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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연극 ‘햄릿’ 손진책 연출 ① “죽음의 햄릿, 족탈불급 셰익스피어”

[허미선 기자의 컬처스케이프]

입력 2022-07-29 18:00
신문게재 2022-07-30 12면

햄릿_손진책연출
연극 ‘햄릿’의 손진책 연출(사진=이철준 기자)

 

“‘햄릿’의 기본 이미지는 죽음이에요. 아마 전세계 ‘햄릿’ 포스터의 80%는 해골이 있을 거예요. 죽음이 배후인 그 자체가 좋았어요. 그래서 삶과 죽음의 경계 문제 그리고 죽음이라는 걸 통해서만 삶을 새롭게 조망해 볼 수 있다는 데 포커스를 뒀죠. ‘햄릿’은 죽음으로 시작해 죽음으로 끝나거든요.”



젊은 햄릿 강필석을 내세워 6년만에 다시 돌아온 연극 ‘햄릿’(8월 13일까지 국립극장 해오름)을 손진책 연출은 “죽음이 배후인 작품”이라고 표현했다.  

 

연극 햄릿
연극 ‘햄릿’(사진제공=신시컴퍼니)

 

“인류사를 통틀어 삶과 죽음의 경계에 안들어가는 사람은 하나도 없어요. 그렇게 분명함에도 우리는 죽음에 대해 전혀 의식하지 않고 살아가고 있죠. 하지만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는 건 저 뿐 아니라 우리 모두의 영원한 명제일 수밖에 없어요. 이런 작품을 통해 그 죽음 바라보기를 해보시길 바랐습니다.”

‘삶은 죽음의 선물’이라면서도 결국 스스로 죽음을 택한 햄릿에 대해 손진책 연출은 “햄릿은 결국 삶과 죽음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것은 자기가 죽음으로서 무화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라고 해석했다. 

 

연극 햄릿
연극 ‘햄릿’(사진제공=신시컴퍼니)
“그래서 알면서도 스스로 죽음의 길로 걸어가는 거죠. 또 다른 선물인 삶을 위해.”


◇오롯이 배우의 연극 ‘햄릿’

“6년 전에는 베테랑 9명이었고 이해랑 선생님 탄생 100주년 기념이라는 잔치 기분으로 했어요. 아홉 배우들에 대한 오마주이기도 했죠. 사실 그때도 젊은 햄릿을 구하려다 못 구해서 ‘엎어야겠다’ 했어요. 혼자 밤에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좀 괘씸하기도 하고 ‘60대 유인촌이 왜 못해’라는 생각도 들었죠. 그렇다면 나이도, 젠더도 뛰어넘어서 해보자 했어요.”

그렇게 2016년 이해랑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햄릿’이 탄생했다. 그리고 6년이 지나 다시 돌아온 ‘햄릿’은 2016년 함께 했던 김성녀, 박정자, 손봉숙, 손숙, 유인촌, 윤석화, 전무송, 정동환(이하 가나다 순)과 당시 건강 및 스케줄 문제로 함께 하지 못했던 권성덕, 길해연까지 작은 역할에도 기꺼이 힘을 보탰다.

“원작은 셰익스피어 시대 영국인들에 맞는 어휘와 어법을 쓰고 있으니 언어도 다른 우리가 그대로 번역해 무대에 올리기는 무리죠. 배삼식 작가가 우리 심성으로 걸러내 잘 압축했다고 생각해요. 이번에는 현대 의상으로 설정하면서 (2016년의 ‘햄릿’과는) 다른 극이 됐지만 대본은 어미를 조금 수정한 거 외에는 거의 그대로죠.”

원로 배우들과 더불어 햄릿을 연기하는 뮤지컬 ‘썸씽로튼’ ‘곤 투모로우’ ‘명성황후’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스토리오브마이라이프’ ‘서편제’ 등의 강필석을 비롯해 연극 ‘스웨트’ ‘킬롤로지’ ‘진실X거짓’ ‘데스트랩’ 등의 김수현이 호레이쇼, ‘시카고’ ‘썸씽로튼’ ‘바넘’ ‘모래시계’ ‘아트’ 등의 박건형이 레어티즈, ‘레베카’ ‘드라큘라’ ‘고스트’ ‘시라노’ ‘어쩌면 해피엔딩’ ‘리차드3세’ 등의 박지연이 오필리어, 김명기가 로젠크란츠, 이호철이 길덴스턴으로 무대에 오르고 있다.

연극 햄릿
연극 ‘햄릿’(사진제공=신시컴퍼니)

 

“그때는 재밌고 즐겁게 했다면 이번엔 부담이 컸어요. 특히 공간을 채우는 데 대한 부담이 굉장히 컸죠. 시각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허전하면 안되니까요.”

그의 표현대로 “잘 채우기 위한 부담”의 해결책은 결국 “연극은 배우한테 기댈 수밖에 없는 예술”이라는 믿음이었다.

“우리 고참 배우들의 저력을 믿고 젊은 배우들의 참신함도 십분 활용하다보면 시너지가 생길 거라는 기대는 하고 있었어요. 그래도 보신 분들의 평가가 후해 다행스러워요.”


 

08. 강필석(햄릿)
연극 ‘햄릿’(사진제공=신시컴퍼니)

◇분석될 수 없는 인간 그 자체 햄릿

“햄릿(강필석)은 시인이면서 철학자면서 아주 불한당 같은 나쁜 놈이자 현자이면서 구원자고 심판자고…그런 인물이죠. 인류, 인간 자체가 그런 복잡다단한 존재예요. 결코 분석되어질 존재가 아니죠. 인간은.”

손 연출은 “그런 존재인 인간을 담는, 훌륭한 작품 역시 레이어가 많다. 그래서 해석이 다양할 수 있고 몇백년을 해도 해야할 것도, 팔 것도 계속 생겨난다”고 말을 보탰다.

“셰익스피어의 ‘햄릿’을 준비할 때면 원서를 강독하는 재미가 커요. 강독 때마다 셰익스피어가 훌륭하다는 말 밖에는 안나와요. ‘햄릿’은 헨리 5세 시절 피비린내 나는 역사적 배경에서 나온 작품이에요. 조심스럽게 접근하면서도 당시 영국의 역사적 사건, 역사 속 인물 등을 차용해 천재적으로 변형해 잘 활용하고 있죠. 종교개혁, 정치적 문제, 독재자 풍자 등까지 잘 담아내고 있거든요.”

손 연출은 종교개혁, 독일의회를 비롯한 정치적 문제, 독재자까지 담아내 비유한 단어 ‘구더기’(Worm)와 더불어 “이번 ‘햄릿’에서는 빠졌지만 오필리어(박지연)의 죽음을 두고 ‘무덤파는 광대들’(Grave-diggers)이 벌이는 자살 논쟁”을 예로 들었다.

“당시(1554년) 제임스 헤일스 경이라는 사람의 죽음을 두고 엄청 현란한 재판이 있었어요. 자살인지, 자살을 당한 건지를 두고 법관들이 엄청난 논쟁을 벌이던 실제 사건을 셰익스피어가 차용한 거죠. 자살이라면 무덤에 묻힐 수가 없던 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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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햄릿’(사진제공=신시컴퍼니)

그런 셰익스피어를 두고 손 연출은 “어떤 면에서는 마당놀이 작가”라며 “그의 작품에는 당시 허가되던 얘기들, 당시 유행한 노래들, 역사적 사건, 역사 속 인물 등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고 털어놓았다.

“어휘에도, 구성과 복선을 까는 데도 셰익스피어는 천재였어요. 셰익스피어 시대만 해도 심리학이란 학문이 없었죠. 당시의 ‘햄릿’은 단순히 복수극일 뿐이었어요. 하지만 400년이라는 시간과 다양한 시대를 지나오면서 끊임없이 재해석되고 동시대성을 갖는 위대함을 가지게 됐죠.”


◇모호함 그래서 어떤 해석도, 어떤 인물에 대한 이해도 가능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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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햄릿’(사진제공=신시컴퍼니)

 

“사실 햄릿이 클로디어스(유인촌)가 기도할 때 죽였으면 다른 사람들은 다 살았겠죠. 하지만 클로디어스가 실제로는 기도를 한 것도 아닌데 ‘기도할 때 죽이면 천당에 가니까’라고 행동하지 못한 스스로를 합리화하죠. 침대에서 뒹구는, 근친상간의 순간에 죽여야 한다면서 그 순간을 애쓰며 찾지도 않아요.”

햄릿이라는 인물과 그의 성정으로 인한 ‘복수지연’을 손 연출은 “이 연극의 기본”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햄릿이라는 인간은 어떤 순간에도 남에게 칼을 들이댈 수 있는 심성을 가진 인간이 아니다”라며 “햄릿은 끝없이 사유하는 인간이고 그 사유를 통해 복수가 지연되고 행동으로 넘어가지 못한다”고 풀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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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햄릿’의 손진책 연출(사진=이철준 기자)

“끝없이 해야한다 하면서도 행동을 죽이곤 하죠. 영국에 가서야 클로디어스가 자신을 죽이려한다는 사실을 알고 자기 목에 도끼를 맞는 상상을 해요. 그렇게 피투성이가 된 자신의 해골바가지를 보고서야 죽음의 실체를 인식하죠. 결국 죽음을 향해 스스로 걸어가면서 햄릿은 주인공으로서 삶과 죽음 문제를 본격 전달해요.”

지금 사람들의 눈으로 보기엔 답답하고 우유부단하다고 평가받는 햄릿에 대해 손 연출은 “사유의 가치”를 언급했다. 그는 “사유하는 사람은 우유부단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햄릿은 사유하는 인간의 전형”이라며 “우유부단이라는 것이 결국 행동을 못하게 하고 복수를 지연시킬 수밖에 없는데 그것은 햄릿이 타고난 성정이고 운명”이라고 부연했다.

“햄릿을 우유부단하게 해석하는 게 정설이지만 그걸 뒤집는, 적극적인 인물로 해석하는 경우도 없지 않아요. 지난해 영국국립극장(NT)에서 (예술감독) 니콜라스 하이트너(Nicholas Hytner)가 연출한 버전은 배우들에 포커스를 두고 창작의 자유, 한계, CCTV를 통한 통제와 감시 등을 주제로 굉장히 재밌게 해석했어요. 현실에 있는 얘기랄까요.”

손 연출은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에 ‘햄릿’은 좋은 작품”이라며 “거의 모든 셰익스피어의 작품이 그렇지만 특히 ‘햄릿’은 모호함이 아주 중요한 정서다. 모호함 자체가 그대로 묻어 있는 작품”이라고 밝혔다.

“어떤 당위가 해결된다고 그 모호함이 없어지거나 딱 떨어지게 정의되지도 않아요. 모호함 자체가 빌트인돼 있는 작품이자 인물이죠. 그래서 해석의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거고 그 모호함 속에서 다양한 예술이 생겨난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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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햄릿’(사진제공=신시컴퍼니)

그래서 ‘햄릿’에 대한 어떤 해석도, 극에 등장하는 어떤 인물에 대한 이해도 가능하다는 손진책 연출은 “거투르드(김성녀)와 클로디어스는 오래 전부터 불륜 관계였다거나 호레이쇼(김수현)가 햄릿의 동성애 상대였다거나 오필리어와 레어티즈(박건형)의 근친상간 등 해석이 분분하다”고 밝혔다.

 

“이번 ‘햄릿’에 암시해둔 해석의 부분도 있어요. 저만의 해석은 아니지만 오필리어가 죽는 상황을 묘사하는 거투르드를 통해 오필리어를 거투르드가 죽였다는 암시를 하고 있죠.”

옅어지지 않고 늘 짙어지기만 하는 모호함 그리고 인류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유의 가치에 대해 손 연출은 “결국 그것이 인류를 구한 동력”이라고 표현했다.

“햄릿의 ‘사느냐 죽느냐’라는 독백 자체도 사유의 표현이에요. ‘목숨을 잃을지언정 진실의 자리에서 제대로 존재하느냐, 진실을 외면하고 근근이 목숨을 부지하느냐’라는, 장 폴 사르트르(Jean Paul Sartre)의 실존주의적인 질문이거든요. 그 자체도 그렇게 살 수 없는 사람들의 변명이자 위로라고 생각합니다.”


◇족탈불급 셰익스피어…극의 시작이자 끝인 배우들, 어쩌면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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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햄릿’의 시작과 끝을 장식하는 배우들. 왼쪽부터 박정자, 손숙, 손봉숙, 길해연, 윤석화(사진제공=신시컴퍼니)

 

“지난번 ‘햄릿’의 시작과 끝이 제의였다면 이번에는 보다시피 배우들(배우1 박정자, 배우2 손숙·길해연, 배우3 윤석화, 배우4 손봉숙)로 극을 열고 닫죠.”

그의 전언처럼 2022년 ‘햄릿’은 “짧은 역사이고 시대의 연대기”라는 햄릿의 대사로 의미를 부여하는 배우들로 시작하고 끝이 난다.

“배우들을 앞뒤에 배치해 극을 열고 닫게 한 건 그들이 셰익스피어가 얘기하듯 ‘인류는 삶이라는 무대에서 연기하는 배우’ 그 자체이기 때문이에요. 배우들은 결국 인류를 뜻하죠. 무덤파기(권성덕)도 그래요. 무덤파기는 삶과 죽음의 일선에 있는 사람이죠. 그 사람이 보는 삶과 죽음이 그 어떤 성현의 얘기보다도 귀 기울만한 것들이라고 생각해요. 배우들이든, 무덤파기든, 그들을 통해 건져가는 건 관객 각자의 몫이죠.”

손진책 연출은 “저는 셰익스피어가 ‘햄릿’ 뿐 아니라 다양한 작품들을 400년 전에 썼다는 데 존경의 마음을 금하지 못하겠다”며 “볼 때마다 다르게 다가오는 것들이 있고 정의하지 못하는 것들이 있다”고 털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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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햄릿’의 손진책 연출(사진=이철준 기자)

 

“유령(전유성)도 그래요. 지금의 유령은 제가 있다고 믿는 ‘연옥’(죽은 사람의 영혼이 천국에 들어가기 전에 남은 죄를 씻기 위하여 불로써 단련 받는 곳)이지만 굉장히 다양한 분석들이 있어요. 셰익스피어도 (종교적인 문제로) 굉장히 조심스럽게 접근해 진의를 숨겨두고 있으니 보물찾기와도 같죠.”

이어 손 연출은 “연옥, 악령, 유령 심지어 덴마크를 무너뜨리려는 노르웨이가 보낸 첩자라는 분석도 있다”며 “셰익스피어의 작품, 특히 ‘햄릿’은 400년을 연구해도 끝이 없다. 파도파도 팔 게 있고 해석해도 해석해도 해석 거리가 있는 작품”이라고 덧붙였다.

“셰익스피어의 고갱이는 꿰뚫어보는 인간의 본질이 아닐까 싶어요. 그만큼 명확하게 인간을 들여다본 사람이 있나 싶거든요. 정말 대단해요. 아무리 연출을 하고 연기를 잘해도 ‘족탈불급’(足脫不及)이거든요. 제 능력의 한계는 여기까지예요. 오늘의 시점에서 바라볼 수 있고 음미할 수 있는 ‘햄릿’으로 보여지길 바랄 뿐입니다. 하지만 어떻게 받아들이고 평가하고 만족하느냐는 관객의 몫이죠. 저마다의 중요한 무언가를 발견하는 보물찾기를 하듯이요.”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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