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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대왕고래 출현' 한 달, 포항 앞바다

입력 2024-07-03 06:09
신문게재 2024-07-03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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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남석 산업IT부장
1차 오일쇼크가 터져 배럴당 국제유가가 3달러에서 13달러로 4배 이상 폭등한 1973년. 그로부터 2년 후 희대의 사기 사건이 터졌다. 프랑스 국영 정유사 ‘엘프 아키텐(Elf Aquitaine)’에 낯선 인물 2명이 찾아와 굴착작업 없이 냄새만으로 석유를 발견하는 혁신기술이 있다는 솔깃한 제안과 함께 였다.



특수 장비를 장착한 비행기를 타고 높은 고도로 올라가 석유냄새를 탐지하는 식이었다. 조작해 놓은 테스트 화면에 석유 매장 이미지가 떳고, 황당할 정도로 허술한 수법에 엘프아키텐의 경영진은 그 기술을 확신했다. 이후 4년간 10억 프랑(당시 2200억원)의 막대한 사업비가 사기꾼들 손에 넘어갔다.

프랑스의 경영전략 컨설턴트 올리비에 시보니(Olivier Sibony)가 자신의 저서 ‘선택 설계자들’에 소개한 편향된 정보에 의지해 저지른 치명적 실수 중 한 예시다. 그는 “그들도 나름대로 다양한 펙트를 확인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이미 결론을 내려놓은 상태, 즉 ‘스토리텔링의 마법’에 빠져있었다”고 설파했다.

최근 국내에서는 길이 30m, 체중 190~200톤. 역대 지구 상 모든 생물 중 가장 거대한 동물, 대왕고래가 화제다. 그것도 뜬금없이 2024년 6월, 동해 영일만 앞바다 위로 불쑥 솟아올랐다. 그 고래는 지난달 3일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나서 “포항 영일만 앞바다에 막대한 양의 석유와 가스 매장 가능성이 크다”는 물리탐사 인용 발표로 소환됐다.

최대 추정 매장량 140억배럴. 21세기 최대 석유개발 사업이란 남미 가이아나 광구(110억배럴)보다도 많은 양이다. 여론의 스포트라이트는 물리탐사 용역업체 엑트지오를 향했지만, 논란만 키웠다. 1인 기업에 4년 법인 영업세 체납, 소재지가 가정집이라고 하니 그럴 법도 하다. 석유공사는 액트지오를 포함, 3개사가 입찰에 참여했다 면서도 명단과 평가, 선정 과정, 자문위원회 회의록 조차 공개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대왕고래 프로젝트는 ‘착착’ 진행되고 있다. 정부는 12월부터 4개월간 1000억원 안팎의 예산을 투입, 7개 유망구조 중 1곳을 탐사 시추키로 했고, 노르웨이 시드릴사와 시추선 임대 및 다수의 용역 계약도 맺었다. 글로벌 메이저 석유기업과 접촉 중이란 김동섭 석유공사 사장은 최소 5차례 5천억원 이상의 탐사시추 재원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문제는 이런 국가적 사업에 충분한 과학적 검토나 준비가 있었느냐 하는 부분이다. 국민 여론도 비슷하다. 지난달 한국갤럽에 따르면 국민의 60%가 정부 발표를 ‘믿지 않는다’고 답했다. ‘신뢰한다’는 28%에 불과했다고 한다. 그렇다고 해서 동해바다의 황금을 무턱대고 묻어두자는 것만은 아니다. 국부를 떠나 에너지 안보 차원에서라도 대왕고래의 꿈은 현실이 됐으면 한다.

다만, 동해 앞바다에 뭍혀있다는 기름과 가스는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 충분한 시간을 갖고 치밀하게 검토한 뒤 시추해도 늦지 않다. 7번 시추보다 1~2번 시추로 결과를 낼 수 있다면, 그것이 국익에 더 부합하는 일 아닌가. 오늘이 대왕고래 프로젝트 부상, 한 달째 되는 날이다. 하이리스크 하이리턴(High Risk High Return)이라고 했던가. 대왕고래에 우리가 너무 빨리 달아올랐다. 자칫 우리 스스로가 대왕고래란 스토리텔링의 마법에 걸려 있는 것은 아닌지도 되돌아 볼 때다.

송남석 산업IT부장 songnim@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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