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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그라운드] 가장 큰 변화는 ‘시대’…설 자리를 잃고 부서져 가는 청춘의 기록! 국립극단 ‘햄릿’

입력 2024-07-10 21:48

[국립극단] 햄릿(2024) 공연사진15
연극 ‘햄릿’ 공연장면(사진제공=국립극단)

 

“제가 뭔가를 바꾼 건 없는 것 같은데 받아들여지는 게 되게 달라진 것 같아요. 텍스트는 정말 거의 안 바뀌었는데 이상하게 지금 왜 더 와닿는 느낌이 드는 것인가 (정진새) 작가님이랑도 얘기를 나누기도 했죠. 시대의 변화 때문에 이상하게 우연치 않게 지금 더 와닿는 이야기가 된 게 아닌가 싶습니다.”



부새롬 연출은 국립극단 ‘햄릿’(7월 29일까지 명동예술극장)의 변화에 대해 “시대의 변화”를 언급했다. 각색의 정진새 작가 역시 “시대가 ‘햄릿’에 맞게끔 강화된 지점도 있는 것 같다”고 동의를 표했다.  

 

연극 햄릿
연극 ‘햄릿’ 정진새 작가(왼쪽)와 부새롬 연출(사진제공=국립극단)
“2020년에는 우리 사회의 모습을 적극 담아내야 겠다기 보다는 ‘이런 일들이 벌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거나 ‘우리 사회가 이런 식으로 더 장인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썼습니다. 그래서 작품은 사실 바뀐 게 없는데 시대가 극 중 상황에 맞게끔 변해서 더 실감하시는 것 같습니다.”

정진새 작가가 “비단 한국뿐 아니라 민주주의 아래 있는 국가들에서 벌어지는 진실 규명의 문제를 가지고 국가적으로 굉장한 내홍이나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을 참고했다”는, 극 중 진실을 밝히겠다면서 의아한 결과만을 내놓는 진상조사위원회 역시 지금을 반영한 설정이다.

국립극단의 연극 ‘햄릿’은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동명 희곡을 원작으로 정진새 작가가 각색하고 부새롬 연출이 윤색한 작품이다.

2020년 국립극단 창립 70주년 기념작으로 제작됐지만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무대에 올려지지 못하고 영상으로만 관객들을 만났던 작품으로 선왕에 대한 복수에 나서는 햄릿을 왕자가 아닌 공주로 변주했다.

햄릿을 연기하는 이봉련은 “여자 배우에게 ‘햄릿’이라는 역할이 올 거라는 생각을 하면서 살지는 않았다”며 “그간 배우로서 희곡을 읽고 학습하고 훈련하면서 생각하고 떠올렸던 햄릿과 제가 가진 조건은 달랐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배우로서 그런 햄릿이라는 역할은 저의 편견을 발견하는 과정이에요. 햄릿은 이래야 한다, 연극이나 희곡 안에서 어떤 주인공은 어때야 한다는 편견을 계속해서 깨나가는 작업이자 제 인생의 천운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연극 햄릿 이봉련
연극 ‘햄릿’ 이봉련(사진제공=국립극단)

 

해군 장교 출신의 햄릿 공주를 연기한 이봉련은 이 작품으로 2021년 백상예술대상 연극 부문 연기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검투에 능한 해군 장교 출신의 당연했던 왕위계승자 햄릿 공주와 선왕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조사위원회를 거쳐 왕위를 계승한 클로디어스(김수현), 그와의 재혼으로 딸 햄릿을 광기로 몰아넣는 거트루드(성여진), 햄릿의 구애 상대인 오필리어(류원준), 햄릿의 충신이자 친구 호레이쇼(김유민) 등 등장인물은 같다.

 

하지만 복수극 보다는 청춘의 기록 그리고 설 자리를 잃은 젊은 세대와 그런 그들에게 “네가 누리고 있는 것들이 어디서부터 온 것인지 모르지”라고 되뇌는 기성세대의 갈등에 집중한다.

정진새 작가는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 블랙리스트 사건, 미투 운동 그리고 코로나 팬데믹에 이르기까지 2년 터울로 계속해서 문제들이 불거지면서 ‘연극은 무엇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하던 찰나에 ‘햄릿’을 만나게 됐다”고 털어놓았다. 

 

[국립극단] 햄릿(2024) 공연사진13
연극 ‘햄릿’ 공연장면(사진제공=국립극단)

“원작이 가진 기독교적이거나 여혐의 세계관을 드러내고 채울 수 있는 것에 대해 우리가 지금까지 어떻게 연구해 왔는지를 고민하던 상태였죠. (햄릿) 안을 들여다보면 기회나 자리가 주어지지 않는 젊은 세대의 이야기가 어떤 의미에서는 가장 동시대적이라고 할 수 있어요. 사실 그 얘기는 동시대적이면서 전세계적인 풍경이기도 하고 어떤 세대 혹은 시대에서도 받아왔던 질문이기 때문에 지금 더 주목받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아버지의 죽음에 의심을 품고 진실을 좇는 햄릿, 그 햄릿에 의해 아버지 폴로니어스(김용준)를 잃은 오필리어와 레어티즈(안창현) 그리고 동국의 왕자 포틴브라스는 어쩌면 설 자리를 잃고 부서져 가는 그 시대 그리고 지금의 청춘을 빗댄 인물들이다.

부새롬 연출은 “햄릿, 레어티즈, 오필리어, 포틴브라스는 비슷한 처지에 처한 4명의 젊은이”라며 “이 인물들이 어떤 시련 앞에서 각각 다른 선택들을 하는 모습들이 그려져 있다고 생각하고 연출했다”고 털어놓았다.

정진새 작가는 “원작 ‘햄릿’에서는 가장 중요한 질문이 누락돼 있다. 어떤 왕이 되고 싶은지에 대한 질문이 없고 햄릿도 그 고민을 하지는 않는다”고 밝혔다. 이어 “저희가 만들고자 했던 혹은 더 보고 싶었던 ‘햄릿’은 진실이 통용되는 국가 그리고 햄릿의 ‘아무도 죽지 마라’는 대사처럼 누구도 죽지 않는 안전한 국가”라고 부연했다.

“앞선 기성세대는 폭력과 정복을 통해 나라를 통치했지만 해군장교까지 역임하면서 국가 시스템을 이해하고자 했던 공주 햄릿은 다른 이상을 품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햄릿이 권력을 잡고 싶어 하는 이유이고 ‘왜 내가 이 나라를 대표해야 되는가’에 대한 명분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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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햄릿’의 정진새 작가(왼쪽부터), 이봉련, 부새롬 연출(사진제공=국립극단)

 

정 작가의 말처럼 햄릿은 “정확한 명분과 이유를 갖고 있는 어떤 시대의 젊은 지도자의 얼굴”이다. 이에 정 작가는 “근거가 명확한 햄릿의 몸부림이 보고 싶었다”며 “관객들 역시 햄릿의 몸부림 안에 정의로움, 진실함이 담겨 있기 때문에 공명하지 않나 생각한다”고 전했다.

부새롬 연출은 “어떻게 받아들이든, 어떤 메시지를 읽으시든 관객분들 각자가 생각하는 것들이 다 맞다고 생각한다”며 “이 작품이 던지는 메시지는 관객분들의 몫으로 남겨두고 싶다”고 전했다.

“다만 관객분들이 햄릿을 안타까워하고 좀 더 응원해주고 싶은 마음을 담아서 이 작품을 볼 수 있게 되면 좋겠습니다.”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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