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간뉴스 전체보기

닫기
더보기닫기

[B사이드②] 뮤지컬 ‘더데빌’ 박민성·장지후, 블랙에 잠식 당하는 순간들 그리고 서로에게 보내는 믿음과 존경

입력 2022-01-22 15:54

더데빌 장지후 박민성1
뮤지컬 ‘더데빌’ X블랙 역의 장지후(왼쪽)와 X화이트 박민성(사진=이철준 기자)

 

“장르를 떠나 지금을 사는 우리 모두는 바쁘고 스트레스가 많아요. 게다가 지금은 아무 걱정 없이 일하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밥 한끼, 술 한잔도 할 수 없는 시대잖아요. 거기서 오는 힘듦이 있어요. 내가 뭘 위해 일하고 내일도 없는 삶을 살아야 하는지…번아웃 같은 느낌들이 작년부터 좀 심해졌어요.”



요한 볼프강 폰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의 ‘파우스트’를 변주한 뮤지컬 ‘더데빌’(2월 27일까지 드림아트센터 1관)에서 X화이트로 분하고 있는 박민성은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으로 “교류할 수 없게 돼버린 시대”에 대한 힘든 심정을 토로했다.

‘더데빌’은 1987년 뉴욕증권시장의 블랙먼데이를 배경으로 ‘파우스트’를 변주한 작품이다. 주가 대폭락으로 절망에 빠진 월스트리트의 브로커 존 파우스트(배나라·이석준·이승헌, 이하 시즌합류·가나다 순)와 그가 지켜내려는 그레첸(김수연·여은·이지연), 그런 두 사람을 두고 X화이트(고훈정·박민성·백형훈·조환지)와 X블랙(김찬호·박규원·장지후)이 내기를 벌이면서 인간 내면의 선악, 빛과 어둠에 대해 고찰한다.


◇블랙에 잠식 당하는 순간들, 우리 모두는…

더데빌 박민성3
뮤지컬 ‘더데빌’ X화이트 역의 박민성(사진=이철준 기자)

 

“잡생각을 안하기 위해서 쉬지 않고 일을 했는데도 마음이 자꾸 힘들어요. 환호와 박수 등으로 관객들과 호흡하며 살아 있음을 느끼는 게 좋아서 공연을 하는 사람인데 그 모든 게 단절돼 버렸잖아요. 관객과의 교류에서 에너지를 받고 그 에너지가 다시 객석으로 전달되고 그렇게 사이클링이 돼야하는데…. 너무 감사하게도 손바닥이 터져라 박수를 쳐주시는 건 알아요. 그럼에도 흡족하지가 않아요. 20%가 빠진 느낌이랄까요. 그게 쌓이고 쌓여서 스스로의 힘듦에 잠식당하는 느낌이 들어요.”

지금을 사는 모든 사람들이 느끼고 있을, 마크 로스코의 ‘블랙에 잠식당하는 레드’ 같은 감정을 호소한 박민성은 “그 힘듦이 어둠이고 블랙”이라며 “예전에는 빛이 이겼는데 지금은 마음 속에서 자꾸 부정적인 생각과 미움, 원망…이런 것들이 자꾸 생겨난다”고 전했다. 

 

뮤지컬 더데빌 공연사진_X-WHITE 박민성_제공 알앤디웍스
뮤지컬 ‘더데빌’ 중 X화이트 역의 박민성(사진제공=알앤디웍스)

 

“그러다 X화이트를 하면서 이렇게 생각하게 됐어요. 나와 같은 생각하는 사람이 없겠어? 많겠지. 그럼 그 사람들한테 과연 뭘 해줄 수 있을까…. 제 자신을 반대로 비추는 거울처럼요. 내가 그 사람, 나를 바라보는 사람이라면 뭘 바랄까 고민하게 됐죠. 모든 관객들이 그러시진 않겠지만 저를, (장)지후를 믿고 보러 와주신 분들께 선사할 수 있는 최고의 시간을 만들어드리는 게 저 역시도 치유 받는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이어 “저 뿐 아니라 모두의 삶에서 오는 잠식, 모두가 맞이하는 블랙에 잠식당하는 순간들이 있다”고 덧붙이는 박민성에 X블랙 역의 장지후도 “보통은 화이트를 바라보려 하지만 블랙이 이기는 경우들은 누구나 하는 경험”이라고 말을 보탰다. 

 

더데빌 장지후1
뮤지컬 ‘더데빌’ X블랙 역의 장지후(사진=이철준 기자)
“저는 테크니컬한 배우가 아니어서 어떤 작품의 어떤 캐릭터든 일상까지 가져오는 스타일이에요. 물론 저는 배우로서 진짜 그 사람이 아니라 역할을 재현하는 사람이죠. 하지만 그러지 않으면 저도 모르게 표현되는 습관들조차 거짓말처럼 느껴지거든요. 하지만 ‘더데빌’ X블랙을 하면서는 그러고 싶지 않아서 오히려 밝게 지내려고 해요. 더 좋은 걸 생각하고 보면서 밝은 생각만 하려고 노력하죠. 그렇지 않으면 잠식당해 망가지겠더라고요.”

이렇게 밝힌 장지후는 X블랙이 아닌 배우로서의 고민을 털어놓기도 했다. 그는 “배우로서 이미지가 너무 과소비되고 있다는 느낌”을 토로하며 “어떤 작품을 해야하는지는 언제나 고민”이라고 털어놓았다.

“인물 구상을 할 때 언제나 제 안에서 찾다 보니 어떤 순간에는 그런 생각이 들어요. 내 안의 것이 다 고갈돼버리면 어떻게 하지. 제 안에는 늘 괴리가 있는 것 같아요. 이미지 과소비가 두려우면 작품 수를 좀 줄이고 새로운 역할이나 다른 선택을 해도 되는데 그러면 생활이 안되잖아요. 그래서 오는 괴리감이 늘 제 언저리에 있는 것 같아요. 배우로서 이미지와 상품성에 대한 고민을 하다보면 어느 순간 그 현실적인 모든 것들이 나를 잠식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그렇게 화들짝 놀라 몸부림치듯 빠져나오는 순간들이 있죠.”

이어 장지후는 “예전엔 무대 위에서 관객을 만나고 좋은 배우들과 호흡하며 연기하는 게 꿈이었다”며 “그렇게 꿈 혹은 환상처럼 느껴졌을 때가 더 좋았던 것 같기도 하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어떻게 다 얻을 수가 있겠어요. 지금 꿈을 이뤘다면 포기해야하는 것들도 생겨나죠. 그런 고민을 항상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잘하고 못하고도 중요하지만 최선을 다해 제가 가진 것 안에서 최고를 보여 줘야 한다는 강박이 늘 따라다니죠. 고민해결에 도움이 되는 것 같지는 않지만 결국 그게 배우의 몫인 것 같아요. 여러 가지 고민들로 잠식당하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좋은 걸 보고 생각하려고 노력하죠.”

뮤지컬 더데빌 공연사진_X-BLACK 장지후_제공 알앤디웍스
뮤지컬 ‘더데빌’ 중 X블랙 역의 장지후(사진제공=알앤디웍스)

 

그렇게 고민에 혹은 부정적인 생각과 감정에 잠식당하는 자신을 일깨울 수 있는 이유를 장지후는 “잊을 수 없는 초심”이라고, 박민성은 “매일 하는 나와의 싸움”이라고 털어놓았다. 장지후는 “아직 잊지 않고 있는 것들이 있어서 털고 나올 수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아직 제 안에 있거든요. 맨 처음 어떤 사람을 만났을 때부터 가지고 있던 고마운 마음이요. 첫 공연부터 저라는 배우를 반가워해주시고 환영해주시고 믿어주시는 관객들과 스태프들, 동료들 등의 눈빛에서 보이는 신뢰와 호감 등이요.”

이렇게 전한 장지후는 “요즘은 마스크 착용이 필수다 보니 그런 눈빛들이 더 잘보이기도 한다”며 “칭찬에 흔들리거나 겸손하지 못한 제가 느껴질 때면 그 눈빛들을 떠올리며 빠져나와 스스로를 객관화시키고 바로 잡곤 한다”고 말을 보탰다. 장지후의 말에 박민성은 “매일 나와 싸우는 느낌”이라고 동의를 표했다. 

 

“주변에서 상황에 따라 변질되고 망가지는 사람들을 너무 많이 봤어요. 그런 사람들을 보며 저 스스로를 모니터링해요. 그렇게 스스로를 객관화시키고 돌아보면서 다독이고 일깨우죠.”

 

◇서로에게 보내는 믿음과 존경, 꼬리에 꼬리는 무는 티격태격?


더데빌 장지후 박민성4
뮤지컬 ‘더데빌’ X화이트 역의 박민성(왼쪽)과 X블랙 장지후(사진=이철준 기자)

“X로서요? 우리 이해 좀 해줘요. 저희가 X화이트인지 X블랙인지, 박민성인지 장지후인지 너무 몰입 중이라….”


서로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냐는 질문에 박민성과 장지후는 약속이나 한 듯 “X로서요?”라고 반문한다. 박민성은 “지후가 하는 이미지 소비에 대한 고민은 배우라면 누구나 하는 것”이라고 동의를 표했다.

“배우마다 극복하는 법은 다르지만 지후에게 지금 충분히 잘 하고 있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같은 작품을 하기 전부터 소식을 듣고 지켜본 사람으로서 그의 성장에 박수를 쳐주고 싶어요. 이미 너무 멋있고 갈길이 훨씬 더 많이 남아 있으니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박민성의 말에 장지후는 “형이랑 작품을 같이 하고 있는 자체가 신기하다”며 “2017년 ‘벤허’ 이후로 오랜만에 다시 만난 형은 여전히 저에겐 존경할 대상이고 배우고 선배고 형”이라고 밝혔다.

“그러기에 모자람이 없는 사람 같아요. 배우로서, 인간으로서 형도 많이 성장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때는 형도 저도 어렸는데 이번에 본 형은 되게 근사했죠. 그런 형과 함께 해서 기쁜 나날들이에요.”

이렇게 밝힌 장지후에 어느새 X화이트가 된 박민성의 “아들아!”라는 한탄이 돌아온다. 그런 박민성에게 “X화이트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해는 진다. 밤은 찾아오고’다”라며 눙치는 장지후, 그런 장지후에 “지구는 둥글다”고 대꾸하는 박민성, 그런 박민성에 또 다시 “우린 계속 돈다”는 장지후…. 그렇게 박민성과 장지후가 아닌 X화이트와 X블랙으로서의 티격태격은 한동안 꼬리에 꼬리를 물며 이어졌다.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기자의 다른기사보기 >

이시각 주요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