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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두 번째 베토벤 소나타 사이클 중인 피아니스트 최희연 “폭풍을 타고 가는 영웅처럼”

[허미선 기자의 컬처스케이프]

입력 2021-11-05 18:30
신문게재 2021-11-05 12면

피아니스트 최희연
피아니스트 최희연(사진제공=PRM)

 

“그 정신의 핵심은 자기 자리에 주저앉지 않는 거예요. (청각을 잃을 수도 있다는 의사의 말에 요양을 위해 떠난 빈 교외의 하일리겐슈타인에서) ‘하일리겐슈타트 유서’를 작성했지만 자살하지 않았어요. 그는 영웅이지만 쉽게 된 영웅이 아니에요. 폭풍을 타고 극복했다는 의미로 ‘On The Storm’이라는 표현을 썼어요. ‘폭풍을 타고 가는 영웅’의 느낌이랄까요.”

 

2015년부터 두 번째 베토벤 소나타 사이클(전곡 연주) 중인 피아니스트 최희연은 루트비히 판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에 대해 ‘폭풍을 타고 가는 영웅’이라고 표현했다. 그의 말처럼 베토벤은 자신의 형제들에게 절망적인 내용의 ‘하일리겐슈타트 유서’를 쓸 만큼 ‘죽음’을 가까이에 두고 살아야 했지만 결코 삶을 포기하지는 않았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유서에서 베토벤은 “언제 죽음이 오든 기꺼이 맞을 것”이라면서도 “내 운명이 가혹할지라도 예술적 재능을 발전시킬 수 있는 동안은 죽고 싶지 않다”고 적었다. 그 막바지 구절에는 삶을 지속하고자 하는 의지와 바람이 절절하게도 담겼다. 그리고 그곳에서 ‘제2교향곡’, 지금까지도 잘 알려진 ‘제6교향곡(전원교향곡)’ 등이 작곡되기도 했다.

 

 

◇두 번째 베토벤 소나타 사이클, ‘칸틸레나’에 주목

  

피아니스트 최희연
피아니스트 최희연(사진제공=PRM)

“2012년부터 2018년까지 첫 번째 소나타 사이클을 했고 2015년부터 두 번째 사이클 중이에요. 2015년부터 세 차례 녹음을 진행했고 (이번 앨범을 포함해) 두 개의 앨범이 나왔어요. 이번 ‘최희연 베토벤 소나타-The Great Sonatas’는 2019년부터 준비해 녹음한 두 번째 앨범이죠.”


베토벤 소나타 사이클의 일환으로 소나타 17번 ‘폭풍’, 21번 ‘발트슈타인’, 23번 ‘열정’을 담은 두 번째 앨범 발매와 더불어 최희연은 7일 리사이틀에 나선다. ‘최희연 베토벤 소나타’라는 제목의 앨범과 리사이틀에는 ‘The Great Sonatas’라는 부제가 달렸다.  

“이번 앨범에 수록된 곡들은 중기 소나타예요. 그때 베토벤은 폭발적으로 소나타를 작곡했죠. 유명했던 소나타들이 중기에 몰려 있어요. 이번 음반에 포커싱한 것은 칸틸레나(Cantilena, 서정적 선율 혹은 주법)예요. 그 부분을 버릴 수 없었어요. 그렇게 오해될 수 있는 부분에 대해 저항하고 있는 게 컸죠. 그래서 뵈젠토르퍼의 피아노를 선호하기도 했어요. 노래 속에서 파워는 하모니에서 나오는 거라고 생각해요.”

최희연은 “다음에는 전집이 나오지 않을까 싶다. 이미 32개의 소나타 중 17개 녹음을 마쳤다. 남은 15개 중에는 짧은 소나타들이 있어서 절반은 지났구나 싶다”며 “내년에 두 번의 녹음이 더 계획돼 있고 2023년까지 (사이클을) 마치는 게 목표”라고 털어놓았다.

“(다른 연주자들이 녹음해 앨범으로 내놓은) 베토벤 소나타 전곡이 이미 많아서 고민했어요. 하지만 그 걱정은 후대에 맡기고 이 시대에 살고 있는 내가 남길 수 있는 것을 하자 했어요. 저는 한국이 만들어준 ‘스페셜리스트’예요. 그런 이 사회에 보은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다 소나타 전곡 녹음을 생각했죠.”


◇모더니스트 베토벤 “굉장한 로직의 동기 발전 작법”


피아니스트 최희연
피아니스트 최희연(사진제공=PRM)

 

“베토벤은 모더니스트예요.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모습을 봤을 때 모던하다고 하잖아요. 베토벤은 당시에는 안썼던 방식들로 곡을 만들었어요. 그때랑은 너무 다른, 당시의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었죠. 21번 소나타는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흐름을 보여요. 난동을 피우다가 미뉴에트로 갔다가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이제까지 없었던 형태의 진행이죠.”

그는 이를 ‘베토벤 DNA’라고 표현했다. 그는 “(앨범에 수록된) ‘폭풍’ ‘발트슈타인’ ‘열정’은 당시에도 말이 안되는 곡이었지만 지금도 답답하거나 구식(올드패션)으로 느껴지질 않는다”며 “이 세 소나타 뿐 아니라 베토벤의 초기 작품들까지 그렇다”고 전했다. 

그렇게 당시 선호되기 어려웠던 곡들은 19세기에 들어서면서 프란츠 리스트(Franz Liszt), 아놀드 쇤베르크(Arnold Schonberg) 등 현대작곡가들에 의해 적극적으로 연구되고 지금까지도 변주되고 있다. 

피아니스트 최희연
피아니스트 최희연(사진제공=PRM)

“그들은 작법의 과감함과 기발함 그리고 생각지도 못한, 별 것 아닌 모티프로 만들어가는 그것에 열광하는 걸 거예요. 그게 현대음악과 정신적인 면들이 맞닿아 있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그 맞닿은 정신적인 면들이 ‘주저앉지 않는 것’이죠.”

 

그리곤 ‘열정 소나타’를 예로 들었다. 그는 “분석하면 할수록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며 “초반 프레이즈에서 두 개의 모티프를 가져와 반복하면서 발전시키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살펴보니 결국 곡 전체에 펼쳐진 것들은 처음 프레이즈에서 가져온 것들이에요. 그렇게 통일성(Unity)이 생기면서 소나타의 한 악장이 아주 단단하게 서죠. 분석하지 않고 그냥 들어도 굉장한 로직이 있어서 가슴이 시원해요. 그 로직을 경탄하면서 연구 중이죠.”

이어 최희연은 “그 경이로움을 딱 집어 표현할 수는 없다. 그 로직 자체가 경이롭다”며 “동기 발전 방식, 모티빅 디벨롭먼트(Motivic Development)라는, 작은 셀을 가지고 쌓아가면서 발전시키는(Develop) 작곡 형태와 방법”이라고 부연했다.

“블록을 쌓는 방법이나 만들 수 있는 모양은 너무 많잖아요. 무궁무진한 가능성, 그게 대단해요. 그러면서도 통일성을 잃지 않죠. 그게 사람을 감탄하게 만들어요. 이 사람(베토벤)의 모든 악장에는 통일성이 있거든요. 모티빅 디벨롭먼트를 하면서도 생겨나는 통일성이요. 그걸  리스트가 대성시켰고 쇤베르크도 영향을 받았죠. 이미 우리시대 오기 전에 베토벤의 후대들이 가져왔어요. 이 사람(베토벤)이 모티프를 가지고 써가는 작법이 너무 무궁무진해요. 그의 32개 소나타를 보고 아이디어가 안떠오를 수가 없을 정도죠.”

그리곤 “작곡가가 아닌 제가 할 일은 베토벤 텍스트를 잘 분석하고 이해해서 거기에 숨겨진  로만티시즘, 모더니즘 등을 새로 발견하는 과정을 계속 하는 것”이라며 “제가 이 다음 단계로 해야할 건 임프로비제이션(Improvisation, 즉흥연주)”이라고 귀띔하기도 했다.

 

◇베토벤은 숙명이자 숙제 그리고 축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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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 최희연(사진제공=PRM)

 

“저에게 베토벤은 숙명이기도 하고 숙제이기도 했지만 이제는 축복이죠. 기억해보면 굉장히 어렸을 적부터 베토벤이 좋았던 것 같아요. ‘비창 소나타’를 칠 때부터니까요. 하지만 이게 숙명이 될 줄은 몰랐어요. 물론 달콤한 소품도 좋죠. 어떨 때는 베토벤이 단호한 제 성격과도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가진 재주에 비해 노력하는 편인 부분도.”


그리곤 “베토벤을 통해, 소나타 사이클을 반복하면서 굉장히 많은 것을 배우고 보완해나갈 수 있었다”며 “소나타 사이클을 반복하면서 음악적 기본, 이론적인 것들이 굉장히 부족함을 스스로 느꼈다. 왜 안되는지 질문을 가지면서 그 부족하고 닦이지 않은 채였던 것들을 채워갈 수 있었다”고 밝혔다.

“첫 번째 사이클 중간에 좀 피곤해져서 놓고 싶었던 적도 있어요. 그럼에도 원치 않는 임신으로 1년 정도의 휴지기 후에도 (베토벤을) 놓을 수 없게 됐어요. ‘이제 됐어’ ‘다 이뤘어’라는 느낌을 참 안주거든요. 두 번째 사이클을 끝내고 나면 괜찮지 않을까 싶기도 한데 놓고 싶은 마음인지는 모르겠어요.”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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