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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14년 전 그 바다, 아픔 여전… 전우들 명예 끝까지 지켜야죠"

[인터뷰] 최원일 前 천안함 함장·326호국보훈연구소장

입력 2024-06-11 07:00
신문게재 2024-06-11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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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일 326호국보훈연구소장.(사진제공=326호국보훈연구소)

올해로 천안함 피격사건 14주기를 맞았다. 이후 대통령이 네 번이나 바뀌었지만 달라진 것은 많지 않다. 온갖 음모론과 루머에 생존 장병들은 여전히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고, 유가족 9명이 애통해 하다 세상을 떠났다. 당시 함장이었던 최원일 소장은 천안함 사건의 진실을 알리려 ‘326 호국보훈연구소’를 만들었다. 그는 “지켜려던 국민들로부터 조롱과 비난을 받고 전우들 명예가 실추되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면서, 다시는 그런 일이 되풀이되지 않게 법령과 체계를 갖춰 예방해야 할 것이라고 힘 주어 말했다. 최원일 소장을 만나 천안함 전후의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 천안함 피격사건이 일어난 지 14년이 지났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음모론과 루머는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제게는 ‘몇 주년’ 이런 말은 의미가 없습니다. 여전히 그 날 바다에서의 기억뿐입니다. 아직도 생생합니다. 전사한 전우들의 목소리와 숨결, 그리고 추운 밤 바다에서 서로를 구하려 울부짖던 생존 전우들이 눈에 선합니다. 저는 3년여 전에 전역했습니다. 어떻게든 새로운 삶을 살아보려 했지만 잘 안 됐습니다. 바다와 나라를 지키다 돌아왔는데 비난과 조롱의 대상이 됐습니다. 천안함에 대해 잘못 알려진 내용이 사실처럼 돼 버렸습니다. 제 삶은 잠시 접어두고 모든 걸 바로잡는 일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2년 전 법인을 설립해 공식 활동을 시작했고, 올해는 체계적이고 이론적인 전문 지식 습득과 발전을 위해 정치전문대학원 외교안보학 박사과정에서 늦게나마 학업도 이어가고 있습니다.”


- 지난해 국가보훈부 산하 사단법인 ‘326호국보훈연구소’를 설립했습니다. 설립 배경과 취지를 설명해 주십시오.

“2021년 2월 말에 전역해 보니 천안함을 두고 정치권은 정쟁만 할 뿐, 누구도 천안함의 진실에는 관심이 없고 대응과 조치도 하지 않았습니다. 저라도 나서 전우들을 지켜야 한다는 심정으로 3월 26일 그 바다의 104명 전우를 위해 연구소를 설립했습니다.”


- 연구소의 주요 사업에는 어떤 것 들이 있습니까.

“천안함 생존 장병 예우 등 보훈 업무 지원과 천안함 피격사건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목적으로 설립했습니다. 앞으로는 미래 안보의 주역인 학생과 청년의 안보의식 고취와 천안함 피격사건 바로 알리기 활동을 통해 대한민국 안보와 보훈정책을 뒷받침하는 다양한 활동을 펼칠 생각입니다. 지난 6일 현충일에는 뜻 깊은 행사도 가졌습니다. ‘나라를 지키는 늠름한 군인을 표현해 주세요’ 라는 주제로 지난 3, 4월에 개최한 전국 어린이그림대회 시상식이 대전현충원 보훈미래관에서 열렸습니다. 어린이들이 부모님 손을 잡고 나라를 위해 희생하신 분들이 묻혀계신 현장에 와서 애국을 직접 실천하며 좋아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이런 사업들이 미래를 이끌 안보와 보훈이라 생각하며 더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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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일 326호국보훈연구소장이 '함장의 바다, 그날 이야기'라는 주제로 강연을 진행하고 있다.(사진제공=326호국보훈연구소)

 

- 안보강연을 다니시는 것으로 압니다. 주로 어떤 말씀을 하시는지요.

“잘못 알려진 천안함의 진실에 관해 주로 이야기 합니다. 그에 앞서 천안함 피격사건 전후 배경과 NLL(북방한계선)과 서해 안보, 국지도발사 등을 정리하고, 천안함 이후 생겨난 각종 음모론과 진실도 들려 드립니다. 대부분 잘 몰랐던 내용이라, 다 듣고 난 후 찾아와 ‘잘못 알고 있었다’고 사과하는 분도 계십니다.”



- 천안함 사태는 북한군의 기습 어뢰공격에 의한 것임에도 국내에선 정치도구로 이용당해 많은 분들께 상처가 됐습니다. 생존 장병과 유족을 비롯해 누구보다도 소장님의 상처가 컸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소중한 전우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명백하게 북한 소행으로 판명이 났음에도 국론은 분열됐고 아직도 정쟁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자유와 평화를 바라는데 천안함 사건이 북한 소행이라면 한반도 평화가 위태롭다’며 음모론으로 공격하는 세력이 있습니다. 튼튼한 안보는 새로운 천안함처럼 강력한 무기체계를 바탕으로 한 ‘힘’으로 지킬 수 있습니다. 적에 대한 명확한 인식, 도발 시 응징한다는 단합된 의지가 중요합니다. 저희가 지켜온 국가의 국민으로부터, 각종 매체의 악성 댓글로 조롱과 비난을 받을 때, 그리고 온갖 음모론으로 전사한 46명의 전우뿐 아니라 생존 전우의 명예가 실추되는 부분이 가장 힘들었습니다.”


- 생존 장병들에 대한 예우가 가장 앞서지 못했습니다. 지금 천안함 생존 장병들이 가장 바라는 것은 무엇인지요.

“지금도 ‘너는 왜 안 죽었니’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승조원들은 경계 실패이고, 저는 ‘부하 다 죽인 함장’이라며 온갖 악플이 난무합니다. 저희는 금전적 보상, 예우나 칭송은 바라지도 않습니다. 최소한 우리가 지켜온 국민에게 조롱과 비난, 그리고 욕먹지 않고 살았으면 하는 심정입니다.”

 


- 군 관련 사고가 있을 때마다 부모들 마음은 불안하기만 합니다. 이런 사고가 발생했을 때 희생 전우에 대한 예우가 중요해 보입니다.

“사람 목숨의 가치는 누구 하나 값으로 매길 수 없습니다. 계급의 고하, 성별, 신분으로 따질 수 없이 모두 고귀하고 소중합니다. 이런 귀중한 생명을 잃지 않으려면 철저하게 법령과 체계를 갖춰 예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고를 사건화해 정쟁화하기보다는 국민에게 명명백백하게 자초지종을 밝히고 재발하지 않도록 분석해 대책을 수립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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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326호국보훈연구소)

 

- 지금도 생존 장병들은 트라우마를 겪고 있을 것 같습니다. 어떤 치료를 받고, 어떤 노력을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초기에는 혼자만 살아 돌아왔다는 죄책감에 자신을 돌보지 않기도 했습니다. 치료에 전념하지 못하다가 부상 후유증을 겪은 전우들이 많습니다. 어느 새 PTSD(외상 후 스트레스장애)가 온 것입니다. 적기에 정신과 진료를 받아야 했지만, 군 생활하면서 정신과 진료를 받으면 ‘관심장병’으로 분류돼 여의치 못했습니다. 전역한 전우들은 정신과 진료기록이 없어 개인입증제도인 우리 보훈제도 하에서는 국가유공자 등록이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가장 먼저 전역한 전준영 전우 등이 생존 전우들을 찾아 다니며 진료를 권유하면서 차츰 진료를 받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전역 후 함께 활동하면서 분위기도 크게 변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다행히 PTSD를 인정하는 분위기로 많이 바뀌어 서서히 국가유공자로 지정되고 있습니다.”


- 천안함 피격 사건 당시 작전관으로 승함했던 박연수 중령이 신형 호위함 천안함의 함장으로 취임했습니다.

“천안함이 새롭게 태어나게 되어 정말 기쁩니다. 특히 당시 작전관이던 박연수 대위가 새로운 천안함장이 되어 더욱 감회가 새롭습니다. 새롭게 태어난 천안함이 ‘천안(天安)’이라는 이름 그대로, 하늘 아래 편안하게 이 나라 이 바다를 지켜주리라 믿습니다.”


- 후배 군인들에게 한 말씀 부탁 드립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하늘과 땅과 바다를 지키는 군인들의 노고에 감사 드립니다. 국가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시는 이분들이 자부심을 품고, 또 예우받을 수 있도록 저도 미력하나마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늘 건승하시기 바랍니다.”


- 천안함 피격사건이 역사에 어떻게 기억되길 바라십니까.

“우리 국민이 모두 이 평화로운 시대를 사는 것도 많은 분들의 희생의 토대 위에 이뤄진 것입니다. 14년도 훌쩍 지난 그날의 천안함에는 서해를 지키기 위해 목숨 바쳤고 헌신하는 분이 있었다는 사실만이라도 꼭 기억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금재 맘스커리어 대표 겸 브릿지경제 객원기자 ceo@momscare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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