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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김희근 한국메세나협회장의 밸런스論 “삶도, 예술도, 돈도, 메세나도 밸런스!”

[허미선 기자의 컬처스케이프] 김희근 한국메세나협회 신임회장

입력 2021-03-12 18:15
신문게재 2021-03-12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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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근 제11대 한국메세나협회 신임회장(사진=이철준 기자)

 

“미국 유학을 앞두고 있던, 당시 고3이던 제일 위 형님께서 응접실에서 친구들과 토론을 하면서 클래식 음악을 듣더라고요. 그때는 그게 클래식인 줄도 몰랐죠.”



그렇게 뭔지도 모른 채 클래식을 접했던 소년은 거친 중동 사막의 건설현장에서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마음의 평안을 얻었고 만 75세가 된 2021년까지도 음악 뿐 아니라 미술작품, 연극 분야까지 문화예술을 아우르는 메세나 기업인으로 성장했다.

지난 3일 제11대 한국메세나협회장으로 선출된 김희근 벽산엔지니어링 회장은 그 스스로 수백점의 미술작품을 보유한 컬렉터이며 글로벌 챔버오케스트라 세종솔로이스츠 창단을 함께 했고 벽산희곡상 제정으로 한국 연극의 부흥·발전에 애쓰고 있다. 그는 다양한 문화예술 분야를 후원하는 데 대해 “다른 사람들 하는 거 그냥 해요”라고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미국 마이애미) 대학을 졸업한 후 바로 사우디로 가 건설 일을 하던 1970년대 중반쯤인가에 동갑내기 친구이자 강효 음악감독과 세종솔로이스츠를 창단한 김태자가 연락을 해왔어요. (클래식 음악 쪽에) 한국 영재들이 많은데 미국에서 공부도 시키고 해외 진출도 돕고 싶은데 돈이 없다고.”

그렇게 음악하는 동갑내기 친구들을 포함해 뜻이 맞는 이들이 모여 한국의 음악 영재 지원을 위한 코리안뮤직파운데이션을 만들었다. 그의 말을 빌자면 “이사 시켜줄테니 가입비 1만불, 1년에 1000불을 내라”는 친구의 제안으로 몸 담은 첫 음악후원단체였다.

몇년 후 100만불을 훌쩍 넘기는 바이올린, 첼로 등 클래식 악기 구매를 제안하는 친구에게 “만불 내는 것도 아까워 죽겠는데!”라고 응수했던 김희근 회장은 현재 하루 일정의 80% 이상을 문화예술 활동으로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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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근 제11대 한국메세나협회 신임회장(사진=이철준 기자)
◇삶도, 예술도, 돈도, 메세나도 ‘밸런스’

“밸런스!”

김희근 회장은 삶에서, 돈과 시간 운용에서, 메세나 활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한결같이 “밸런스”를 외쳤다. 그는 “삶도, 돈과 시간도, 메세나도 무엇에 어떻게 쓰느냐가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돈도 그래요. 메세나 활동을 통해 돈의 가치를 깨닫고 어떻게 써야하는지가 문화예술 이상으로 중요하다는 사실을 기업인들에게 전도하고 싶어요. 제 자식들과 얘기하면서 큰소리가 나는 주제이기도 해요. 돈을 버는 건 그렇게 어렵지 않아요. 일종의 룰이 있거든요. 하지만 돈 쓰는 건 그렇지 않아요. 삼대가는 부자가 없다는 말이 그래서 나오는 거예요. 돈이라는 건 항상 귀한 거에요. 옛날 1억이나 지금 1억이나 귀하긴 매한가지거든요.”

이어 “그 돈과 내 시간을 어떻게 쓰느냐가 세계적인 CEO들의 지금까지도 중요한 이슈인 이유”라며 “행복의 경우는 ‘밸런스 오브 라이프’다. 가족, 건강, 돈, 친구 등의 밸런스를 어떻게 잡아 사느냐가 핵심”이라고 말을 보탰다.

“물론 사람마다 차이는 있죠. 밸런스를 잘 지키면서 생각했던 대로, 환경이 변하면 변하는 대로, 나이 들면 드는 대로 행복하고 부끄러움 없이 자랑스럽게 살아야죠. 모두가.”

‘밸런스’를 중시하는 김 회장의 지론은 메세나 활동에도 적용된다. 그는 “메세나도 이것저것 밸런스를 맞춰 할 수 있는 건 다 해야 한다”고 털어놓았다. 이는 한국메세나협회의 2021년 행보와도 맞물린다.

그 행보는 그간 대기업에서 주로 이뤄졌던 메세나 활동을 규모에 상관없이 작은 기업들이 좀 더 많이 참여할 수 있도록 저변을 확대하고 예술가들에게 단지 돈으로 지원하기보다 기업들이 프로그램화해 주변 여러 사람을 참여시켜 메세나의 가치를 확인시키는 것으로 정리된다. 더불어 서울과 수도권에 편중된 메세나 활동이 지역에 고루 퍼져 지역예술까지 균형 발전시키는 것 또한 2021년 한국메세나협회의 목표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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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근 제11대 한국메세나협회 신임회장(사진=이철준 기자)

 

“지난 27년간 순수예술 지원은 안정화가 됐지만 후원 분야 확대가 숙제인 것은 사실이에요. 제가 잘 모르는 분야는 배우고 귀 기울이면서 K팝 등을 선호하는 최신 트렌드에 맞는 프로그램을 만들 겁니다. 더불어 퀄리티를 높여야겠다는 생각도 해요.”

더불어 기업 혹은 개인의 메세나의 영역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기도 했다. 김 회장은 “소외계층은 정부가 잘하고 있다”며 “지방마다 극장, 오케스트라가 다 있고 소외계층을 위한 연주, 전시에 대한 예산도 따로 있다. 기업의 메세나까지 그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지역의 중소기업들을 육성해 그곳을 중심으로 문화예술 지원을 이끌어내는 쪽이 좋다고 생각해요. 일례로 울산의 한 치과의사가 건물을 지어 커피숍, 공연장, 갤러리 등 공간을 만들어 지역민들을 초대하면서 메세나를 실현했어요. 그렇게 문화를 향유하고 협상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국가에서 주는 돈만으로는 오래 갈 수도, 문화선진국이 될 수도 없어요.”

그리곤 국립현대미술관과 뉴욕의 모마(MOMA) 미술관을 예로 들었다. 그는 “국립현대미술관은 100% 정부지원이지만 모마는 공적자금이 17% 뿐”이라며 “나머지는 개인후원이고 고비율로 후원하는 개인도 없다”고 전했다.

“정부 세금으로 모든 걸 할 수는 없어요. 기업의 세제혜택을 제도화해 민간 자본이 예술계에 자발적으로 흘러 들어올 수 있게 통로를 열어주는 게 효율적이죠. 세제혜택을 받고 즐거운 마음으로 생색을 내며 기부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해야 해요. 그런 세제혜택이 법제화되는 날까지 한국메세나협회가 함께 할 겁니다. 명실공히 10위 안에 드는 경제대국과 문화대국, 행복지수 5위 안에 드는 나라가 되는 것이 우리 모두의 소망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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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근 제11대 한국메세나협회 신임회장(사진=이철준 기자)
◇예술의 선한 영향력, 그에 대한 믿음으로

“제 삶이죠. 집사람은 예원학교, 이대 조소과를 나왔고 딸도 서양학과 출신이에요. 아들도 미국에서 미술을, 파리 르꼬르동블루에서 요리를 공부하다가 지난달부터야 MBA를 시작했어요. 가족 뿐 아니라 주변에도 예술가들이 많아요. 제가 보내는 시간 대부분이 문화예술이죠.”

그렇게 예술가들로, 문화예술로 둘러싸여 산다는 그에게 “문화예술은 무엇이냐”는 질문을 던지자 “삶 그 자체”라는 답이 돌아왔다.

“문화예술이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력을 믿어요. 저 역시 클래식 음악에 관심을 가지고 음악인들을 후원하고 미술작품을 모으면서 많은 공부를 하고 싶어졌거든요. 꾸준히 예술을 접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선한 영향력을 안미칠 수가 없어요.”

예술로 인한 선한 영향력은 2019년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에서 열었던 컬렉터 스토리展의 일환인 ‘김희근’展과 4월 4일까지 여수의 GS칼텍스 예울마루에서 진행될 ‘김희근 컬렉션’展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러프하고 해외에 머무는 시간이 많은 건설업종을 일생 내내 했는데 어떤 연유에선지 클래식 음악을 들으면 마음이 편해져요. 누구의 어떤 작품인지도 잘 몰라요. 차에서도, 사무실에도 항상 틀어놓고 있죠. 사무실 벽에는 많은 그림들이 걸려 있어요. 그러다 보니 후원을 하게 되고 공부도 좀 하게 되고…. 저는 음악도, 미술도 개인적으로 되게 재능이 없어요. 그래서 예술인들이 매력적으로 느껴져요.”

그리곤 “자유로운 영혼으로 창의적인 작업을 하는 미술 작가들을 보면 부럽고, 절대적인 연습을 게을리 하지 않으면서 자신을 갈고 닦는 연주자들을 봐도 부럽고, 멀티 예술가인 연극인들을 보면서도 부럽다”며 “그런 이들과 후원자를 만나게 해주고 얘기하면서 행복하다”고 털어놓았다.

“하루 종일 그런 생각을 하고 살아요. 문화예술이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어떻게 하면 더 다양한 곳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을까. 그런 생각들이 즐거워요. 이를 위한 어떤 과제라도 주어지면 기꺼이 시간을 쓰려고 합니다. 어떤 효과라도 있기를 바라면서 할 수 있는 만큼은 해야겠다고 다짐해요. 그러니 만 75세에 한국메세나협회장을 맡아서 78세까지 안간힘을 써보려고 하는 거죠.”


◇예술은 곧 삶, 발전, 혁신의 모티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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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근 제11대 한국메세나협회 신임회장(사진=이철준 기자)

 

“아무리 예술가라도 살아남는 법을 배워야 해요. 좋아서 하는 일이잖아요. 시기가 어려우면 어려운대로 살아남아야 해요. 본인은 노력하지 않으면서 누군가 떠먹여주기만을 바라는 예술가들은 모티베이션이 생기질 않아요. 게으르고 적당히 넘어가려는 예술가는 도와줄 수가 없죠. 자신이 갈 길을 스스로 그리고 찾아냈을 때의 기쁨이 있잖아요. 그 기쁨을 주는 예술가라면 함께 하며 뭔가를 이뤄낼 수 있도록 기꺼이 기업이 동참하고 후원할 겁니다.”

직접적이고 단순한 금전 및 하드웨어 후원이나 지원보다는 동기유발에 중점을 두는 메세나를 추구하는 김 회장은 종교를 예로 들었다.

“달동네를 가도, 근린상가에도 교회들이 즐비해요. 밤에 보면 십자가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잖아요. 그게 기업후원으로 가능해졌겠어요? 자발적이죠. 고해성사, 기도, 좋은 말씀, 불경 등을 들으면서 마음의 평안을 느끼기 때문이에요. 옛날 십자군전쟁 때처럼 천국에 가는 표를 돈 주고 사는 시대가 아니잖아요. 그런데도 사람들은 십일조를 내고 시주를 하죠.”

그리곤 “그렇다면 문화예술은 왜 지금까지도 ‘당장 먹고 살기도 힘든데’라는 말을 듣는지를 생각해볼 때”라며 “효과가 없어서, 동기유발이 되질 않아서, 내 돈이 어떻게 쓰였는지 알 수가 없어서”라고 부연했다.

“기업이나 개인들이 문화예술 후원을 꺼리는 건 돈이 없어서도, 당장 먹고 살기 힘들어서도 아니에요. 문화예술의 파급효과를 절실히 못느껴서예요. 예술가나 메세나 기업, 후원가들 뿐 아니에요. 누구에게나 동기유발이 중요하죠. 열심히 살아야 한다, 행복하게 살고 싶다 생각할 수 있도록요. 그걸 발전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혁신이라고도 해요. 뭐라고 불러도 상관없어요. 아무리 시대가 빠르게 변한다 해도 기본은 변함이 없거든요. 그 기본인 동기유발이 문화예술과 저 그리고 메세나협회의 숙제죠.”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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