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간뉴스 전체보기

닫기
더보기닫기

[비바100] 일흔 넷 윌리엄 니콜슨 감독의 두 번째 영화가 특별한 이유!

[人더컬처] 영화 '우리가 사랑이라고 믿는 것' 윌리엄 니콜슨 감독
영화 '글레디에이터','레미제라블'''넬''카멜롯의 전설'쓴 세계적인 각본가, 오는 24일 '우리가 사랑이라고 믿는 것'연출 맡아
"영원한 사랑의 조건? 상대방보다 나 자신을 알아야 가능"
"글로 생계를 이어가겠단 생각하지 말고, 다른 직업을 가져서라도 성실히 써라"

입력 2022-02-21 18:30
신문게재 2022-02-22 11면

㈜티캐스트3
배우들에게 연기를 지도하고 있는 윌리엄 니콜슨 감독.(사진제공=㈜티캐스트)

 

“한국 콘텐츠의 세계적인 인기는 권위적이지 않고 건강한 사회의 표본을 보여주는 것 같아 흐뭇해요. 어딜 가나 사람 사는 건 똑같다는 사실을 세련되게 보여주잖아요.”

한국 나이로 일흔넷. 영화 ‘글레디에이터’‘레미제라블’을 쓴 세계적인 각본가인 윌리엄 니콜슨이 두 번째 연출작 ‘우리가 사랑이라고 믿는 것’으로 한국 관객과 만난다. 18일 오후 한국 지면 매체로는 유일하게 ‘브릿지경제’의 화상인터뷰에 응한 그는 작가로서의 고민과 글을 쓰는 후배들에 대한 당부, 한국이 가진 무궁한 가능성에 대해 솔직한 발언을 이어갔다.

24일 개봉하는 ‘우리가 사랑이라고 믿는 것’은 29년을 함께했지만 서로를 몰랐던 한 부부와 아들이 겪는 사랑과 오해, 이별에 대한 이야기다. 실제로 감독이 겪었던 자전적인 이야기에서 출발한 작품은 영국에서 연극으로 먼저 만들어져 큰 호평을 받았다. 영화화가 결정되고 나서는 윌리엄 니콜슨이 직접 메가폰을 잡아 제작단계부터 화제를 모았다. 시나리오가 가진 진정성을 일찌감치 알아챈 아네트 베닝과 빌 나이가 부부로 함께 했고 넷플릭스 시리즈 ‘더 크라운’에서 찰스 왕세자로 분하며 세계적인 팬덤을 생성한 조쉬 오코너가 부모의 이혼을 바라보는 아들로 나온다.

 

2022022201010009300
영국의 한적한 바닷가 마을에서 촬영된 영화 ‘우리가 사랑이라고 믿는 것’ 스틸컷.(사진제공=㈜티캐스트)

“영화 속 아버지와 아들은 참 닮은 게 많아요. 하지만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고 있다고 믿으며 평생을 살아온 어머니에 대한 연민도 깊죠. 두 분의 모습이 다 저에게 있는데 부모의 이별을 바라보는 자녀의 슬픔을 다뤄보고 싶었습니다.”

극 중 곧 29주년 결혼 기념일을 맞는 그레이스(아네트 베닝)와 에드워드(빌 나이)는 ‘우리가 함께한 시간이 사랑이었을까?’에 대해 격렬하게 충돌한다. 조용한 성격으로 평생 학교의 역사 선생님으로 살아온 아버지와 매사에 솔직하고 열정적인 책 편집자인 어머니에게는 익숙한 말다툼이었지만 오랜만에 고향에 돌아온 제이미(조쉬 오코너)는 충격적인 사실을 마주하게 된다. 성격은 반대지만 행복해보였던 부모였다. 하지만 아버지는 늘 주눅들고 피곤한 상황이 싫어도 맞춰주는 삶을 살아왔음을. 그레이스는 새로운 여자가 생겼다고 집을 나가버린 에드워드에 대한 분노와 수치심, 뒤늦게 깨달은 사랑으로 괴로워한다. 

㈜티캐스트4
윌리엄 니콜슨 감독.(사진제공=㈜티캐스트)

 

“한국 관객들에게도 하고 싶은 말이지만 부부 혹은 연인이 서로 솔직하게 이야기 했으면 좋겠어요. 내가 원하는 걸 해준다고 나를 사랑한다는 결론을 내리지 말라고요. 한국은 바람난 여자의 머리를 잡아뜯는다죠? 사실 영국사람들은 적극적으로 분노를 표시하지 않아요. 그게 문제라고 봐요. 아마 저의 엄마가 그랬다면 어느 정도 감정을 해소했을텐데.(웃음) 대신 아버지의 머릿속에 있던 대사를 영화에 녹여냈어요.”

그레이스는 남편이 사는 바람난 안젤라의 집에 찾아간다. 명목은 집에 남아있던 물건을 가져다 주기 위해서지만 자신이 가르친 학생의 엄마와 사랑에 빠진 사실은 용서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안젤라는 갑자기 떠나버린 남편의 빈자리로 방황하는 자녀로 인해 학교 상담에 나섰다가 에드워드와 만났다.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의 행복을 위해 남의 남편을 뺏게 된 그는 자신을 맹비난하는 그레이스에게 “불행한 세 사람이 있었는데 이제는 한 사람만 남은 것 같다”는 말로 상황을 종료시켜 버린다. 

㈜티캐스트2
그는 1996년 소피 마르소 주연의 영화 ‘파이어라이트’를 통해 첫 메가폰을 잡았고 이 영화로 감독으로서의 두 번째 필모그래피를 쌓았다. (사진제공=㈜티캐스트)

 

윌리엄 니콜슨 감독은 “그 대사는 상황에 굉장히 맞으면서도 잔인한 말이다. 이 관계에서는 누군가 패자가 있다는 거니까. 아마도 그레이스가 자신의 삶을 살도록 충격요법이 됐을 것”이라며 시나리오에 담긴 분위기를 탁월하게 표현해 낸 배우들에 대한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빌 나이는 그간 보여준 때론 코믹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이 아닌 전형적인 중년 남성의 모습을 보여준다. 열정은 사라졌고 무료한 삶을 살다가 결국 용기를 낸 상황에서 방황하는 인물이다. 자신의 잘못을 알기에 뭐라도 해주고 싶지만 주눅 들어 살아온 평생에서 벗어나는, 일종의 해방감이 종종 표정에 스친다. 

아네트 베닝은 사랑을 잃었지만 결코 초라하지 않다. 저주와 비난 대신 당당히 기회를 달라며 때론 애걸하고 절규한다. 시집 편집자답게 단테 가브리엘 로세티의 ‘섬광’,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의 ‘한 아일랜드 비행사의 죽음 예견’을 특유의 음성으로 읊으며 문학의 향기를 스크린에 가득 채우기까지 한다.

㈜티캐스트1
윌리엄 니콜슨 감독.(사진제공=㈜티캐스트)

 

윌리엄 니콜슨은 각본가와 감독으로서의 장단점에 대해서도 겸손한 발언을 이어갔다. 이 영화의 경우 개인적인 이야기 때문에 메가폰을 잡을 수 있었지만 스스로가 감독 경험이 많지 않기에 투자가 힘들었을 영화계 산업의 냉점함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었다. 그는 “젊었을 때 더 열심히 경험을 쌓지 못한 게 후회된다. 더 열심히 주장할 걸”이라고 웃으면서 “글을 쓰는 모든 후배들, 동료 각본가들에게 이왕이면 감독을 해 보라고 하고 싶다. 창작자로서의 최종 단계는 바로 감독”이라고 말했다. 

특히 여러 번 수정을 요구받고 강력한 비판이 오가는 작가의 세계에서 살아남는 자신만의 경험을 들려줬다. “제 기억으로는 다섯 살 정도부터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다”는 그는 정식 데뷔를 하고도 무려 15년간 원래 직업을 이어갔다는 사실을 밝혔다.

㈜티캐스트
영화 ‘우리가 사랑이라고 믿는 것’윌리엄 니콜슨 감독.(사진제공=㈜티캐스트)

 

“일단 성실해야 해요. 민첩하고 관찰력이 좋은 것도 도움이 되지만 많이 알아야 글을 쓸 수 있거든요. 일단 글을 쓰며 생계를 이어갈 거란 생각은 하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솔직히 고백하자면 저에게 글은 15년간 부업이었어요. 다른 직업을 통해 얻은 지식과 영감이 큰 토양이 됐음을 지금에서야 느껴요. 물론 직업이 두 개니 아침 일찍 글을 쓰고 출근했어야 했지만요.”

그는 마지막으로 사랑에 대한 조건에 대해서도 간결하지만 깊은 여운이 담긴 말을 남겼다. “상대방에게 내가 원하는 것을 바라지 말고 내 자신부터 먼저 파악하라”고. 

“내가 어떤 욕구와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지 알면 상대방에 대한 용서와 감사를 하게 돼요. 자신의 행복을 만들어가고 찾아가는 게 이 영화의 주제죠. 희망의 메시지를 주는 K팝, 드라마, 영화를 만든 한국인들이라면 충분히 가능할 겁니다.”

이희승 기자 press512@viva100.com

기자의 다른기사보기 >

브릿지경제 핫 클릭
브릿지경제 단독
이시각 주요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