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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글라이프] 집밥으로 관계맺는 SNS 밥상 친구 '소셜 다이닝'

입력 2015-05-27 09:00

주말 오후 신촌의 한 카페 안. 즉석밥을 들고 들어오는 여성이 있는가 하면 빈손으로 들어서는 남성도 여러 명이다. 

 

매주 토요일 점심을 같이 먹는 이 모임은 딱히 정해진 이름은 없다. 다만 그저 참여자들끼리는 이 모임을 ‘토요런치’라고 부른다. 

 

매번 가져오는 재료가 틀리기 때문에 다양한 음식을 먹는 것이 장점이다. 이른바 ‘소셜 다이닝’. SNS를 통해 관심사가 비슷한 사람끼리 만나 식사를 즐기며 인간관계를 맺는 행위를 말한다. 1인 가구가 늘면서 하나의 문화 트렌드로 자리잡아 새로운 공동체로 떠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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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은 사료를 먹나요? 식사를 하나요?


지난 4월 서울시가 발표한 ‘통계로 본 서울 가족구조 및 부양 변화’를 보면, 2015년 서울시 1인가구 수는 약 98만가구(추정치)다. 그 중 20·30대 1인가구는 약 46만가구다. 서울시 1인가구의 절반이다. 

 

한국에 최대 규모의 소셜 다이닝 모임을 만든 ‘집밥’ 박인 대표는 “모르는 사람과 어색할 거라는 우려와 달리 의외로 식사를 함께 하니까 더 친밀해지는 것 같다. 몸도 마음도 채우는 게 바로 집밥의 힘”이라고 강조한다. 

 

외국에서 학창 시절을 보낸 그는 유독 한국에서만 ‘식사는 하셨는지?’ ‘밥은 먹고 다니냐?’는 인삿말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인터넷에 올라오는 혼밥족(혼자 밥먹기 족)과 식사 때만 만나는 밥터디(밥+스터디) 같은 것을 보면서 한국의 식사 시간이 유독 짧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입버릇처럼 “아 집밥 먹고 싶다”는 말을 달고 살았던 그는 회사를 관두고 백수였을 때 SNS로 ‘같이 밥 먹을 사람’을 공모했고 생면부지의 8명이 모여 즐거운 추억거리를 만들었다. 

 

그 소소한 모임은 현재 일주일에 400명 정도가 모이고 전국 20개 도시에서 열리는 큰 모임으로 활발히 운영되고 있다. 

 

박 대표는 소셜 다이닝의 인기를 인간관계를 시작하는 출발점으로 보고 있다. 

 

그는 “젊은 사람만 모인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4, 50대들도 많다. 예전처럼 끼니를 때우기 위해 먹는 건 사료, 제대로 차려서 이야기를 나누며 먹는 건 식사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한끼를 먹더라도 공감과 소통이 있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 다 차린 밥상에 ‘숟가락만 얹어도’OK

서울 군자동에 사는 최현진(35)씨는 원룸에 있는 아일랜드 식탁을 거의 쓰지 않는다. 

 

직장생활로 인해 주말에만 집에서 식사를 하고 그나마 최근 2년은 소셜 다이닝 모임으로 알게 된 사람들과 삼삼오오 모이면서 본가에서 쓰던 교자상을 아예 들고 왔다. 그동안 최씨 집을 다녀간 사람은 어림잡아도 90명 정도다.  

 

 

집밥
(사진설명=집밥 홈페이지)

 

모임을 시작한 초반에는 모르는 사람을 집안에 들이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다. 

 

하지만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다양한 사람들을 알아가는 과정이 흥미로웠다. 

 

시간적 여유가 있는 주말에 주로 모였던 시기도 있었지만 지금은 평일에도 모여 밥을 먹을 정도로 고정 멤버들도 늘었다. 

 

최씨는 “지방이 집이라 내려가야 하지만 올 추석에는 싱글인 여자들만 모여 파자마 파티를 하기로 했다. 슬슬 결혼의 압박이 오기 시작하면서 같은 고민을 하는 친구들이 많다”면서 “가끔 같이 모이다 보면 식구보다 더 식구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고 고백한다. 

 

저녁 7시가 되자 만나기로 한 친구들이 자신만의 재료를 가지고 최씨의 집에 들어온다. 이날은 각자의 냉장고에서 뒹구는 재료들을 모두 가지고 오는 날이란다. 소셜 다이닝 버전 ‘냉장고를 부탁해’인 셈이다.

유통기한이 임박한 두부부터 막 시들기 시작한 상추, 반토막 밖에 안 남은 호박과 당근까지 재료도 다양하다. 

 

재료를 모두 섞어 만든다면 카레? 오산이었다. 최씨가 당면을 삶고 멤버들은 재료를 채썰거나 수저를 놓는 등 의견을 조율하며 한 상 가득 반찬이 채워진다. 이날 가장 마지막에 도착한 염미정씨의 손에는 후식으로 만들 샹그릴라의 재료가 될 화이트와인이 들려 있었다.

“다 차린 밥상에 숟가락만 얹었으니 이 정도 지출은 아깝지 않아요. 두어번 안면이 있는 모임이라 설거지로 미안함을 상쇄하려 했는데 멤버들이 맥주까지 쏘라네요.”

이로써 웃음이 넘치는 풍성한 저녁식탁이 완성됐다.


◇ 가장 ‘핫’한 소셜 다이닝은?

홍대의 명물 ‘쫄깃센터’는 유명 만화가 메가쇼킹의 남동생이 운영하는 회원제 카페다. 

 

제주도에 있는 게스트하우스에서 숙박 서비스만 없는 이곳에는 매주 일요일 독거남녀를 위한 소셜 다이닝을 연다. 

 

소셜다이닝
(사진제공=홍대 ‘쫄깃센타’ 페이스북 캡쳐)

 

여유있는 브런치나 12시 점심시간이 아닌 일요일 늦잠을 자고 일어나는 시간인 2시에 열리는 점이 인상 깊다. 이름도 ‘집밥 회동’. 매주 공식 페이스북을 통해 그 주의 메뉴를 정해 회원들과 공유한다.

지난주에는 구수한 청국장이 선정돼 뜨거운 반응을 얻었고 이번 주에는 여름 별미 콩국수다. 

 

홈페이지에는 친절하게 “국산콩으로 만든 콩물과 청수국수, 그리고 고명이 함께 합니다. 콩국수계의 영원한 화두는 소금을 넣어 먹을 것인가, 설탕을 넣어 먹을 것인가죠. 탕평책을 중시하는 홍대 쫄깃센터는 그래서 ‘간은 각자 알아서’라는 대안을 제시합니다. 소금이건 설탕이건 취향껏 넣어 드세요”라고 적혀있다.

이곳은 비회원은 일일 1만원,회원은 월 3만원에 무제한 거주(?)와 함께 정규 프로그램으로 식사와 각종 콘서트를 연다.

 

1년째 이곳의 유료 회원이라는 한 30대 초반의 남성은 “설거지는 각자가 해야 하고, 어떨 땐 카페 문도 직접 열고 들어와야 하지만 집밥회동은 매주 10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인다”고 귀띔했다. 

 

이희승 기자 press512@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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