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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사이드②]뮤지컬 ‘라흐마니노프’ 피아니스트 김기경·김여랑 “이제 클래식 피아니스트로 돌아갑니다!

입력 2020-06-13 19:00

뮤지컬 라흐마니노프
뮤지컬 ‘라흐마니노프’ 피아니스트 김여랑(왼쪽)과 김기경(사진=강시열 작가)

 

“라흐마니노프 같은 순간들은 늘, 되게 많아요. 특히 초중고교, 심지어 대학까지 함께 진학하면서 같은 콩쿠르를 준비하는 클래식 연주자들은 매일이 경쟁이죠. 콩쿠르는 한정적이고 1등은 한명이고….”



뮤지컬 ‘라흐마니노프’(6월 21일까지 예스24스테이지 1관)의 피아니스트 김기경은 “일상이 오디션 프로그램 같다”며 “도전하고 떨어지는 데 최적화돼 있어야 하고 마인드콘트롤도 잘 해야한다”고 토로했다.

뮤지컬 ‘라흐마니노프’는 ‘교향곡 1번’(Symphony no.1) 혹평 후 마음의 문을 닫아걸고 고뇌하던 러시아의 천재 음악가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박규원·이해준·정욱진, 이하 관람배우·가나다 순)와 그의 치유를 도운 정신의학자 니콜라이 달(유성재·임병근·정민) 박사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피아노 연주자로 살아가는 김기경과 김여랑 역시 극 중 라흐마니노프처럼 무한경쟁과 타인의 평가에 절망하고 상처받는가 하면 세상과 단절한 채 혼자 끙끙거리는 순간들을 맞이하곤 한다.


◇늘 라흐마니노프 같은 순간들
 

라흐마니노프 김기경
뮤지컬 ‘라흐마니노프’ 피아니스트 김기경(사진=강시열 작가)
“5살 때 ‘엄친딸’ 누나가 피아노 학원 연주회를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했어요. 그때 ‘엘리제를 위하여’를 듣고는 엄마한테 계속 불러댔다고 하더라고요. 전 기억이 나지 않지만 계속 불러대다가 피아노를 사달라고 졸라 생일선물로 받고는 다음해 1월 초부터 학원을 다니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오래 피아노를 쳐 오면서 절망의 순간들이 너무 많았어요.”

이어 김기경은 “저보다 커리어가 좀 더 화려한 사람으로 연주자가 갑자기 교체되는 일도 잦다”며 “한 사람에 대한 분노가 아니라 불특정한 사람들, 음악사회에 대한 원망이 생긴다”고도 털어놓았다.

“그런 원망이나 절망에 함몰되지 않기 위해서 스스로를 사랑하려고 노력해요. 달 박사가 라흐마니노프에게 하는 ‘새로운 곡을 쓰든 쓰지 않든 당신은 사랑받고 있다’는 말처럼요. (김)여랑이처럼 저 역시 피아노를 치면 힐링이 된다는 걸 알아요. 하지만 피아노를 연주하기 시작하는 순간 완벽해지고 튀고 싶은 욕망이 꿈틀거려요.”

그리곤 “피아노 앞에만 앉으면 그 병이 자꾸 도진다”는 김기경에 김여랑 역시 “저 역시 어려서부터 피아노를 치면서 계속 경쟁이었다. 그러다 보니 친구가 없다. 다들 경쟁자이고 서로를 밟고 올라가야하는 존재들”이라고 말을 보탰다.

“그러다 보니 저 역시 거의 매순간이 라흐마니노프 같았던 것 같아요. 저희 연주자들은 혼자 방구석에 틀어박혀서 한 평생을 외골수처럼 살아요. 그렇게 저와의, 경쟁자와의 싸움이 계속되다 보니 스트레스도, 상처도 많이 받죠. 그 역시 피아노랑 풀지만요.”

이어 “외국 연주회나 콩쿠르에서는 한번도 느껴보지 못한 감정들을 느낀곤 한다”며 “그들에게서 ‘얼마나 잘하는지 두고 보자’ 식의 태도가 많았다. 마치 아시아 피아니스트들의 재롱잔치를 보는 듯한 그들의 태도에 상처도 많이 받는다”고 덧붙였다.


◇ 나의 달 박사 같은 존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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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라흐마니노프’ 피아니스트 김여랑(사진=강시열 작가)

 

“처음 (김)기경 형을 만났을 때가 저한테는 달 박사를 만나는 느낌이었어요. 형이 ‘넌 힘든 걸 뭘로 푸냐?’고 따뜻하게 다가와 주셨거든요. 제가 워낙 낯을 가리는데다 내성적이라 사근사근하게 다가가는 성격이 아니다 보니 그렇게 먼저 따뜻하게, 진심으로 다가와주신 분은 처음이었거든요. 요즘 들어서 특히 더 형이 달 박사처럼 느껴져요.”

김여랑의 말에 김기경은 “여랑이는 이미 진정성이 배어 있다”며 “연기를 안하는 친구다 보니 제가 진정성 없이 대할 수가 없었다”고 화답했다.

“여랑이는 굳건한, 반석같은 사람이에요. 여랑이에게서 제가 잊고 살았던 겸손함을 배우죠. 저는 누가 띄워주면 너무 거만해져서 뒤를 못돌아보는데 여랑이를 보면서 초심같은 자세를 배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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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라흐마니노프’ 피아니스트 김기경(사진=강시열 작가)
이렇게 전한 김기경은 스스로의 달 박사 같은 존재들에 대한 일화를 털어놓았다. 3년 동안 독일 베를린에 있다가 프랑크푸르트와 슈트트가르트에서 1년씩, 총 5년을 독일에서 보낸 그는 “프랑크푸르트에서 1년 동안 쉬던 때”를 떠올렸다.

“그때는 정말 아무 것도 없었어요. 그래서 선교단체에 몸 담고 사역자들 숙소에서 짐 보따리를 옮기면서 살았어요. 연주자의 길 펴려고 유학을 왔는데 ‘난 여기서 뭘 하고 있나’ 암담했어요. 되지는 않는 독일어, 영어로 수백개 극장에 지원을 했어요.”

지원서에는 ‘아시아에서 온 피아니스트고 일자리가 필요하다’ ‘곧 보험 만료일이 다가와 일자리가 급하다’는 절박한 내용들이 포함됐다. 그 과정에서 김기경은 “동양인 등에 대한 차별을 경험했고 환멸을 느꼈다”고 고백했다.

 

“연습공간이 없어서 극장 리허설 룸에 몰래 들어가 연습을 하다가 도망나오기도 했어요. 그러던 어느날 지친 상태에서 프랑크푸르트의 마태교회에 들어갔는데 가와이 그랜드 피아노가 있더라고요. 너무 연주하고 싶은 마음에 주변을 서성이고 있으니 관리자 분이 오셔서 ‘넌 누구냐’고 물으시길래 다짜고짜 ‘피아노를 치고 싶다’고 했죠. 피아노를 공부하는지를 물으시더니 교회가 문을 닫는 7시까지 마음껏 치라고 하시더라고요.”


그간 못했던 연주를 마음껏 했던 그에게 교회의 목사는 “교회 바로 옆에 있는 유치원 아이들 교육에도 좋을 것 같다”며 기꺼이 열쇠를 내주었다. 김기경의 전언처럼 “되게 힘들고 연습할 데도 없고 오갈 데도 없어” 몸과 마음이 지칠 대로 지친 2014년의 일이었다.

“그렇게 조율비만 내고 5달 정도 피아노 연주를 했어요. 제가 머물던 사역자 숙소까지 1시간 정도 거리였는데 피아노를 치다 기차가 끊겨 교회 의자에서 잠을 자기도 했어요. 그때 나타났던 조력자들이 저에겐 달 박사 같은 존재들이죠. 그 열쇠는 가보로 여전히 가지고 있어요. 그 열쇠만 보면 울컥울컥하죠.”


◇사람들과의 교감에서 힐링받는 김기경, 모든 것은 피아노로부터 김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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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라흐마니노프’ 피아니스트 김기경(사진=강시열 작가)

 

“나를 알아줄 때 혹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나 혼자 재밌는 걸 할 때 힐링을 받는 것 같아요. 예를 들면 혼자서 차를 끌고 서울 외곽의 카페에서 맥북을 켜놓고 음악을 듣고 작업을 하다가 먼산을 바라보는 순간이요.”

이어 김기경은 “그리고 사람들과 교감할 때도 힐링을 받는다”며 “집이 사람들로 바글바글하면 좋겠다”는 극단적인 답도 내놓았다. 그는 “그래서 유튜브도 좋다. 댓글로 확인하는 욕도, 칭찬도 재밌다”고 털어놓았다.

“코로나19가 대유행하기 전에 제 유튜브에 댓글을 달았던 사람들을 집으로 초대했어요. 정말 저를 사랑해주는 분들이 오셨어요. 그 분들 대부분이 피아노 전공자거나 아마추어 연자자라서 ‘피피’라는 모임을 만들었죠. ‘피아노파티 피아니시모’라는 모임인데 감자 샐러드 빵도 만들어 먹고 수다도 떨고 피아노도 연주했어요. 원래 2시간을 계획했는데 5시간 넘게 진행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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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라흐마니노프’ 피아니스트 김여랑(사진=강시열 작가)

 

김기경의 말에 김여랑은 “공연준비하면서 저도 형 집에 자주 가서 새벽까지 악보도 그리고 연습도 하곤 했다”고 전했다.

“저는 모든 것이 피아노에서 와요. 가장 행복한 순간도, 가장 힘든 것도, 힐링이 되는 것도 피아노죠. 애증이에요. 떼고 싶다가도 뗄 수 없는 존재죠. 제가 연주하는 피아노에 사람들이 힐링받는 걸 보면서 저도 힐링을 받아요. 제가 이 길을 계속 갈 수 있는 원동력 같아요.”


◇“이제 저희는 본업인 클래시컬 피아니스트로 돌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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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니스트 김기경과 김여랑은 ‘클래시컬 피아니스트로 돌아간다’고 이후 계획을 전했다.(사진제공=HJ컬쳐)

  

“이진욱 음악감독님이 만드는 작품이라면 다시 뮤지컬을 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하지만 ‘라흐마니노프’ 하나만으로도 저에겐 충분히 영감을 주셨으니 저는 이제 클래식 연주에 매진할 거예요. 뮤지컬 하면서 달라진 테크닉을 고르게 하기 위해서요.”


이렇게 전한 김기경을 비롯해 김여랑 역시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COVID-19, 이하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취소되거나 연기됐던 클래식 무대, 콩쿠르 및 유학 준비에 매진한다는 계획을 털어놓았다.

김기경은 6월 18일 30여만 팔로워를 보유한 페이스북페이지 ‘클래식에 미치다’ 콘서트(성남 티엘아이 아트센터)를 시작으로 봄아트프로젝트 온라인 ‘방구석 콘서트’(6월 22일) 및 오프라인 ‘방구석 탈출 콘서트’(6월 27일 오드포트), 소프라노 김성혜와 함게 하는 롯데콘서트홀 무관중 온라인 공연(6월 25일) 무대에 오른다.

더불어 8월 18일에는 지휘자 금난새, 성남시립교향악단과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제 1번 C장조’ ‘교향곡 제2번 D장조’를 선사할 예정이기도 하다. 김여랑 역시 코로나19로 잠시 멈췄던 콩쿠르 및 유학 준비에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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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라흐마니노프’ 피아니스트 김여랑(사진=강시열 작가)

 

“뮤지컬에 대한 생각은 아예 없었는데 ‘라흐마니노프’를 하면서 관심이 생겼어요. 피아니스트가 출연하는 뮤지컬이 꽤 있더라고요. ‘쓰릴미’는 한번 해보고 싶긴 해요. ‘라흐마니노프’와는 완전 다른 느낌으로 연주할 수 있겠다 싶어요. 하지만 생각 뿐이고 저는 이제 다시 콩쿠르와 유학을 준비하면서 본업으로 돌아가야죠. 코로나19로 클래식 공연들이 취소되면서 뮤지컬에 집중하는 시간이 길어졌어요. 그러다 보니 클래식과 간극이 너무 멀어져 버렸죠. 요즘은 그걸 맞추느라 힘들어 하고 있어요. 이번 기회로 뮤지컬과 클래식을 잘 넘나들 수 있도록 잘 훈련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김여랑의 말에 김기경은 “여랑씨가 제 유튜브에서 독주회를 하시면 될 것 같아요”라며 “일단 ‘라흐마니노프’로 한번 엮이면 계속 가는 것 같아요. 촘촘히 잘 짜여진, 너무 아름다운 양탄자랄까요?”라고 눙친다. 이에 김여랑은 영화 ‘기생충’의 “다 계획이 었었구나”라는 대사를 언급하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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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라흐마니노프’ 피아니스트 김기경(왼쪽)과 김여랑(사진=강시열 작가)

 

“가끔 돌아보면 소름이 끼칠 때가 있어요. 이미 짜여져 있었던 건가 싶고…요즘 생각으로는 ‘이미 다 계획돼 있었던 거구나’ 싶어요.”

이렇게 전한 김여랑은 “어떤 피아니스가 되고 싶냐”는 질문에 “어려서는 감정이 가장 중요했는데 지금은 이성과 감성이 공존하기 위한 밸런스를 추구하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제가 백날 감정을 관객에게 전달하려고 해도 테크닉적으로 문제가 생기면 제가 생각한 걸 전달 할 수 없거든요. 그리고 오래 가는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어요. 가장 존경하는 백건우 선생님처럼 최대한 오래 피아노를 치고 싶어요.”

김기경은 “나중에 돌아봤을 때 이 사람 때문에 한국 피아노계가, 정형화된 클래식 시장이 자유로움을 얻었다는 평가를 받는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다”고 털어놓았다.

“혁신적인 인물이고 싶어요. 기획사들의 기획에 동원되는 아티스트가 아니라 스스로 기획하고 제안해 공연을 직접 꾸려나갈 수 있는 아티스트들의 클라우드 역할을 하고 싶어요. 그러기 위해선 제가 많이 해봐야 하니까 당분간은 그런 형태의 공연들에 집중할 생각입니다. 스스로가 직접 기획해 제안할 수 있는 아티스트들이 많이 양성돼서 문화시장이 다양화되면 좋겠어요.”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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