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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그라운드] ‘운명의 조우’ 존 배 “음표 하나로 시작해 대화하듯 이어지는!”

입력 2024-08-30 19:31

존 배
2013년 ‘In Memory’s Lair‘ 후 10여년만에 개인전 ’운명의 조우‘를 진행 중인 존 배 작가(사진=허미선 기자)

 

“재미있을 같아서 해요. 시작 단계에서는 (재밌는 아이디어를 실현) 할 수 있을지도 몰라요. 재밌는 아이디어에서 시작해 연구하며 끝낼 뿐이죠.”



“작품을 하나의 음표에서 시작한다”는 존 배(John Pai)는 어쩌면 진정한 예술가의 현신일지도 모른다. 초안 스케치도, 청사진도, 대본도 없다. 마치 작곡을 하듯 음표와 음표를 연결하고 리듬이 만들어지고 밀도가 높아지면서 패턴이 자연스레 생겨난다.  

 

존 배 개인전 ‘운명의 조우’ 전경(사진=허미선 기자)
존 배 개인전 ‘운명의 조우’ 전경. 전시명과 동명의 작품.(사진=허미선 기자)

 

여든을 훌쩍 넘긴 나이지만 오래 걸리더라도 오롯이 혼자 자신만의 시간을 마주한다. 그 결과물이 어떨지 보다는 아주 얇은 철선을 한땀 한땀 붙이고 녹이며 구부리고 쌓아 올려 형상화하는 과정에는 그의 삶이 스몄는지도 모른다. 그 과정 속 ‘대화’를 중시하는 그의 작품들은 그 심오함 또한 남다르다.

2013년 ‘In Memory’s Lair‘ 후 10여년만에 개최한 개인전 ‘운명의 조우’(Shared Destinies, 10월 20일까지 갤러리현대 신관)에는 그렇게 음표 하나와도 같은 “재밌을 듯한” 아이디어로 시작해 작곡을 하듯 다음에 올 음, 또 그 다음에 올 음은 무얼까 대화하듯 만들어낸 70여년의 예술 여정이 스며들었다.
 

존 배
2013년 ‘In Memory’s Lair‘ 후 10여년만에 개인전 ’운명의 조우‘를 진행 중인 존 배 작가(사진=허미선 기자)

 

전시명과 같은 ‘운명의 조우’를 비롯해 속이 밖이 되는 밖이 속이 되는 아이디어가 재밌었다는 ‘인볼루션’(Involution)에는 그가 긴 작업 기간 동안 나눈 대화들이 고스란히 녹아들었다. 속과 밖은 완전히 갈라져 있을까, 저 사람이 내 옆에 같이 있는데 완전히 딴 세상일 수 있을까, 리얼리티라는 건 뭔가 등 묻고 또 묻는 수년간의 대화록인 셈이다.

자동차나 기계의 부품, 선, 면, 부피, 질감 등의 상호작용에 집중했던 1960년대 초기작을 비롯해 뫼비우스의 띠처럼 구가 중첩되며 저마다 다른 공간, 세계를 만들어내는 ‘인볼루션’과 ‘스피어 위드 투 페이스’(Sphere with Two Face) 등 1970년대 작품도 만날 수 있다.  

 

존 배
존 배 개인전 ‘운명의 조우’ 중 ‘인볼루션’(사진=허미선 기자)

 

구멍 뚫린 개방적 구조의 ‘아더 보이스’(Other Voices), 불규칙적인 큐브를 축적한 ‘패스트 임퍼펙트’(Past Imperfect)와 ‘큐브’(Cube), 비버 연못에서 시작한 ‘그레이트 배링턴’(Great Barrington), 이와 유사한 구성의 ‘여기 그리고 지금’(Here and Now), ‘잊혀진 규칙’(Forgotten Rule), 어려움을 겪던 동료를 지켜보던 느낌이 담긴 ‘라이즌, 폴른, 워큰’(Risen, Fallen, Walken), 도로 틈에서 자라난 풀에서 시작된 ‘기도’(Vigil) 등 1980년대 작품들은 자연 혹은 주변에서 영감받은 것들이다.

“라디오를 듣다 ‘물이 어디에서 왔냐’는 질문을 들었어요. 다들 물은 지구에서 오지 않았을까 생각하지만 사실 물은 우주에서 왔어요. 그냥 물의 형태가 아니라 눈꽃 모양으로 우주를 떠돌죠. 그런 관계가 되게 흥미로웠어요. 버팔로의 대변은 아름답지 않은 것으로 생각되지만 사실 초원을 건강하게 자랄 수 있게 하는 거름이잖아요. 그런 자연의 섭리가 되게 흥미로웠습니다. 아름답지 않은 것도 어딘가에는 다 쓰임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죠.” 

 

존 배 개인전 ‘운명의 조우’ 전경(사진=허미선 기자)
존 배 개인전 ‘운명의 조우’ 중 ‘하늘과 대지’ 연작(사진=허미선 기자)

 

얼핏 하늘로 향하는 존재들 혹은 아지랑이를 연상시키는 신작 ‘하늘과 대지’(Heaven and Earth)는 작업 중 모아뒀던 떨어진 조각들로 꾸린 연작이다. “작업실을 방문한 이들에게 ‘이걸로 어떻게든 다시 작업을 이어 가는 게 어떠냐’는 말을 듣고 습작처럼 시작해 최근에야 완성한” 작품이다.

“어떤 작품에서 떨어진 작은 조각들로 예전부터 붙이기 시작했던 작업인데 최근에야 마무리할 수 있었어요. 이런 모양들이 대지와 하늘을 연결시켜주는 것 같아서 ‘하늘과 대지’라고 제목을 지었죠.  

 

존배
2013년 ‘In Memory’s Lair‘ 후 10여년만에 개인전 ’운명의 조우‘를 진행 중인 존 배 작가(사진=허미선 기자)

  

작품 대부분의 재료가 철이다 보니 부식이 되거나 녹이 스는 등 관리 및 보존의 문제가 발생하곤 한다. 이에 대해 잘 관리를 해야 하지만 그래도 녹이 슨다면 그건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며 자연적인 현상이니 작업의 한 요소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전한 바 있다. 

 

칠을 하는 등 화학적으로 조치를 취할 수는 있지만 오래 가지는 못해요. 그저 신경 써서 잘 케어를 해줄 수밖에 없습니다. 가구나 옷감 등을 습기 안차게 잘 보존하는 것처럼, 사람과 살 듯 그렇게요.”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존 배 개인전 ‘운명의 조우’ 전경(사진=허미선 기자)
여든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여전히 오롯히 혼자 작업하는 존 배 개인전 ‘운명의 조우’ 전경(사진=허미선 기자)

 

존 배 개인전 ‘운명의 조우’ 전경(사진=허미선 기자)
존 배 개인전 ‘운명의 조우’ 전경(사진=허미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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