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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추모의 방식은 모두 다르다… '진심'만 있다면! 영화 '강변의 무코리타'

[#OTT] 티빙·웨이브 영화 '강변의 무코리타'
국내 두터운 팬 층을 지닌 '카모메 식당'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의 신작

입력 2023-11-15 18:00
신문게재 2023-11-16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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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짓는 레시피를 따로 공개줬으면 할 정도로 맛있게 밥을 먹는 영화 속 한 장면. 국내에서는 ‘데스노트’의 명탐정 L로 유명하다. (사진제공=(주)디스테이션)

 

영화의 시작은 제목에 나오는 ‘무코리타’를 설명하는 자막이다. 불교의 시간은 인간이 인지할 수 없는 찰나가 있는데 산스트리트어를 일본식으로 발음한 이 단어는 다르다. 약 48분. 영화 ‘강변의 무코리타’는 노을빛으로 하늘이 물들어 가는 시간을 추상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표현하고 있다. 일본 영화 특유의 소소한 일상과 스며드는 연출이 취향이라면 이 작품은 세 손가락 안에 든다. 국내 팬들에게 ‘안경’ ‘카모메 식당’으로 유명한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의 작품이니 일단 믿고 봐도 좋다.

누가 봐도 의욕이라곤 1도 없어보이는 야마다(마츠야마 켄이치)의 첫 신은 그래서 더 비밀스럽다. 누군가의 추천으로 지방 소도시의 젓갈공장에 취직한 그는 사장이 소개해준 허름한 멘션에 도착한다. 강가에 위치한 이 연립주택은 각자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가난하지만 따듯한 사람들이 모여산다. 하지만 누구도 사연을 떠벌리거나 성급하게 캐묻지 않는다. 퉁명스러운 듯 보이는 집주인 미나미 (미츠시마 히카리)는 “그래도 이 방에서 죽어나간 사람은 없다”며 작은 방 한칸을 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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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황제성 닮은 꼴’로 유명한 무로 츠요시. 유기농으로 기른 농산물을 물물교환식으로 사는 캐릭터다. (사진제공=(주)디스테이션)

 

하루종일 오징어의 내장을 빼고 생선의 아가미를 분리해서 첫 월급을 탄 날 그는 겨우 쌀 한 포대를 산다. 반찬이라곤 회사에서 준 젓갈 한 가지 뿐이지만 그에겐 평범한 전기밥솥이라도 최상의 맛을 이끌어 내는 재주가 있다. 국내에서는 ‘데스노트’의 명탐정 엘(L)로도 잘 알려진 마츠야마 켄이치가 연기하는 식사 장면은 밥 짓는 레시피를 따로 공개줬으면 할 정도로 맛깔스럽다. 

그 밥 냄새에 이끌려 자신을 시마다 (무로 츠요시)는 자신이 직접 농사지은 채소를 대신 내며 숟가락만 들고 오는 염치없는 이웃이다. 물을 데우는 가스비가 아까워  남이 목욕한 물에 몸을 담글 정도로 짠돌이다. 알고 보니 그의 삶은 자급자족 시스템. 추운 겨울을 버틸 난방비를 모을 때까지 모든 의식주를 이웃에게 기댄 채 해결한다. 다행히 그가 텃밭에서 키운 유기농 채소는 맛이 뛰어나 인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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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평범한 중산층은 아니지만 전혀 다른 삶의 모습을 담고 있는 영화 ‘강변의 무코리타’는 국내에서 지난 8월 개봉했다. (사진제공=(주)디스테이션)

 

그렇게 기계적인 하루가 반복될 무렵 옆집 할머니가 꽃밭에 물을 주며 “곧 활짝 필거라”는 말을 남기고 사라진다. 앞집 부자는 상복을 입은 채 방문 판매로 묘석을 팔러 다니는데 가끔 월세도 밀리는 것 같다. 풍족함이라곤 찾아볼 수 없지만 ‘강변의 무코리타’는 그나마 집에서 먹고 자는 그들이 행복한 삶이란 걸 슬쩍 흘린다. 

연립주택으로 가는 길에는 텐트에서 사는 노숙자들이 있다. 장마가 심해져 강물이 넘치면 간혹 사망자가 발생하기도 하는 곳이다. 자신이 이런 곳에서 일상을 보내는 게 견딜 수 없을 즈음 야마다는 아버지의 부고를 접한다. 고독사에 부패가 심하게 진행된 후 발견돼 이미 화장을 했기에 시청에서 유골을 찾아가라고 연락한 것. 자신에게 물려준 것이라곤 목욕 직후 시원한 우유를 마시는 취향 뿐인, 사실상 관계가 끊어진 사이였다. 

‘강변의 무코리타’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은 모두 ‘죽음’과 연관돼 있다. 미나미는 남편을 잃었고 시마다는 어린 아들의 죽음을 안고 산다. 알고 보니 옆집 할머니는 2년 전 죽은 영혼이었다. 평생을 그곳에 산 탓인지 이웃들의 눈에 귀신으로 가끔 보이지만 다들 개의치 않는다. 묘석을 팔러 다니는 부자도 자세히 드러나진 않지만 아내와 엄마의 존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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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집주인 미나미에 대한 세입자들의 로맨스가 조금이라도 섞였다면 이 작품의 매력은 분명 덜 했을 것이다. 보스기질 다분한 캐릭터로 극의 중심을 단단히 잡는다. (사진제공=(주)디스테이션)

 

그들에게 아버지의 묘석이라도 사 볼까 하는 마음에 가격을 물었지만 가장 싼 것도 몇 달치 월급이란 점에 현타가 오는 야마다. 사실 그는 사람들을 현혹해 돈을 갈취한 전력이 있는 전과자였다. 자신이 살았던 수준과 비교도 할 수 없는 지금이지만  영화는 결코 가족이라고 묶일 수 없는 존재들도 그 이상의 관계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혈연사이에도 원망과 미움, 다툼이 충만한 시대에 이들은 적당한 선을 결코 넘지 않는다. 서로 연대하고 배려하는 모습이 세련되지도 않다. 그저 자신이 겪은 상실을 굳이 다른 걸로 채우려 하지 말라고 슬쩍 손내밀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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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문 판매로 가장 비싼 묘석을 판 이들은 몰래 고기를 구워 먹지만 벽이 얇은 이웃들에게 들킨다. 툴툴대면서도 한데 둘러 앉아 고기를 먹는 이들의 모습이 훈훈함을 더한다. (사진제공=(주)디스테이션)

 

이후 깊은 고민 끝에 아버지의 유골함을 찾으러 간 야마다는 시청 한켠을 가득채운 무연고 유골함을 발견한다. 적당한 시기가 지나도 찾아가지 않으면 폐기되는 인간의 뼈가 주는 서글픔은 ‘강변의 무코리타’이 지닌 화두기도 하다. 속세는 떠났지만 남아있는 자들에게 외면당한 수많은 유골함이 시사하는 바는 영화의 엔딩에서 눈물로 응축돼 흐른다. 연립주택에 사는 사람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추모식에 참석하는데 여태껏 본 어느 장례식보다 심금을 울린다. 

경건함을 기본으로 누군가 흐느끼는 울음을 상상한다면 이 영화를 볼 자격이 없다. 역대급으로 글로벌하고 애틋하며 그리고 더없이 아름답다. 롱테이크 촬영법으로 해가 지는 강변에서 약 10분간 영화의 OST까지 흐르는 마지막신이야 말로 ‘진정한 애도란 이런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찬란하다. 방문판매로 가장 비싼 묘석을 판 부자가 몰래 고기를 구워먹다 냄새를 맡고 모여든 이웃들과 한데 둘러 앉아 툭탁더리는 모습이 훈훈함 그 자체인 ‘걍변의 무코리타’는 티빙과 웨이브에서 볼 수 있다.
 
이희승 기자 press512@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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