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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서혜란 국립중앙도서관장 ① “편안하고 연구하고 창조하는 미래도서관을 꿈꾸다”

[컬처스케이프]

입력 2021-04-23 18:45
신문게재 2021-04-24 12면

서혜란 국립중앙도서관장
서혜란 국립중앙도서관장(사진=이철준 기자)

 

“디지털 세상으로 빠르게 변화하면서 정보의 창작자와 소비자의 경계가 사라졌어요. 지금까지도서관은 누군가 창작한 정보를 수집해 소비자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해왔죠. 하지만 미래도서관은 누구나 정보 창작자인 동시에 소비자로서 수많은 정보자료로 다양한 창작을 할 수 있는 플랫폼이 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2019년 8월부터 최초의 전문직 관장으로 국립중앙도서관을 이끌고 있는 서혜란 관장은 미래도서관에 대해 “창조공장 혹은 창작 플랫폼”이라고 표현했다. 그리곤 “그걸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 2층의 미디어 창작실”이라며 “단순히 공간만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창작에 필요한 여러 가지 지원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서혜란 국립중앙도서관장
서혜란 국립중앙도서관장(사진=이철준 기자)

“누구나 정보 창작자이자 소비자가 되면서 중요해진 정보윤리를 포함한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 프로그램도 꾸준히 운영하고 있죠. 도서관은 더 이상 조용히 정적으로 공부하는 공간이 아니에요. 많은 사람들이 오가며 만나고 대화하고 토론하며 시너지와 영감을 얻어서 또 다른 무언가를 창조해내는 플랫폼이죠.”


 

◇도서관은 그 나라의 미래다!

“한국은 글로벌 10대 경제대국으로 성장했어요. K열풍으로 드라마, 팝, 문학들까지 해외에서 소비되는 현상이 코로나19 팬데믹 이후로 더욱 심화되고 있죠. 하지만 그것이 미래를 보장해주지는 않는다고 생각해요.”

서혜란 관장은 “도서관은 그 나라의 미래”라는 지론을 강조해 왔다. 그는 “도서관 내에는 수많은 정보가 있고 그것들을 이용해 새로운 정보들이 끊임없이 만들어지는 현장”이라며 “이용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고 어떻게 이용하는지에 따라 그 나라의 미래 지적 수준, 사회의 지속가능성 등이 밝혀진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우리의 도서관은 상대적으로 ‘너무’ 뒤쳐져 있어요. 미래도서관에 투자하지 않는다면 그 어떤 비약적인 발전이나 열풍도 반짝 하고 말 거라고 생각해요. 먹고 사는 데 바쁘니 ‘도서관은 나중’은 어폐가 있어요. ‘먹고사니즘’(먹고 사는 일을 최우선으로 하는 태도)을 해결하고 도서관이 있는 게 아니라 먹고사니즘을 해결하는 곳이 바로 도서관이거든요.”

이어 “부를 창출하기 위해 투기를 한다는 건 결코 건강한 사회가 아니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창출해야한다”며 “사람들이 이야기하고 토론하며 정보를 얻어 창업이든, 새로운 연구든 하기 위해서는 도서관이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럴 때 일수록 상대적으로 뒤쳐진 도서관에 대한 투자가 정책적으로도 필요해요. 도서관에 대한 투자가 미래를 위한,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한 투자거든요. 동시에 더 많은 사람들이 도서관을 이용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도서관은 성장하는 유기체, 여전히 ‘사람’이 중심 되는 미래도서관

서혜란 국립중앙도서관장
서혜란 국립중앙도서관장(사진=이철준 기자)

 

“문헌정보학과에 입학하면 제일 먼저 배우는 것 중 하나가 시얄리 라맘리타 랑가나단(Shiyali Ramamrita Ranganathan)의 도서관학 5법칙이에요. 그 중 다섯 번째 법칙이 ‘도서관은 성장하는 유기체다’(A Library is a Growing Organism)죠.”

서 관장은 “도서관은 환경에 적응하고 바뀌는 생명체”라며 “실제로 도서관의 역사는 인류 문명사와 동시에 시작했다. 고대에도 도서관이 있었고 중세, 근대, 현대는 물론 동서양을 막론한 문명권마다 도서관이 있다”고 밝혔다. 

 

“어디나, 어느 시대나, 미래에도 근본적인 틀은 같아요. 누군가 생산한 정보를 수집·축적해 필요한 사람들에게 제공하죠. 시대에 따라 정보가 필요한 사람은 바뀌어 왔어요. 고대에는 지배계층이었고 도서관은 그들을 위해서만 봉사했어요. 근대 이후로 이용 범위가 대중들로 확산됐죠. 그렇게 사회, 환경의 변화, 기술의 발전에 따라 도서관은 정보제공 방식, 건물 모양, 서비스 내용 등을 바꿔가며 변화하고 성장해왔어요. 그러다 보니 너무 먼 미래의 도서관은 상상하기도 어렵죠.”
 

서혜란 국립중앙도서관장
서혜란 국립중앙도서관장(사진=이철준 기자)

그리곤 “현재 기술에 근거해 가까운 미래, 지금으로부터 50년 정도 후의 도서관에 대한 전시를 준비 중”이라고 귀띔했다. 

 

27일부터 시작되는 ‘미래 도서관 특별전’(5월 31일까지 국립중앙도서관 본관1층 기획전시실)은 지난 3월 선보인 실감형 콘텐츠 ‘실감서재’에 이어 미래도서관을 미리 만날 수 있는 기회다.


“도서관의 여러 업무 중 루틴한 것들은 인공지능(AI) 로봇이 대신할 거예요. 지금도 AI가 도입돼 있지만 좀 더 진보된 모습이겠죠. 드론이 서가에서 책을 가져다주고 빅데이터를 활용한 개인 맞춤형 서비스가 고도화되고 정보검색 방식도 지금과는 완전 달라질 거예요.” 

 

이미 시작된 ‘나만을 위해 움직이는 미래도서관’의 뒷단에는 서혜란 관장의 말처럼 “사서들이 끊임없이 작업 중”이다. “사서들 역시 시대에 따라 일하는 방식을 바꿔 왔다”는 서혜란 관장 역시 사서 출신이다. 미래도서관에서 그 역할이 더욱 중요해질 사서가 지녀야할 첫 번째 덕목으로 서혜란 관장은 “사람”을 꼽았다.

“교직에서 문헌정보학과 지원생들의 면접을 보다 보면 ‘책이 좋아서 사서가 되고 싶다’는 친구들이 많아요. 그런 친구들에게 얘기해주죠. 책과 더불어 사람을 좋아해야 한다고. 사서는 어떤 도서관에서 일하든 정보와 이용자를 만나게 해주는 사람이에요. 우리가 연결해야하는 한쪽에 사람이 있잖아요. 그래서 좋은 사서에게 필요한 것은 이용자 분석 능력, 사회 및 시류에 대한 통찰력이죠. 늘 깨어 있어야 하고 끊임없이 연마하지 않으면 좋은 사서가 될 수 없어요. 굉장히 다양한 능력이 필요한 직업이거든요.”


◇고문서 디지털화와 AI 번역부터 평창 보존관까지

서혜란 국립중앙도서관장
서혜란 국립중앙도서관장(사진=이철준 기자)

 

“국립중앙도서관의 또 다른 중요한 기능 중 하나는 고문헌·문서·기록의 보존과 디지털화예요. 우리 도서관의 뿌리는 어쨌든 조선총독부 도서관이에요. 1923년 개관해 단 하나의 유출도 없이 지켜내 보존하고 있는 1920~40년대 근대문헌들은 소중한 자산이죠.”

그 후 수집한 동의보감 등 국보와 보물급 고문서들의 보존은 물론 규장각, 장서각 등 타 기관에서 보존·관리 중인 문헌들을 한눈에 찾아볼 수 있는 ‘한국 고문헌 종합목록’을 운영 중인가 하면 디지털화에도 힘을 쓰고 있다.
 

“저희 소장 자료들 뿐 아니라 다른 도서관 자료들까지 디지털화를 하고 있어요. 국립중앙도서관은 그에 관련한 최고의 시설과 기술을 가지고 있죠. 예산의 문제가 있어 순차적으로 진행하고는 있지만 투자가 가장 많은 분야도 디지털화예요. 현재로서는 150억원 규모지만 205억까지 늘릴 계획이죠. 저희 국립중앙도서관은 디지털화에 관한 기술과 노하우, 인력을 갖추고 있다고 자부합니다. 정부의 뉴딜·디지털 집현전 사업에서도 저희 국립중앙도서관의 기술력과 경험이 잘 활용되기를 바라고 있어요.” 

 

고문헌의 디지털화와 더불어 최근 서 관장은 인공지능을 활용한 고문헌 자동번역 시스템을 연구개발 중이기도 하다. 서 관장은 “아무리 귀중하고 유용한 정보도 무슨 소린지를 알 수 없으면 그림의 떡”이라며 “고문헌 번역은 전문인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쉬운 일이 아니다. 인쇄본, 특히 초서체 필사본 번역은 어려운 작업”이라고 토로했다.

 

서혜란 국립중앙도서관장
서혜란 국립중앙도서관장(사진=이철준 기자)

“그런 어려운 작업을 인공지능에 학습시켜 해결할 수 있을지를 가늠 중이죠. ‘독립신문’ ‘매일신보’ 등 근대신문 실험 결과는 99% 이상의 정확도를 보이고 있어요. 이를 통해 고문헌 번역에 투자되는 시간과 노력, 비용을 최소화하면서 보다 많은 사람들이 실제 내용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이어 “다양한 이용자들 중 연구자들을 위한 전문 서비스”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대학, 연구소 등에 소속돼 있지 않은 젊은 연구자들이 굉장히 많다”며 “공간 제공, 개인화 서비스 등 연구정보 전문 서비스 확대로 국립중앙도서관이 그들을 위한 연구센터가 돼야한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서 관장은 또 다른 주력 사업으로 “국립중앙도서관 평창 문헌보존관(이하 평창관) 건립 및 운영 방안과 비전 설계”를 꼽았다. 현재 국제설계경기(International Design Competition, 현상공모) 중인 평창관에 대해 서혜란 관장은 “해외 사람들이 반드시 견학해야하는 곳으로 만들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일단은 좋은 설계를 하는 게 중요해요. 그냥 보존관 건물 하나를 짓는 게 아니에요. 이런 보존관은 세계 어디에도 유래가 많지 않아요. 전세계 많은 사람들이 한국의 평창 문헌보존관을 견학 오게 하고 싶어요. 단순한 책 창고가 아닌, 전세계 보존관의 모범이 되는 그런 곳이요.”

이에 서 관장은 외관 설계와 더불어 ‘디지털화 기능’에 방점을 찍는다. 그는 “보통 자료의 디지털화에는 관심이 많지만 디지털 자료 보존은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며 “하지만 디지털 자료 보존은 아날로그 자료 보전과는 전혀 다른 기술적 문제”라고 짚었다. 

“디지털 자료 보존에 대한 연구개발로 현재 세계적으로 앞서가는 기술을 빨리 따라잡고 싶어요. 완공(2024년)은 볼 수 없지만 제 남은 임기 동안 설계안과 운영안을 잘 만들어보고 싶어요.”

이는 국립중앙도서관이 한국을 대표하는 도서관 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한국을 대표하는 도서관으로 자리매김하기를 바라는 서 관장의 염원과 맞닿아 있다.

“우리 국민들에 대한 서비스는 물론 재외동포들에 대해서도 서비스할 것들이 많아요. 그런 역할에도 신경 쓰고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해외 도서관과의 교류도 저희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죠. 코로나 사태로 쉽지는 않지만 한국에 대해 알고 싶어 하는 나라에 한국학에 대한 지원을 하고 있어요. 이 부분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해외에 진정한 한국학자, 한국을 진짜로 이해하는 지한파들이 많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 부분에 공헌을 하고 싶어요.”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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