을 스크린에 부활시켰다. 거식증에 시달리며 가족들의 무관심으로 죽어가는 다이애나비의 생전 모습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엘리자베스 2세의 장면은 약 5초 정도. 생전 며느리보다 더 예뻐했던 코기들과 함께 즐겁게 산책하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계속된 남편의 바람, 그 사실을 알면서도 묵인하는 시어머니에게 최대한 예의있게 도움을 요청하지만 여왕은 그저 별장의 풍경을 바라볼 뿐이다. 같은 여성으로서의 연대는 그 어떤 작품에서도 그려지지 않았지만 하늘에서는 화해했기를.

이희승 기자 press512@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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