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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원조교제, 처녀성, 흥정, 장기밀매… 여기에 지진이 겹치면?

[#OTT] 14분 단편영화 '몸값', 티빙 통해 6부작 드라마로 재해석

입력 2022-11-09 18:30
신문게재 2022-11-10 11면

몸값 진선규
6화 내내 붉은색 팬티바람으로 화면을 활보하는 진선규. 초반 3일만 대기시간이 힘들었을 뿐, 나중에는 실제 옷을 입은것처럼 편했다는 후일담을 남겼다. (사진제공=티빙)

 

서울 근교의 한적한 모텔. 한 여고생이 따분하다는 듯이 담배를 피고 있다. 곧 초인종이 울리고 말끔히 차려 입은 한 남자가 멋쩍게 들어온다. 그는 “위치가 외져서인지 돈을 인출하려고 근처를 한참 돌았다”며 눈으로는 빠르게 교복치마 밑으로 드러난 다리를 훑고있다. 영화 ‘몸값’의 오프닝은 평이하다. 하지만 원조교제를 넘어 처녀를 원하는 남자 형수와 대가로 현금 100만원을 원하는 여고생 주영이 화대(?)를 놓고 흥정하는 모습은 실소가 절로 나온다. 

14분 단편으로 이뤄진 ‘몸값’은 대한민국 특유의 성별 프레임과 욕구 해소를 성의 즐거움으로 전락시킨 성문화에 일침을 놓는데 그 정점은 형수가 찍는다. 그는 “이왕이면 피가 나왔으면 한다”고 말하고 주영은 침울하게 중학교 시절 담임에게 당한 성추행을 털어놓는다. 육체적인 관계를 맺지는 않았지만 손가락으로 자신의 소중한 곳이 유린당해 우울증과 공항장애를 겪었다는 것.

형수는 처녀가 아니란 이유로 바로 가격을 깎고 순진하기 그지없었던 주영은 “내가 ‘아다’가 아니어서 그러냐?”며 본색을 드러낸다. 비속어를 쓰는 여고생의 모습에 남자도 돌변한다. 100만원의 가격은 곧 3만원으로 수직하강하기까지 형수는 “내가 초상집을 핑계로 이곳에 왔다” “너 어느고등학교 다녀?” 등 훈계와 찌질함으로 점철된다. 결국 주영은 어이없어하면서도 남자의 요구를 들어주는데 이제부터가 반전 시작이다.

영화 몸값
14분의 단편으로 완성된 영화 ‘몸값’은 여고생의 첫 경험을 사려는 남자를 통해 장기밀매의 어두운 세계를 까발리는 동시에 응징과 복수에 대한 새로운 화두를 제시한다(사진제공=WATCHA)

 

단 한번의 멈춤 없이 원 테이크(끊어서 찍지 않고 한 번에 촬영하는 기법)로 촬영된 화면은 주영의 휴대폰으로 걸려온 또다른 전화로 이어진다. 통화 속 남자 역시 처녀가 맞는지와 가격을 확인하고 결국 만날 장소를 정한다. 순진한 관객들이라면 ‘몸값’이 여고생 인척 연기하는 한 여자의 밀당으로 봤을 것이다. 

하지만 주영이 형수가 샤워하고 있는 방을 나와 몰래 향한 곳은 옥상이다. 그곳엔 자신과 같은 수많은 여고생들이 각자의 휴대폰으로 원조교제를 원하는 수컷들을 응대하고 있다. 마담으로 보이는 한 여자에게 “밤 8시 30분에 예약”이라고 말하자 “너 이번 달도 매출 1위”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하루에 두탕을 뛰는 주영을 부러워하는 눈길도 잠시 주영은 곧 중개자의 모습으로 룸으로 돌아온다.

몸값 장률
드라마 ‘몸값’에서 효자 캐릭터를 맡은 장률. 후반부로 갈수록 그가 보여주는 이중성과 생존욕구가 유난히 와닿는 이유는 보편성에 대한 그의 출중한 연기력 때문이 아닐까. (사진제공=티빙)

 

화대를 흥정하고 호기롭게 씻으러 들어간 형수는 눈이 가려진 채 온 몸이 포박당해 장기축출전. 룸에 모여든 사람들은 합법적으로는 긴 대기자로 인해 장기를 구할 수 없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안구와 신장, 피부와 혈액까지 형수의 ‘몸값’을 흥정하기 시작한다. 여고생의 몸을 사려고 했던 한 남자의 몸이 공중분해되는 순간이다. 

신예 이충현 감독은 ‘몸값’이 공개된 제20회 부산국제영화제 이후 연출력과 탄탄한 구성, 신선한 반전으로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영화인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은 ‘몸값’은 시간이 흘러 2019년 미쟝센 단편영화제에 재초청될 정도로 ‘물건’으로 불렸던 작품이다. 실제 배우들의 이름을 영화 속에 녹여냈던 신입 연출자의 패기는 충무로의 전설로 회자되던 중 티빙의 손에서 6부작 드라마로 재탄생됐다.

드라마 ‘몸값’은 그 이후의 이야기를 기대했던 사람들에게는 ‘손꼽아 기다렸던 수작’일 것이다. 원작의 주인공인 박형수와 이주영은 자신이 연기했던 캐릭터를 진선규와 전종서에게 물려주고 드라마의 ‘키 맨’으로 등장해 반가움을 더한다. 조연으로서 드라마로 확장된 ‘몸값’에 출연하며 배우로서의 존재감을 다시금 불태우는 모양새다. 각각 기도녀와 부사장으로 나오는데 비중은 작지만 ‘큰 한방’으로 제 몫을 단단히 한다. 강길우, 박진이 연기하는 시체처리반의 광기 역시 강렬하기 그지없다. 

몸값 형수
원작에서는 주인공을 맡았지만 드라마에서는 ‘희숙이 삼촌’으로 불리는 악랄한 부사장을 연기한 박형수. 이주영과 함께 드라마에서도 대체불가의 매력을 선사한다. (사진제공=티빙)

 

재난 속에서 드러나는 사람들의 본성은 추악하기 그지없다. 사람의 몸을 돈으로 환산하고 선이자 35%를 아무렇지 않게 뜯으며 담보로 대금지불이 어려운 구매자들의 신체포기각서를 받는 현실은 차라리 먼 미래의 이야기처럼 들린다. 드라마는 지진으로 인해 건물에 갇혀버린 사람들은 각자의 공간과 사연으로 사투를 벌이는 지옥을 선사한다. 

원작의 설정은 극 초반에만 등장할 뿐 전혀 다른 스토리전개로 관객들을 몰아붙인다. 속물이던 형수는 사실 몇 년간 성매매일당을 일망타진하러 노력했던 형사였고 주영은 장기밀매집단에서 결코 빠져 나올 수 없는 약점을 잡힌 인물로 그려진다. 반전부자들의 신장이식 독점에 분개해 이 곳을 찾은 극렬(장률) 역시 겉으로는 아버지의 수술을 위해 이곳을 찾은 효자지만 결국 폭력과 생존 본능 사이에서 인간성을 상실한다. 

드라마로 완성된 ‘몸값’에도 반전의 묘미는 상당하다는 뜻이다. 지진 직후의 건물 내부를 시각적으로 극대화한 미장센과 디테일한 연출도 부족함이 없다. 지난달 28일 티빙에서 1화부터 3화, 지난 4일 4화부터 6화가 공개된 ‘몸값’은 입소문을 타고 OTT 흥행 1위에 오른 상태다.

이희승 기자 press512@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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