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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카메라 단 한대, 2주간의 촬영이라도 '이 배우들'은 역시 다.르.다!

[#OTT] 웨이브 '렛 뎀 올 토크' 세계 초호화 크루즈 배경으로 50년 우정의 명과 암 다뤄

입력 2023-01-04 18:00
신문게재 2023-01-05 11면

렛 뎀 올 토크4
차기작을 완성해야 하는 베테랑 작가의 예민함을 탁월하게 표현한 메릴 스트립. (사진제공=웨이브)

 

믿고 보는 감독과 배우로만 따지면 웨이브의 ‘렛 뎀 올 토크’(Let Them All Talk, 2020)는 적어도 TOP 3위 안에 들 작품이다. 연출을 맡은 스티븐 소더버그는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영화계의 총아다. 26살이라는 나이에 만든 데뷔작 ‘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테이프’로 칸 영화제 그랑프리를 차지해 세계를 떠들썩하게 한 그는 이후 줄리아 로버츠에게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안긴 ‘에린 브로코비치’를 비롯해  ‘트래픽’ ‘솔라리스’ ‘오션스 일레븐’ ‘오션스 트웰브’ 등을 내 놓으며 작품성과 흥행성을 고루 잡은 감독으로 평가 받는다. 지난 2011년 연출했던 ‘컨테이젼’은 코로나의 대유행으로 다시 주목받기도 했다.

국내에는 다소 생소한 스트리밍 서비스 플랫폼인 HBO Max와 손잡은 스티븐 소더버그는 연출, 촬영, 편집을 맡고 평균 연령 일흔살에 가까운 대배우 메릴 스트립, 다이앤 위스트, 캔디스 버겐을 한 작품에 캐스팅하는 기염을 토한다. 국내 영화로 치자면 김혜자, 나문희, 고두심을 스크린에서 만나는 셈이랄까. 이 작품의 시나리오를 쓴 데보라 아이젠버그는 미국을 대표하는 단편 소설 작가로 유명하다. 

렛 뎀 올 토크
단촐해 보이지만 화려함의 극치를 담은 저녁 만찬의 한 장면. (사진제공=웨이브)

 

한 차례 강연만 한다면 호화 크루즈를 탈 수 있는 기회가 생긴 퓰리처상 수상 작가 앨리스(메릴 스트립)는 20대 대학시절에 만나 놀만큼 놀고 찬란했던 젊음을 공유한 친구들인 로제타(캔디스 버겐), 수잔(다이앤 위스트)과 동행하기로 한다. 이들의 여행에는 앨리스의 조카인 타일러(루카스 헤지스), 앨리스의 차기작을 염탐하기 위해 몰래 배에 탄 카렌(젬마 찬)이 비밀공조에 돌입하면서 긴장감을 자아낸다.

제목인 ‘렛 뎀 올 토크’에서 가늠되듯 사실 이 영화는 배우들의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무수히 쏟아내는 베테랑 배우들의 토크는 그야말로 잠시도 쉬지 않는다. 50년 세월이 흘러도 유지되는 우정에 관해 타일러는 친구들에게 “인스타그램도 메신저도 없는 시대에 맺어진 관계가 이어진다는 게 신기하다”고 털어놓는다. 대학시절이야 각자의 이유로 잘나가는 청춘을 누렸지만 어찌됐건 부유하고 멋진 노년을 보내는 건 앨리스 뿐이다. 

물론 소원해진 관계를 토닥이는 동시에 기분 전환을 하면 도무지 진도가 나가지 않는 차기작에 속도가 붙을 거란 이기적인 감정이 앨리스에게 없었던 건 아니다. 화면은 계속해서 어긋나는 세 사람의 관계에 집중한다. 앨리스가 뭔가 할 말이 있다는 듯 로제타를 애타게 찾아도 만남은 성사되지 않는다. 호화 유람선에 탄만큼 돈 많고 홀아비인 남자를 찾아야 하는 로제타와 그의 사정을 모르는 앨리스는 계속 겉돈다. 수잔만이 세 사람의 교집합이다. 학창시절 지도교수 부부와 쓰리 썸을 할 정도 파격적이고 되바라졌던 수잔은 친구들 사이에서 만큼은 중재 역할을 하는 조용한 성격의 소유자다.

이들 사이에 젊은 타일러와 카렌의 밀당은 과하지 않게 그려진다. 세 사람이 살아온 연륜 앞에 뭔가 애 같은 유치함이 계속 될 때 앨리스의 건강에 숨겨진 비밀이 드러나며 ‘렛 뎀 올 토크’는 서둘러 엔딩화면을 내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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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소더버그가 직접 잡은 영상 촬영용 디지털카메라 한대와 현장 녹음 장비로만 진행된 ‘렛 뎀 올 토크’의 공식 포스터. (사진제공=웨이브)

 

‘이게 다라고?’라는 말이 절로 나올 엔딩이긴 하다. 하지만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이 단 2주간의 촬영으로 이 작품을 완성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대단하다’는 감탄으로 바뀔지도 모른다. 사운드를 제외한 어떤 장치도 없이 영화를 촬영했는가 하면 매 장면 간략한 정리만 되어 있을 뿐 즉석에서 배우들이 내뱉는 연기를 대부분 담았다고 전해진다. 그런 관점에서 ‘렛 뎀 올 토크’는 어마무시한 작품이다. 각자의 시간을 보내고 저녁 시간 만큼은 가장 예의를 차린 옷차림으로 만찬 자리에 나서는 것 그리고 하나의 거대한 도시와 맞먹는 크루즈의 배경이 흡사 ‘타이타닉’의 한 장면을 연상케 하는 건 덤이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퀸메리호는 ‘살아있는 유람선의 전설’로 불리며 길이만 길이 344m의 14만8000톤급 영국 선사인 초호화 세계일주 크루즈 선박이다. 현존하는 세계 유일의 오션라이너(대서양 횡단크루즈)에서 촬영된 영화가 별다른 스태프와 카메라 없이 배우들의 즉흥에 가까운 연기를 담았다는 것만으로도 한번쯤 볼 이유가 된다. 

이희승 기자 press512@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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