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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화려한 싱글? ‘헬조선’의 비자발적 싱글들

[싱글라이프] 직장 때문에… 육아 때문에… 집 때문에… 혼자산다 전해라~

입력 2016-01-20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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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스페셜 ‘엄마의 전쟁’의 한장면(TV화면 캡처)

 

혼자 사는 이유를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쉽지 않다. 대개 제 때 짝을 못 만나서거나 마땅한 짝이 없어서라고 두루뭉술 둘러댄다. 하지만 결혼 안하는 이유가 어디 그뿐일까. 겉으로 보기에는 ‘화려한 싱글’ 같아보여도 울며 겨자먹기로 싱글의 길을 택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여성들은 커리어와 가정, 두 마리 토끼를 쫓기 힘들어서 아예 결혼을 포기했다는 이들이 늘고 있다.



최근 화제를 모은 SBS스페셜 ‘엄마의 전쟁’은 같은 대학, 같은 과를 졸업한 캠퍼스 커플 출신 부부의 극명하게 다른 삶을 대조해서 보여줬다. 육아와 직장일을 병행하는 워킹맘은 직장퇴근과 동시에 가정으로 출근한다. 21세기지만 가사노동 및 자녀 양육에 있어 여성의 희생을 강요하는 사회적 분위기는 20세기와 다름없다.

지난해 취업포털 파인드잡이 20대 이상 기혼·미혼 여성 1203명을 대상으로 한 출산의식 현황 설문조사에서 아이를 낳고 싶지 않다고 답한 이들 중 19.5%가 육아에 대한 사회보장시스템 미흡을, 15.8%가 육아와 일 병행의 부담감을 꼽았다. 아이보다 내 커리어가 중요하다는 답도 6%를 차지했다 커리어를 중시 여기는 싱글녀들이 선배 워킹맘들과 달리 아예 싱글의 길을 선택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는 의미다.

남성들은 가족을 부양할만한 수입, 특히 주택마련 비용에 대한 부담감 때문에 배우자를 못 찾는 경우가 적지 않다. 지난해 서울시의회가 발표한 ‘서울특별시 1인 가구 대책 정책연구 최종보고서’에 따르면 서울에 사는 1인 가구 81.8%가 전세와 월세, 사글세로 살고 있다. 자가 주택 소유자는 16.4%에 불과했다.

 

설사 결혼을 했다 해도 주택 마련 비용 때문에 ‘렌트푸어’로 주저앉을 확률이 높으니 결혼을 꺼리게 된다. 결국 사회가 바뀌지 않는다면 싱글 가구가 더욱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야 말로 ‘헬조선’에서 각기 다른 이유로 싱글의 길을 택한 3인이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이야기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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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걸 "유리천장은 깼지만… 결혼하면 포기할 것 많다"

드라마 외주제작사 PD인 고윤아(40, 가명)씨는 자타공인 업계에서 능력을 인정받은 ‘알파걸’이다. 빼어난 리더십과 능력으로 대인관계가 중요한 외주제작업무를 효율적으로 처리한다.

 

거친 방송현장의 남자 직원들도 고씨 앞에서는 한 마리 순한 양이다. 남자직원들을 ‘수족’처럼 부리면서도 때로는 누나처럼 다독이는 부드러운 카리스마에 너도나도 고씨의 팀에 들어가기를 자처한다.

업계 여성후배들에게 선망의 대상인 고씨도 처음부터 ‘알파걸’은 아니었다. 지방대 출신인 고씨는 자신의 학력을 넘기 위해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일했다. 회식도 업무의 연장이라고 여겨 최신 걸그룹 댄스는 빼놓지 않고 익혔고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탬버린 치기를 도맡았다. 그렇게 쉼없이 15년을 일하다 보니 어느덧 40살. 직책은 팀장이다.

 

방송사와 연예기획사, 드라마 제작현장을 조율하는 고씨는 때로 자신의 아바타가 세개쯤 필요하다고 생각할 정도로 바쁘다. 그러다 보니 결혼은 엄두도 못낸다. 조금 더 정확하게 얘기하면 15년의 직장생활동안 한계단 한계단씩 올라온 지금의 자리를 놓치고 싶지 않아 결혼을 포기했다.

“저는 소위 말하는 ‘유리천장’을 깬 몇 안되는 여성PD라고 자부해요. 지금의 자리는 제가 노력해서 올라왔죠. 그런데 결혼하게 된다면 출산과 육아라는 관문이 기다려요. 혹시 남편과 합의 하에 아이를 가지지 않더라도 가사노동과 시월드라는 새로운 인간관계가 기다리고 있죠. PD업무는 고강도의 노동입니다. 많은 ‘워킹맘’들이 퇴근 뒤 집으로 출근한다는 표현을 쓰는데 저는 집에서라도 저만의 휴식시간을 갖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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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싱女 "자폐아동 키우기 힘든 나라… 재혼은 엄두도 못내"

 

영어학원을 운영하는 안소현(39, 가명)씨는 ‘돌아온 싱글’이다. 미국에서 석사학위까지 받았던 안씨는 넉넉하지 못한 집안 형편에 공부를 중단하고 돌아와 가정을 부양했다.

 

2008년 소개팅으로 만난 남자와 첫눈에 반해 결혼에 골인한 뒤 바로 아이를 가졌다. 하지만 누구보다 행복해야 할 신혼생활이 오히려 악몽의 시간이었다.

조각가 남편은 예술적인 기질은 뛰어났지만 경제적으로 무능했다. 친정식구를 부양해야 했던 안씨는 임신한 몸으로 반백수에 가까운 남편의 생활비와 예술활동까지 지원해야 했다. 설상가상 태어난 아이는 자폐아였다.

 

결국 안씨는 남편과 갈라섰다. 친정어머니가 아들의 양육을 맡고 안씨는 결혼 전과 마찬가지로 다시금 집안 생계를 꾸렸다. 큰키에 빼어난 미모를 자랑하는 안씨는 이혼 경력에도 불구하고 종종 뭇 남성들에게 대시 받곤 했다. 그러나 그에겐 보통 아이들과 다른 아들이 있었다. 더욱이 아들은 또래 아이들보다 키가 한뼘쯤 컸고 힘도 셌다.

 

점점 나이 들어가는 친정어머니가 혼자 양육하기에는 벅찼다. 8살이 됐지만 초등학교 입학도 거절당했다. 안씨는 요즘 GRE와 토플공부를 시작했다. 다시금 미국 유학을 떠나 그곳에서 아이를 키울 계획이다.

“우리나라는 장애아동을 키우기에 대단히 부적합한 나라예요. 사회안전망이 전혀 구축되지 않았고 장애아에 대한 인식도 전혀 개선되지 않았죠. 이런 환경에서는 설사 새로운 사람을 만난다고 해도 다시 아픔만 겪을 게 뻔해요. 저는 미국에서 특수교육 석사에 도전하려고 합니다. 장애아를 위해 차별 없는 시스템이 갖춰졌고 특수 교육도 받을 수 있으리라 기대해요. 만약 운이 닿는다면 새로운 사랑도 시작할 수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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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미족 "주거걱정에 자녀걱정까지… 내 삶은 어떡하라고"


홍보대행사를 운영하는 이성우(43)씨는 ‘화려한 싱글’이다. 그는 계절마다 아이스하키, 골프, 사이클 등 온갖 레포츠를 즐긴다. 1년에 2번 가량 해외 여행을 다니고 가끔 지인들과 근교로 출사를 나간 뒤 뒷풀이로 와인을 마시는 게 이씨의 낙이다. 전형적인 포미족인 이씨지만 아직 내집 마련은 하지 못했다.

이씨는 “40살이 넘었는데도 내 이름으로 된 집이 없어 가끔 부끄럽다”면서도 “내 삶의 즐거움을 포기하고 싶지 않다”고 털어놓았다. 장손인 이씨는 최근 대구 본가에 독신을 선언했다. 결혼 뒤 내집 마련과 자녀교육에 힘을 쏟는 대신 자신의 행복을 위해 시간을 투자하기로 결정했다.

“결혼하려면 포기해야 할 게 너무 많아요. 당장 주택마련은 물론 자녀 교육비도 부담이죠. 서울의 주택 가격은 전세계적으로 악명이 높을 만큼 비싸요. 그런데 허리띠를 졸라매서 집을 마련하고 아이들을 낳아 교육시키면 그 삶이 과연 행복할까요? 선배들 중에는 40대 중반 즈음부터 기러기 아빠로 사는 이들이 적지 않아요. 한국에서 아이를 교육시키고 싶어도 지금과 같은 교육시스템에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죠. 자신의 삶을 포기했는데 가족과 헤어져 산다? 대체 무엇을 위해 그런 삶을 택하는지 모르겠어요.”   

 

조은별 기자 mulga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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