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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더컬처] ‘사랑의 파국’ 노래한 넬 “첫곡부터 마지막까지 순서대로 들어달라”

입력 2021-09-04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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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드 넬 (사진제공=스페이스보헤미안)




“첫 곡부터 마지막 곡까지, 꼭 순서대로 들어주셨으면 좋겠어요.”

지난 2일 정규 9집 ‘모멘츠 인 비트윈’(Moments in between)을 발표한 밴드 넬의 리더 김종완은 최근 진행된 화상 인터뷰에서 앨범을 듣는 팬들에게 이같이 당부했다. 앨범 전체가 하나의 서사를 갖추고 있기 때문에 개별곡을 접할 때보다, 전 곡을 순서대로 들을 때 기승전결의 구조를 이해할 수 있다는 말이다.

신보 ‘모멘츠 인 비트윈’은 2019년 10월 발표했던 정규 8집 ‘컬러스 인 블랙’ 이후 약 2년 만의 정규 음반이다. 1집부터 8집까지 밴드의 모든 곡을 작사·작곡한 김종완이 다시금 전곡의 진두지휘에 나섰다. ‘사이의 순간들’이라는 의미의 앨범 제목과 더불어 ‘비츠 앤드 피시스(Bits and pieces)’라는 부제는 관계의 시작부터 끝까지 과정을 노래한 한 트랙, 한 트랙이 ‘과정 안에 남겨진 순간의 조각’들 같아 붙인 제목이다.

수록곡들은 우울과 불안의 정서를 날카롭게 담아낸 초창기 음악보다 확연히 밝아졌다. 40대에 접어들며 발표한 8집 ‘컬러스 인 블랙’이 모호한 체념의 쓸쓸함을 담았다면 9집 앨범은 멜로디만 들으면 달콤하다는 느낌마저 든다. 하지만 넬의 음악에서 말랑말랑한 로맨스를 예상했다면 그 기대를 내려놓아도 좋다. 김종완의 당부처럼 첫 곡 ‘크래시’(Crash)’부터 마지막 곡 ‘소버(Sober)’까지 들어보면 결국 파국을 맞는 사랑의 씁쓸한 결말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귓가를 스쳐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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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드 넬 (사진제공=스페이스보헤미안)
지난해 싱글로 선공개됐던 ‘크래시(Crash)’는 관계의 시작이다. “그 어떤 말로 내 맘 표현할 수 없어/너의 앞에 서면 그저 머릿속이 하얘지고 자꾸만 말문이 막혀/어떻게 할 수가 없어”라는 가사에서는 사랑 앞에 여전히 수줍은 소년의 모습이 그려진다.

‘파랑주의보’와 ‘돈트 세이 유 러브 미(Don‘t say you love me)’를 거쳐 차곡차곡 감정을 쌓아나가는 화자는 ‘유희’에서 위험한 선택을 한 뒤 ‘위로(危路)’에서 아픈 결말을 예감한다. 두 곡은 이번 앨범의 더블 타이틀곡이다.

‘유희’는 넬 특유의 프로그래밍된 소리와 밴드 사운드의 조화가 돋보인다. 반면 ‘위로’는 스트링, 브라스와 밴드의 연주가 켜켜이 쌓이며 풍성한 울림을 안긴다. 김종완의 공허한 보컬은 마치 연주의 일부분처럼 들린다. 배우 이민기기 뮤직비디오 주인공으로 나선 ‘위로’는 곡 길이만 6분 30초에 달한다. 넬의 메가 히트곡 ‘기억을 걷는 시간’의 5분 12초보다 1분 20초 가량 긴 웅장함을 자랑한다.

“두 곡의 분위기가 확연히 다르죠. ‘유희’는 저희가 추구해온 사운드의 연장선에서 발전시킨 곡이죠. 꽤 오랫동안 공연을 하지 못했는데 이 곡은 공연장에서 팬들과 함께 부르고 싶어요. 반면 ‘위로’는 곡 길이부터 모든 게 타이틀곡의 기준에서 벗어나요. 하지만 이 곡 작업을 마쳤을 때 저희 4명의 만족도가 높았죠. 미래는 예측하기 어렵지만 지금 저희가 추구하는 방향과 일치하다고 판단했어요. 앨범의 수록곡으로 묻히기보다 다른 분들에게도 들려드리고 싶었죠.”(김종완)

‘위로’가 ‘힐링’의 의미가 아닌 ‘위험한 길’(危路)이라는 한자어를 차용한 것도 이 곡이 앨범의 주제를 내포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김종완은 “연인 사이에 좋은 결말도 있지만 적절하지 못한 타이밍에 만나 내내 불안하고 두렵다가 좋지 못하는 엔딩을 맞는 경우도 있다. 이 앨범은 후자의 설정”이라며 “위로의 가사는 대상의 아름다움을 표현하지만 그럼에도 끝을 예감하는 불안의 감정”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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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드 넬 (사진제공=스페이스보헤미안)
멤버들 모두 앨범에 대한 만족도가 높다. 기타리스트 이재경은 “마치 영화 한 편을 보는 듯한 느낌이다. 앨범의 완성도에 자부심을 느낀다”며 “엔딩크레딧까지 들어달라”고 당부했다.

초창기 앨범의 ‘백색왜성’이나 ‘기억을 걷는 시간’에서 은유적이면서 시적인 가사를 즐기며 예민한 감수성을 뽐냈던 넬은 군 제대 후 발표한 5집 ‘슬립 어웨이’부터 직관적이면서도 명확한 단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전작 ‘컬러스 인 블랙’의 타이틀곡 ‘오분 뒤에 봐’는 건조한 느낌마저 든다. 전곡을 작사한 김종완은 “내 표현 방식이나 생각하는 방식, 무언가를 받아들이는 방식이 바뀌었기 때문”이라며 “이번 앨범에서는 대화체 가사가 많다. 감정의 흐름을 유기적으로 배치해야 하기 때문에 앞뒤 수록곡 배치를 고려해 미래 선택적인 단어 사용여부를 결정했다”고 털어놓았다.

앨범은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이 기승을 부리던 지난해 초부터 1년 8개월의 작업 기간을 거쳤다. 22년간 호흡을 맞춘 멤버들은 방망이 깎는 노인마냥 작업실에 틀어박혀 장인정신으로 한 곡 한 곡을 세공했다. 김종완의 하드에 저장된 미공개 곡만 800곡에 달한다. 혹여 다른 프로듀서의 곡을 받거나 이정훈, 이재경, 정재원 등 다른 멤버들의 곡을 앨범에 수록할 가능성에 대해 이정훈은 “아예 없다고 단언하지 않겠지만 많이는 없을 것”이라고 말하며 웃었다. 김종완도 “우리 넷의 영감을 모아 함께 작업한 결과물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넬은 9월 10일부터 12일까지 서울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서 신보 발매 기념 콘서트 ‘넬스 시즌 2021 모멘츠 인 비트윈’(NELL S SEASON 2021 Moments in between)을 개최한다. 지난해에도 코로나의 틈새를 뚫고 어렵게 팬들을 만났던 이들은 약 1년만에 다시금 무대에 선다.

“새 앨범을 라이브로 처음 들려드린다는 게 이번 공연의 의의입니다. 수많은 공연들이 취소되는 상황이 안타깝지만 코로나 시국을 어떻게든 잘 이겨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안전하고 즐거운 공연을 위해 스태프들이 방역에도 만전을 기하고 있습니다. 팬들도 이 시국을 꿋꿋하게 이겨내서 훗날 웃으면서 얘기할 수 있도록 잘 버티기 바랍니다. 우리, 행복해지지 못해도 불행해지지 말아요.”(김종완)














조은별 기자 mulga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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