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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내 사랑을 화석으로 남겨다오… 영화 '암모나이트'

[#OTT] 웨이브·왓챠·쿠팡플레이, 영화 '암모나이트'
실존했던 두 여성의 편지에서 출발
여성지질학자인 메리 애닝의 후손들, 동성애 반박
빅토리아 시대의 낭만과 차별속 꽃핀 사랑

입력 2023-08-16 18:00
신문게재 2023-08-17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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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중 두 배우가 단 한번, 뜨겁게 보여주는 베드신은 5분 정도. 절제된 영상미에 청각적인 상상력을 더해 퀴어 로맨스의 미학을 이끈다. (사진제공=소니 픽처스)

 

지난 2020년 제25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첫 선을 보인 영화 ‘암모나이트’의 평가는 경이로웠다. 여성 퀴어영화 ‘캐롤’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의 뒤를 이을 만한 수작이라는 평가와 함께 다음 해 국내 개봉했으나 관객수 1만명을 다 채우지 못하고 사라졌다.


케이트 윈슬렛과 샤얼사 로넌이 보여주는 연기력과 투박하지만 진정성 있는 프란시스 리 감독의 연출력만 보자면 1000만 영화가 당연했지만 역시나 현실의 벽은 높았다. 국내 정서상 동성인 두 배우의 벗은 몸이 스크린을 가득 채우고 이성의 베드신보다 화끈했지만 화제성으로 이어지진 못했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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뻔한 여성서사라는 해외외신의 평가에도 ‘암모나이트’는 유수의 영화제에 초청되며 화제성을 이끌었다. (사진제공=소니 픽처스)

 

실존했던 영화 속 주인공인 메리 애닝(케이트 윈슬렛) 역시 학계에서 환영받지 못했다. 영국에서 최초로 공룡 화석을 발견하고 가장 똑똑했던 지질학자로 불렸지만 당시에는 여성이란 이유만으로 멸시당했고 부조리한 일을 겪어야 했다. 실제 대영박물관에는 플레시오 사우르스의 화석 모형과 함께 그의 이름이 등재돼 있지만 당시 그의 부모는 돈 몇 푼에 팔아버릴 정도로 무지했다.

1840년대 영국 남부 해변에서 태어난 메리는 작은 기념품 가게를 운영하며 엄마를 봉양한다. 화석으로서 큰 가치는 없는 작은 돌 모양은 휴양지인 자신의 마을을 방문하는 부자들에게 인기 있는 품목. 메리는 동시대 학자들보다 뛰어난 지식을 쌓았지만 노동계급의 가난한 여성이란 이유로 인정받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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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트 윈슬렛이 보여주는 강인한 세련미는 메리 애닝이 그저 남성위주의 학계에 희생당한 여성학자로 치부하지 않게 만드는 마력을 발휘한다.(사진제공=소니 픽처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메리는 늘 검은 바위와 진흙이 가득하고 거친 파도가 치는 해변으로 나간다. 겉으로는 생계유지를 위한 돌수집이지만 그 곳에서 발견하는 화석은 고귀한 자료가 된다. ‘암모나이트’ 속 메리 애닝은 늘 조용하고 책만 본다. 그런 딸이 못마땅한 엄마는 다른 수입원(?)을 발굴한다. 런던에서 요양차 내려 온 귀부인 샬롯 머치슨(시얼샤 로넌)의 병간호를 자청한 것이다.

남편은 아내가 빨리 낫기를 바라며 해수욕을 시키고 온갖 치료에 매진하지만 차도가 없다. 마침 남편의 출장으로 함께 떠나야 하지만 병에 걸린 샬롯에게는 너무 힘든 일이다. 사실 샬롯은 타고난 도시여자이기 때문에 해변 마을의 조용함이 견딜 수 없다. 몸에 좋다고 차가운 바닷물에 몸을 담그는 것도, 늘 바쁜 남편도 이해할 수 없다. 자신의 간병인임에도 필요한 일 외에는 대화도 위로도 하지 않는 메리의 태도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무뚝뚝하고 말수 적은 연상의 메리가 달리 보인 건 손톱에 잔뜩 낀 흙을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는 털털함 때문이었다. 그렇게 지루한 시간을 보내던 차 샬롯은 우연히 그의 연구현장을 보게 된다. 자신이 매일 거치는 드레스와는 차원이 다른, 억센 천에 짙은 색 옷만 입는 이유도 알았다. 마침 메리는 가치가 대단한 화석을 발견했지만 도저히 자신의 힘으로 파낼 수 없는 상황이었다. 두 사람은 옷에 진흙이 엉겨붙는 것도 모른 채 합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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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고난 고귀함과 사랑스러움을 온 몸으로 표현한 샤얼사 로넌. 13세에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에 오른 이후 4번이나 이어진 이유를 연기로 증명한다. (사진제공=소니 픽처스)

 

메리 역시 새침하고 연약해 보였던 샬롯이 포기하려는 자신의 결정에 아랑곳하지 않고 끝까지 집중하며 돕는 모습에 매료된다. 그날 저녁 이웃에서 열린 음악회에 초대 받은 두 사람은 호기심과 애정으로 변한 각자의 시선을 깨닫게 된다. 늘 아프고 파리했던 샬롯이 치장한 모습을 보고 매료된 메리의 눈동자는 흔들린다. 늘 어둡고 무섭기만 했던 여성 간병인의 깊은 학식과 카리스마에 설렘을 느끼는 건 샬롯도 마찬가지다.


영화는 냉랭했던 두 여자의 심리변화는 따끈한 감자스프처럼 풀어낸다. 영국식 감자스프는 화려한 재료 없이 갈아서 진하게 끓인다. ‘암모나이트’ 속에서는 그저 무심하게 깍뚝썰기로 잘라 끓여내지만 몸이 따듯해지는 맛은 진배없다. ‘암모나이트’는 가난하지만 독립적으로 살았던 메리와 풍요로운 삶에 익숙해 철 없는 샬롯의 감정을 짧은 신으로 표현한다. 어렵게 구한 화석의 가격을 후려치려는 관광객을 대하는 차이는 극명하다.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메리는 그 가격에라도 팔려고 하고 샬롯은 신사도에 읍소하며 제대로 된 가격을 받아낸다. 동성애에 대한 차별을 누구보다 잘 아는 메리는 숨기기에 급급하지만 샬럿은 자신의 집에 연인의 방을 마련할 정도로 해맑다. 도시에서 팔짱을 끼고 함께 걸어도 그저 친자매처럼 보일 거라는 순진함이 ‘암모나이트’의 후반을 이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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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가 속한 세계가 완벽히 달랐던 두 여성의 사랑이 압축된 ‘암모나이트’의 한 장면.(사진제공=소니 픽처스)

 

빅토리아 시대를 완벽 재현한 영상미와 대자연의 위대함은 영화의 또다른 주인공이다. 느릿하게 서로의 감정을 향해 가는 케이트 윈슬렛과 샤얼사 로넌의 연기 호흡 또한 흠잡을 데 없다. 프란시스 리 감독은 실존했던 두 인물이 생전 나눴던 편지에 영화적 상상력을 더한 것으로 알려진다. 

완전히 다른 세계를 살았던 두 사람의 우정이 시대를 거스른 사랑이었는지는 지금도 밝혀진 바 없지만  케이트 윈슬렛은 “중년의 여성이 동등한 사랑을 쟁취하는 것은 지금 이 시대에 가장 필요한 이야기였다”는 출연 소감을 남겼다. ‘암모나이트’는 현재 웨이브, 왓챠, 쿠팡플레이에서 만날 수 있다.

이희승 기자 press512@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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