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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70년 한국경제 70인] 증권시장 씨앗 심고 인재 양성… 탄탄한 금융그룹 키워내

입력 2015-08-11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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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故)송대순(1902~1974) 대한증권업협회 초대 회장은 우리나라에 증권시장의 씨앗을 심어 키우고 상장질서 확립에 크게 기여했다. 송 회장은 1949년 국내 1호 증권사 '대한증권'(현 교보증권)을 설립했다. 1953년 대한증권업협회(현 금융투자협회)가 출범할 때 초대 회장으로 위촉됐으며 대한상공회의소 최초의 증권업계 출신 회장이기도 하다.

고 신용호(1917~2003) 교보생명 창립자는 1958년 '대한교육보험'(현 교보생명)을 설립하고 세계 최초의 교육보험을 탄생시키는 등 금융을 통항 인력양성에 힘썼다. 

1991년 은행권은 발칵 뒤집혔다. 고등학교밖에 나오지 않은 53세의 젊은 사람이 은행장에 오른 것이다. 그러나 이 인물은 이후 은행장 3연임, 금융지주 회장 4연임이라는 역사를 섰다. 바로 라응찬(1938~) 전 신한금융지주 회장이다. 라 회장은 굿모닝증권(2002년), 조흥은행(2003년), LG카드(2006년)를 잇달아 인수, 신한을 국내에서 가장 안정적인 수익포트폴리오를 갖춘 금융그룹으로 만들었다. 

윤병철(1937~) 우리금융지주 초대 회장은 라 회장에 앞서 우리나라 최초의 금융지주 회장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그러나 윤 회장의 업적은 우리은행보다 하나은행에서 찾을 수 있다. 단자회사였던 한국투자금융을 현재의 하나은행으로 탄생시킨 인물이 바로 윤 회장이다. 

윤 회장의 자리를 물려받은 인물이 김승유(1943~) 전 하나금융지주 회장이다. 하나은행을 만든 사람은 윤 회장이지만 성장시킨 사람은 김 회장이다. 김 회장은 98년 충청은행, 99년 보람은행, 2002년 서울은행, 2010년 외환은행 인수 등 '4개 은행 M&A'라는 전무후무한 성과를 이뤄냈다.

외환위기 이후 은행계에 가장 획기적인 변화를 준 인물은 고 김정태(1947~2014) 전 국민은행장이다. 54세에 은행장에 오른 김 행장은 관치금융에 물들어 있던 금융계에 혁신의 바람을 일으켰다. 특히 CEO능력이나 이미지가 주가에 영향을 미치는 'CEO주가'라는 신조어를 탄생시켰다.

우리나라 증권시장에는 크게 두 번의 '주식형펀드 열풍'이 불었다. 그 첫 번째는 99년 '바이코리아펀드'다. 바이코리아펀드 열풍을 만든 인물이 바로 이익치(1944~) 전 현대증권 회장이다.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 비서로 오래 일한 이 회장은 99년 현대증권 회장에 올라 채권형 투자 상품이 주류를 이루던 국내 금융시장에 처음으로 주식형펀드 투자붐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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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에는 국내 최초 개방형 뮤추얼펀드인 '인디펜더스펀드'가 출시돼 또 다시 주식형펀드 열풍이 불었다. 박현주(1958~) 미래에셋 회장은 98년 미래에셋자산운용을 설립, 자신 이름을 앞세운 국내 최초 뮤추얼펀드 '박현주펀드'를 선보였다. 박 회장은 국내 재테크시장에 펀드를 안착시키는데 최고의 공헌을 했다.

채권인수시장과 기업공개시장 발전을 이끈 인물로는 고 양재봉(1925~2010) 대신증권 창업주가 꼽힌다. 한때 증권시장에는 '기업공개를 하려면 대신으로 가라'는 말이 돌만큼 대신증권을 기업공개시장 강자로 만든 인물이 양 회장이다.또 1976년 업계 최초로 증권 전산화에 나서는 등 증권산업 발전에 업적을 남겼다.  

유승열·유병철 기자 ysy@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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