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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인간이 365일 발정기인 까닭은? …'은폐된 배란'

[19금 칼럼]

입력 2015-10-30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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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상수 감독의 영화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를 봤다.



보고나서 조금 섭섭했다. 정재영이 저렇게 쉽게 물러서다니…. 원래 홍상수 영화 속 남자들은 눈앞에 있는 여자와 한번 자기 위해 온갖 궤변과 땡깡, 술주정을 부려 결국 목적을 달성하는 인간들 아니던가. 이 양반이 이제 나이가 들어 더 이상 거시기가 서지 않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30대 초반에 처음 홍상수 영화를 접하고 난 후 그의 영화를 간간이 보면서 든 느낌은 찝찝함과 허무함이었다. 마치 나이트클럽에서 이른바 ‘부킹’을 위해 주변의 온갖 여자들에게 집적거리다가 허탕치고 남자들끼리만 나와 담배를 나눠 피울 때의 느낌이랄까.

그럴 때면 늘 인간 수컷은 왜 이렇게 늘 발정난 짐승처럼 시도 때도 없이 이성과 섹스를 하지못해 안달을 하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곤 했다.

실제로 대부분의 짐승들은 별도의 발정기가 있어 발정기 이외에는 교미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일례로 원숭이 같은 영장류의 경우 암컷의 발정기가 대개 한달에 일주일 정도 지속되는데 발정기에 돌입하면 암컷은 수컷에게 적극적으로 접근해서 장난을 걸거나 자신의 음부를 벌려 보여주면서 광적으로 성행위에 빠져든다고 한다.

인간도 짐승들처럼 발정기가 따로 있다면 홍상수 영화 속 남자들처럼 눈앞에 있는 여자와 한번 자기 위해 시도 때도 없이 언변을 쏟아내고 자기과시를 하고 알코올의 힘을 빌리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을 것 아닌가. 발정기에만 거절의 위험없이 섹스를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망상을 하곤 했다.

그러나 과학자들은 하등동물과 인간을 구별 짓는 중요한 근거로 ‘사라진 발정기’를 꼽는다.

하등동물의 경우 암컷 생식기의 외음부 주변이 마치 물집처럼 팽창하면서 매혹적인 냄새와 색깔로 수컷에게 성적 신호를 보내는 상태를 발정이라 한다. 포유류의 암컷의 경우 대개 배란기에 발정의 절정에 이른다.

인간에게도 물론 배란기가 있다. 여성은 사춘기부터 폐경기까지 30여년간 수태가 가능한데 이 기간 동안 약 400회의 월경주기가 있으니 약 400번의 배란기가 있는 셈이다.

여자의 조상들에게는 물론 발정기가 있었다. 월경이 끝나고 며칠 지나면 발정기가 시작됐다. 배란을 하는 12일째부터 14일째에 이르는 시기에 발정의 절정에 이르렀다. 그런데 진화과정에서 발정기를 잃어버림에 따라 남자들은 배란기를 알 수 없게 됐다. 더욱 놀라운 것은 대다수 여자들 역시 공을 들이지 않으면 자신의 배란기를 거의 감지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물론 배란기가 되면 신체에 변화가 발생한다. 이를테면 배란기에는 체온이 급상승하고 월경시에 하강한다. 배란 직전에는 질에서 미끈미끈하고 무색투명한 점액이 나오는데, 배란 직후 갑자기 탁해지면서 며칠 동안 점착성이 있는 액체가 나온다. 난자가 난소에서 튀어나와 자궁으로 갈 때 복통을 느끼거나 약간의 출혈을 보이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매일 아침 체온을 재보거나, 매일 질에서 나오는 점액의 상태를 살펴보거나, 복통을 느끼거나 하지 않으면 배란기가 언제인지를 알아낼 방도가 없다. 생물학에서는 이를 일러 ‘은폐된 배란’(concealed ovulation)이라 한다.

그렇다면 인간은 어떻게 ‘배란을 은폐’하게 됐을까. 이 문제에 대해 과학은 아직 확실한 답을 찾지 못했다. 다만 다양한 가설이 존재할 뿐이다.

가장 널리 인용되는 가설은 남자들이 수렵할 때 협동심을 고양시키고 적대감을 완화시키기 위해 배란 은폐가 진화됐다는 이론이다. 만일 발정기가 있었다면 암내나는 여자를 서로 독점하기 위해 남자들끼리 싸웠을 뿐 아니라 남자와 여자, 여자와 여자 사이에도 갈등이 증폭돼 집단 전체가 붕괴될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에 배란이 은폐됐다는 주장이다.

또 하나의 가설은 여성이 전적으로 육아에 전념하면서 남성의 도움이 필요하게 되자 배란이 은폐됐다는 가설이다. 여성은 배란일을 숨김으로써 임신의 가능 여부를 남성이 알 수 없게 하고, 남성은 유전자 확산을 위해 여성이 자기 자손을 임신 했음을 확신해야 하므로 지속적으로 성관계를 하며 여성 주위를 맴돌게 되었다는 것이다.

세 번째 가설은 영아살해(infanticide) 가설이다. 지금도 다른 짐승들에게서 종종 나타나지만 먼 옛날에 인류의 수컷들이 자신의 씨가 아닌 어린 애를 곧잘 죽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여자가 젖을 먹이는 동안에는 자신의 아이를 갖게 될 기회가 적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대비책으로 여자들이 궁리해낸 묘안은 배란일을 숨김으로서 여성은 임신한 아이의 아버지가 누군지 모호하게 만들고, 되도록이면 많은 남자들과 성관계를 맺어둠으로써 자녀의 생명을 보존하려고 노력했다는 가설이다.

이외에도 다양한 가설이 존재하지만 대략 이 세 가지 주장이 배란이 은폐되고 발정기가 사라진 가장 그럴듯한 가설로 꼽힌다. 이 세 가설을 가만히 살펴보면 배란이 은폐된 이유는 다양하지만 배란이 은폐됨으로써 인간 여성의 성적 수용능력이 급속히 증가했다는 것이다.

이제 배란을 은폐함으로써 이제 인간 여성은 365일 섹스가 가능해졌으며, 인간 남성은 이런 여성과 교미하기 위해 늘 여성 주변을 어슬렁거리게 된 것이다.

홍상수 영화에 등장하는 남자가 눈앞의 여자와 한번 자기 위해 물불을 안 가리고, 여자는 같이 자 줄듯 말듯 ‘밀당’을 하는 것 자체가 ‘진화’가 만들어 낸 숙명이었던 셈이다.

한가지 다행이라면 여성의 배란이 은폐되고 발정기가 없어지면서 교미의 주도권이 암컷에게 넘어가 한 번의 교미를 위해 다른 수컷과 목숨을 건 싸움을 벌이지 않게 됐다는 점이다. 한 번의 섹스를 위해 목숨을 걸어도 되지 않게 됐다니… 얼마나 다행인가!.

 

이형구 생활경제부장 scaler@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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