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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백남준아트센터 김성은 관장 “매체의 ‘본질’에 집중했던 빛의 마에스트로”

[짧지만 깊은: 단톡심화] 백남준 90주년 특별전, 백남준아트센터 관장 김성은

입력 2022-07-21 18:30
신문게재 2022-07-22 11면

[백남준아트센터] 김성은 관장_프로필 (1)
백남준 아트센터 김성은 관장(사진제공=백남준아트센터)

 

“어떤 특정 매체의 선구자라기보다는 ‘매체’라는 말 자체가 갖고 있는 본질에 충실했던 작가라는 생각이 들어요. 기술이 발전하면서 새로운 매체가 우리에게 다가올 때 그것을 예술적인 매체로만 인식하기보다는 정보를 전달하고 관계를 매개하고 소통하는 ‘본질’에 집중한 거죠.”

 

세계적인 미디어 아티스트 백남준에 대해 김성은 백남준아트센터 관장은 이렇게 밝혔다. 이어 “그가 모든 미디어를 관통하는 본질인 관계의 매개와 소통 그리고 전달에 집중했던 부분들이 코로나 시대이자 사회·정치적으로 급변하는 시대를 맞으면서 더 드러나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백남준 작가가 미디어를 사유했던 방법 그리고 미디어를 통한 예술을 매개로 한 커뮤니케이션, 세계 평화 등이 왜 예술가의 중요한 역할이라고 생각했는지를 비로소 지금에야 발견할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곤 “이미 1960년대 말, 70년대 초에 ‘앞으로 모든 사람들이 저마다의 방송국을 갖게 될 것’이라고 했던 백남준의 예언가적인 모습에 새삼 놀라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모습은 일부일 뿐”이라고 부연했다.

 

바로크 백남준
탄생 90주년 기념전시 ‘바로크 백남준’ 중 ‘3원소: 원, 삼각형, 사각형’(사진=허미선 기자)

 

“새로운 매체에 대해 예술적·기술적·사회적으로 정말 깊이, 다각적으로 파고들었고 사회 안에서 ‘미래를 사유하는’ ‘공익을 중시하는’ ‘세계평화에 이바지하는’ 등 예술가의 역할들을 늘 잊지 않고 작업했던 백남준 작가의 모습을 좀 더 많은 분들이 알아주셨으면 했어요.”

 

“요즘 각광받는 NFT에 빗대 ‘대체 불가능한 백남준’의 모습은 무엇일까”라는 고민에서 출발해 기획된 ‘바로크 백남준’(2023년 1월 24일까지 백남준아트센터 제2전시실) 전시에 대해 이렇게 전한 김 관장은 “한 작가의 기념일을 축하하는 것이 많은 사람들이 함께 나누고 즐기는 축제가 될 수는 없을까 생각했다”고 털어놓았다.

 

“역사적인 인물로서의 백남준이 아닌, 지금 시대에도 여전히 새로운 의미와 기쁨을 선사하는 작가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많이들 알고 계시는 비디오 아티스트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매체로 한계 없이 지속적으로 예술적 도전을 펼쳤던 그런 백남준의 모습이요.”


 

◇작은 발견들을 나누는 ‘주빌리’…‘바로크 백남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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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생 90주년 기념전시 ‘바로크 백남준’ 중 ‘비디오 샹들리에 No.1’(사진=허미선 기자)

“백남준 탄생 9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2022년을 준비하면서 모토를 ‘나의 축제는 거칠 것이 없어라’로 잡았어요. 1997년 백남준이 45살 생일을 앞두고 포부와 구상을 담아 작업했던 음반의 제목이기도 하죠. 작가의 이름을 건 미술관이 그의 생일, 기일 등을 챙기는 것은 숙제 같기도 해요. 하지만 마냥 위대한 예술가라는 찬양일색이기 보다 저마다가 새로운 백남준을 발견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다양한, 저마다의 작은 발견을 함께 나누고 즐길 수 있는 ‘주빌리’(Jubilee, 기념일)를 위한 축제로 만들고 싶었죠.”

 

그의 탄생 90주년을 맞아 2년 내내 축제기간으로 설정하고 다양한 전시, 행사 등을 진행하고 있는 백남준아트센터는 백남준의 생일인 7월 20일 ‘바로크 백남준’을 개막했다. 

 

국내에서는 좀체 만나기 어려웠던 ‘3원소: 원, 삼각형, 사각형’(1999), ‘시스틴 성당’(1993), ‘비디오 샹들리에 No.1’(1989), ‘촛불 하나’(1988), ‘촛불 TV’(1969), ‘슈베르트’(2002), ‘밥 호프’(2002), ‘찰리 채플린’(2002) 등 대규모 미디어 설치작업과 레이저 작업들을 만날 수 있다. 

 

더불어 1995년 독일 로레토 교회 전체에 선보인 대규모 프로젝션과 레이저 설치작인 ‘바로크 레이저’에 경의를 표하기 위해 백남준의 테크니션이었던 이정성, 미디어 아티스트 홍민기·강신대, 레이저 아티스트 윤제호, 건축가 최장원 등이 협업해 꾸린 ‘바로크 레이저에 대한 경의’도 전시된다. 

 

이 작품에 대해 김 관장은 “미디어 고고학의 느낌”이라며 “당시 백남준이 구상하고 생각했던 레이저 기술의 방식 등은 지금의 우리가 구현하기란 굉장히 어렵다. 이에 지금의 작가들이 사진, 기록 등을 통해 백남준이 레이저를 다루던 방법론을 탐구해 재해석했다”고 설명했다.

 

“요즘은 실감나는 미디어 작품들이 많아요. 깜짝 놀랄 작품들이 넘쳐나죠. 하지만 갈수록 미디어라는 기술에 우리의 신체적, 정서적 감각이 알게 모르게 구속되고 있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도 들어요. 이번 전시가 조금은 해방시킬 수 있는 경험이기를 바랍니다.”

 

바로크 백남준
탄생 90주년 기념전시 ‘바로크 백남준’ 전경(사진=허미선 기자)

 

‘바로크 백남준’에서는 ‘바로크 레이저에 대한 경의’를 비롯해 백남준이 후기에 집중했던 매체인 레이저를 다루고 있다. 이에 대해 김성은 관장은 “백남준 작가는 비디오, TV 등에 이어 후기에는 레이저라는 매체를 실험했다. 마음껏 꽃피우지는 못했지만 그가 ‘레이저’라는 매체에 어떻게 접근했는가는 그동안 관심을 두지 못했던 부분”이라고 이유를 전했다.

 

“우리는 레이저에 화려한 빛, 쇼 등의 선입견을 갖고 있어요. 하지만 백남준 작가는 레이저를 ‘매체’ 그 자체로 탐구하고 실험했죠. ‘왜 레이저냐’는 질문에 ‘가장 빠르고 가장 많은 양의 정보를 전달할 수 있는 매체’라고 했으니까요.”

 

이어 “컴퓨터 기술, 레이저 등 당시로서는 최첨단 기술 역시 ‘정보의 송수신’ 매체로 인식하고 전달성에 중점을 두고 접근했다”며 “어떤 매체든 그의 출발점은 매체의 본질이었고 그것(매체의 본질)이 백남준 작업을 관통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백남준의 모든 작업, 특히 영상 작업은 굉장히 현란한 빛과 색의 향연이잖아요. 하지만 그 안에는 관계, 소통 등을 중시했던 그의 생각이 담겼어요. 이는 말년의 레이저까지 이어지고 있죠. 미디어를 다루는 작가들 대부분이 새로운 기술을 흥미롭게 여기며 비주얼적 측면만을 생각한다면 백남준 작가는 자신이 추구하는 매체에 대한 생각을 일관되게 밀어붙이는 힘을 가지고 있었죠. 그런 매체에 대한 생각을 말년에 레이저를 통해 집약적으로 보여주고자 했던 것이 아닌가 싶어요.”

 

 

◇‘현실에서 동떨어지지 않은’ 백남준 판타지

 

바로크 백남준
탄생 90주년 기념전시 ‘바로크 백남준’ 전경(사진=허미선 기자)

 

“그의 예언(?)대로 지금은 1인 방송 시대예요. 누구나 방송을 접할 수 있죠. 얼핏 되게 민주적으로 보이지만 그 안에 내재된 문제들이 코로나 팬데믹을 겪으면서 바깥으로 드러났잖아요. 그런 것들을 보면서 왜 백남준 작가가 방송을 예술의 매체로 생각했는지를 새삼 깨닫고 있어요.”

 

김 관장은 “70년대부터 미국 뉴욕에서 텔레비전 방송국들과 협업해 방송과 예술을 결합하면서 그는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공익은 세계 평화라고 말하곤 했다”며 “글이나 기록으로만 접하던 그를 깨닫고 발견하게 되는 요즘”이라고 말을 보탰다.

 

“그의 개방적인 태도, 한국인이지만 세계인으로서 넓게 사유하는 방법론이랄까요. 그런 그의 사유 체계와 방법론을 새로 발견하고 있죠. 여기서의 방법론은 예술적인 작업의 방법론일 뿐 아니라 그 스스로가 예술계와 혹은 다양한 사회적 관계를 만들어 나가는 방법론이죠. 그리고 그걸 통해 예술가가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믿음이기도 해요. 그런 것들을 굳혀나간 그의 여정이 지금도 역시 큰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바로크 백남준
탄생 90주년 기념전시 ‘바로크 백남준’ 전경(사진=허미선 기자)

 

그리곤 “막연히 자유롭게 여행을 다니고 내가 원하는 곳 어디든 가서 살 수 있는, 그런 세계인이 아니라 우리가 생각해야 할 문제들을 담고 있다”며 뉴욕과 파리에 동시에 같은 방송을 하는 프로젝트 ‘굿모닝 미스터 오웰’을 예로 들었다.

 

“이론적으로는 가능하죠. 하지만 실제로 해보니 다양한 문제들이 발생했어요. 시차 문제를 시작으로 프랑스인들이 ‘오웰’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문화적 차이까지…그냥 이론적으로 아는 것과는 다르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된 거죠.”

 

김 관장은 “예술작업 후에는 그에 대한 통찰력 있는 분석, 반성의 과정들이 늘 뒤따랐던 작가”라며 “그런 부분들을 끊임없이 새롭게 발견하게 된다”고 털어놓았다. 

 

“숨어 있던 작품을 발견한다기보다 그 안에 촘촘하게 쌓인 어떤 것들을 발견하게 되죠. 백남준 작가는 사람을 대할 때나 협업자들과 작업을 할 때 굉장히 헐렁하고 사람 좋은 태도를 보인다고 알려져 있어요. 하지만 작업할 때는 굉장히 치밀하고 전략가의 면모도 가지고 있죠.

 

[백남준아트센터] 김성은 관장_프로필 (1)
백남준 아트센터 김성은 관장(사진제공=백남준아트센터)

그리곤 “예술로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기금을 지원받거나 누군가를 섭외해 판을 짜는 데 탁월한 역량을 가진 예술가”라고 표현했다.

  

“예술을 통해 미래를 사유하고 세계가 소통하고 관계의 매개가 되고 정보가 전달되고…그가 주장하는 것들은 굉장히 추상적이지만 그 안에서는 지금 이 땅에 발을 딱 디디고 서있어요. 현실의 문제를 간과하지 않는, 그런 예술가의 모습이랄까요.”

 

 

◇빛의 마에스트로, 백남준

 

“너무 뻔한 말이지만 백남준은 ‘빛의 마에스트로’ 같아요. 여기서 빛은 텔레비전, 레이저 등 그가 예술에 활용한 매체의 빛이기도 하지만 무언가를 관통하고 가 닿는 빛이죠.”

현실에 발 디디고 추상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는, 현실에서 동 떨어지지 않은 판타지를 선보여온 백남준을 김 관장은 ‘빛의 마에스트로’라고 표현했다.

“텔리비전, 레이저 등 최첨단 기술을 접하면서 백남준은 빛을 활용한 쇼나 화려함 보다는 ‘정보의 송수신 매체’로 접근했어요. 전달성, 관계의 매개, 소통 등 집중하는 미디어를 대하는 태도는 후기의 레이저까지 이어지고 있죠. 기술 자체와 상관없이 ‘매체’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끈질기게 밀어붙이는 힘을 가진 예술가죠. 그가 집중했던 그 본질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 백남준의 작업과 생애를 통해 지금 바로 이 시기이기 때문에 예술의 힘을 다시 한번 믿어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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