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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영화 속 등장은 '고작 5분'인데… 뒤늦게 화제가 된 '이 영화'

[#OTT] 영화 '봉오동 전투'
'백두산 호랑이'라 불린 홍범도 장군 역할로 나온 최민식
민초들이 독립군이 되기까지의 항일 전투 사실적이고 스피디하게 그려내

입력 2023-09-20 18:30
신문게재 2023-09-21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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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독립군의 포스를 완벽히 재현한 포스터. (사진제공=쇼박스)

지난 2019년 손익분기점인 관객수 450만명을 간신히 넘은 영화가 있다. 당시 일본 불매 운동이 한창이었고 일제강점기 독립군의 무장 항쟁을 다룬 만큼 어느 정도 흥행이 예상됐으나 개봉도 전에 벌점테러의 희생양이 된 ‘봉오동 전투’가 그 주인공이다. 무대인사가 예정된 130석의 좌석이 상영 전 일방적으로 취소가 되는가 하면 “언제까지 진부한 NO재팬할꺼냐?”는 댓글이 달렸다. 최종적으로 1920년 6월 역사에 기록된 독립군의 첫 승리로 불리는 봉오동 죽음의 골짜기에 모인 독립군들의 이야기를 담은 이 영화는 470만명을 모았다.


영화의 주축은 믿고보는 배우들의 향연이다. 항일대도를 휘두르는 비범한 칼솜씨의 해철(유해진)과 발 빠른 독립군 분대장 장하(류준열)를 필두로 해철의 오른팔인 저격수 병구(조우진)의 활약이 때론 코믹하고, 때론 비범하게 스크린을 가득 채운다. 사실 이들은 한때 그저 일본의 군화와 조롱에 짓밟히는 민초에 불과했다. 주린 배를 채우고자 침략자들에게 길을 알려주고 누이가 능욕당하는 수모를 견디다 못해 궐기한 인물들이다. 그들은 빗발치는 총탄과 포위망을 뚫고 죽음의 골짜기로 일본군을 유인한다. 이들과 함께 계곡과 능선을 넘나들며 귀신같은 움직임과 예측할 수 없는 지략을 펼치는 이름모를 수많은 독립군들 역시 순박한 농부였거나 평범한 학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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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식은 홍범도 역할에 대체 배우가 없을 정도로 특유의 카리스마를 선보인다. (사진제공=쇼박스)

 

영화는 1919년 3.1 운동 이후 활발해진 독립운동을 무력으로 응징하는 당시 일본군의 잔인함을 간과하지 않는다. ‘백두산 호랑이’로 불리며 항일항쟁을 이끈 홍범도 장군을 겨냥한 듯 한 일본 장교가 한반도를 지키는 신성한 동물로 여긴 호랑이를 도륙하는 장면이 나온다. 1920년 6월, 역사에 독립군의 첫 승리로 기록되는 봉오동 전투가 있기까지 마을은 불타고 도망가는 어린아이의 등에는 총알과 칼이 박혔다.

극 중 어린시절 이죽거리는 일본군이 준 감자바구니 안에서 폭탄이 터지면서 동생을 잃은 황해철은 말한다. “나라 뺏긴 설움이! 우리를 북받치고 소총잡게 만들었다 이 말이야”라고. 그리고 독립군의 씨를 말리겠다고 덤벼드는 무장 군인들에게 “독립군 수는 셀 수가 없어, 왠지 알아? 어제 농사 짓던 인물이 내일 독립군이 될 수 있다 이 말이야”라고 절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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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준열은 이 영화를 계기로 라이징 스타에서 연기파 배우로 거듭났다. 연기와 액션 모두 합격점을 받은 ‘봉오동 전투’의 모습. (사진제공=쇼박스)

 

독립군은 수적인 열세에도 봉오동 지형을 무기 삼아 일본군에 맞선다. 전설적인 독립군 황해철은 늘 퉁명스럽고 병구와 티격태격하는 게 일이지만 전투가 시작되면 손에 든 칼이 쉬는 법이 없다. 일본군의 목을 거침없이 베는 역할에 대해 당시 유해진은 “시나리오를 보자마자 기교보다 진정성이 느껴졌다. 마치 나에게는 바위, 돌멩이 같은 단단함으로 다가오더라. 거기다 통쾌함까지 같이 묻어있어서 곧바로 이 영화를 선택했다. 조국을 위해 희생하신 독립군을 그렸기에 정말 진정성을 가지고 접해야겠다”며 출연 배경을 설명했다. 실제 출연한 일본 배우들 중에는 소속사 반대에도 “그 시절은 더 심했을텐데 진실되게 연기하고 싶을 뿐”이라고 연기적 소신을 밝힌 키타무라 카즈키가 화제가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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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산을 좋아하는 유해진이 작정하고 산을 탄 영화로 알려진 이 작품은 배우 조유진과 티키타카의 진수를 보여주는 작품이기도 하다. (사진제공=쇼박스)

 

감정을 쥐어 짜기 보다는 속도에 초점을 둔 연출도 주효했다. 극 중 장하가 잡힐 듯 말듯 소총 하나를 들고 능선을 힘겹게 달리고 오르는 이유가 정상 부근에 몰래 묻어둔 기관총으로 일본군을 소탕하기 위함이란 걸 아는 순간 뭔지 모를 후련함마저 든다. 사실 이 영화는 육군사관학교 독립유공자 흉상 철거 논란에 홍범도 장군이 얽히면서, 한국 넷플릭스 영화 순위 3위에 오르며 다시금 화제의 중심에 섰다.

육군사관학교는 최근 홍범도 흉상을 철거해 학교 밖으로 옮기고 김좌진·지청천·이범석·이회영 흉상을 교내 다른 곳으로 이전하기로 결정했다. 독립운동가 이상룡·지청천·윤기섭의 후손들은 지난 15일 흉상 철거·이전에 대해 항의하는 뜻에서 육사가 2018년 선조들에게 수여한 명예졸업증을 반납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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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에서는 ‘감자’ 하나로 이를 일컫는 지역 방언이 얼마나 많은지 그리고 배고픔을 잊을 수 있는지 감동적으로 아우른다(사진제공=쇼박스)

 

극 중 홍범도 역할을 맡은 최민식의 출연은 미비하다. 영화 말미 죽지도 않고 능글맞게 도망치기 바빴던 아라요시(박지환)가 겉모습만 보고 무시할 정도로 촌부(村夫)다. 하지만 짧은 출연만으로도 홍범도 장군이 가졌을 기개와 카리스마를 연기하는 건 순전히 배우의 몫이다. 그는 억울하게 죽은 민족들의 유골을 남쪽을 향해 뿌려주고 부하들의 희생과 노고를 눈빛으로 위로한다. 그리고 묵묵히 다음 격전지가 될 청산리를 알려주며 끝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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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상 모든 OTT인 티빙, 웨이브, 쿠팡 플레이, 왓챠,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는 영화 ‘봉오동 전투’의 스틸. (사진제공=쇼박스)

 

사실 이 영화가 아니었다면 홍범도 장군은 영원히 역사 교과서에 수록된 몇줄로 기억됐을지도 모른다. 영화 개봉 이후 홍범도 장군의 유해는 지난 2021년 카자흐스탄에서 운구돼 무려 78년 만에 대한민국 땅을 밟았다. 하지만 고작 2년만에 흉상이 철거된다는 소식에 문재인 전 대통령은 책방지기로 일하는 ‘평산책방’에 홍범도 장군 평전을 쓴 작가를 초청하는 문화 행사를 개최해 눈길을 끈다.

‘민족의 장군 홍범도’ 평전을 쓴 이동순 시인(영남대 명예교수)은 17일 저녁 평산책방에서 시민 100여명과 만났다. 그가 올해 3월 펴낸 이 책은 청산리·봉오동 전투 때 독립군을 이끈 홍범도 장군의 생애를 문학적으로 재조명한 책이다. 정권이 바뀌면서 홍범도 장군을 둘러싼 논란에 이어 흉상마저 옮겨지는 걸 보고 있자니 어렵게 고국으로 돌아온 그의 헌신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135분.

이희승 기자 press512@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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