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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사이드] 최동열 작가가 들려주는 1980년대 이스트빌리지 이야기 그리고 그리는 희열

사교적인 바스키아와 키스 해링, 뉴욕 토박이 릭 프롤, 반듯한 크래시와 데이즈
블루노트 시절 사라 본을 떠올리게 하는 ‘미스트롯’ 시즌2 김태연

입력 2021-03-27 17:30

최동열 작가
최동열 작가(사진=이철준 기자)

 

“학력이나 출신, 성 정체성 등과 전혀 상관없이 자신의 세계만 있으면 서로 존경해주고 어울렸어요. 키스 해링(Keith Haring)이나 릭 프롤(Rick Prol)이 좋은 대학을 나왔는지도 몰랐으니까요.”



장 미셸 바스키아(Jean-Michel Basquiat), 키스 해링, 릭 프롤(Rick Prol) 등과 1980년대 이스트빌리지에서 활동했던 최동열 작가이자 아이웨이브 대표의 전언처럼 “키스 해링은 시각예술학교(School of Visual Arts)를, 릭 프롤은 뉴욕의 미술명문대 쿠퍼 유니언(Cooper Union)을 다녔다.” 반면 장 미셸 바스키아, 시골 출신의 데이비드 워나로비치(David Wojnarowicz), 마틴 왕(Martin Wong) 등은 길거리에서 활동했던 작가들이다.  

 

최동열
이스트빌리지에서 활동하던 시절의 최동열 작가(사진제공=작가 본인)
이들은 전혀 다른 환경, 출신, 작품세계, 성 정체성, 생활방식 등을 가지고 있었지만 서로를 존중하고 기꺼이 함께 연대했다. 이같은 1980년대 뉴욕의 이스트빌리지 정신은 최근 세계적인 트렌드가 된 ‘러브 유어 셀프’(Love Yourself), ‘자존감’ 등과 맥을 같이 한다.


◇사교적인 바스키아와 키스 해링, 뉴욕 토박이 릭 프롤, 반듯한 크래시와 데이즈

“바스키아도 키스 해링도 굉장히 사교적이에요. 바스키아는 음악으로 시작해 그림을 그리다 보니 스타가 되겠다는 의지가 아주 강했어요. 무명시절부터 스타의 모습이 나올 만큼 스타성이 있었어요. 키스 해링과 바스키아의 첫 만남도 아주 재밌어요. 어느 날 키스가 전철에서 내려 학교로 가면서 한 청년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어요. 함께 학교에 들어가 키스가 강의를 듣고 나왔더니 담벼락에 바스키아의 낙서들이 있더래요. 우연히 만나 이야기를 나눴던 청년이 바스키아였던 거죠.”

이어 릭 프롤에 대해 “다들 외국에서 온 친구들이었는데 릭은 뉴욕 토박이”라며 “어머니는 배우이자 캬바레 싱어였고 아버지는 클래식 기타리스트로 보헤미안 성향이 강한 집안에서 자란 친구”라고 전했다.

“나고 자란 동네에서 작품 활동을 한 거죠. 그 대단한 쿠퍼 유니언에서 장학금을 받으면서 다녔어요. 예술과 미술은 물론 역사도 잘 알았고 이스트빌리지의 특수성에도 정통했죠. 아카데믹한 측면과 예술가적인 기질을 겸비한 친구였어요. 실제로 일어나는 일을 표현하는 데는 최고였어요. 평론가들에게 이스트빌리지에서는 릭과 같은 작품을 해야한다는 극찬을 받곤 했죠.”

이어 그래피티 아티스트인 크래시(Crash), 데이즈(Daze)에 대해서는 “강렬하고 반항적인 작품들과는 달리 아주 반듯하고 예절 바른 친구들”이라며 “크래시는 굉장한 미남에 몸짱이기도 하다. 지금도 살아 있고 다들 건강하게 작품 활동을 하며 진짜 열심히 생존 중”이라고 덧붙였다.

릭 프롤
최동열 작가와 1980년대 이스트빌리지에서 함께 활동했던 릭 프롤(사진제공=리안갤러리)

 

2018~2019년 서울시립미술관의 ‘이스트빌리지 뉴욕: 취약하고 극단적인’, 서울숲아트센터(더페이지갤러리)의 ‘반항의 거리, 뉴욕’을 통해 바스키아, 키스 해링, 릭 프롤을 비롯한 던컨 한나(Duncan Hannah), 제임스 롬버거(James Romberger), 스티븐 랙(Stephen Lack) 등 이스트빌리지 작가들과 크래쉬(Crash), 데이즈(Daze), 푸투라(Futura), 케니 샤프(Kenny Scharf), 쳉쾅치(Tseng Kwong Chi), 찰리 에이헌(Charlie Ahearn), 마샤 쿠퍼(Martha Cooper) 등 뉴욕의 그래피티 아티스트들을 한국에 소개한 그는 “살아남은 친구들이 굉장히 신기하다”고 털어놓았다.

“종종 뉴욕에 들어가 당시의 친구들을 만나기도 하는데 살아있는데도 죽어있고 죽었는데도 살아있고…신기해요. 한 친구는 벤처사업가와 결혼해 이스트빌리지를 떠났어요. 아내가 당시 친구들과 어울리는 걸 싫어해서 작가를 그만두고 할렘의 불탄 건물을 개조하는 사업을 하고 있죠. 그는 죽은 생선 껍질로 계급장, 왕관 등을 만드는 굉장히 작가이기도 했어요. 그 작품들이 기가 막히죠. 서울시립미술관 전시에도 소개하고 싶었지만 결국 작품이 없어서 못왔어요. 그렇게 많이들 사라지곤 했어요. 그러니 여전히 살아서 작품활동을 하는 친구들은 정말 대단해요.”


◇블루노트 시절 사라 본을 떠올리게 하는 ‘미스트롯’ 시즌2 김태연
 

김태연
최동열 작가가 최근 푹 빠져 있는 ‘미스트롯2’의 김태연(사진=방송화면 캡처)

 

“그림은 물론 예술이라는 것 자체가 결국은 에너지예요. 많은 이들에게 에너지를 주려면 스스로가 엄청난, 압도적인 에너지가 있어야 하죠. 최근 ‘미스트롯2’의 김태연에게서 그런 에너지를 봤어요.”

트로트에는 지금껏 단 한번도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다는 최동열 작가는 최근 ‘미스트롯2’에 출연한 10살짜리 김태연에게서 “쇼크를 받았다”고 고백했다.

“경험도 많지 않고 아무 것도 모를 나이에 그런 감정을 내는 걸 보면서 굉장히 기분이 좋아요. 경험 보다는 전통을 이어받아 내는 그 감정들에 예술이 정말 강력하구나를 새삼 깨닫고 있죠.” 

 

최동열
최동열 작가(사진=이철준 기자)

그리곤 “깨끗한 목소리로 감정도 잘 내는가 하면 순수하면서도 강렬한 에너지가 블루노트 바텐더 시절 바로 앞에서 지켜봤던 사라 본(Sarah Vaughan)을 떠올리게 한다”고 말를 보탰다.

 

“비단 같은 목소리에 ‘새시(Sassy) 사라 본’이라고 불리던 시절부터 ‘디바인(Divines) 사라 본’을 거쳐 죽기 직전까지를 지켜봤죠. 가면 갈수록 깊어지고 넓어지는 사라 본을 지켜보면서, 특히 ‘센드 인 더 클라운’(Send In The Clowns)을 부를 때는 눈물이 날 정도였어요. (김)태연이의 ‘아버지의 강’도 정말 기가 막혔어요. 나이가 들면 얼마나 멋지게 할까…너무 기대하게 되죠.”


◇사업도 예술과 같아서 “예전 작품들을 지금의 내가 그린다면…”

“그림만 그리다 사업을 시작하니 너무 힘들었어요. 그 중 돈 버는 게 제일 힘들었는데 이제 좀 정리가 되기 시작했어요. 사업, 특히 벤처는 예술과 같아요. 새로운 걸 만들어내야 하고 크리에이티브해야 하잖아요.”

지금까지 살아남아 작품 활동 중인 이스트빌리지의 친구들을 한국과 아시아에 소개하는 벤처기업 웨이브아이 대표이기도 한 최 작가는 “사업을 하면서 작품 활동도 더 열심히 하게 되는 것 같다”고 말을 보탰다.

“사업 초반에는 너무 힘들고 정신이 없어서 작업을 못했는데 지금은 사업을 더 잘 하기 위해서 그림을 그려요. 매일 그림을 그리면서 살아오다 보니 안하면 정신상태가 이상해지거든요. 어려울수록 더 그려야겠다는 생각에 매일 작업을 해요.”

그렇게 그는 새로운 작업들과 더불어 “예전 작품들을 정리 중”이라고 귀띔했다. 눈을 부릅뜨고 성난 표정을 한 날것 그대로의 ‘얼굴’, 시애틀 외곽에서 라벤다 농장을 하면서 빠져들어 그렸던 줄기가 두꺼운 ‘해바라기’, 멕시코 유카타 정글에서 살다 아픈 아내를 위해 떠나온 도시에서 10여년을 그렸던 ‘한국 산수가 보이는 한국 침실’ 연작 등을 가늠하고 있는 중이다. 

 

침실
최동열 작가의 ‘한국 산수가 보이는 한국 침실’ 연작(사진제공=웨이브아이)

 

“그때와는 달라진 지금의 내가 그리면 또 달라지지 않을까 싶어요. 초반에 떠돌면서 늘 가지고 다니면서 했던 오토매틱 드로잉도 작업 중이에요. 뭘 해야할까 고민하다가 떠오르는 게 없으면 하는 작업이었어요. 우연에 의한 것으로 의도가 없었지만 내 의도가 되기도 해요. 분명 떠오르는 게 없었는데 하다보면 뭔가 나오기 시작하고 사색으로 이어지죠. 실수가 영감이 되고 작품이 되기도 하거든요.”

최근 10년을 넘게 히말라야의 곳곳을 떠돌며 작업 중이었던 그는 올 상반기 안에 또 다시 히말라야 에베레스트로 떠날 채비를 하며 ‘한국 산수가 보이는 한국 침실’ 연작 등의 새로운 작업에 돌입할 예정이다.


◇냇 킹 콜의 ‘네이처 보이’처럼 “그림, 그 희열에 대하여”
 

최동열
최동열 작가(사진=이철준 기자)

 

“어느 때부턴가 예술가는 사회에서 도와줘야 하고 불쌍하게 여겨야 하는 존재가 돼 버렸어요. 예술가 스스로도 ‘나는 그림을 그리는데, 예술을 하는데 당연히 도와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아졌죠. 전 그런 시선들, 생각들이 너무 싫어요. 그림을 그리는 게 얼마나 신나는 일인데요. 그 희열이란 건 말로 다 못해요.”

이렇게 전한 최동열 작가는 “내가 좋아하는 걸, 이렇게나 신나게 하고 있는데 뭐든 대가를 치러야 한다면 스스로가 해야한다”며 “그 대단한 페테르 파울 루벤스(Peter Paul Rubens)도 유럽 각지에 파견되는 대사였고 티샨(티치아노)은 떨어뜨린 붓을 왕이 자진해서 주워주며 ‘황제의 시중을 받을 가치가 있다’고 할 정도로 대단한 권세를 누렸다”고 예를 들었다.

그리곤 냇 킹 콜(The Nat King Cole)의 ‘네이처 보이’(Nature Boy) 중 마지막 가사 “The greatest thing you‘ll ever learn. Is to love and be loved in return”을 인용했다.

“그것이 최고의 삶이라고 전 믿어요. 그림을 그리는 것도 ‘러브’의 형태예요. 창작할 때의 희열만으로도 사랑이, 사랑의 보답이 찾아오거든요. 이스트빌리지에서의 우리는 스스로 대가를 치르며 저마다의 작품세계를 구축했어요. 그러다 보니 좋아해주는 사람들이 생겨나 저마다의 방식대로 스타가 됐죠. 그림만큼 신나는 게 어딨어요. 우리가 얼마나 신나게 살았고 지금도 얼마나 열심히 생존 중인데요.”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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