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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X-ray란 글자에 'SE'를 붙이면?

[#OTT] 어항속에서 본, 전지적 '메기' 시점 발랄하게 풀어낸 영화
청년실업, 데이트 폭력,도시재생등 '인권'에 대한 이옥섭 감독의 천재성 드러나

입력 2022-11-16 18:30
신문게재 2022-11-17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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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하는 사람이나 보는 사람이나 굉장히 위태위태했던 영화 ‘메기’의 한 장면. 열렬히 사랑하는 사이임을 강조하고자 했던 신이겠지만 관객으로서 불안해 보였던건 나만의 착각일까. (사진제공=왓챠)

 

엑스레이 실의 ‘X’자 앞에 누군가 ‘SE’를 적어넣었다. 얼마전 그 곳에서 민망한 사진이 촬영됐고 그 필름이 성모마리아 모자상에 ‘떡하니’ 걸리면서 공론화됐다. 여성의 둔부로 여겨지는 뼈 사진 뒤로 버섯머리 모양의 남성 성기가 투시(?)된 채 찍힌 것. 구내 식당 밥이 너무도 맛없어 모두가 점심 시간에는 외부의 식당을 이용하는 마리아 사랑 병원에서 일어난 일이다. 

 

지난 2019년 이옥섭 감독의 장편 데뷔작 ‘메기’는 그렇게 시작된다. 아무도 그 주인공이 누군지 모르지만 찔리는 사람은 상당한 것 같다. 이상하게 간호사 윤영(이주영)과 부원장(문소리) 외에는 병원에 출근하지 않는다. 사실 윤영은 자신의 백수 남자친구(구교환)와 그곳에서 짜릿한 순간을 보낸 터라 문제의 사진이 자신들이라 지레 짐작해 사표를 내러 온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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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메기'.(사진제공=왓챠)

 하지만 관객들은 안다. 화자인 ‘메기’의 말처럼 그 곳에서 사진이 찍힌 커플은 전혀 다른 사람이라는 사실을. 영화는 그렇게 미궁으로 빠진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곳에서 질펀한 정사를 벌이려던 커플은 더 이상 등장하지 않는다. 범인을 찾으려는 추적도 하지 않는다. 영화 중반이 돼서야 화자인 메기가 외국 여자의 이름도 아닌, 실제 물고기임이 밝혀지면서 갑자기 도시 곳곳에 원인 모를 싱크홀이 등장할 뿐이다.

 

엉뚱하지만 유순한 윤영의 백수 남자친구는 덕분에 일자리를 얻는다. 청년들은 갑자기 이곳 저곳에 생기는 싱크홀을 막기 위해 투입되는데 그 곳에서 자신과 같은 처지의 동료들을 만난다. 이들은 토익이 900점이 넘어도 제대로 된 일자리를 구하기 힘들어 일용직을 전전한다. 그 중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남친은 윤영이 준 백금 커플링을 잃어버리고 갑자기 히스테리컬해진 여자친구의 반응에 눈치가 보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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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직장인의 로망인 사직서를 어떻게 쓰는지 몰랐다면 ‘메기’를 보는 것도 한 방법이다. 가장 노멀하지만 강력한 ‘이별’을 준비할 수 있다. (사진제공=왓챠)

 

‘메기’는 국가인권위원회가 제작한 열네 번째 인권 영화 프로젝트다. 다수의 단편을 통해 특유의 발랄함과 진중함을 오고간 이옥섭 감독의 첫 장편 데뷔작으로 그는 나무위키를 통해 “어떻게 믿음이 쌓이고 깨지는지, 또 어떻게 다시 조합되는지 그 과정을 보여주고 싶었다”는 연출의도를 밝히고 있다. 금붕어가 아닌 메기가 어항에 갇혀 인간 사회를 관찰하는 설정부터 사실 범상치 않다. 불법촬영에 대한 공포에 청년실업과 재개발 이슈를 녹여내는가 싶더니 데이트 폭력의 응징으로 마무리된다. 이 모든 문제를 믿음과 의심 사이에서 풀어낸  감독의  천재성에 감탄하다가도 이런 무거운 주제를 천연덕스럽게 연기한 베우들의 면면에 시선이 모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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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메기'.(사진제공=왓챠)

극 중 부원장은 어린시절 치기어린 동심에 의한 거짓말로 사람을 거의 믿지 않는 인물. 사과를 깎다가 배를 찔렸다고 응글실에 온 각그랜저 남자(박종환)의 배에서 총알을 발견하지만 윤영에 의해 변화된 모습을 보인다. 윤영의 찌질한 남친의 전 여친으로 등장한 (동명이인)이주영은 데이트 폭력의 트라우마에 시달린다. 관객입장에서는 이름만 같을 뿐인 전혀 다른 매력의 두 배우가 보여주는 연기 경합이 볼거리지만 극중 한 남자를 둘러싼 사랑의 온도차가 ‘메기’를 관통하는 또다른 주제다. 무능해도 착하기만한 남친에게 맞았다는 전여친의 고백에 윤영은 인간에 대한 믿음을 설파해왔던 자신의 신조가 흔들림을 느낀다. 환자들로 나오는 권해효, 동방우를 비롯해 백수장, 김꽃비 등 이옥섭 감독 사단이라 불리는 배우들이 보여주는 강렬함은 전작들을 찾아보게 만들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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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사람은 다 아는 최고의 화제작’으로 등극한 지난 2019년 영화 ‘메기’의 언론시사회에 등장한 배우진과 감독.왼쪽부터 구교환,이주영,옥소리,이옥섭 감독. (사진제공=왓챠)

 

무엇보다 러닝타임 내내 샤워 중이거나 몸을 씻은 직후 등 거의 팬티 바람으로 등장하는 구교환의 존재감은 상당하다. 공개 열애중인 이옥섭 감독과는 ‘2X9(이옥섭,구교환)’ 프로젝트를 통해 ‘시너지란 이런 것’을 온 몸으로 보여주는 단편들을 내 놓았다. 구교환은 ‘메기’에서 배우 외에도 프로듀서와 제작자로도 참여했다. 이옥섭 감독도 여기에 지지 않는다. 극 중 싱크홀에 쓰레기를 투척하는 시민과 액자식 구성으로 등장하는 병원 CF에서 연기를 지적하는 스태프로 출연해 연기본능을 표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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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메기'.(사진제공=왓챠)

어쨌거나 병원에서 찍힌 ‘19금 사진’은 이 모든 불신의 시초다. “사람들이 말하는 사실이란 편집되고 만들어진 것”이라는 극 중 메기의 대사처럼 아무도 사진의 범인을 더이상 찾지 않는다. 다만 모두가 그 곳에서 한 번쯤 살을 섞었고 찔리고 있을 뿐 ‘그 사건’은 잊혀진다. 어쩌면 또 다른 뉴스로 묻혀질지도 모른다. 다만 누군가의 마음속에서 또다른 의심이 지워지지 않는 곰팡이처럼  마음에 퍼져나갈 뿐이다. 

 

영화 ‘메기’의 엔딩은 그래서 더 깔끔하고 묵직하다. 지진을 가장 예민하게 느끼는 메기가 왜 화자로 등장했는지 가늠하게 만드는 기발한 엔딩은 왓챠를 비롯해 각종 OTT에서 만나 볼 수 있다.

 

이희승 기자 press512@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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