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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뮤지컬 ‘난세’ 김은영 작·연출·작곡가·음악감독 “봄을 알린 '붇곳'같은 사람들 그리고 우리 이야기”

[허미선 기자의 컬처스케이프]

입력 2022-06-03 18:00
신문게재 2022-06-03 12면

난세 김은영 작가 연출 작곡가 음악감독
뮤지컬 ‘난세’의 김은영 작·연출·작곡·음악감독(사진=이철준 기자)

 

“출발은 세종이었어요. 뮤지컬 ‘세종, 1446’ 연출을 준비하면서 역사를 공부하다 보니 이방원이 궁금해졌어요. 왜 이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었는지, 누군가의 영향을 받은 게 아닐까…그렇게 정도전이 보였죠.”



그렇게 김은영 작곡가는 첫 연출작 ‘세종, 1446’에서 뮤지컬 ‘난세’(8월 21일까지 서경대학교 공연예술센터 스콘 2관)에 이르렀다. 애초 작곡가로 시작했지만 ‘세종, 1446’과 ‘파가니니’를 통해 연출로 영역을 확장한 그는 ‘난세’로 작가로 데뷔했다.

작가와 작곡가, 음악감독 그리고 연출까지 1인 창작시스템으로 완성된 이방원과 정도전의 이야기에 대해 김은영 작·연출·작곡가·음악감독은 “너무 많은 드라마, 영화 등으로 만들어져 잘 아는 얘기를 사건 중심이 아니라 이들을 바라보는 백성은 어떤 마음이었을까를 담고 싶어졌다”고 털어놓았다.

뮤지컬 ‘난세’는 무능하고 난폭한 왕, 부패한 관료들, 외세의 침략 등으로 백성들이 신음하던 고려 말 한때는 같은 꿈을 꾸었지만 다른 곳을 바라보는 지음(知音) 정도전(박유덕·정동화·주민진, 이하 가나다 순)과 이방원(양지원·이준우·최석진) 그리고 그들의 의기투합에 이은 갈등으로 혼탁해진 ‘난세’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꾼’(소정화·이지숙·정연)을 통해 지금을 비춘다.
 

난세 김은영 작가 연출 작곡가 음악감독
뮤지컬 ‘난세’의 김은영 작·연출·작곡·음악감독(사진=이철준 기자)

“백성의 이야기로 담고자 했던 건 거창한 정치나 정권 비판이 아니라 개인의 신념이에요. 그 신념에 너무 집중하느라 정작 중요한 것들을 놓치고 있지 않나 싶었거든요. 살면서도 그렇잖아요. 분명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들이 있었는데 그걸 향해 가다보니 반대되는 일을 하게 되는 경우들이 있죠. 그래서 묻고 싶었어요. 당신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인지, 나에게 중요한 건 또 무엇인지.”


 

◇음악적 상상이 무대가 되다

“이 이야기가 저에게 온 이유가 있어요. 백성 이야기로 꾸리다 보니 음악적 상상이 먼저 펼쳐졌거든요. 이런 음악이 나오면 좋겠는데, 이런 신이면 좋겠는데…음악적 상상을 구현하기 위한 그릇을 내가 만들어 보면 어떨까 싶었죠.”

대본까지 쓰게 된 이유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 김은영 작·연출·작곡가·음악감독은 “시작 초반에는 판소리였다”며 “한 소리꾼이 다양한 역할을 하는 판소리에 고수가 있듯 피아노가 고수 역할을 하면서 같이 끌어나가면 재밌는 극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털어놓았다.

“국악 특유의 리듬과 선율을 뮤지컬적으로 잘 녹여내는 데 집중했어요. 대놓고 판소리를 구현하기 보다는 가락의 한, 장단의 긴박함, 흥 등 국악의 장점들을 뮤지컬 어법으로 녹여보려고 했죠. 친근하지만 한이 느껴지게끔요. 비슷한 시대지만 제가 작곡한 ‘세종, 1446’이나 편곡한 ‘경종수정실록’에 비하면 ‘한(恨) 덩어리’예요.”

그리곤 “이전작들에 비해 ‘난세’의 음악은 말의 흐름에 더 집중한 것 같다. 판소리에서 ‘쿵딱!’하고 음악과 장면이 확확 바뀌는, 어느 순간 확 열리고 닫히는 힘을 차용했다”고 부연했다.

“음악적 힘으로 돌변시키는 재미에 집중했어요. 사건 중심이라기보다 이방원의 순리, 정도전의 속내, 그들을 바라보는 백성들의 마음 등 궁금했던 것들을 담아 넘버로 꾸렸죠.”

난세 김은영 작가 연출 작곡가 음악감독
뮤지컬 ‘난세’의 김은영 작·연출·작곡·음악감독(사진=이철준 기자)


‘세종, 1446’(당시 극명 ‘1446’)의 2017년 초연 준비단계부터 시작된 ‘난세’에 대해 “다양한 창작자들이 모여 토론하고 나누며 발전시켜야하는데 혼자 감당해야 한다는 게 좀 두려웠다”고 토로한 김은영 작·연출·작곡가·음악감독에게 힘을 보탠 이들은 함께 하는 배우들이었다.

 

‘세종, 1446’ 초연부터 세종으로 분한 박유덕과 그가 작곡가로 이름을 알린 ‘사의찬미’ 김우진이었고 음악감독으로 편곡에 참여했던 ‘경종수정실록’의 경종이기도 했던 정동화 그리고 홍수찬 주민진이 정도전으로 ‘난세’에 힘을 보탰다. 이들과 더불어 ‘세종, 1446’의 소헌왕후였고 ‘웨스턴스토리’를 함께 한 정연, ‘문스토리’를 함께 한 소정화 그리고 이지숙이 꾼으로, 양지원·이준우·최석진이 이방원으로 함께 하며 “혼자 의심돼 고민할 때” 다양한 의견과 아이디어로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작곡을 할 때는 연출 입장에서 떨어져 보려고 하고 연출을 할 때는 작가로서 고민하고…제 안에서의 싸움이었죠. 극의 특성상 꾼이 이성계, 하륜, 남윤 등 이방원과 정도전의 상대배역이 돼주기도 하는데 어느 타이밍에 이게 필요할까를 고민하던 때도 배우들과 얘기를 나누곤 했어요. 의견을 다양하게 나누다 보면 말끔하게 해결되는 경우들이 있죠.” 

 

난세 김은영 작가 연출 작곡가 음악감독
뮤지컬 ‘난세’의 김은영 작·연출·작곡·음악감독(사진=이철준 기자)
그 예 중 하나가 소정화의 “나는 목련이 너무 아파”라는 말에서 발전시켜 ‘붇곳’ 이미지로 표현한 넘버 ‘그들의 이야기’다.


◇절대선도, 절대악도 없다…붇곳같은 존재들의 이야기

“붇곳은 목련의 옛이름이에요. 제일 먼저 환하게 피어나 봄을 알리죠. 하지만 제일 먼저 꽃이 떨어져 짓밟히고 지저분하게 스러져가는 게 저희 작품이랑 너무 잘 맞는 거예요. 봄을 먼저 알아챈 붇곳이 새 나라가 시작돼야 한다고 느꼈던 정도전과 이방원 같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렇게 봄을 알렸지만 정도전은 붇곳처럼 죽었어요. 지음 이방원에 의해서.”

이어 “이방원은 붇곳이 된 정도전을 보며 새 나라를 굳건히 했지만 스스로 붇곳이 됐다는 생각이 든다. 후대에 피의 군주로 평가받고 아내, 자식 등과 마지막까지 반목하는 걸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며 “사실상 나라가 이상하다고 제일 먼저 알아채는 이들도, 나라가 잘못됐을 때 온몸으로 피해를 입는 이들도 백성들이다. 그렇게 백성들도 붇곳같다”고 덧붙였다. 이에 ‘난세’는 붇곳 이미지를 넘버화한 ‘그들의 이야기’로 극을 열고 닫는다.

“봄을 알리는 존재지만 그 끝이 너무 아파요. 다른 꽃들이 만개할 때 벌써 떨어져서 짓밟히니까요. 한편으로는 정도전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사는 게 아닐까, 이방원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사는 게 아닐까, 이 나라에 닥쳤던 ‘난세’를 묵묵히 살아온 그 시절 사람들이 있어서 우리는 이렇게 사는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게 돼요. 그렇게 ‘난세’는 붇곳같은 존재들에 대한 이야기죠.”

그는 “저한테서는 이방원과 정도전 중 누구도 절대 선과 절대 악이 없다. 치열한 명분 싸움이라는 느낌이 너무 강하게 왔다”며 “아직 안정되지 않는 시대, ‘조선’이라는 꿈꾸던 새로운 나라를 열었지만 그들에게 주어진 명분 등으로 함께 할 수 없는 갈라짐이 안타까웠다”고 털어놓았다.

난세 김은영 작가 연출 작곡가 음악감독
뮤지컬 ‘난세’의 김은영 작·연출·작곡·음악감독(사진=이철준 기자)

 

“그 시대를 살던 백성 입장에서 둘이 공존할 수는 없었을까…‘공존’이라는 키워드가 계속 저에게 왔어요. 그렇게 함께 하지 못했던 두 사람에 대한 안타까움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꾼이라는 백성을 통해 ‘내가 뭐라 얘기한들 그들이 들을까?’ 싶은 마음을 담았죠. 백성들의 목소리가 하늘에 닿아 움직이면 그게 ‘천명’이라고 하잖아요. 하지만 백성을 위한다고 하면서 명분 싸움을 하는 두 사람이 한심하면서도 안타까웠어요.”

 

그리곤 “정도전이 이룬 업적들은 대단하고 백성을 위한 것이지만 그에 집중하다 보니 정작 이방원의 마음을 얻지 못했다. 이방원도 하나의 백성이었을텐데…사람 마음을 얻는 데 도가 튼 분이 왜 이방원의 마음은 못얻었을까 안타까웠다”고 전했다.

“이방원 역시 이성계와 정도전이 아니라고 하는 데는 분명 이유가 있을텐데 자신만의 명분이 옳다고 밀고 나가는 부러지지 않는 힘이 답답했어요. 결국 정적이 돼 충돌하는 두 사람의 모습이 안타까웠어요.”

지음이었지만 정적이 돼 버린 정도전과 이방원을 통해 김은영 작·연출·작곡가·음악감독이 하고 하고 싶었던 건 “꾼의 이야기”다. 그는 “정도전과 이방원만 따로 역할을 부여하고 나머지는 꾼이 다 할 것”이라고 귀띔했다.


◇공존을 위한 내려놓음, 답답함에 외치고 싶었던 “나는 그저 살고 싶소”

난세 김은영 작가 연출 작곡가 음악감독
뮤지컬 ‘난세’의 김은영 작·연출·작곡·음악감독(사진=이철준 기자)

 

“꾼은 그냥 저예요. 작가이자 뜻은 같은데 반목하는 두 사람을 지켜보면서 안타까움을 느낀 그 시절의 누군가죠. ‘공존’을 위해서 필요한 건 뭐였을까를 고민했어요. 결국 백성이었죠. 백성이 아무리 외쳐도 자신 일에 집중하느라 듣지 않는 자들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잠깐 내려놓고 귀만 열었어도 이해했을 텐데…그 잠깐의 내려놓음이 왜 없었을까 궁금했어요.”

김은영 작·연출·작곡가·음악감독은 “시대적 배경을 가사로 녹이긴 했지만 지금의 이야기이고 저 그리고 모두의 이야기”라고 덧붙였다.


“정치색으로 싸우고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고…결국 명분 때문이잖아요. 그게 너무 답답해서 ‘명분이 뭐가 그리 중요하냐’고 말하고 싶었어요. 그런 사람들한테 외치고 싶었죠. ‘나는 그냥 살고 싶소!’라고. 정도전이 이방원의 마음을 얻어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방원도 그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됐을까…너무 안타깝고 요즘 세상이 너무 갑갑하니까 자꾸 상상하게 돼요. 그렇게 평화로워 보이지만 ‘난세’인 세상을 얘기하고 싶었어요.”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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