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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또 다시 불거진 사생활 무단도용

입력 2024-06-25 14:10
신문게재 2024-06-26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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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미선 문화부장

표절, 저작권 침해, 미투 등 잊을만하면 고질병처럼 불거지는 논란들이 있다. 충분한 동의 없는 사생활 및 사적 대화의 무단 도용 그리고 창작의 자유, 기묘하게 충돌하는 두 권리에 대한 공방 또한 그렇다. 

 

충분히 동의되지 않은 채 차용돼 ‘예술작품’이 된 삶과 이를 차용해 이야기로 재구성한 예술가의 표현의 자유 등은 예술계가 늘 숙고하며 탐구 중이며 반드시 그래야 할 사안들이기도 하다.



4년 전 김봉곤 작가는 지인들과 나눈 사적 대화를 동의 없이 인용해 구설에 올랐다. 이에 그는 사과와 동시에 그 내용이 담긴 출판물의 회수·환불조치를 알리는가 하면 그해 수상한 젊은작가상도 반납했다. 그리고 2024년 정지돈 작가가 또 다시 충분히 동의되지 않은 사생활 도용으로 논란의 중심에 섰다.

그의 전 연인이라는 유튜버는 정 작가의 ‘야간 경비원의 일기’ ‘브레이브 뉴 휴먼’ 속 인물들에 자신의 내밀한 사생활과 연인 관계일 때 나눴던 대화의 일부, 가정사 등이 무단 도용됐다고 주장했다. 특히 ‘브레이브 뉴 휴먼’ 속 캐릭터는 같은 이름인데다 가족사마저 비슷하다고 강조했다.

작가 고유의 ‘창작의 자유’와 실존 인물의 ‘명예 훼손’ 가능성이 충돌한 사건이 재발한 셈이다. 법학계에 따르면 “작가가 실화에 근거했다고 밝히지 않거나 제3자가 누구 이야기인지를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유사하다면 명예훼손에 해당할 가능성이 있다”며 “결국 작가가 최대한 허구성을 구현해야 법적 책임을 피해갈 수 있다.”

충분히 동의되지 않은 사생활 도용에 대해 다수의 출판관계자들 역시 “당연히 잘못”이라고 입을 모은다. 그럼에도 사생활 및 사적 대화의 무단 도용과 창작의 자유가 충돌하는 논란은 잊을만하면 다시 불거지곤 한다.

문학은 물론 공연, TV와 영화 등 영상 콘텐츠, 만화 등 모든 이야기는 ‘인간의 삶’을 재료로 한다. 창작자 스스로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또 다른 누군가의 삶을 통한 간접 경험이기도 하다. 이는 창작의 밑거름이 돼 다양한 형태로 변주되곤 한다. 이에 이 같은 논란은 문학계 뿐 아니라 예술계에서 실재하고 있고 여전히 현재진행 중인 것들이기도 하다.

예술의 소재가 되는 삶과 이를 차용해 예술로 끌어들이는 행위, 그 사이에는 ‘충분한 동의’가 부재한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그 삶과 행위의 무단 차용 여부는 폭로를 통해 격렬히 충돌하거나 어느 한쪽의 외면 혹은 자포자기로 흐지부지되곤 한다. 정 작가의 사생활 무단 도용 의혹을 제기한 유튜버 역시 처음 도용 사실을 인지했을 때는 지인의 “창작 권리랑 충돌해 법적으로 따지기 어렵다”는 전언에 문제 제기를 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진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고들 한다. 그렇게 누군가의 삶과 경험은 예술의 재료가 되고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곤 한다. 하지만 이들은 누군가의 고유성이자 정체성이며 숨기고 싶은 치부이기도 하다. ‘예술’을 위해 마구잡이로 침해돼서는 안될, ‘충분히 동의돼 인용 혹은 차용되고 윤리적으로 다뤄야 할’ 것들이다. 

 

법조계의 조언처럼 “프라이버시 침해로 인한 민법 750조 불법행위 사례로 재현의 윤리 및 취재 자료의 정당성은 여러 장르의 창작자들이 조심스레 다뤄야 하는 부분”이며 “결국 작가 윤리의 문제”다.

 

허미선 문화부장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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