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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왓챠 '이멜다 마르코스: 사랑의 영부인’에서 현재의 한국을 보다

[#OTT] 왓챠 '이멜다 마르코스: 사랑의 영부인’
남편과 아들은 모두 대통령, 딸은 3선 국회의원...나는?

입력 2023-02-22 18:30
신문게재 2023-02-23 11면

KINGMAKER
필리핀에 자연 동물원을 만들고 싶었던 이멜다는 케냐에서 사들인 기린과 얼룩말들을 기르기 위해 칼라윗 섬에서 사람들을 쫓아냈다. 지금은 방치된 상태로 근친번식으로 전세계적인 비난을 받고 있다. (사진제공=DOGWOOF)

 

야구에는 ‘9회말 2아웃’이란 말이 있다. 거의 진 거나 다름없는 게임에서 극적으로 홈런이 터져 버린다. 순식간에 역전되는 상황. 인생에서 이런 일은 의외로 자주 일어난다. 믿기지 않겠지만 필리핀이 ‘아시아 최고 부자’인 적이 있었다. 아시아에서 가장 악명 높은 부패정치의 주범으로 불리는 마르코스 대통령이 정권을 잡았을 시절이다.


왓챠에서 볼 수 있는 ‘킹메이커’(한국제목 ‘이멜다 마르코스: 사랑의 영부인’)는 국내에서 ‘사치의 여왕’으로 불리는 이멜다를 중심으로 필리핀 정치의 흥망성쇠와 권력 복귀 시도를 비판하는 그린필드 감독의 다큐멘터리다.



젊고 아름다운 이멜다는 미인 대회 출신으로 수백개의 섬으로 이뤄진 필리핀에서도 유독 외딴 섬 출신으로 알려진다. 돈 많고 능력있는 구애자들 중 젊은 정치가였던 마르코스는 이멜다를 만난 지 10분만에 프러포즈를 할 정도로 열정이 넘쳤다. 다큐멘터리에서는 자세히 다뤄지지 않지만 그의 집안 역시 북부 루손 섬을 기반으로 꽤 알아주는 재력가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멜다가 허락할 때까지 다이아몬드 반지를 바치고 그걸 핑계로 화려한 파티를 열었던 사실이 슬쩍 지나간다. 결혼까지는 채 2주가 걸리지 않았다. 극 중 이멜다는 ‘정치가의 아내’가 버거웠다고 고백하지만 남편보다 더 탁월한 정치 행보를 이어간다. 당시 하원의원이었던 마르코스는 11년 뒤인 1965년 대통령선거에서 당선돼 21년간 장기 집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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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 부동산을 현금으로 사들인 이멜다. 봉기로 인해 추방당한 후 자신에게 쏟아진 각종 소송과 무혐의로 결론 난 서류들을 보여주는 모습.(사진제공=DOGWOOF)

 

국민의 안전과 국가 발전을 위해 필리핀을 떠나지 않는 남편을 대신해 이멜다는 외교 무대에서 특사로 활약한다. 사담 후세인, 리처드 닉슨 전 미국 대통령, 마오쩌둥 등의 지도자들을 직접 만났다. 그는 다큐를 통해 “그들이 나에게 반했다는 걸 한 눈에 알 수 있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아내가 자리를 비울 때면 마르코스는 전세계 미녀들을 침실로 불러들였고 이를 눈치 챈 이멜다가 침대에 녹음기를 설치하고 출장을 가는 바람에 ‘남편의 바람’이 아내이자 영부인으로서의 특권으로 박재됐다는 데서는 실소가 절로 나온다.

결론만 먼저 밝히자면 이멜다는 20년 넘게 필리핀에서 장기집권한 독재자 고(故)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전 대통령의 부인이며 현 필리핀 대통령인 봉봉 마르코스의 어머니다. 마르코스 전 대통령은 오랜 계엄령을 통해 반대파 수천명을 고문하고 살해했다. 1986년에서야 수백만 명의 필리핀인들이 궁에 들이닥쳤고 그 유명한 수백 켤레의 명품 구두와 현금, 보석을 뒤로 하고 비굴하게 도망쳐야 했다. 3년 뒤 망명지인 하와이에서 숨졌고 ‘이멜다 마르코스: 사랑의 영부인’은 그동안 해외에 은닉한 재산으로 은밀하게 필리핀에 복귀해 각종 예술품에 둘러싸이며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려는 과정을 담담하게 그린다.

이멜다는 외출할 때마다 현금다발을 들고 다니는 직원이 따로 있었다. 그리고는 흡사 영화의 주인공처럼 “과거에는 행복했던 국민들이 이렇게 불행하게 사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는 말을 반복한다. 그리고 만나는 모든 사람의 손에 지폐를 하나씩 쥐어준다. 세월은 흘렀지만 그의 영광은 되려 노후에 더 발휘되고 있음을 이 작품은 정면으로 응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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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에게 쏟아지는 스포트라이트를 즐기고 있는 이멜다의 모습.지금도 필리핀 국민들에게는 영광의 아이콘으로 추앙받고 있다. (사진제공=DOGWOOF)

 

쫓겨날 당시에도 손주들의 기저귀 가방에 고가의 장신구들을 숨겼음을 당당하게 밝힌다. 그는 “기저귀 속에 급하게 다이아몬드를 넣은 덕에 변호사들에게 지불할 수임료 수백만 달러를 아낄 수 있었다”고 슬픈 표정을 짓는다. 이어 “20년간 국모로 지내다가 조국을 잃으니 고아가 된 기분이었다. 돌아가신 어머니가 생각났다”고 하지만 눈물은 흘리지 않는다.

‘대통령 아들’ 봉봉이 어떻게 고국으로 돌아오고 정권을 잡는지는 자세히 다뤄지지 않는다. SNS에 익숙한 젊은 세대들을 이용한 영민함을 발휘하고 정치적 레버리지로 두테르테 대통령을 밀어주는 ‘신의 한 수’를 슬쩍 흘릴 뿐이다. 현직 부통령이 그의 딸인 사라 두테르테인 점을 안다면 봉봉의 지능이 뛰어난지, 이멜다 특유의 촉이 좋은지는 관객이 판단 하는 수밖에 없다.

 

왓챠_이멜다 마르코스: 사랑의 영부인
이멜다의 집에서는 파블로 피카소의 작품 ‘누워있는 여성 VI’로 추정되는 그림이 포착됐지만 영화 공개직후 경매시장에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제공=DOGWOOF)

 

단지 이후 마르코스 일가가 해외에 은닉한 재산을 환수하기 위해 바른정부위원회(PCGG)를 설치해 조사를 실시했고 2021년 기준 필리핀 정부는 총 1740억페소(4조1220억원)를 회수한 걸로 알려진다. ‘마르코스 주니어’가 정권을 잡은 뒤로는 바른정부위원회(PCGG)에 관련된 대부분의 사람들이 목숨을 잃을까 두려워 해외로 도피했거나 흐지부지됐다는 사실만 나올 뿐이다.

‘이멜다 마르코스: 사랑의 영부인’은 여러 모로 대한민국의 과거와 현재를 떠오르게 한다. 이멜다를 향한 충성도를 보면 볼수록 ‘국민의 어머니’로 불렸던 육영수 여사와 더불어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된 박근혜가 떠오른다. 게다가 지금 정치판은 ‘서로의 아빠’로 인해 유튜브와 인스타그램를 통한 딸들의 전쟁이 한창이다. 이 같은 소동과도 같은 정치 현황 속에서도 그저 이멜다 인터뷰 뒤에 보이는 피카소의 그림이 과연 진품인지가 궁금할 따름이다.

이희승 기자 press512@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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