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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처스케이프] 연극 ‘햄릿’ 손진책 연출 ② “내 연극의 품격 그리고 내 죽음의 모습”

입력 2022-07-29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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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햄릿’의 손진책 연출(사진=이철준 기자)

 

“이번 ‘햄릿’ 공연이 확정되면서 지난번에 건강문제로 중도하차했던 권성덕 선생님한테 전화를 드렸어요. 요즘 건강이 정말 안좋으시거든요. 그런데 연극을 하시면서 살아났어요.”



2016년 이해랑 탄생 100주년 기념작으로 초연된 후 6년만에 다시 돌아온 연극 ‘햄릿’(8월 13일까지 국립극장 해오름)의 손진책 연출은 이어 “연극쟁이는 연극을 해야 한다”고 털어놓았다.

2016년 ‘햄릿’을 함께 했던 김성녀, 박정자, 손봉숙, 손숙, 유인촌, 윤석화, 전무송, 정동환(이하 가나다 순)을 비롯해 당시 건강 및 스케줄 문제로 함께 하지 못했던 권성덕, 길해연까지 합류해 젊은 햄릿 강필석, 오필리어 박지연, 호레이쇼 김수현, 레어티즈 박건형, 로젠크란츠 김명기, 길덴스턴 이호철 등이 어우러져 매일 무대를 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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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햄릿’ 공연장면(사진제공=신시컴퍼니)

 

“젊은 배우들은 자신들의 역할을 제대로 해낼 수 있을까, 자신이 없다 걱정했지만 저는 해낼 거라고 믿었어요. 모르긴 몰라도 그들도 처음엔 힘들었을 거예요.”

스스로의 표현을 빌자면 그는 현장에서 “그리 말을 많이 하는 편도 아닌데다 어떤 질문에도 명확한 답을 주지 않는” 연출이다. 이에 대해 그는 “나는 천재도 아닐뿐더러 나 역시 정답을 모른다”고 답했다.

“배우들의 ‘슬픈 겁니까?’라는 질문에 ‘그래 슬픈거야’라고 답하면 그 배우는 슬픈 것 밖에 생각 안해요. 하지만 인간이 슬프다고 슬픔만 있지는 않아요. 흰색이 흰색으로만 이뤄져 있지 않은 것과 같죠. 세상 어떤 것에도 정답은 없어요. 어떤 것도 이분법적으로 봐서는 안되는 게 연극의 세계관이라고 생각해요. 어떻게 쉽게, 딱 잘라 답을 하겠어요.”


◇내 연극의 품격, 절제 그리고 마당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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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햄릿’의 손진책 연출(사진=이철준 기자)
“2016년에는 배우들에게 한 첫마디가 ‘연기하지 마세요’ 였어요. 제 연극의 기본은 ‘절제’예요. 너무 감정을 과장하지도, 크게 표현하지도 말라고도 했죠. 그들은 평생 연기를 하신 분들이에요. 제대로 된 해석과 상황에만 잘 놓여있으면 그냥 튕겨 나오는 순간들이 생겨나죠.”

이어 “매일 어디서든 드라마, 영화, 뮤지컬, 연극, 웹툰, 웹소설 등을 볼 수 있는 시대를 살고 있는 요즘 관객들은 스마트하다. 초등학생들도 다음 장면이 뭔지를 알고 추측해낼 수 있는 시대”라며 “그런 판에서 연극하는 사람들이 관객 뒤에서 설명을 하고 있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관객이 극장을 찾게 하려면 ‘격’을 지켜야 해요. 격이 있으려면 모든 것들이 정제돼 있어야 하죠. 한국 연극의 제일 큰 문제는 격의 부족이라고 생각해요. 경륜이 풍부한 배우들과 이 정도 여건에서 연극을 하는데 격을 놓친다면 책무를 다 하지 못하는 거죠. (그가 이끄는 극단) 미추에서의 작업에서도 그래요. 아주 짧은 대사라도 제대로 못하면 아예 없어버려요. 무대에 서는 순간 엉성하게 대사를 하거나 스스로 책임지지 못하는 건 죄악이죠.”

더불어 그는 “내 연극의 기본은 마당 정신”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여기서의 마당은 멍석을 펴고 북 치고 장구치는 판이 아니라 두발을 딛고 있는 지금 여기”라고 강조했다.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지금 여기’서 인간다운 삶을 추구하는 게 ‘마당 정신’이죠. 제가 추구하는 ‘마당놀이’도 옛날처럼 북 치고 장구 치는 개념이 아니에요. 영어의 ‘플레이’(Play), 독일어 ‘스필’(Spiel), 중국어 ‘주’(劇), 일본어 ‘아소비’(あそび) 등 세계 모든 연극의 어원은 ‘놀이’예요. 한국적으로 표현한 연극, 지금 여기라는 ‘마당’에서 펼치는 ‘놀이’라는 의미죠.”


◇연극의 전통성 그리고 적층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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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햄릿’ 공연장면(사진제공=신시컴퍼니)

 

“400년도 전에 셰익스피어 같은 작가가 나올 수 있었던 건 그 시대에 연극 전통이 그만큼 있었기 때문이에요. 연극 전통이 없는 데서 갑자기 셰익스피어가 나오진 않거든요. 오래 전 할리우드에서 스티븐 스필버그가 나올 수 있었던 것도 마찬가지예요. 할리우드 영화의 전통, 문화적 토양이 있어서 가능했던 일이죠.”

문화적 전통의 힘을 강조한 손진책 연출은 “1982년 정부지원으로 영국 RCS(로열 스코틀랜드 왕립학교), NT(영국국립극장) 등에서 해외연수를 하면서 그 전통의 힘을 깨달았다”고 털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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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햄릿’의 손진책 연출(사진=이철준 기자)
“‘햄릿’이라는 극 하나도 몇년도에 어떤 연출작인지 하나하나 적층돼 있어요. 그 적층된 힘이 오늘의 연극을 만드는 거죠. 연극이라는 자신의 행위가 적층될 수 있는 바탕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어 손 연출은 “연극은 잘 하겠다는 마음만 갖고 되는 게 아니다. 책임감이나 소명의식도 있어야 하고 능력도 있어야 하고…여러 가지 기초 자산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인식론적인 개념의 연극이 점차 쇠퇴하고 상업연극이 환호받는 것이 현실이에요. 그럼에도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 어떤 기본을 갖춰야 하는지는 매우 중요해요. 데생을 정확히 해야 제대로 된 추상화가 되는 것처럼요. 특히 우리 연극계는 인적자산이랄까, 그 층이 너무 얕다는 생각이 들어요.”

‘전통연극’과 ‘상업연극’으로 양분되는 현상이 꽤 오래도록 심화되는 데 대해 손 연출은 “어떤 면에서는 구분이 되냐고 할 수도 있지만 명확하게 구분되는 요소도 있다”며 “소위 ‘전통연극’이 쌓여서 ‘상업연극’이 되는 것이고 상업연극이라고 무조건 전통연극이 아니라고 하기도 어려운 문제”라고 의견을 밝혔다.

“결국 상호보완돼야죠. 전통연극이냐 상업연극이냐의 구분 보다는 얼마나 인간의 내면을 들여다보려고 애쓰고 투영하고 있는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인간의 본성, 삶의 본질, 세계관 등에 얼마나 천착하고 있는지가 연극의 전통성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매년 생일이면 당부하는 내 죽음의 모습 “요란하지 않고 울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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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햄릿’의 손진책 연출(사진=이철준 기자)

 

“언제까지 연출을 할 수 있을지는 몰라요. 해야 하거나 할 수 있는 작품이 있을 때 하면 되는 거지…특별히 욕심을 부리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그저 오래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을 뿐이죠.”

이어 제 가까운 친구들한테 얘기를 해뒀다. ‘내 감각이 늙고 낡았다고 생각할 때는 얘기하라’고. 그때부터는 더 이상 연출을 하지 않을 생각“이라고 전한 손진책 연출은 ‘햄릿’을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우리 모두가 가야할 곳, 묘지에 대한 이야기”라고 정의하곤 한다.

“인생에서 제일 중요한 문제가 태어나고 죽는 거예요. 그리고 죽음은 곧 사라지는 거잖아요. 물론 저는 ‘이동’이라고 생각하지만요.”

늘 ‘죽음’에 대해 사유하고 탐구하는 손진책 연출은 매년 생일이면 가족을 비롯한 가까운 이들에게 “내 죽음을 이렇게 바라보고 이렇게 해달라고 써놓은 걸 보여주며 당부한다”고 털어놓았다. 꽤 세세하게 휴대폰 메모장에 번호를 매겨 써내려간 그의 죽음은 겸허하고 담담하며 아내 김성녀에 대한 신뢰가 물씬 묻어나는 것이었다.

“특별한 건 없어요. 요란하지 않았으면 좋겠고 울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과분한 사랑을 받았으니까요.”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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