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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공복엔 절대 시청금지… 웨이브 '더 택시반점'

[#OTT] 웨이브 '더 택시반점'
중화요리에 빠진 일본 택시기사의 미식여행 눈길

입력 2023-08-02 18:30
신문게재 2023-08-03 11면

더 택시반점
에피소드 1에 나오는 시무라사카우에 ‘마루후쿠’의 목이버섯 계란 볶음. (사진제공=웨이브)

 

그 도시의 맛 집을 알려면 ‘택시기사’를 통하는 게 가장 빠르다. 오죽하면 각 나라를 여행하는 유명 유튜버가 방문한 다양한 도시의 ‘기사 식당’만을 찾아가는 콘텐츠가 나오는 세상이다. 웨이브의 일본 드라마 ‘더 택시반점’은 유독 동네 중국집 음식만 밝히는 한 남자의 이야기다.


‘고독한 미식가’에 이어 ‘심야식당’까지 식도락 방랑기는 일본 드라마의 인기 키워드다. 하지만 이 작품은 소소한 골목의 맛집 중에서도 중화요리로 주제를 한정했다는 데서 신선하다. 그렇다고 한국에서 흔히 보는 중국집을 연상하면 곤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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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택시의 모습이 사실적으로 담긴 ‘더 택시반점’의 깨알 디테일. ‘운행’ ‘휴식’ 대신 ‘중화’라는 글씨가 시청자들의 웃음을 저격한다. (사진제공=웨이브)

 

‘더 택시반점’ 속 중화요리는 묘하게 일본식으로 변화된 제3의 음식에 가깝다. 탕수육도 나오고 볶음밥, 마파두부, 물만두까지 누가 봐도 중화요리지만 그렇다고 무작정 중국음식으로 단정지을 수도 없다. 

 

개인택시를 운영하는 하치마키(시부카와 키요히코)는 하루의 동선을 손님보다 맛집에 두는 중화요리 마니아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목적지까지 데려다 주지만 늘 식사는 정해져 있다. 지금은 이혼한 아내와의 첫 데이트도 동네 중식당이었을 정도로 일본식 가정식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자세한 전사가 나오는 건 20분 분량의 에피소드 8개 중에서 반 정도가 지난 시점이다. 드러머였던 그는 아이가 생기자 뮤지션의 꿈을 접고 메론빵집을 연다. 제법 잘 되던 가게가 망한 건 시대를 앞서갔기 때문이다. 지금은 당연한 아이스크림이나 단팥앙금을 속으로 넣었지만 그때는 클래식한 메론의 맛을 중시하던 시기였다. 이것저것 시도할 때마다 매출은 줄어갔고 급기야 아내와도 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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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택시를 몰며 자신만의 낭만을 찾아나서는 주인공. 가끔 손님이 없으면 한적한 곳에서 다음번에 먹을 맛집을 고민한다. (사진제공=웨이브)

 

이혼한 아내를 택시의 손님으로 만난 건 긴 시간이 지나서였다. 한때는 딸과 셋이서 단골 중식당에서 치킨라이스를 먹을 만큼 사이가 좋았지만 기울어져가는 빵집과 함께 가정의 단란함은 깨졌다. 세월이 흘러 전남편이 운행하는 택시에 탄 전 아내는 “앱으로 불렀는데 개인택시가 오면 어쩌자는거냐”고 툴툴댄다.

세련된 레스토랑 카운슬러가 된 전 아내를 손님으로 만나는 건 하치마키도 거북하기는 마찬가지다. 하지만 두 사람은 다음 행선지로 가기 직전 늘 “균형이 완벽하다”고 즐겨먹던 라면 달걀밥 세트를 먹으며 그간의 오해를 푼다. 흐른 세월만큼이나 당시에는 상처와 분노로 인해 결코 하지 못했던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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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 중 이혼서류를 내러 시청에 가려던 부부는 함께 탕수육을 먹으며 잊고 있었던 서로의 장점을 발견한다. (사진제공=웨이브)

 

비오는 저녁 멋진 꽃다발을 들고 택시에 탄 중년 사내는 이제 막 정년퇴임했다는 사실을 밝힌다. 그리고 40년 넘게 한 직장에 다닌 그는 맛을 감별해야 하는 직군으로 평생 향이 강하거나 매운 음식을 멀리했다고 웃어보인다. 그 말을 듣고 갑자기 진한 산초가 가미된 마파두부가 그리워진 주인공은 손님을 데리고 자주가는 맛집을 방문한다.

알고보니 밥에 뿌려먹는 후리가케 기업에 근무한 손님은 입사 이후 좋아하던 음식인 마파두부를 먹어 본 적이 없었다. 자신의 은퇴 직전 세상을 뜬 아내도 자신과 함께 마파두부를 멀리했다고 눈물짓는다. 

 

‘꼰대스런 걱정’이었던 퇴임 후 회사 걱정도 감동으로 마무리된다. 그저 맛 감별에만 집중했던 자신과 달리 요즘 젊은 세대들이 짊어져야 할 수많은 보고서과 수치들이 되려 큰 부담과 업무적 과중이 되고 있음을 선배로서 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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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팬들에게는 굵직한 화제작보다 소소한 드라마의 주조연으로 익숙한 시부카와 키요히코.(사진제공=웨이브)

흡사 영화 ‘레옹’의 한 장면 같은 화분과 큰 트렁크를 들고 공항으로 가는 젊은이의 사정은 뮤지션의 꿈을 들고 상경한 하치마키의 과거를 떠올리게 만든다.

 

배우를 꿈꾸며 고향을 떠나왔지만 지금은 다 포기하고 가업을 잇기 위해 다시 돌아간다는 그는 무슨 이유인지 가는 길에 카마카 역 쪽으로 가달라고 요청한다. 외모도 능력도 뭐 하나 뛰어나지 않았지만 그저 꿈을 위해 달려갔던 시절 살던 동네다.

손님은 “캐스팅이 잘 되거나 일이 잘 풀리면 상으로 볶음국수와 고기완자를 먹었다”며 근처 숨은 맛집을 알려준다. 푸짐하게 나오는 볶음 국수의 반 쯤을 먹은 뒤 식초를 뿌려 산미를 더한다는 자신의 방식을 슬쩍 흘리기도 한다. 

 

이외에도 계란볶음밥, 다양한 교자, 라면까지 반쯤 일본식으로 바뀐 중화요리들이 오감을 자극하는 만큼 추천 시간대는 단연코 식후다. 다이어트 중이거나 출출한 상태에서 이 작품을 본다면 과도한 탄수화물 섭취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더 택시반점’의 이야기는 픽션이지만 가게들은 실제 존재한다. 극 중 서빙하는 직원들은 실제 사장이나 가족들로 에피소드 후반에는 상호명의 유래나 추천 메뉴를 소개하기도 한다.

영화의 마지막 에피소드에는 작품의 주제가를 직접 부른 가수가 등장해 재미를 더한다. 신입기사를 모집하는 신인데 게다(나무 나막신)를 신고 기타를 맨 채 “택시를 너무 몰고 싶은데 그 마음을 표현할 길 없어 노래로 만들었다”며 천연덕스럽게 등장한다.

 

손님이 타기 전에 자동으로 문이 열리는 일본 택시 시스템을 엿볼 수 있는 것도 ‘더 택시반점’의 신선함이다. 소재는 중화요리지만 그 저변에 깔린 ‘이루지 못한 꿈’에 대한 판타지도 유난히 가슴을 후빈다. 운 좋게 이뤘다면 현실이어서 행복할 수 있지만 아쉬워도 꿈인 것을, 이 작품은 어른스럽게 잘 표현했다.

이희승 기자 press512@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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